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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세희 金世喜

1987년 전남 목포 출생. 2015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lalie0077@naver.com

 

 

 

가만한 나날

 

 

1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 나는 대학로에서 우연히 재화 언니를 만났다. 구름 끼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오후였다. 그때 스물여섯이던 나는 출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답시고 종일 원룸에 혼자 있다가, 괜히 잡생각만 가득해지고 점점 압박감이 들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마로니에공원 쪽으로 좀 걷다가 아이쇼핑을 할까 싶었다. 밤에는 엄마와 통화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지하철역 출구의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일렁이며 끊임없이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나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출구 한쪽에 서 있는 재화 언니를 보았다. 영어학원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언니로, 그때 언니는 이미 회사원이었다. 길에 서서 서로 근황을 전하다가, 나는 내일부터 작은 마케팅회사에 출근한다고 말했다. 언니는 활짝 웃으면서 축하해주었다. 그러더니 내가 몹시 긴장한 상태라는 걸 알아채고 깔깔 웃으며 놀려댔다.

“맞다! 너 인생 첫 출근이지! 완전 떨리겠네?”

나는 갑자기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 되어서, 언니의 팔을 붙잡고 사회생활 선배로서 조언해줄 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놀려대기를 멈추고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너 자신을 프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난 도움이 됐거든. 신입이어도 난 아무것도 몰라, 난 초짜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프로야, 나는 프로페셔널해, 마음가짐을 그렇게 갖는 거지. 난 이 일을 프로답게 해낸다, 그런 자세로다가.”

언니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일할 땐 좀 까칠한 편이거든. 약간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 그렇게 안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좀 그렇단다? 그래서 공과 사를 더 구분하려고 하는 편이야. 그런데 일할 때 말고 회식하거나 할 때는 일부러 좀 풀어. 바보 같은 소리도 하고. 그럼 사람들도 오히려 좋아해.”

그때 언니가 무슨 말을 했어도 나는 황금처럼, 귀인의 귀띔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낯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주문을 외듯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입은 나를 포함해 세명이었다. 회의 준비로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우리는 서로 어색한 목례만 나눈 채 앉아 있다가 9시 정각에 복도 맞은편 회의실로 이동했다. 앳된 얼굴의 직원이 빠른 걸음으로 테이블을 빙 돌며 자료를 나누어주었다. 프린트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따끈따끈한 종이를 집어드는데, 어쩐지 쑥스러워서 입가가 실룩거렸다. 진짜 회사원이 되었구나, 실감이 났다. 나는 입가의 실룩거림을 억제하며 이런 회의라면 오십번쯤은 참석해봤다는 얼굴로 종이를 팔락팔락 넘겼다.

자료는 영업팀, 홍보팀으로 나뉘어 있었고, 팀별로 지난주 주요 업무 내용과 이번주에 진행할 업무가 칸 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블로그 후기 마케팅이 주력인 광고대행사로, 신생이지만 규모가 아주 작은 건 아니었다. 영업팀장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업무보고를 시작했다. 지난주 계약을 따낸 곳 중에 더진코리아가 있었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이번에 런칭한 실내포차 브랜드의 광고를 맡았다. 네이스에 ‘실내포차’를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블로그 검색 결과 1페이지 안에 더진포차 맛집 후기가 노출되는 것이 계약조건이었다.

“신입도 세명이나 뽑았으니, 걱정 없겠죠?”

영업팀장이 넌지시 어깨를 들먹이며, 배턴을 넘긴다는 듯 말했다. 홍보팀장—사십대 초반 남성—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야죠.”

그가 바로 나의 상사가 될 사람이었다. 신입들은 모두 홍보팀에 속했다. 블로그를 관리하고 의뢰받은 후기를 작성하는 일을 전부 홍보팀에서 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마케팅 쪽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점이 내게는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국문과 출신이지만 3학년 때 이미 전공을 살리지 않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첫발을 제대로 디디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고,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회사에 입사할 때는 전공 덕을 보았다. 인문학 전공자를, 그것도 글솜씨가 있는 지원자를 우대한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원하는 분야로 취업했다는 사실에 나는 오랜만에 성취감을 맛보았다.

