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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흔들리는 판문점 그리고 평화로의 병진

 

 

이정철 李貞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저 『현대 북한학 강의』 『북미 대립』 등이 있음. rheeplan@ssu.ac.kr

 

 

지난 70여년간 판문점은 대결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협상탁이라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거친 말의 공방과 야생의 폭력이 오가는 반문명을 의미했다. ‘서울 불바다’로 알려진 폭언이 행해진 곳도, 도끼 만행이라는 극단의 폭행이 자행되었던 곳도 그곳이었다.

그러나 2018년 4월 27일, ‘비무장지대(DMZ)의 비무장화’라는 이름하에 판문점을 평화의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었다. 그날의 야간 공연은 아픈 역사의 기억을 뒤로한 채,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의 이름을 단 축제의 서막이었다. 적막한 휴전선의 밤을 밝힌 조명 아래 펼쳐진 ‘판문점선언’은 평화를 열어가는 터전이었다. 냉전의 공간이었던 그곳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화해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1. 2002년 판문점과 2018년 판문점

 

2002년도 2차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장소 문제로 결렬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회고록(『피스메이커』, 창비 2015)에 따르면 2002년 남북은 6·15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북한은 당시 러시아 이르꾸쯔끄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으나 우리 측은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역제안했다. 장소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던 중, 북한은 ‘판문점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미군이 관할하는 지역이므로 거기서 회담을 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2차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전격 철회했다. 당시 회담은 그렇게 판문점이라는 장소 문제로 결렬되고 말았다.

후문에 따르면 이번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여한 김영철 부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는 특사 역할을 자임하면서도, 역시 2002년과 동일한 논지로 판문점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한국정부는 서울, 평양, 판문점 어디든 좋지만 판문점이 가장 적절하다는 취지로 정상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유도하고자 했지만 북측의 반감은 여전히 거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특사단의 답방을 맞이한 김정은 위원장은 뜻밖에도 좌고우면하지 않는 예의 통쾌한 화법으로 판문점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미제’가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적대적 공간을 대하는 김정은의 태도 변화야말로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의 극적인 효과를 가능하게 한 동기였던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에 따라 우리 모두는 판문점만이 아니라 DMZ 전체를 평화와 상생 그리고 화해의 공간으로 전변시키는 꿈을 꾸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판문점선언은 환송공연 ‘하나의 봄’과 더불어 대결의 공간인 비무장지대를 평화와 화해의 장으로 만들어갔다.

 

 

2. 판문점선언의 구성적 프레임과 특성

 

