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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성규 金聖珪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가 있음. lamp2630@hanmail.net
구렁이를 타고 날아가는 아이들
사람이 타고 노는 짐승을 사람이 토막내는 날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하늘을 날아다녀요 우리 아이 좀 잡아주세요 경찰은 확성기를 켜고 권총에 총알을 장전한다 죽지 않는 곳을 맞혀주세요 내일 퇴원하고 학원에 가야 되거든요 너희들은 항공기 운항을 방해하고 있단다 날아가는 아이를 향해 경찰이 총을 난사한다 마귀들과 뱀의 혓바닥에 현혹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아!
멘사에 가입된 아이들이에요 조심하라니까요 주머니의 구슬을 던지며 구름 사이로 달아나는 아이들 떨어진 자리마다 웅덩이가 파이고 불길이 일어 구슬에 담긴 사막이 지상에 펼쳐진다 총소리에 놀란 구렁이가 겨울잠에서 깨고 기어간 자리마다 물길이 열린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에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탕!
바다가 소리 지르는 뱀눈을 뜨며 산 위로 기어오르리
피에 젖은 아이 하나가 떨어진다 간호사는 재빨리 상처에 구름을 쑤셔넣는다 응급실로 옮깁시다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하구요 아들아, 학원 갈 수 있겠어? 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죽지 않는 곳을 맞히라고 했잖아요 아줌마,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어요? 가로수 꼭대기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 사탄의 징후예요 목사님, 지옥에나 떨어져라!
하늘은 뒤집어진 제 눈을 바로 뜨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구렁이의 등 위에서 아이들은 손을 흔든다 거대한 강이 꿈틀거리며 서쪽으로 달아남 흐르는 뱀의 허리를 끊어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함
두개의 혀를 가진 자들은 손아귀의 종잇장을 놓지 못하리
경찰청장의 브리핑이 생중계되고, 뱀의 옆구리에서 대공포가 터진다 공책과 연필이 쏟아진다 증 거 물 압 수 홍 보 용 진 열 예 정 공권력 도전 엄벌원칙 항공기 운항 정상화 공책들이 빨갛잖아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된다니까 분명 내 아들, 저 공책, 사람인 줄 알면서 쏜 거라구요! 저건 괴물입니다 아줌마 자식이 아니라니까요 하하, 우리 청장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눈에 붕대를 감아두어도
누가 지금 잠든 뱀을 깨우고 있습니까? 공산당이 사탄의 혀로 부활합니다 헌금하고 기도합시다! 연필을 던지고 삼각자를 던지고 공책을 찢어 바람에 날리는 아이들 구렁이의 등에 업혀 하늘로 날아간다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날아간다
동맥이 터진 태양은 하늘까지 피의 빛을 내뿜으리
총을 쏘는 경찰의 머리 위로 구원의 증표처럼 피 묻은 공책들이 쏟아지고 팔다 남은 면죄부를 줍듯 아우성치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한장만, 한장만……
미식가
저는 저의 몸을 태울 수도 있지요
휘발유 냄새를 피우며 그의 몸이 타고 있다
그는 가장 위대한 마법사
누가 불을 꺼야 되는 거 아닌가요
불을 끄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그는 가장 위대한 마법사이니까요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손을 쬐는 노숙자들이 소리 지른다
정육점 주인이 그의 몸에 칼을 쑤셔넣는다
저에게도 배고팠던 기억이 있지요
옆구리에 작은 불꽃이 흘러내린다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은 마법사이니까요
엄마, 저 아저씨의 체온은 몇도일까?
온도계를 옆구리에 집어넣어보렴
죄송해요 저희 아이가 실험을 좋아해서요
세상에, 온도가 그대로예요
저는 늘 평정심을 유지한답니다
그래도 누군가 불을 꺼야 하지 않을까요
걱정 마세요 그는 가장 위대한 마법사이니까요
보세요 눈물을 흘리며
그가 마법의 불을 끄고 있어요
마법사에게 한마디만 해보라고 하세요
입술이 점점 일그러지는 마법사
고기 냄새를 맡을 때마다
당신들은 침을 흘리며 저를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