 

 

2

 

그렇게 사회생활의 긴 이력이 시작되었다. 회의의 감흥은 곧 사라졌다. 매주 회의의 연속이었다. 특히 월요일은 ‘본격적으로’ 회의에 들어가다가 점심시간이 되곤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콘셉트 회의였다. 새로운 블로그 계정을 열 때마다 콘셉트 회의를 했는데,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테이블 앞에 팀원들이 둘러앉았고, 팀장이 선배들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자, 이번엔 어떤 인물을 만들어볼까?”

한 선배가 자료를 한장씩 나눠주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30대 후반의 돌싱남.

큰 테마 아래 그가 구상한 인물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사가 정리되어 있었다. 친한 형을 모델로 만들어본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평일 출근 전에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주말엔 암벽등반을 다니며, 여름엔 써핑을 한다. 그는 형제가 몇명일까? 즐겨 방문하는 커뮤니티는, 챙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팀장은 상상력을 강조했다. 그는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블로그를 광고글로 도배하는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딱 보면 광고 느낌이 오는 리뷰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문구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네이스는 블로그마다 등급을 매겼고, 일정한 점수에 도달해 ‘최적화 블로그’가 되면 그때부터 게시글이 검색 결과의 상위에 올라갔다. 그러면 광고에 투입할 수 있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팀장은 우리 신입들에게도 각자 ‘1호기’를 준비하라고 했다.

“첫 블로그는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지. 잘 생각해서 준비해봐.”

그날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웬만한 이력을 가진 웬만한 캐릭터는 선배들이 만든 것 중에 이미 다 있었다.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온갖 트렌디한 관심사를 가진 인물들. 나는 나의 이력, 관심거리 중에 차별화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일주일 뒤, 우리 세 사람은 회의실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다. 마지막으로 팀장이 들어왔다. 홍성식—나보다 다섯살이 많았다—의 인물은 홍대와 합정에 이어 당시 새로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 시작한 망원동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힙스터 남자였다. 예린씨—나와 동갑이었다—는 뮤지컬을 비롯해 고급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배우의 ‘출근길’ ‘퇴근길’까지 챙기는 등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문화산업의 일원으로 여기는 30대 중반 전문직 여성을 내세웠다.

그리고 내 차례였다. 홍성식은 내 자료에 첫 눈길을 준 순간, 피식, 또는 그와 거의 흡사하게 들리는 짧은 소리를 뱉었다. 그가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문과 출신 애송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는 나를 거의 딱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팀장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막 시작된 내 사회생활 이력에서 중대한 기점이 된 장면이었다.

“아, 채털리 부인이라는 말 오랜만에 듣네. 명작 중의 명작이지. 대학 때 이 소설을 원서로 읽었는데 말이야.

그는 내 1호기 구상이 담긴 종이를 한 손에 들고 훑어보았다. 원서를 끼고 캠퍼스를 거닐던 때를 회상하는 듯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지방 국립대학의 영문과 출신이었다. 그는 무척 작은 체구에, 오른쪽 광대뼈 위로는 찰흙 반죽을 납작하게 붙여놓은 것 같은 흉터가 있었다.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생긴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표면이 매끈매끈한 붉은 흉터였다. 그러나 아주 흉하지는 않았고, 얼굴에 난 큰 점처럼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어쩌다 저런 흉터가 생겼을까 궁금해지는 정도였다.

그를 보면서, 처음에 난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내성적이고 유약해 보였으며 조용한 음성으로 차분하게 말을 했다. 팀장으로서 회의를 이끌어가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상황에 여전히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런 회사,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광고회사, 마케터라고 하면 유행에 맞게 꾸민 개성적인 외모에 적극적이면서도 쿨한 인물이 떠올랐다. 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이런 일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스스로를 거기 맞추려 했었다.