판문점선언은 애초에 문재인정부가 추진했던 정상회담 의제와 비교해보면 그 순서와 구성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회담 전 문재인정부가 내건 3대 의제는 ①한반도 비핵화 ②군사 긴장완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③새롭고 담대한 남북관계 진전이었다. 이에 비해 판문점선언은 ①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 개선과 발전 ②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 ③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3개조 14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판문점선언에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그 순서의 문제이다. 즉 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1조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한국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1조에 두기로 했지만 판문점선언은 남북관계 관련 항목을 1조에 두었다. 남북이 당장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전면에 배치하기로 한 실용적 접근의 승리였다. 이런 순서의 변화에 대해 비핵화를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남북관계란 본성적으로 민족자주의 원칙에 따른 남북 당사자주의에 기초하고 여타의 합의사항은 이를 위한 실행조치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오래된 문법이다. 이에 따라 판문점선언은 1조와 2조에서 남북 당국이 실행할 수 있는 조치를, 3조에서는 남·북·미가 논의해야 하는 조치를 구분해 다루고 있다. 1조에서 남북관계의 전면적 개선을 위한 사항을 열거하고, 이를 위한 군사적 보장 조치와 긴장완화 조치를 2조에서 병행 열거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순서의 변화를 통해 판문점선언이 남북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실행선언으로서 구성의 완결성을 강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조에서 주목할 부분은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하는 준대사급 관계 정상화 방식과는 달리 남과 북이 하나의 거버넌스 조직을 통해 관계개선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개성이 남북협력의 메카가 된 경험을 살린다면 남북은 개성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조율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두개의 대표부가 아니라 하나의 연락사무소 형태를 띤다는 점은 남북관계를 연합적 방식으로 제도화하겠다는 방법적 의지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1조에서 다양한 교류협력을 진행하기로 한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철도, 도로의 연결 및 현대화에 합의한 점이다.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민망’스럽다고 표현할 정도로 낙후한 북한 인프라를 개혁하는 서막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국을 동북아경제권으로 연결시키는 장치이자 기회공간이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동북 지방까지 2억 인구의 지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경제통합의 서막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같은 구상을 담은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북측에 전달했다는 소식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두번째로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특성은 그 구성의 문제다. 평화체제를 2조와 3조에 나누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논의를 2조의 재래식 무기와 관련된 긴장완화 요인과 3조의 핵문제와 관련된 긴장완화 요인으로 분해해서 다룸으로써 논리적으로는 훨씬 완결된 평화체제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핵화를 평화체제의 수단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을 독립항으로서가 아니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라는 제하에서 다루는 것이 정합적이다. 비핵화를 평화체제와 분리해 다뤄온 기존의 논리는 임시변용적이었으며, 논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이번 구성이 훨씬 질 높은 평화체제 논의가 투사된 결과라 하겠다.

불가침 논의와 더불어 비핵화를 3조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성적 요소로 다룸으로써, 판문점선언은 이명박정부 이래 한국사회에서 고착되어온 선()비핵화론의 덫을 벗어나게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2015년 이래 북한이 우겨온 선평화협정이라는 사실상의 핵무장론을 북한 스스로 부정하게 함으로써, 비핵화-평화체제 병행론에 닻을 올린 것이다. 향후 북미 간에 진행될 협상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하는 소위 쌍궤병행의 과정이 될 것임을 문서화했다는 점에서 북미회담의 길잡이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병행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요컨대 3조는 남북 당국이 비핵화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지만, 그를 통해 북미회담의 주요 주제인 비핵화 논의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병행 진행해야 한다는 쌍궤병행의 방향을 기술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번째로, 이번 선언문에서 남북이 비핵화의 수준과 목표에 대해 ‘완전한’이라는 서술을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지만, ‘완전한’ 비핵화만으로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최소한의 것들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불가역성까지 포함해 다루었던 우크라이나식 넌-루가 프로그램(포괄적 위협감소, CTR)에 따른 불가역적 비핵화는 북한의 과학자들1을 모두 외부로 강제 구인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는 점에서, 북한이 CVID를 패전국에나 강요할 만한 헛된 망상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이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하드웨어의 해체를 중심으로 하는 비핵화, 즉 라이트 프리즈( light freeze)를 우선할 수밖에 없고 그 점에서 어차피 딥(deep) 프리즈를 의미하는 20~30년짜리의 CVID라는 표현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불편한 진실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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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완전한 비핵화 개념은 무기용 핵시설뿐 아니라 평화적 핵시설까지를 포함한 모든 핵시설의 해체를 의미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이 점에서 2005년 9·19공동성명 이래 논란이 되어왔던 북한의 모든 현존 핵시설의 해체를 의미함으로써 매우 현실적인 목표가 되었다.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은 경수로 제공을 ‘천년바위처럼 굳은 약속’이라며 비핵화의 댓가로 핵발전소의 제공을 요구해왔다. 이런 협상의 역사에 따른다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한 것은 영변에 있는 모든 핵시설, 발전용 원자로 그리고 신포 원자로 요구까지를 모두 폐기하는 중요한 조치에 동의하겠다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이 점에서 실현 가능한 비핵화의 최대치이자 개념적 비핵화의 최소치 이상을 담지하는 합의사항인 만큼 북한으로서는 중요한 양보이자 우리로서는 위기의 임계치를 되돌린 것으로 볼 수 있다.

