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

 

난민 이슈가 보여준 우리의 민낯

한국의 이슬람 혐오와 난민 문제

 

 

구기연 具紀延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저서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가 있음. kikiki9@snu.ac.kr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동성애·이슬람·반기독 악법을 꼭 막아내겠다’ ‘할랄 단지 조성계획 중인 익산시에 무슬림 30만명이 거주하면 대한민국은 테러위험국으로 전락’ ‘우리나라 여성에 대한 성폭행 급증 및 안전보장 불가’. 이 끔찍한 이슬람 혐오적인 발언들은 온라인의 악성 댓글이나 익명 게시물이 아니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당시 기독자유당의 홍보물에 쓰여 있던 문장들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선거인명단의 가정으로 발송된 정당 홍보물에 이슬람 혐오 문구가 그대로 노출된 것은 우리 사회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의 심각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9·11테러 이래 IS(이슬람국가)의 등장, 중동 난민 유입 등과 맞물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도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 폭행이나 히잡 착용 금지 같은 이슬람포비아 현상이 사회문제로 심화되는 추세이다. 이들 지역은 이슬람권과 오랜 갈등의 역사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 다문화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무슬림의 비율은 극소수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여전히 낯섦에도 이들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인 이미지는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듯 보인다.

지난 5월, 500명 넘는 예멘 난민의 제주도 입국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한국에서 난민은 사실상 낯선 이슈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다수 난민의 유입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2015년부터 지속되어온 내전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예멘은 현재 인구의 4분의 3이 넘는 2200만명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등 인도주의적인 보호와 도움이 절실하다. 민간인들이 심각한 폭력적 상황과 연이은 공습에 노출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발생한 난민만 3백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열악한 의료상황으로 인해 수백만명이 콜레라로 고통받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수장인 이란의 대리전이라고 불리는 작금의 상황은 가뜩이나 열악한 예멘의 사회적 인프라마저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동맹군이 인도적 원조조차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경을 봉쇄함에 따라 예멘인들은 식료품과 연료를 비롯한 생활필수품, 의약품 등을 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UN 보고서1에 따르면 2015~17년 사이 4773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중 1200명이 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이다. 2011년 이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33년째 집권하던 살레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예멘의 정국은 오히려 각 부족과 지역 간 세력 분쟁으로 혼란에 빠졌다. 여기에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까지 등장하면서 복합적인 층위의 종파적·지역적·정치적 갈등 상황으로 치달은 결과 지금과 같은 현실에 봉착했다.

이처럼 심각한 내전을 겪으며 많은 예멘인들이 목숨을 걸고 말레이시아, 지부티, 에티오피아, 수단 등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삼년 전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지내오던 난민들이 무사증제도를 통해 올 상반기 제주도로 입국했다. UN난민지위협약이 체결되어 있고 더 나은 환경을 갖춘 듯 보이는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처음으로 다수의 난민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미디어로만 접해왔던 무슬림 난민들과 조우하면서, 상상의 공포가 아닌 실체적인 두려움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예멘 난민이 제기한 문제는 무엇인지, 특히 이슬람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재현되었고, 난민 문제 이후 어떻게 확대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슬람은 어떻게 ‘상상의 공포’로 자리 잡았나?

 

폴란드의 이슬람포비아에 대해 연구한 인류학자 부초스키는 많은 사회에서 ‘무슬림 없는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without Muslims)를 경험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2 무슬림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무조건적인 적대시 속에서 이슬람포비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 한국사회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무슬림과 이슬람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한 이들 중 이슬람권을 방문한 적이 있거나 무슬림을 만나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무슬림을 무시무시한 잠재적인 범죄자로 상상하며 혐오하는 것인가? 필자는 한국사회의 이슬람 혐오는 바우만이 말한 “유동하는 공포”3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현대인들은 서로 다른 공포를 경험하며 사는데, 이러한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상태를 액체공포라고 할 때 한국사회에서 이슬람 또한 반다문화주의, IS에서 기인한 잔인한 이미지 등이 덧붙여져 너무나 낯선 공포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대체로 미디어(특히 뉴스)를 통해 구성되어왔다. 미디어의 재현은 이슬람에 대한 특정하고도 고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슬람포비아는 이슬람을 단조롭고 변화하지 않으며, 고립적이고 열등하고 폭력적인 정치사상으로 간주한다. 또한 서구에 대한 무슬림의 비판은 용납하지 않으면서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차별과 배제는 정당화한다. 이슬람에 대한 폐쇄된 담론으로서 이슬람의 내적 다양성과 진보적 성향, 타문화와의 소통, 독특성, 무슬림의 신실한 신앙 등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이슬람포비아로 정의될 수 있다. 예컨대 이슬람포비아에는 이슬람의 본질화와 타자화, 그리고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위계적 이분법 설정 같은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4

