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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톰 니콜스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2017
전문지식의 죽음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윤보라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judith@snu.ac.kr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국 성인의 평균 독서량과 독서시간이 턱없이 적음을 개탄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독서의 계절인 동시에 노벨(문학)상 발표가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지적의 적절함 여부는 미뤄두더라도, 우리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넘쳐나고 있다. 정치, 예술, 경제, 과학 등 온갖 분야를 망라한 지식 ‘고수’가 그들이다. 과거에는 특별한 지식을 가진 이른바 전문가만이 답할 수 있던 질문에 대해서도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답해준다. 광고성 블로그나 대형 포털이 제공하는 지식인 서비스의 황당한 답변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때 ‘정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었던 인터넷 안의 콘텐츠들이 이제 정말 지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 해군대학 교수이자 러시아 전문가인 톰 니콜스(Tom Nichols)가 펴낸 『전문가와 강적들: 나도 너만큼 알아』(The Death of Expertise: The Campaign Against Established Knowledge and Why it Matters, 정혜윤 옮김)는 한 사회가 전문가 집단을 통해 오랜 세월 축적해온 지식이 현재 총체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원칙과 객관적인 정보에 기초한 주장들을 더이상 만나보기 힘들어진 현상에 주목하여 왜 이런 현상이 미국에서 나타났는지, 이 현상이 야기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극복 방향까지 제시한다.
전문가에 대한 일반인의 공격과 반감에는 그 나름의 역사가 있다. 저자가 분류한 두 집단, 즉 전문가와 일반인은 20세기 들어 일어난 각종 사회적 변화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직접 접촉하는 일이 많아졌다. TV나 라디오 등 지난 세기에 등장한 뉴미디어는 지식 습득을 위한 손쉬운 지름길을 마련해준 반면, 지식이 오용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은 이러한 현상을 다시 한번, 그러나 훨씬 심각하게 드러내주는 매체다. 그리고 전문가와 전문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에는 단순히 불신과 의구심뿐만 아니라 독선과 분노마저 스며 있다는 것이 지금 현상의 새로움이다. 원제인 ‘전문지식의 죽음’ 대신 출판사가 선택한 번역서의 제목이 드러내듯이, 전문가의 이 ‘강적’들은 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지식을 쌓고 유통하는 일반인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사람들이 전문지식 대신 확증편향과 속설, 미신, 음모론에 자신의 믿음을 의탁하는 현상이 공고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학과 저널리즘의 실패, 손쉬운 인터넷 검색 문화가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대 대학의 실패다. 학점 인플레이션과 엄밀성이 떨어지는 학위의 남발, 대학의 난립 등은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병폐로 꼽힌다. 저자는 상품화된 대학교육이 결과적으로 지식에 대한 존중을 무너뜨리는 데에 앞장서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고등교육이 제공해야 하는 지적 훈련과 성숙의 기회는 질 나쁜 자료들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지루한 연구 과정, 정보의 출처와 저자의 신임도를 판단하는 법, 도서관에 가서 사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동체에서 생기는 갈등을 적절히 해결하는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축적함으로써 얻어지지만, 현재 대학의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시민으로 양성되는 대신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갈등이 지식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온라인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타인과의 갈등을 소모적인 것이라 비웃는 SNS 피드를 예로 든다. 이제 사람들이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일차 소스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인내심과 남의 말을 듣는 능력은 조금이라도 이질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게 만드는 매체 환경 속에서 계속 퇴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소통 영역을 만들었으나 역설적으로 각자가 가진 기존의 믿음을 반복적으로 재확인하는 도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 신념을 확산시켰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지식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업신여김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싸구려 평등주의라고 일갈한다.
니콜스는 전문가의 실수와 오류, 타락, 부정행위 또한 일반인들의 적대감을 야기한 요소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십여년 전 황우석 사건을 통해 충격적으로 깨달은 사실도 이와 관련이 있다. 전문가와 전문지식에 대한 적대감의 크기는 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와 비례한다. 현재의 시스템이 개개인의 안전한 삶을 담보해줄 수 없다는 불안,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믿는 대신 나 스스로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다는 다짐은 최근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바인데, 시민들의 물질적 복리와 시민으로서의 만족감 모두를 위협하며 결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제안하는 해결책의 핵심은 사회적 신뢰 회복에 있다.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과 지식을 다루는 그들의 방식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양자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지식의 죽음 현상에서 현재 가장 곤궁한 위치에 처한 전문가들은 아마도 인문사회학 종사자이리라. 한 사회가 지식을 사유하는 방식이 저자의 표현대로 “필요한 순간 딱 원하는 만큼의 검증된 지식을 선반에서 꺼내와 사용하는 것”(21면)에 머무는 순간, 인문사회학적 지식은 지금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트위터 몇줄보다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한 분야의 지식이 축적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맥락이 경청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선명한 흑과 백의 지식으로만 설명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인문사회학적 지식이란 그저 한가로운 선문답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드러난 명백한 무지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를 두고 책 말미에 “전문지식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가장 최근의 나팔소리”(364면)라 절망적으로 언급한 사실로 짐작건대, 저자가 지금의 현상에 긴급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계기는 트럼프의 당선이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무지와 오류로 점철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성난 촛불이 광장을 메웠다. 그로부터 몇달 뒤 끝내 촛불이 추대한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다. 두 사회의 상반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각 사회분야의 시스템과 전문성에 의심을 품고 도전한 촛불이 승리를 거둔 지금, 풍요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