그날 그는 내 1호기 채털리 부인에 대해 말하기를, 남편과 멀리 떨어져 살며 홀로 아이와 개를 키우는 싱글맘 콘셉트도 좋고, 하루하루 능동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외유내강형의 성격도 좋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이후 몇차례 더 피드백을 거친 뒤 우리는 각자 계정을 하나씩 받았다. 작은 화분을 품에 안은 느낌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는 일반인들이 올릴 법한 짤막하지만 정성을 담은 자기소개 글을 작성하며 채털리 부인을 블로그계에 데뷔시켰다.

우리는 리뷰 업무에도 투입되었다. 음식점의 비중이 높았다. 가게에서 매장 사진과 메뉴판, 맛깔스럽게 찍은 음식 사진을 보내주면 그걸 조합하고 배치해서 직접 가본 것처럼 후기를 작성했다. 광고주가 삽입해달라고 요청한 특정 문구를 강조하는 요령도 생겼다.

내가 보기에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디테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곧 깨달았다. 구체성이 리뷰의 생생함을 좌우했다. 직접 먹어본 것처럼, 직접 사용해본 것처럼. 업체에서 보내준 정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메일을 보내 추가로 요청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더 잘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프로라고 여겼으니까.

—이 메뉴랑 이 메뉴의 차이가 뭔가요? 봉골레는 사진 다른 걸로 하나만 더 보내주세요.

이렇게 해도 괜찮나? 싶을 때도 있었다. 병원이 제시한 문구를 넣어 사각턱을 절제했다고 후기를 작성할 때였다. 치아교정 후기, 라식수술 체험 후기를 쓸 때도 그랬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나 곧 그 감각도 사라졌다.

게다가 내가 지금껏 뭔가를 사고 찾을 때마다 검색해 참고했던 블로그 후기들도 죄다 업체를 통해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털의 로직을 알면 알수록,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글이 상위에 노출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맛집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일수록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고 참조하기 때문에 시장이 되는 것인데, 시장이 되면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는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경제구나.

나는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약간의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3

 

나의 1호기 채털리 부인이 초고속으로 최적화에 성공한 뒤, 팀장은 내게 중요한 건들을 맡겼다. 채털리 부인은 ‘신생아부터 6세까지 사용 가능한’ 3단계로 변형되는 프리미엄 토들러 침대에 아기를 재우고, 토요일 밤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개 샴푸계의 샤넬’ 제품으로 개를 목욕시켰다.

돌이켜보면 이십대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이던 시기였다. 내가 채털리 부인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던가.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완전히 자발적으로. 이십대 중반까지는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학습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았고, 내 머리와 손끝을 써서 뭔가를 생산해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 정성을 기울이면 결과물이 더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리뷰 업무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남아 일상 포스팅을 작성했다. 직원들은 개인 블로그로 보이기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야 했고, 가족과 친척들, 그 반려동물들 사진까지 활용했다. 이웃 수를 유지하려면 이웃을 맺은 블로그를 방문해 댓글도 남겨야 했다. 업체들 간에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유령들끼리 서로 이웃을 맺고, 훈훈한 댓글을 달고, 안부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용자들을 의식해서만은 아니었다. 벌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야 이거 광고 아냐? 하고 넘기는 게 끝이지만, 네이스는 아예 블로그를 죽일 수 있었다. 네이스는 자기 포털에 양질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싶어했다. 애초에 그것이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한 목적이었다. 블로그 모니터링 팀이 과도하게 선정적인 글,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실시간 검색어를 넣어 짜깁기한 낚시글, 광고성 쓰레기 글에 벌점을 매겼다. 그러나 실제로 벌점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네이스의 로직은 공개된 바가 없었기에, 업계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추측과 속설만 무성했다.