빅 카인즈5에서 ‘이슬람’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9·11테러와 IS의 행각 등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결과가 쏟아진다. 국내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01년 9월 11일 무렵이다. 9·11 직후인 2001년 10월의 총 기사 수는 1883건이었다. 8월의 관련 기사 수가 187건인 것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곧 한국사회에 이슬람이 널리 주목된 계기는 다름 아닌 9·11테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국내에 이슬람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이 쏟아진 시기는 2015년으로, 총 2만 521건에 이른다. 물론 2000년대와 비교해 검색 가능한 언론사 숫자가 증가한 이유도 있겠지만, 이 시기는 바로 IS의 본격적인 등장과 관련이 있다. 네이버카페 등 대형 커뮤니티에서의 검색빈도 추이는 이슬람에 대한 기사 수 증감 추이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슬람 관련 기사량이 최고점을 찍은 2015년 1월(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이나 같은 해 12월(빠리 테러)에 관련 검색어가 검색순위 최상위에 올랐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많이 노출되는 것은 자극적인 사건이 중심이 되었던바, 이슬람은 곧 과격주의와 테러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어온 것이다. 주변에서 평범한 무슬림 친구나 이웃을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문 데 반해, 이슬람과 관련된 부정적인 국제기사를 접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테러나 분쟁 관련 기사뿐 아니라 일부 가부장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폭력, 조혼, 명예살인 등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뉴스들도 흔히 등장한다. 비근한 예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은 문화와 지역에 따라 그 의미가 상이하며 주체적으로 히잡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있음에도,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억압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객체화하는 보도가 대다수다. 예멘 난민 문제가 이슈화된 초기에 한국 여성들의 안위와 관련된 우려가 적극적으로 제기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주민,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4개 집단을 중심으로 혐오표현의 실태를 조사한 연구6에는 무슬림을 포함한 이주민들에게 일상생활에서 혐오의 표적이 되는 두려움을 느꼈는가를 묻는 항목이 있는데, 응답자의 52.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표현은 주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자녀, 흑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민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집단이며,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으로 멸시받는다고 조사되었다. 특히 무슬림은 언제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혐오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표현은 이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 보호와 범죄예방을 위해서’ 통제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차별의 선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인권의 문제가 된다.7 이처럼 한국사회의 이슬람 혐오 현상은 이주민·소수자 혐오, 다문화주의 거부, 인종주의 등과 연결되어 있는데, 다수의 침묵하는 동조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엄중한 문제다. 적극적인 반대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안에 깊숙이 스며든 부정적인 정동(情動)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를 왜, 누가, 어떻게 확산시키는가

 

모든 거대 관념이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에, 환상의 적에 대한 공포야말로 정치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8

 

그렇다면 그 공포와 혐오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근거 없는 악의적 루머는 어떻게 확산되는가? 그를 통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이슬람 재현의 문제는 테러와 IS 같은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결국 현재의 내부적 정동과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한국사회의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진구는 한국의 개신교계 일각에서 “이슬람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라든가 “이슬람이 노리고 있다”라는 등의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 이슬람의 ‘국내 침투’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고, 이처럼 이슬람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슬람 쓰나미론’이 빠른 속도로 개신교계에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9 특히 2008년 하반기와 2009년 상반기 개신교계 언론에서 ‘이슬람 쓰나미’가 여타의 이슈들을 압도하면서 독보적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보수 개신교계에 이슬람포비아가 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9·11테러와 김선일씨 납치 살해 사건(2004), 샘물교회 피랍사건(2007)으로 인한 충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진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계의 이슬람포비아는 선교계의 위기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상실된 ‘선교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슬람포비아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선율 2017)의 저자인 김동문 목사를 필자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국 기독교 집단 중 다수가 이른바 이슬람포비아에 많이 노출되어 있지요. 괴담 또는 괴담에 가까운 루머, 과장된 정보에 휩쓸리는 이들의 다수는 단순 동조라 생각해요. 이들의 종교의식은 배제와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봐요. 타종교인 또는 비기독교인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자신들의 종교심을 지키고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겠죠. 아주 소수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 동조가 대부분이지만 소수의 신념을 가진 이들이 혐오 담론을 극단적인 일반화의 오류를 바탕으로 생산하고, 이에 동조하는 기독교 내의 세력자와 집단들이 확산시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팎에서 거짓된 정보와 태도를 믿고 따르고 반응하고 동원되는 상황이죠.”

