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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정환 金正煥
1954년 서울 출생. 198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텅 빈 극장』 『해가 뜨다』 『유년의 시놉시스』 『거푸집 연주』 등이 있음. maydapoe@hanmail.net
내 몸에
1. 일본 냄새
분명 씻는 것이지만 씻어도 씻어도 씻은 것 아닌,
아주 지워지지는 않는 특성 너머
본성에 늘 달하려 하지만 늘 실패하는 말린
다시마 냄새, 가장 깨끗한 여인의 샅의,
자연스레 열린 만큼 열려 있으나 사랑도
침은 너무 숭하다는,
소리와, 오히려 손해라는 모양의 면적으로
가마보코가 야들야들 가마보코고 생선회가
하얀 맵시 접시 위 더 하얀 정결
살기인.
2. 베트남 냄새
감동만큼 슬픈 것도 없다. 비린 민물생선 국물의
비림을 강조하는 고수잎, 그 휘발유성 비림의
이 역겨움은 아마도 원래 울화의 소산이었겠지만
중앙의 토색(討索)에 맞서 오줌통에 내던진,
삭힌 홍어보다 더 대범하게 정치적이고 식민지
백년 전쟁 치르며 그 전통 상징이 된다 뒤범벅된
긍지와 고통의. 긍지가 된 고통의
건국이 된다, 그때 그랬던 시절이 승리한
일용 음식의
권위 같다.
고수잎 민물생선탕
국물이 늘 적당량을 조금 웃도는
기적을 닮은
농담 같다.
3. 타이 냄새
가난은 무엇보다 성욕을 자극하지. 빈부격차가 심한
가난일수록 더욱. 그렇게 엘마누엘이다. 새파랗게 젊은
큰아이 놈이 태국 갔다가 사다주었다 노년의 부모에게.
새끼손가락만 한 코끼리상 등에 꼽고 아마도 노부부
섹스 동안 피우는 향. 오해라도 불역낙호아지만
피우기도 전에 안방으로 옮기기도 전에, 그 냄새, 그
비린내의 정반대인 황홀경, 빈민의, 빈민가의, 빈민가로 짙디짙은.
섹스 향과 섹스를 위한 향과 죽은 자 향의
혼돈과 혼동과 혼합인.
여인이 춤추는 듯한, 춤의 여성, 춤의 성(性)인 듯한
죽음이 여성이라서 춤인 듯한
글씨체 상호
Narai Phand
YLANG YLANG
재스민 향도 그것의
위장(僞裝)인.
4. 김부각 맛
어젯밤 꿈에는 왜 그리 모든 것이 너무 귀하고
너무 귀한 것이 너무 슬프던지. 아내와 아내 쪽
식구들이 꿈 밖으로 눈물 번지는 꿈속 눈가로 넘쳐
흘러내리면 눈물은 라디오 희망곡과 일일 반공 연속극
사이 삼선교 대문 들어서자 연탄아궁이 골방 대학
입학 전후 헌책 꽉 찬 좁은 사방벽 삼각으로 가까스로
위태롭고, 아들도 있나 하긴 아내가. 나를 걱정하는
전화 소리. 둔탁한 돌 하나 가슴에 얹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칭찬으로 큰아버지, 나의 옛날 나의 어부 나의 호치민, ‘얘야
스와니강을 불러다오’ 내색의 스와니강. 막내
가까스로 자리 잡았다 인창동 아름마을 원일아파트 104동
103호. 찾아가는 길 국민학교 땡땡이치던 전농동 지나
누나 색시들 몸 팔던 청량리 588 지나 큰물에 내가
빠져 죽는 큰아버지 밀가루 국수 말리던 단칸방 살림
중랑천 지나 장안의 장안동, 면목 없는 면목동, 죽음이
한치 발 디딜 틈 없는 녹색병원 영안실 지나 그
장소들이 이리 가까웠나 아예 한몸이었나?……
너무 가까워 전면적인 까마귀 아니 까치 아니 까마귀는
다 채우지 못할 것을 모르고 신음이 화성인 것을 모르고
가까울수록 난해할 것과 찢어질수록 순정할 것을 모르는
행복한 귀다. 그렇게
깨어보니 옛날의
김부각 맛,
오늘의
몸 밖으로.
5. 방석집 고향
잠 깨면 초상집 같다. 나의 초상집 아니지. 내가
내 쪽으로 죽은 지 너무 오래. 그의 초상집도 그쪽으로 너무 오래다.
초상집은 주어(主語) 없는 습관. 한참을 그러다
눈 내리고 문도 구들도 벽도 없고 들창문 열려
허허벌판 여관에 있다. 고향 마포에 있다.
여자와 있다,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발 디딘 데 질척한 나의 유년을 여자가 부수면
나 비로소 오늘 치 습관 벗고 생활은 발이 없다.
내일의 초상까지 발만 담긴 고향이다.
어느날은 아파트 담 공유한 보통학교 운동장 아이들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악, 악, 악악 부르고
돌연 알 수 없는, 힘찬, 슬픔의 나이테가 내 습관에
백이는 식으로 지구가 둥글어지기도 하였다. 자꾸자꾸
나가면* 악, 악, 악악, 아버지 옛 부산 Custom Taylor
양복에 수놓은 전화번호 앞 숫자 두 자리였나 아니
한 자리? 황해도에서 내려와 앞으로, 앞으로,
내 유년에 아버지 부산 거쳐 일본까지 갔다.
너무 멀리 갔지.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JVC 초미니 홈시어터 디지털 잘 돌아가는데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애프터서비스센터가 가져다
일주일 내리 틀었으나 이상이 없단다. 그렇겠지
이상 있고 속수무책인 것은 내 유년의 장소겠지.
아무도, 나조차 믿을 수 없었지만 내가 믿을 밖에
없다. 없는 형도 출몰한다. 더 질척해다오, 안 보이는
내 방석집 고향 마포, 내일의 초상집 습관 밖으로.
고향은 늘 하나의 장면인, 사는 이야기고 시는
사냥과 집이 없는 그물, 무덤의 이면이다. 아들의
모닝콜은 수탉 꼬기오에 클랙슨을 합쳤는데
어설픈 탱크의 어수선한 선전포고 같고 장하다 아들,
일어나지 않는다. 열린 방문으로 엉덩이가 전쟁보다
더 무거운 잠이고, 평화다. 미로의 사정이 있다.
가격의 보석이 있다. 애청하는 지옥이 있다. 늙음의
어원이 있다. 치매에 달하기 전 Tefal, Café
City로 커피 끓이며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경우 수가 있다. 파경 너머
가장 슬픈 순간이 영원이다. 한없이 아득한 연민
무게의 기억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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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앞으로」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