내 경우엔 아기와 대형견을 함께 키우는 사촌언니가 채털리 부인의 실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언니는 사진을 자주 보내주었다. 나는 아기의 옆모습이나 뒷모습, 그리고 개 사진을 가져다 썼다. 언니가 사진을 보내며 한 말까지 그대로 베끼기도 했다. 언니는 자신이 채털리 부인의 삶에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고, 나는 이후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포스팅을 할 때 언니를 떠올렸던 건 아니었다. 언니의 삶은 그야말로 재료가 되었을 뿐, 채털리 부인은 어디까지나 내게 속한 인물이었으니까.

몸은 고되지만 의욕만은 최고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팀 안에서,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내가 능력 있는 직원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고백하자면, 나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한방에 말이다. 나는 전공수업을 즐겁게 들었고, 1학년 때는 소모임에 가입해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시와 소설, 소논문 형식의 글도 몇편 썼다. 글을 완성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에 푹 잠기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시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는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마도 한편으로 실용적인 기질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한층 더 깊은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번번이 그 실용적인 목소리가 나를 막아섰다. 그렇게까지 분석할 필요가 있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어쩌면 그랬는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다. 내 안의 실용적인 목소리가 무의식중에 예술적 욕망을 억눌렀던 건 아닐까? 이곳이야말로 돈을 벌면서 창작의 욕망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내게 ‘최적화’된 직장 아닐까? 나는—순진하게도—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 동기들은 일을 잘 못했다. 팀장은 홍성식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팀장과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자신을 인정해주어야 할 상사가 그러지 않자, 그는 상사의 자질을 의심했다. 팀장이 옛날사람 같다고 했다.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요구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일을 다 하냐고요. 오히려 길이도 짧고 대충대충 막 써야 더 진짜 같지. 대체 누가 그렇게 열심히 후기를 작성하겠어? 그거야말로 돈 받고 한다고 광고하는 거 아냐? 아니, 말해봐요. 솔직히 내 말이 맞지 않아요?”

그가 나와 예린씨에게 말했다. 팀장이 일하는 방식도 답답하고 성격도 답답하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맞았을 것 같아요. 얼굴 한쪽을 반복적으로 처맞았나봐.”

그가 주먹으로 가격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는 내게도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까지 일할 게 뭐 있느냐고, 그러지 좀 말라고 못마땅해했다. 경진씨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데, 그렇게 뼈를 갈아넣어봤자 미련한 짓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예린씨는, 사무실에서 노골적으로 찬밥 취급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일을 잘 못한다고 평가되는 것, 그것도 첫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한다고 낙인찍히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몇가지 상황이 겹쳐 일단 상사가 그런 견해를 갖게 되자, 스스로에 대해 홍성식만큼 자신감이 없는 예린씨는 점점 더, 진짜로 일을 못하게 되었다. 반년 사이에 그녀의 얼굴은 놀랄 만큼 달라졌다. 내성적이지만 때로 굉장히 발랄하게 웃는 해맑은 사람이었는데, 자꾸 눈치만 살폈다. 회의에서도 의견 개진을 못했다. 팀장이 진행 상황을 물어보면 당황하며 대답조차 우물쭈물했다. 그녀는 업무뿐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자신감을 잃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견해를 말하지 못했다.

팀장은 홍성식에게는 감히 그러지 못하면서, 그녀에겐 짜증을 냈다.

“잘 모르겠으면 경진씨한테 좀 물어보고 배우라고.”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싸늘한 얼굴로, 팀장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저러지 않아서, 그러니까 일을 잘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처음부터 동기들과 거리를 두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대학로 인파 속에서 재화 언니가 해주었던 말을 되새겼다. 굳이 회사 사람들과 사적인 친분을 맺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예린씨는 결국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홍성식은 영업팀장의 제안을 받아 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개를 들 때마다 낮은 파티션 너머로 보이던 그의 무테안경 낀 윗얼굴이 사라지자 속이 후련했다. 그는 밖으로 돌며 업주들과 미팅을 했다. 나를 볼 때마다 이 업계에는 미래가 없다고 아는 척하며 열심히 일하는 내 기운을 빼놓으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정작 자신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 회사를 다녔다.