김동문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괴담이 십여년에 걸쳐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을 구입하면 그 수익금이 IS의 테러자금으로 들어간다든지, 무슬림 인구가 한국 인구의 5%를 넘으면 한국도 이슬람화된다는 따위의 루머·괴담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슬람포비아 중 무슬림 남성에 대한 공포 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나미는 역시 일부 보수 개신교에서 무슬림을 폭력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거짓말을 잘하는 부류로 보는 선입견을 지적하면서, 이들이 특히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여성을 한국인 남성이 구출해야 할 피해자로 본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녀는 한국의 이슬람포비아는 “계급주의, 종교 배제주의, 성차별, 그리고 인종적 편견과 차별”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10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을 때 무슬림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불안한 시선 역시 우리 사회가 가진 이슬람포비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젊은 예멘 무슬림 남성들에 대해 이슬람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높은 경계심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혐오 등 여성이 처한 위치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겪고, ‘불법촬영·편파수사’에 항의하며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있는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인 공포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인다.

이렇듯 이번 난민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어느 한 집단의 특수성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 집단적으로 형성된 분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개인들이 ‘안전’에 대해 가지는 높은 위기의식이 특정하게 발현된 측면도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11에 따르면 난민의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인 입장을 물었을 때는 우호적 태도(50.7%)가 적대적 태도(44.7%)보다 높게 나타난 바 있기도 하다. 다만 그 대상을 ‘이슬람 난민’으로 좁혀 물었을 때는 우호적 답변이 28.7%, 적대적 답변은 66.6%로 나타났다는 점은 제주도 난민 이슈에 있어서 이슬람포비아가 여전히 주요 쟁점임을 보여준다. 예멘 난민 문제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이슬람포비아의 재현인 것이다.

 

 

‘난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배제하고, 구별 짓기

2018년 7월 28일, “국민이 먼저다” “난민법, 무사증 폐지” “가짜 난민 소환” 등의 구호 아래 전국적으로 난민반대집회가 3회째 열렸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우리는 1980년대까지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단일민족이라고 배우면서 순혈주의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를 체화해왔다. 이러한 강력한 순혈주의,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는 ‘우리’와 ‘그들’을 철저히 구별하면서 ‘그들’을 배제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결혼이주가 늘어나면서 다문화사회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한국인〓한민족이라는 확고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은 한국사회에서 주로 유색인인 외국인이자 낯선 종교를 믿는 이중적 소수자라 할 수 있다. 인종주의, 반다문화주의 그리고 의도적인 루머에서 기인한 편견 등이 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지금 전세계를 ‘우리’와 ‘적’으로 나누는 행위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 행위는 전쟁과 공격을 위한 기만적인 정당화이다. 이러한 전쟁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국가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막는다.

 

201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고도 영화제 불참을 선언한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Asghar Farhadi)의 수상소감이다. 그는 작년 초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저항하는 의미로 불참을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27일에 서명한 이 행정명령은 시리아·이란·소말리아·예멘 등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주요 공항에 이들 국가의 입국자 수백명이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큰 파장을 낳았다.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혐오범죄나 극우정치인들의 혐오 및 차별 발언,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 등은 혐오발언으로 물들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난민 이슈를 인권 패러다임에서 정치·안보 패러다임으로 바꿔버렸”다는 김현미의 주장12처럼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들도 정착형 이주자와 난민을 배제하는 현상을 보인다. 오랫동안 이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여온 나라들조차 반난민정책을 펼치는 최근의 추세를 보면 난민을 둘러싼 한국에서의 혼란과 갈등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슬림을 ‘적’으로 상정해 차별과 혐오의 감정을 보이면서 배제하는 것은 실체 없는 두려움을 만들어내면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사회를 낳는다. 공포와 혐오 감정이 외국인 이주자, 다문화가정, 성소수자, 정치노선이 다른 이들, 심지어 이성에 대한 혐오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사회에서 혐오라는 정동에 대한 경계가 시급한 때이다.