 

 

3. 소위 ‘주동적’ 조치의 문제

 

한편 이번 합의문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고 이에 호응하여 남북이 각자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쓰고 있다. 상호주의의 매우 중요한 원칙을 규정한 항이다. 주동적 조치라 함은 북한이 취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선중단(suspension), 핵·경제 병진노선의 폐기, 한미군사훈련 실행에 대한 양해 등과 같은 조치를 뜻한다. 실제 북한은 4월 20일 7기 3차 중앙위원회의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를 통해 “주체 107년(2018)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임. 핵시험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임. (…)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하여 이같은 방침을 공식화했다.

중국이 2016년 쌍잠정중단(suspension for suspension)이라는 중재안을 낸 이래 미국과 중국 간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바로 한미군사연습이라는 합법적 동맹 행위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라는 불법적 도발 간의 등가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그 댓가로 한미가 군사연습을 중단하라는 중국의 쌍잠정중단 제안에 대한 미국의 대답은 불법과 합법의 교환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가 교착되어온 것인데 최근 북한이 먼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한미군사훈련을 양해한다고 선언함에 따라 해법을 찾게 된 것이다.

소위 주동적 조치를 이렇게 해석할 경우, 그것에 따라 남과 북이 취해야 할 자기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가? 미국의 역할이 비핵화에 대해 평화체제를 병행하는 것이라면, 남측의 역할이란 아마도 쌍잠정중단에 따른 대응조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연습을 중단한 데 따라 우리 측도 그에 맞춰 전략자산의 동원을 폐기하는 식으로 한미군사연습 축소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등가성의 논리는 실제 북한이 북미접촉에서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한미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를 요구했다는 보도에서도 드러난다.3

결국 북한의 주동적 조치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주로 이 부분에 맞춰져야 할 것이고, 이는 8월에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에서 검증의 잣대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선언 3조에서 ‘상호 군사적 신뢰의 실질적 구축에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시킨다는 규정 또한 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시준점이 되는 합의 내용이다.

이 점에서 이번 판문점선언은 ‘적과의 동침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공동안보(common security) 프레임을 도입하여, 비핵화를 군비통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실험적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길잡이 선언인 판문점선언이 평화의 항로를 끌어가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는 확신도 이에 연유한다.

 

 

4. 쌍궤병행과 낙관론의 근거

 

사실 북핵 문제에 대한 오랜 논쟁의 하나는 평화체제의 시점 문제이다. 9·19공동선언은 평화체제를 비핵화의 결과로 다루었다. 북한의 비핵화가 완성될 때 그 보상의 하나로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논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은 경제재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고 그 마지막 단계에서나 안보재로의 보상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대단히 패권적인 발상이었다.