 

 

4

 

채털리 부인이 무엇 때문인지 ‘저품질’을 먹었을 때는 충격이 컸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고, 여파가 오래갔다. 블로거들은 저품질을 ‘무기징역’ ‘안드로메다행’이라고 불렀다. 업계에서는 ‘총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불량 블로그로 분류되면 벗어나기 어려웠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새 계정을 시작하는 편이 빠르다는 건 분명했다. 어떤 글을 올려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선고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뾰족한 해결책도 없었다. 추측은 가능했다. 그 주에 광고글을 두번 올렸는데, 그 두건의 조회수가 무척 높게 나왔다. 불법 프로그램을 쓴 어뷰징으로 간주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다른 업체를 의심했다. 일부 업체에서 검색 결과 상단에 있는 글을 끌어내리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매크로 공격을 하곤 했다. 끌어내리고 싶은 글의 조회수를 일부러 폭발적으로 올려주어, 포털 감시팀의 시야에 포착되길 노리는 수법이었다.

결국에는 채털리 부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도 계정은 삭제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동안 쌓은 포스팅이 너무 아까웠다. 그것들이 전부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자 상실감이 밀려왔다. 부인이 의식 없이 누워 있을지라도, 그래도 가끔 방문해서 그녀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썼었지? 싶을 때마다 그녀를 방문해 기록을 훑어보았다. 그러면 그때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했고, 거의 순수하게 느껴지는 밀도 높은 에너지가 다시 나를 데워주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날 밤이었다. 그날 나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다. 유독 힘든 날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수십개의 블로그에서 수십명이 되어 리뷰를 썼다. 30명이 넘어갈 즈음엔 의식이 몽롱했다. 그야말로 타자 치는 기계인데, 차라리 진짜 기계라면 편할 것 같았다. 재깍재깍 다음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스스로 기계라고, 다이얼을 한칸 돌리면 다른 채널로 바뀌는 머신이라고 중얼거렸다.

남아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나도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프로그램을 종료하기 전 오랜만에 채털리 부인을 방문했다. 그녀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모든 기록을 간직한 채. 마지막 포스팅 날짜까지 그대로였다. 그녀의 삶은 얼음 속에 보존되어 멈춰 있었다.

별생각 없이 쪽지함을 열었다. 예전에 이웃들과 주고받은 쪽지들 맨 위로,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쪽지가 와 있었다. 최근에 받은 것이었다.

메시지를 클릭했다. 글씨가 빼곡했다. 광고인가, 싶었는데 광고는 아니었다. 블로그 이웃이라는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자신을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두 아이 중 갓난아기를 잃었고, 다섯살 아이는 폐가 손상돼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이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뽀송이’ 때문이라는, 그 안에 포함된 독성물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 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이게 무슨 소리지.

링크를 클릭하자, 새 창이 뜨면서 신문기사로 연결되었다. 큼직한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로켓 모양의 산소통을 껴안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내게는 한층 더 충격적으로 보였는데, 턱 아래에 세탁기 물호스 같은 굵은 인공호흡장치를 연결한 한 중년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싸한 전율이 배 속에서부터 퍼져나가면서 양손이 싸늘하게 식었다. 인간의 몸이 호스 달린 기계와 결합된 이미지는 언젠가 SF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가상미래 속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물론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몸을 돌려 뒤를 둘러보았다. 빈 의자들만 정적 속에 놓여 있었다. 나는 채털리 부인의 블로그 내 검색창에 ‘뽀송이’를 입력했다. 천건이 넘는 포스팅 중에서 즉시 하나의 포스팅이 검색되었다.

전혀 기억에 없지만, 내가 쓴 글이 맞았다. 침구며 패브릭 소파, 아기용품에 날마다 뿌리고 있다고, 간편한데다 마음까지 뽀송뽀송해지는 기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특히 아기 있는 집이라면 무조건 추천이에요~~^^

심장이 세게 뛰고 있었다. B기업 살균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뉴스에서 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용후기를 올린 적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언제 이런 글을 썼지?

