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 교육시평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학교보건 실태
김지학 金知學
경기 중흥고 보건교사 freemozilla@hanmail.net
지난 5월 20일 첫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확진된 이후, 전 국민을 감염병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가 7월 28일을 기점으로 두달여 만에 사실상 종식되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감염됐던 신종 플루와 비교해볼 때, 이번 메르스는 학생 피해는 비교적 미미했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의 대응과정은 신종 플루 못지않게 긴박했다. 메르스 환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일부 지역에서 일괄 휴업령이 발효되면서 학교의 대응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사례를 돌아보면, 교육청에서 메르스 관련 감염병 주의경보가 발령된 이후 학교 메르스 대응계획을 수립하였으며, 학교장이 중심이 되어 비상대책반 회의가 소집되었다. 교직원회의에서는 경보단계에 따른 대응계획 및 예방수칙 등을 공유했고, 담임교사는 매일 조·종례 훈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예방수칙을 안내했다. 다행히 2학년은 법정 보건교육과정이 학기초부터 편성되어 있어, 보건수업 시간에 직접 특별예방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3학년은 별도의 수업이 없어 방송으로 예방교육을 했다. 이와 동시에 각 가정에는 메르스 예방법, 의심증상 발생시 행동요령, 지역 내 메르스 대응기관 및 연락처 등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제작하여 지속적으로 발송했다. 6월 7일에는 지역 최초로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교육감이 지역 내 모든 학교에 일괄 휴업조치를 명하면서 일주일 동안 휴업에 돌입했다.
휴업 해제 후, 비상대책반 회의에서 전교생에 대한 일일 발열감시가 잠깐 논의되었으나, 유증상자의 경우에만 보건실에서 조치하는 것으로 유보되었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신종 플루 당시처럼 일부러 열을 올리거나 해열제를 먹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나타나 혼선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시점에 발열 체크로 오히려 접촉이 확대될 수 있고, 체온계가 정확하지 않아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 특수학급 포함 45학급 규모의 거대 학교인 점을 고려할 때 전교생의 발열 체크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평소보다 일찍 등교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가 자칫 학생들의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 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안내하면서 동시에 범인을 색출하듯 발열 체크를 강행한다면 학생들이 이중 메시지로 받아들여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이후 지역 내 학교장 협의회, 교육청 공문 등에서 전교생 일일 발열감시가 지속적으로 강조되자, 단위학교의 방침을 단독으로 고수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겼고, 결국 중간에 방침을 바꾸어 매일 조회시간에 담임교사가 발열 체크를 실시했다. 한편 시와 교육청에서는 보조금을 지원하여 메르스 예방물품을 구입하도록 지시했는데 체온계, 손소독제, 비누, 마스크 등 일부 품목이 조기에 품절되어 제때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돌아보면 주어진 조건에서 학교와 교육당국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메르스에 대응했지만 정책적·조직적 측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첫째, 지침의 구체성·종합성이 부족했다. 일례로 보건교사 단체인 보건교육포럼은 6월초에 민관 TFT를 구성하여 현장 중심의 성찰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교육부에 제안했지만, 교육당국은 현장과의 소통에 미흡했다. 또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렸지만, 학교보건법에 따른 법정 보건교육을 메르스 대응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2009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은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보건교사에게 받아야 하며, 보건교육과정 고시는 초등 5,6학년, 중·고등학교 각각 1개 학년 이상에서 연간 17시간 이상의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 보건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메르스 예방을 위한 특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되지 않아, 일부 학교에서는 보건수업이 아예 편성되지 않거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둘째, 지침이 현장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메르스에 대한 위험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대응 초기부터 학부모, 학생과 정보공유·의사소통 체계를 수립했어야 하나, 본교 지역의 경우 ‘학부모 안심 채널’이 설치되었다는 공문은 메르스 사태 한달여가 지난 후에야 학교로 시달되었다. 셋째, 현장의 정책수단 이행에 대한 강력한 지도·감독 권한이 미흡했다. 학교 구성원이 적절하게 업무를 분담해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시설 방역, 관련 물품 구입 등의 업무까지 보건교사에게 일임했음에도 이에 대한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넷째, 의사소통·정보공유를 위한 정책적 수단이 미흡했다. 신종 플루 당시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학교 대응에 있어 무엇보다 의사소통·정보공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바이러스 전파차단 기술에만 매몰되었는데, 이것이 메르스 대응에서도 반복되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첫째, 보건교사의 인력 부족과 권한 미흡의 문제가 나타났다. 수년째 전국 보건교사 배치율은 65%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데다, 60학급이든 20학급이든 보건교사는 한 학교에 1인만 배치되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예산을 지원하여 필요시 거대 학교에서 보건 보조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인력대책보다 감염병 예방물품 구입만 강조하였다. 둘째, 보건교사를 제외한 학교장, 교직원이 감염병 등 학교보건에 대한 지식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교장, 교감, 교사의 자격연수나 직무연수시 학교보건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아 감염병 등 학교보건 문제가 발생할 때, 교직원간 의사소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보건과목이 있고, 그것을 담당할 보건교사가 교과교사와 동일한 양성과정을 거쳐 임용되는데도, 보건교사에게 정교사(교과교사) 자격을 부여하지 않아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이나 부장교사 등의 보직에서 보건교사를 관행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구조적인 문제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학교의 주요 의사결정기구가 부장교사 회의이며, 학생-교사 간 밀접한 교류가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서 소외된 보건교사가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넷째, 학부모와 건강 의제를 충분히 소통할 창구가 미흡하다. 초중등교육법이 정한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사항에서 감염병, 보건교육 등 보건 의제는 빠져 있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학교보건 문제를 협의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외에도 손 씻을 시설의 충분한 확보, 학교보건 예산의 증대, 교육당국과 보건당국-학교-지역사회-학부모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유기적인 네트워크 구성 등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위험사회’로 진입하면서 감염병 등 새로운 위험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므로, 이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술·관료적 대응이 아니라 참여·협의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50~60년대에 수립된 낡은 학교보건 시스템으로 신종 플루, 에볼라, 조류독감, 메르스 등 새롭게 출몰하는 신종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신종 플루 대응에서 얻은 교훈을 메르스 대응에 적용하지 못한 채 또다시 관행을 답습만 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라도 성찰을 통해 학교보건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2015 한국보건교육학회 하계학술대회(2015.7.4)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