평화협정이 새삼 문제가 된 것은 2015년 10월 이후이다. 그 1년 전인 2014년 10월 북한이 처음 상호동결론을 제기할 때까지 북한은 평화협정을 비핵화 프로세스의 입구에서 체결하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걸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5년 2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유튜브 인터뷰에서 북한붕괴론을 언급한 이후 북한은 “미국 것들과 더는 마주 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였고,4 드디어 2015년 10월 17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선평화협정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모든 문제에 선행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찾게 된 결론이다”라며 선평화협정론을 공식화한 것이다. 동 성명에서 북한은 “우리는 지난 시기 비핵화 문제를 먼저 론의해야 한다는 유관측들의 주장을 고려하여 6자회담에서 비핵화론의를 먼저 해보기도 하였고” “핵문제와 평화보장 문제를 동시에 론의해보기도 하였”다며 선비핵화론과 병행론 모두가 실패한 경험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북한은 2009년 이전까지는 비핵화 선행론에 동의했다. 9·19공동성명은 비핵화를 선행하고 그것이 완성되는 출구 시점에 평화협정·북미수교를 보상으로 주는 로드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 2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북한은 평화협정을 비핵화가 완성되기에 앞서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5하기 시작했다. 소위 병행론이었다. 그리고 2010년 “9·19공동성명에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는 조건에서 그 행동순서를 지금까지의 6자회담이 실패한 교훈에 비추어 실천적 요구에 맞게 앞당기면 될 것이다”(외무성 대변인 성명 2010.1.11)라고 하여 평화협정을 비핵화 프로세스의 완성 단계가 아니라 그 중간의 어느 시점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10월 북한이 쌍동결론(쌍잠정중단), 즉 군사연습과 핵실험을 동시 중단하는 것을 비핵화협상의 시작점으로 제기할 때까지도 그들의 입장은 병행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2015년 2월 협상의 결렬 이후 북한은 병행론을 재검토하더니 결국 그해 10월 이후에는 선평화협정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즉 비핵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출발선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핵무장론을 내건 것이다. 그 직후 북한은 2016년 2차례, 2017년 1차례에 걸쳐 추가 핵실험을 강행했다. 안타깝지만 국제사회가 뒤늦게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여 2015년 12월 미국이, 2016년 1월 중국이 (쌍궤)병행론을 제기하기 시작했지만, 북한은 이렇듯 이미 선평화협정론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2016, 17년에 계속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은 실상 선평화협정론을 내건 북한의 핵무장론을 견제하고 북한을 병행론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최대 압박과 관여’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다르기 위해서는 압박이 관여로 전환하는 목표시점이 분명해야 한다. 대북 압박이 성공하려면 붕괴를 향한 무한 제재론으로 비춰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따라서 최대 압박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관여로의 전환시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트럼프의 최대 압박이 북한을 병행론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목표가 있다는 점과 바로 그 시점이 관여로의 전환점임을 분명히 한다면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이 표방하고 있는 합리적 핵심이 분명해진다. 이런 해석은 사실 미국이 선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평화체제 병행론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퍼즐은 이같은 현실주의적 지평에서만 기능하는 열쇠이다.

미국이 선비핵화론 대신에 병행론을 요구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2년 전 빅터 차의 칼럼6을 통해 한국정부에 공공연하게 전달되었고 박근혜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을 닫고 사드 배치를 수용한 것이 그즈음이다.

“평화조약 회담이 비핵화 회담과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평양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 국무부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단 평화조약 회담에는 비핵화가 구성 요소로서 포함돼야 한다. (…)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지난 25년간 유지돼온 대북 협상의 형판(形板·template)이 점진적이지만 상당한 정도로 바뀌고 있는 현장이다. (…) 국무부의 반응은 사실상 대북 대화에 새로운 선례를 남긴 것이다. (…) 북한의 목표 실현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틀림없이 격분시킬 것이다. (…) 현재의 고조된 긴장 국면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외교관들이 협상 테이블로 되돌아갈 공간이 생긴다면 (…) 차기 행정부는 다시금 미국의 합리성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같은 빅터 차의 격분과 우려는 그러나 누군가에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병행론이 중재안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현 상황은 지난 2년간의 대결 국면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북한이 선평화협정론을 포기하고 2015년 10월 이전의 병행론으로 회귀했다는 간단한 사실이 그것이다. 요컨대 병행론은 중국의 중재안이자, 미국이 지난 시기 북한과 협상하고자 했던 안이며, 새로운 한국정부가 동의하는 중재안이다. 한국정부의 베를린선언은 선비핵화론을 내세워 판을 깨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선언한 것이다.7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병행론을 수용한 이상 비핵화 프로세스는 4개국 모두가 동시에 호랑이 등에 올라탄 질주가 되었다. 여기서 내리는 자는 그 실패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목하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낙관론의 근거이다.

 

 

5. 한반도 운전자론과 한국 외교의 문법

 

이제 판문점선언과 비핵화 문제를 넘어 평화체제를 향한 한국 외교와 전략 비전의 문제를 보자.