포스팅 날짜를 보니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었다.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2년 전에 쓴 뽀송이 리뷰, 그리고 지금 여자가 내게 보낸 메시지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둘 사이가 연결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왜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것인가.

나는 아이디를 클릭해 여자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개설한 지 5년째인 블로그였다. 메뉴별로 차곡차곡 포스팅이 쌓여 있었고, 총 방문 누적 수며 이웃 수를 보니 한때 활발하게 활동한 흔적이 보였다. 포스팅은 끊겼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되었는데, 최근 글은 거의 B기업 뽀송이와 관련된 기사를 갈무리한 것이었다.

과거의 포스팅을 훑어보았다. 잔디밭을 배경으로 돗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그 여자의 얼굴이 절반을 차지한 셀카도 있었다. 한때 활발하게 활동한 이웃이라면 내가 이 사진들을 보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블로그 이웃들에 대해, 진짜 이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었다. 이 여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화살표를 계속 눌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뽀송이 후기를 올린 시점으로. 끝이 없는 집안일의 고달픔을 토로한 글, 로봇청소기와 가스건조기 정보를 갈무리한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몇건의 글에서 그녀는 가사노동의 수고를 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뽀송이 후기의 문구가 떠올랐다. 옷이며 패브릭 제품에 뿌리기만 하면 되니까 간편하다는.

이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녀와의 대면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를 찾아와 물어보면 뭐라고 말하지? 나 때문에 뽀송이를 쓰게 됐다고 말해서 경찰이나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한번 쓰고 그뒤로는 쓴 적이 없다고 발뺌할까. 그런데 내가 주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텐데. 아이도 개도 없고, 실은 뽀송이를 사용한 적도 없다는 게 밝혀지면, 문제가 될까? 그게 처벌감이 되나? 나 때문에 회사에 말썽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본체의 소음만 윙윙거리는 정적 속에서 나는 다시 쪽지함을 열어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처음부터 읽어 내려갔다. 한줄 한줄 읽으면서, 나는 상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혹시 나와 나의 가족도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살균제 때문인데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를 탓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자기와 같은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점차 심장박동이 안정되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반사적으로 그녀가 내게 화를 내고 있다고, 따져 물으려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그녀가 내게 찾아올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수기로 가서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천을 꺼내 안경알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 나는 가상의 답변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그러자 더 좋은 답변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채털리 부인의 후기를 읽고 뽀송이를 샀다는 걸 어떻게 알아. 그게 증명이 가능한가. 그녀와 나는 블로그 이웃일 뿐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먼저 정보를 접해놓고 잊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캄캄한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렸다. 그해의 첫눈이었다. 바람을 따라 잠깐 흩날리다 흩어져버리는 가루 같은 눈이었지만, 첫눈이라고 버스 안 여기저기서 작게 탄성이 터졌다.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연인에게 전송했다. 버스 안으로 차가운 눈이 섞인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집에 들어가니 씻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각이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이유가 밝혀져 다행이었다.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니 합당한 보상을 받겠지. 진심으로 그러길 빌었다. 기사에 실려 있던 사진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살아 있고 숨을 쉬는 한, 평생 산소통과 거기 연결된 호스, 호흡기에서 분리될 수 없었다.

나는 돌아누우며 생각했다.

그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이라는 게 뭘까. 그런 게 있을까.

 

 

5

 

다음날 나는 일찌감치 출근했다. 사무실은 어젯밤 불을 끄기 전 보았던 풍경 그대로, 지난밤 가두어진 정적 그대로였다. 나는 책상 뒤를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채털리 부인의 계정에 접속했다. 곧장 설정으로 들어간 다음 ‘계정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채털리 부인은 데이터베이스의 심해 속으로, 다시는 불러올 길 없는 장소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로써 메시지를 보내온 여자가 내게 닿을 방법도 없어졌다.

