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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준규 李濬揆
1970년 경기 수원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으로 『흑백』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이 있음. naninini@naver.com
그가 걸어간다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걸어간다. 그가 공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발을 끌고 걸어간다. 바람이 분다. 그가 봉투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낚싯대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물통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나침반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포충망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개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주전자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황조롱이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메기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광대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촛불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변기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책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직박구리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한숨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틀니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아령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요강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솥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걸어간다. 그가 고양이를 쳐다보며 걸어간다. 그가 새소리를 들으며 걸어간다. 비가 내린다. 그가 담배를 피우며 걸어간다.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다리를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가 보랏빛 스타킹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가 하얀 부츠를 신은 다리를 보며 걸어간다. 그가 물 위에 뜬 공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가 울고 있는 여자를 지나치며 걸어간다. 그가 몸을 웅크리고 손바닥을 보여주는 자를 바라보며 걸어간다. 눈이 내린다. 그가 커피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녹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방금 산 책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간다. 돌개바람이 분다. 그가 머리를 흩날리며 걸어간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걸어간다. 그가 다리를 절며 걸어간다. 그가 그를 향해 걸어간다. 그가 그를 지나치다 문득 멈추다 지나치며 걸어간다. 그가 그의 개의 빠른 발놀림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가 바람에 날리는 꽃씨를 보며 걸어간다. 그가 자전거의 바퀴살을 보며 걸어간다. 그가 나무 그늘을 쳐다보며 걸어간다. 그가 그가 쓴 것을 보며 걸어간다. 그가 그의 추억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상상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후회를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처참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실험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울음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그의 웃음을 들고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가 걸어간다. 그들은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해가 뜬다.
산책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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