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50주년 특별기획: 창비에 바란다
느림의 언어로 삶 가까이에
강경석 姜敬錫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최근 평론으로 「비평의 로도스는 어디인가: ‘근대문학 종언론’에서 ‘장편소설 논쟁’까지」 등이 있음. netka@hanmail.net
“제도권 신학의 공간 밖을 떠도는 신학의 방외자로서 20여년을 유랑하였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 2012)의 책날개는 저자인 김진호(金鎭虎) 목사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28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유랑하는 방외자’는커녕 전형적인 교수나 얌전한 학자풍에 가까워 보였다. 뿔테안경에 코트를 단정하게 걸친 그의 첫인상은 한시간 남짓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이른바 재야(在野)가 연상시키곤 하는 어떤 야성을 그의 언어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시대와 현실에 대한 오랜 고뇌의 흔적이 켜켜이 새겨진 균형 잡힌 지성이 안경 너머 눈빛과 목소리에 배어 있었다. 목회자 특유의 선언하고 인도하는 기질도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그의 말은 차분하고 논리적이었다. 신학대학원과 제도권 교회를 박차고 나온 용기와, 한국사회의 수구기득권이나 그 재생산의 파트너가 되어버린 대형교회를 향해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결기는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창간 50주년을 맞는 『창비』가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지금까지 그가 감당해온 어떤 시간들이 먼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극우주의와 대형교회의 쌍생아적 관계에 관한 연구와 우리 사회의 웰빙형 보수주의(보보스 우파 현상)의 문화적 체험이 구조화되는 장으로서 대형교회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3시대웹진』의 격주간 발행, 연간 3~4분기 강좌 개설, 학술토론회와 출판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변동과 개신교신학의 부정적 결합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적 신앙을 모색하는 신학운동을 펴고 있지요.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의 1세대 민중신학운동은 명망가 중심이었다. 교회가 당시 해직교수들의 새로운 거점이 되었고 독일계 펀드의 지원을 받아 민중에 대한 물음이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적 공론장에서 민중론이 서서히 두각을 드러낸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중후반 들어 맑스주의와 기독교의 결합 문제를 화두로 하는 2세대 민중신학으로 꽃피게 되었다. 기독교청년들의 열띤 참여가 그 배경임은 물론이다. 그를 민중신학의 길로 이끈 것도 바로 이 2세대 운동의 열기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는 역설적으로 민중신학운동의 여러 지평을 해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민중신학의 죽음’이 공공연히 선언되곤 하던 90년대 들어 그것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으니 바로 3세대 민중신학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3세대 민중신학운동의 기본인식은 어떤 점에서 전대(前代)와 갈라지는 것일까.
IMF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매우 종교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어요. 삶은 고달픈데 교회도 지식도 이를 대변해주지 못한 겁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거예요. 깃발은 사라지고 촛불이 나타납니다.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염원이 들어선 것이지요. 이것은 명백히 종교적 표현입니다. 기성종교들은 이걸 무시했어요. 계측 가능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메시아니즘(messianism)이 등장합니다. 박근혜가 호출되는 저변에는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있지요. 노무현 현상도 메시아니즘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세계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담론은 많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직 충분히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현상을 설명해주는 논리는 많지 않아요. 이러한 교회 바깥의 종교화를 말하기 위한 개념이 바로 ‘사회적 영성’인 겁니다.
사회적 영성(靈性), 그러니까 그가 교회 안에 갇힌 영성이 아닌 우리 시대의 종교화를 말하는 배경에는 민중의 고통에 대한 현장에서의 체험이 짙게 깔려 있다. 노숙자나 성폭력피해자 들을 만나면서 그가 목격한 것은 자기를 서사화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의 유사 실어증 상태였다. 그의 말마따나 예수의 기적 중에도 말하지 못하는 자들을 말하게 하는 예화가 있지 않던가.