박근혜정부 시기 한국 외교를 책임진 외교부 엘리트주의자들에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슈퍼파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이상의 중요한 외교 과제는 없었다. 한국 스스로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향해 매진하는 돌파 방식이 아니라, 외교의 성공 자체를 강대국 간의 균형화라는 현상유지적 목표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의 구조적 역관계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사이, 이들 간의 균형이라는 목표하에 지속된 미세조정(alignment) 외교는 한국 외교의 질을 높이기보다 점점 더 한국 외교의 기회주의성만 드러낼 뿐이었다. 전략적 목표 설정 행위나 비전 없는 조정외교의 한계는 분명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재인정부가 애초에 내건 외교 기치가 한반도 운전자론이었다. 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는 미중 강대국 간의 균형이나 조정을 통한 생존 도모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 키를 잡겠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한국 문제, 북한 문제, 나아가 두가지가 복합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과거 북한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한·미·중 3자회담론과 같은 터무니없는 사대주의적 발상과 단절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또다른 단절은 우리 외교가 ‘남북관계 진전과 4강외교의 균형 발전’이라는 오래된 신노선으로 회귀하겠다는 데 있다. 지난 10년의 한미동맹 몰입론, 미중 균형조정론 등과 같은 낡은 노선과 단절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우리 외교의 기본 문법이었던 오래된 공식을 새롭게 살리겠다는 논리인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높여준다는 경험에 근거한 발상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베를린선언으로 나타났지만 그에 대한 반향은 미미했고 북한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끈질긴 노력은 마침내 평창올림픽에서 화해 국면을 가져왔고 남북의 극적인 합의를 낳기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 외교의 최종 목표는 ‘통일된’ 글로벌 중급 국가이다. 이 길을 보장하는 외교 문법을 ‘남북관계 진전과 4강외교의 균형 발전’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이 문법은 한국에 세가지 역할을 요구한다. ‘분단 및 평화 관리’의 당사자, ‘역내 갈등’의 협력적 매개자 및 외교적 교량자, 그리고 ‘신성장동력’ 창조를 위한 협력자가 그것이다.

분단 및 평화 관리의 당사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억지에 기반한 안보 담론’을 ‘통일 및 평화 담론’으로 전환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금까지의 분단관리로는 한미동맹을 통한 대북 억지와 현상유지의 평화에 그쳤지만, 비핵화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이 주변국에 대한 평화 담보자로서 가교적(bridging)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비핵화 과정에서의 대결을 예방하고 군사국가의 과잉을 방지하는 역할은 한국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중급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역내 교량자나 매개자적 역할을 높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 안보 중심의 대결관계로 전락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동시에 양국이 콘도미니엄 체제를 구성하는 것도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배치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이 협력적 매개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미일동맹이 대중 억지를 위한 군사 안보 위주의 동맹이라면, 한미동맹은 중국의 패권화에 길항하기 위한 미국의 협력적 매개자이자 외교적 교량자로 기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대국 간의 대결과 결탁 양쪽 모두를 막아내는 역할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공통가치의 복원과 동북아 규범 제정은 남북의 협력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개자·교량자로서 중급 국가의 시작을 남북관계의 진전에 두는 것이 역사적 경험에 조응한다.