그날도 해치워야 할 긴 리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식당들, 고양이용품 쇼핑몰, 식품 브랜드에서 런칭한 즉석국 5종, 안구 세척제, 탈모 샴푸 등등등. 몇몇 후기를 작성할 때 전에 하지 않던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뽀송이를 정성껏 리뷰했을 것이었다. 불법 대부업 광고도 아니고, 그냥 가정용 살균제였다. 대기업에서 만들었고, 전국의 마트에서 팔린 제품. 거기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걸 알 방법이 없었다. 그건 해롭지 않은, 해로울 리가 없는 제품이었다. 그래야 마땅했다.

몇주에 한번씩 뽀송이를 검색해 새로운 뉴스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건의 전모를 보며,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문제를 파악한 B기업이 선수를 쳐 국내 최고 권위의 연구소에 비용을 얹어주며 안전성 테스트를 의뢰했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최종 보고서에서 누락시킨 정황이 드러났다. 그들 뒤에는 법무법인이 있었다. 이 나라 최고의 사법 엘리트들이 일하는 법무법인이 이 과정에서 조언을 제공했다. 결국 그 보고서로 인해 뽀송이와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몇년이 더 걸렸다. 그래도 기업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소통을 매단 환자를 휠체어에, 의료용 침대에 싣고 나왔고, 기자회견장에서 바닥을 구르며 울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뉴스창을 닫았다.

얼마 뒤, 이번에는 살균제 치약 사건이 터졌다. 뽀송이에 함유된 독성물질이 시중에 유통 중인 치약에도 들어갔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날 퇴근해서 세면대에 꽂힌 치약을 확인해보았다. 살균제 치약 목록에 올라 있는 제품이었다. 수납장을 열어보니, 새 튜브가 두개나 있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치약은 환불해준다고 했지만, 언제 어디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치약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동네 슈퍼 진열대에는 치약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 중에 목록에 없던 게 뭐더라.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는데, 문득 피로가 몰려왔다. 검색된 것은 미백 기능성 치약 후기들이었다. 전부 광고였다.

이놈의 쓰레기 포스팅들 진짜 짜증 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작게 웃었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직원들이 치약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엔 한다스가 있더라니까.”

“저희 집에도요. 추석에 선물세트 받았던 건데 그것도 환불할 수가 있나?”

“지금까지 잘만 썼는데 뭐. 괜찮아! 안 죽어!”

나는 그들의 잡담을 들으면서 서랍에서 어제 새로 산 치약과 칫솔을 꺼냈다. 그때 우리 팀 팀장이 자기 자리에 앉은 채 고개를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계속 썼으면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아. 잇몸에 염증이 생겨도 치약 때문인지도 몰랐겠지. 뽀송이도 그것 때문인 줄 알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거 아냐.”

다른 직원들과 달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목소리였다. 그날 오후 함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그에게 말을 꺼냈다.

“팀장님, 그 뽀송이 말이에요. 뿌리는 살균제.”

“응, 그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더라.”

점심시간에 주고받은 대화의 여운이 되살아나는지 그가 관심을 보였다.

“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저희도 홍보한 적이 있더라고요. 제가 리뷰했던 기억이 나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와 나란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랬어? 그거 진짜 나쁜 놈들이더만.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앞으로 뭘 믿고 쓰겠어요.”

나는 그를 따라 보조를 맞추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했고, 나는 앞장서서 복도를 걷는 그의 작은 뒤통수와 목, 좁은 어깨를 보며 뒤에서 따라 걸었다. 별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막상 그가 그냥 걸어가버리자 순간 터무니없을 정도로 몹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복도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이래? 뭘 원했던 거야?

나는 당혹스러워 스스로 다그쳤다.

