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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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 庾炳鹿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qudfhrdb@naver.com

 

 

 

검은 꽃

 

 

죽은 자의 폐에서 발견되는 다량의 흙은

산 채로 매장된 흔적

 

산 자의 기억과 죽은 자의 꿈이 뒤섞이는 자정의 세계에서

눈 감으면

검은 공기의 구덩이에 파묻히는 느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검은 공기가

목구멍을 가로막으며 걸어들어오고

 

벗어나려 애쓸 때마다

숨통을 잠식하며 밀려드는

검은 모래는

쌓이고 쌓여 비탈을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점점 폐활량이 줄고

기침의 순간을 지나 침묵에 다다를 때

 

검은 공기의 구덩이는 내가 팠다는 생각

 

빛이 찾아오고

소란이 나를 일으켜 구덩이 밖으로 꺼낸다면

누가 내 가슴을 열어

검은 비탈을 발견한다면

 

자, 받아라

검은 꽃 한송이

 

 

 

지붕

 

 

아무래도

지붕을 도둑맞은 것 같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는 저녁

 

길에서 생을 마감한 자들의 묘지로 간다

봉분도 비명도 없는 땅

그들은 죽어서도 지붕 아래 있길 거부했으므로

 

머리 위를 무너뜨렸던 것

하늘이 보일 때까지

지붕을 만나 지붕을 부수고 높이를 만나 높이를 부수었던 것

 

지붕이 없으면

온기는 곧 사라지고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는데

 

숨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땅에서

하늘마저 부수던 자들

이마를 다치고 눈이 멀고

끝내 무너져내리는 어둠에 깔려 숨을 거두었던 것

 

자정의 하늘에는

검고 딱딱한 지붕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매달려 있지만

 

여기는 돌아눕지 않는 자들의 묘역

 

나는

근엄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손이 닿을 만큼

지붕이 가까워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