목회자로 과천에 있을 때였어요. 26세 청년이 부모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공분이 엄청났지요. 그런데 아무도 그 청년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까 그 청년은 살아온 26년간 집안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 학대받아왔던 거였어요. 패륜범죄에 대한 공분이 비속(卑屬)학대에 대한 관심을 가려버린 거지요. 민중신학의 증언은 이처럼 위악으로 나타나 다르게 들리는 말을 시민사회의 언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종교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은폐된 고통을 발견하고 서사화하는 ‘증언’에 있음을 그는 누누이 강조했다. 민중신학에서 신은 가장 비참한 고통의 형식으로 인간의 경험세계로 개입해 들어온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번안될 때는 언제나 비대칭적이다. 그러한 고통의 언어를 읽어내다보면 우리 사회의 가학적 시스템이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민중신학의 소명은 문학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50년의 다짐에 나서고자 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3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의 이름을 건 채로 제도권 기독교에서 활동할 수 없었어요. 보수적 기풍 속에서 진입이 원천봉쇄된 거죠. 저 같은 경우는 2005년에 폐간되긴 했지만 『당대비평』 같은 매체에서 활동할 기회가 주어져서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어요. 자기 언어를 찾아 절름거리며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창비』가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은 젊은 연구자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고 해외의 비판적 신학연구자들과 네트워크도 활발해서 민중신학의 장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여건이 많이 좋아진 거죠.
그간 『창비』의 기획들 가운데 많은 것이 기념비적이지만 특히 90년대 초반 연속기획으로 진행되었던 한국사회의 계급론 논쟁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그 이유로 “대부분의 필자들이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현상들을 계급론을 위한 텍스트로 활용하면서 계급론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훨씬 훌륭하고 체계적인 이론과 현상분석이 뒷받침된 계급이론들이 나왔지만, 당시로선 가장 첨단의 논의를, 단지 외국이론의 소개를 넘어서, 경험세계 속에서 펴려 했다는 점”을 들었다. 새로운 수준에서 현장성과 운동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창비』의 지향과도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계간지가 담아온 담론의 위상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빠르고 직선적이고 순발력있는 담론 형식이 난무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병리적 증세를 아프게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것을 ‘타자성의 몰락’이라고, 무모할지도 모르는 규정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너무 빠른 언술의 속도성이 낳은 부작용일 거예요. 뒤를 돌아보고 옆으로 걷기도 하고 거꾸로 서보기도 하면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붕괴되면서 타자의 끼어듦이 구조적으로 봉쇄된 거라고 봐요. 그 부작용으로 인한 집단적 병증으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의 치유법으로 대두한 것이 ‘느림’이었습니다. 속도성의 전방지대가 우리의 경험세계 구석구석까지 점유하려는 세계에서, 느림의 후방지대를 만들어보려는 내적 투쟁이 바로 ‘느림’의 담론이겠죠.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느림을 체화하는 수행적 기획입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화되어 모니터에 재현된 글이 아닌, 종이에 인쇄된 다소 분석적인 해석의 여지가 담긴 글 읽기도 또한 중요한 느림의 수행적 의의가 있겠지요. 우리 사회의 경험적 지평에서 거기에 적합한 매체는 계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계간지 시장은 거의 사라진 것 같아요. 하지만 희망은 몇몇 계간지가 실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런 분량의, 그런 깊이의 글을 쓸 수 있는 생산자가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간지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인 『창비』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저는 『창비』가 절망, 질병, 무력감 등 사람들의 구체적인 고통의 체험들에 대한 좀더 깊은 통찰과 분석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에서 우리가 서 있는 세계를 읽고 위기를 해석하며 대안을 상상할 계기를 얻게 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매체환경의 변화에 따른 글쓰기의 달라진 지평 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와 문학에 대한 비판적 담론 생산의 거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창비』에 대해 그는 한편으로 격려하고 다른 한편 우려하면서도 기대를 여투어두는 일을 잊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하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그 자신의 언어를 되찾아주는 역사(役事) 가운데서 그가 말하는 민중신학의 사명이 있는 듯했다. 한결같되 날로 새로워야 할 창비의 새로운 50년도 거기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