그때 나는 그가, 적어도, 대화를 더 이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내 기분을 알은척해주길 바랐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얘기해보고 싶었고,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삶의 경험이 많은 이로부터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관점의 말을 듣길 기대했다. 아마도 우호적이지만 균형 잡힌, 그런 말을.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 모르는, 그런 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걸어 사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나중에라도 그가 한마디 해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그 화제를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마 너무 바쁘고 압박을 느끼고 있어서, 회사일 말고 다른 문제에 신경을 쓸 시간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까맣게 잊어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무렵 그는 정말로 옆에서 보면 어떻게 정신을 챙기나 싶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이미 업계의 상황은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3월 말 네이스가 예고한 기자회견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네이스는 기자회견에서 신뢰도 있는 콘텐츠 생태계를 위해 검색 알고리즘을 대폭 바꾼다고 발표했다. 그러고는 그때까지 속설과 루머로만 전해졌던 알고리즘을 공개, 배포했다. 이후로 최적화 블로그의 포스팅이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았다. 더는 단기간 작업으로 검색 상위에 노출될 방법이 없어졌다. 최적화 블로그가 유일한 수익 모델이던 소규모 회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월가의 사무실 직원들처럼 종이상자에 소지품을 챙겼다.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현실이라는 실감이 없었다. 이후로 업계가 통째로 망해버리는 걸 보면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송별회도 없고, 공식적인 식사 자리도 없었다. 팀장이 내게 다가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말했다. 경진씨는 앞길이 창창하지. 아직 이십대잖아. 나이도 어린데다 워낙에 일머리가 좋으니까. 어디 가서든 잘할 거야.

그러고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회사 차릴 때 연락하면 바로 온다고 약속해.”

나는 애매하게 웃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따져보면 나를 높이 평가해주는 말인데도, 그때 내겐 그 말이 뻔뻔하게 여겨졌다. 곱씹을수록 불쾌했고, 화가 났다. 바로 온다고 약속해. 마치 그동안 자기가 내게 굉장히 잘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굉장히 대우받으며 일했던 것처럼. 심지어 질문형도 아니었다.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나도 당연히 자신과 일하고 싶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6

 

그리고 지난 주말, 나는 예린씨를 우연히 마주쳤다. 명동 백화점 앞 넓은 길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모른 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우리 두 사람은 사회의 예절대로, 정말로 반갑다는 듯 인사를 나눴다. 어머, 잘 지내시죠? 이게 얼마 만인가요. 우와, 벌써 그렇게 됐나요.

“백화점 가시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저 이 근처에서 일해서요.”

“그렇구나.”

예린씨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못했다. 나는 예린씨에게 나도 그 회사를 오래전에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잠깐 동안이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어색함, 어쩐지 주눅든 것 같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표정이었다. 일을 못한다고 낙인찍힌 사람의 얼굴. 완전히 배어버린 자신감 없는 태도.

예린씨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몇발짝 걷는데, 갑자기 그녀가 퇴사할 무렵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자기는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이 일이 좋아지지가 않아요. 그때 나는 입가에 떠오르는 우월감을 최대한 억제하며, 마음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게 아니라 일을 못하는 거겠지. 그래서 쫓겨나는 거잖아.

그러고 나서 그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정말요? 저는 이 일이 진짜 적성에 잘 맞는 거 같은데.”

그녀는 진심으로 동조해주었다.

“네, 경진씨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녀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를 쫓아가 정정하고 싶은 다급한 욕망에 휩싸였다. 그땐 몰랐는데, 저도 그렇게 적성에 맞았던 거 같진 않아요.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인파 속으로 멀리 사라지고 있었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대로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크로스백을 메고 손에 핫도그를 든 관광객들과, 그들 사이로 여기저기서 푸드덕푸드덕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에게 넋을 빼앗긴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나의 첫 직장, 나는 그곳에서 26개월간 일했다. 스물여섯 봄부터 스물여덟 여름 무렵까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얼굴에 확 와닿던 건조한 공기며 흰 책상들이 놓여 있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첫 회사가 화제에 오를 때면, 작은 광고대행사에 다녔다고만 대답한다.

하지 않는 말들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별것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 그곳을 나온 이후 나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책장에 꽂혀 있으나 어쩐지 펼쳐볼 마음이 일지 않는 책. 나는 어디에서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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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릿터』 3호에 발표한 플래시픽션 「사칭—크리에이티브」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