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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신용목 愼鏞穆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음.sinym74@hanmail.net
죽은 자의 노래로부터
태양이 종소리에 감겨 조금씩 꺼져갈 때 십자가에 찔려 금 가는 하늘에
박혀 있던 벽돌들 후드득 떨어지고
튀어오르는 어둠이 달리는 타이어 은빛 추위에 치여 창문마다 검은 피를 뿌릴 때
나는 죽은 자의 메아리를 잘라왔다 불탄 구름이 흐린 재로 흩날리는 광장에서
목을 잃은 혀가
부르는 노래 시체의 목소리 속을 떠도는 바람의 목에 걸어주는 긴 머플러
녹빛 동상의 입에서 쏟아지는 무용담과 장검이 찌르고 있는 칼집 속의 오랜 적막을
그리고 도심의 방 환한 무덤에 쌓여 있는 종이들 관짝의 먼지 낀 뚜껑을 열고
시체의 배 속에 남아 있는 밥알을 씹는다
얼굴에 어둠을 묻힌 채 이제부터 나는 뒷걸음질로만 앞으로 나갈 수 있으므로
낮과 밤 사이에서 떨어져나온 벽돌들로 시간의 양쪽 끝을 눌러놓고 길 잃은 메아리
위에 적혀 있는 노래를
몸의 불구덩이로 던져넣는다 밤이 추위뿐인 영혼에게 검은 망토를 걸쳐줄 때
아무리 피워올려도 구름이 되지 못하는 연기의 역사 그러나 인간이라는 거푸집에서 뜨거운 쇳물로 끓고 있는 피를
그 숲의 비밀
금서의 불타는 마지막 장에서 사라지는 예언들. 꺼져가는 눈빛들. 서서히 밤,
언제나 추위는 내일로부터 온다.
문을 열면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솟아오르는 들판, 아무도 그 위를 걸어본 적 없고.
어둠의 귀를 길게 잡아당긴다. 랍비여, 이제 무슨 말을 해주실 건가요?
그리고 내일의 숲에선 낙엽이 지지 않아. 그 말은 너무 화력이 약하구요.
허락된 문장을 읽기 위하여 말을 배우는 아이들,
시간의 두꺼운 책은 언제나 반으로 펼쳐져 있다.
어떤 페이지는 가볍게 넘어가고 어떤 페이지는 절망이 필요할 것. 한 단어의 무게를 지고 쓰러지는 운명의.
그러나 지금은 밤. 검은 재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어둠을 한장씩 넘긴다. 이 페이지엔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아. 그 말이 다시 추위에 얼고.
녹으면, 죽은 예언들이 부스스 흐린 눈을 뜬다.
문 밖에서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솟아오르는 내일. 누가 저 숲을 불 질러주었으면,
허락된 말의 빈 문장으로부터.
랍비의 두 귀에서 낙엽이 돋아나는 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