 

제주 난민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만약 제주도에 들어온 사람들이 예멘인 혹은 무슬림이 아니었다면 난민 이슈가 이처럼 뜨거운 논란이 되었을까. 난민을 반대하는 청와대 게시판 청원13에 71만명이 한 목소리로 동의했을까.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지난 7월 필자는 제주도 현지조사를 통해 제주예멘난민대책위원회 김성인 위원장, 예멘 청년 6명, 그리고 한때 150여명까지 예멘 난민을 수용했던 모 호텔 관계자 등을 인터뷰한 바 있다. 김성인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혐오도 무조건적인 환대도 아닌,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난민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 일부를 옮긴다.

 

우리는 ‘난민’이라 하면 난민캠프에 있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예멘 난민은 달라요. 이들은 제주도라는 개방된 장소에 흩어져 있습니다. 난민캠프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통제되지 않아요. 난민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도 문제지만,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무조건 ‘낭만화’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난민 문제는 너무나 쉽게 선이라는 욕망과 혐오라는 감정의 분출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이슈에 대한 논란, 즉 반대 및 혐오, 난민심사 제도, 출도, 제주도의 경제난과 관광사업의 불화음, 거기다 예멘 청년들의 불안한 목소리까지 한꺼번에 들으면서 필자의 머릿속은 엉클어졌다. ‘그들’에 대한 생각을 거듭할수록 예멘 난민 문제 속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은 결국 ‘우리’ 사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임을 실감한다. 지금의 난민 문제를 들여다보면, 동질성을 지향하는 강력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반다문화주의, 이슬람포비아 같은 우리 사회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필자가 제주도에서 만난 예멘 청년들은 이미 언론 등을 통해서 자신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조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아랍어로 정확하게 한국의 난민체계를 알려주고, 관련 정책 및 법규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적합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정확한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을 보장하고 법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에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난민법(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18년 5월까지의 집계를 보면 난민 신청 후 1차 심사 및 이의신청 심사를 마친 2만 361명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839명(4.1%)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계로 볼 때 한국에서 난민 문제가 유럽에서처럼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무슬림 없는 이슬람포비아’처럼 ‘난민 없는 난민포비아’에 가까운 것이다. 이슬람을 낯설어하는 한국사회에서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만들어낸 선입견과 불안감, 보수 개신교 일각의 루머 생산 등의 예를 보면 결국 예멘 난민 문제는 한국사회 내부로 귀결된다. 더욱이 난민은 난민캠프 안에만 가둘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어렵다. 이를 한번에 풀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우리의 세금을 갉아먹는 침입자라는 인식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물론 난민에 대한 지나친 동정심과 낭만화 역시 경계해야 한다. 난민 문제를 두고 한국사회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 가운데 하나가 안전의 위협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심도있는 난민심사가 당면한 숙제로 남는다. 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에 대해서 정부, 정치권, 지역사회, 종교계, NGO, 학계 등 모두가 신중하게 논의하면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

  1. “Over 100 civilians killed in a month, including fishermen, refugees, as Yemen conflict reaches two-year mark,” UN인권고등판무관 홈페이지(www.ohchr.org).
  2. Michał Buchowski, “Making Anthropology Matter in the Heyday of Islamophobia and the ‘Refugee Crisis’: The Case of Poland,” Český lid vol. 103, 2016.
  3.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함규진 옮김, 산책자 2009.
  4. 이진구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 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종교문화비평』 통권 19호, 2011.
  5.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www.bigkinds.or.kr).
  6. 2016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2017.
  7. 같은 보고서 108면.
  8. 지그문트 바우만, 앞의 책 243면.
  9. 이진구, 앞의 글.
  10. Kim Nami, The Gendered Politics of the Korean Protestant Right: Hegemonic Masculinity, Palgrave Macmillan 2016.
  11. 「난민에 우호적 51% 무슬림엔 적대적 67% … 이슬람포비아」, 중앙일보 2018.8.6.
  12. 「예멘인 추방하자는 사람들, 21세기 ‘인종주의자’」, 뉴스앤조이 2018.6.29.
  13.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www1.presient.go.kr/petitions/269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