한편 통일은 소비의 장이 아니라 생산의 장이어야 한다. 즉 통일이 신성장동력 확보의 길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통일 담론은 이같은 성장동력을 통일 한반도 내부에서 마련하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동북아에서 경제지역협력체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구상이기도 하다. 소위 북방경제론으로 회자되는 지역협력 구상은 중국 동북 지방의 성()정부들을 협력의 장으로 견인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창조를 위한 협력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남북관계는 그 실체성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분단체제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기능하고 있는 제도 혹은 레짐(regime)이다. 이 레짐을 재편하는 것, 즉 통일의 과정은 국내 정치지형과 지역 및 글로벌 환경을 남북관계와 조응시키는 전략적 프로세스이다. 따라서 분단체제하에서 기능하는 부정적 레짐을 흔들고 새롭게 남북연합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통일만이 아니고 평화가 평화만이 아니며 외교가 외교만이 아닌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25년간 한국 통일외교사의 이념과 구조에서 확인했듯이 우리 통일외교의 요체는 결국 당사자, 교량자, 협력자라는 세가지 역할을 동시에 진행하는, ‘4강외교와 남북관계의 동시 병행과 균형 발전’이라는 숙명과도 같은 모토에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분단체제는 국내정치에 대한 독립변수이자 동시에 종속변수이다. 이런 종합적 존재인식 없이 종북이니 뭐니 하는 편협한 정치선동으로는 한국사회를 한걸음도 진전시킬 수 없고 그 퇴행성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분단체제에서 기능하는 그 독특한 순환의 고리는 대결형 남북관계와 승리 테제에 뿌리를 둔 흡수통일론이 사라지지 않는 한 통일외교에 대한 관료정치의 저항이라는 먹이사슬을 강화한다. 지금도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외교 엘리트들은 권력의 안팎에서 평화와 번영, 통일 선언에 대한 반대론을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불확실성 때문에 그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익을 조정하거나 동맹으로 몰입하는 데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창조적 외교가 필요하다. 조정과 동맹이라는 낡은 문법만으로는 이 새로운 단절의 시대를 열어가는 길이 험난함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이런 두가지 단절이 한반도 평화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을 북미회담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잡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6. 나가며

 

2018 남북정상회담은 세기의 관심을 한군데 모은 일대 사건이었다. 장소적 특성에서나 선언의 내용에서나 북미회담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앞둔 시기면에서나 그 의의는 비할 바 없이 막중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판문점선언의 의의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미래를 꿈꾸는 세대가 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가능성 없는 어두운 미래만 바라보던 좌절에서 벗어나 스스로 꿈꾸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상상력이 힘이 되는 시대의 매우 값진 자산이다. 통일대박론이 던진 미완의 희망에 판문점선언이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이다.

남과 북은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함에 따라 올가을 평양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곧 장관급회담이나 군사당국자회담 그리고 다양한 민간교류를 재개하고 이를 제도화할 것이다. 이같은 다양한 차원의 회동들이 상수화할 때 우리의 꿈은 날개를 달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그리는 하나의 미래는 그렇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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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핵심 과학자는 200~300명, 관련 기술인력은 8000~1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강경해지는 비핵화 … 볼턴도 PVID 강조」, 중앙일보 2018.5.7.
  2. ‘딥 프리즈’는 공개된 핵시설은 물론 숨겨놓은 핵시설까지 모두 동결하는 것으로, ‘라이트 프리즈’보다 훨씬 더 철저한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딥 프리즈와 라이트 프리즈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용어는 아닌 것으로 알지만, 국무부 내에서 우리끼리 사용하는 용어”라고 말했다. 「국무부 前고위관리 “北체제보장시 핵포기…폐기까지는 25~30년”」, 연합뉴스 2018.5.4.
  3. 「“북, 비핵화 대가 5개안 미국에 제시했다”」, 한겨레 2018.4.13.
  4. “미국 것들과 더는 마주 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이 내린 결단이다. 오바마 일당은 입버릇처럼 힘에 의한 《압박》과 《대화》라는 《두길전략》으로 우리의 변화를 유도하고 체제의 《붕괴》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제넘게 줴쳐대고 있다. (…) 《선 변화》가 있어야 대화가 있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세계면전에서 더이상 줴쳐대지 말아야 한다.” 2015년 2월 4일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
  5.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제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조선반도의 현실이다.” 2009년 1월 17일 북한 외무성 성명.
  6. 「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2016.2.26.
  7.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발언 201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