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에릭 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 글항아리 2018
조용히 다가온 재난에 대한 사회적 부검
김기흥 金起興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dinkim@postech.ac.kr
재난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충격을 일으키며 발생한다. 사회 구성원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은 사회를 통제 불가능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질서는 순식간에 혼돈으로 전환된다. 마치 꿈을 꾸듯 초현실적인 시공간적 상황이 전개되면서 재난은 혼돈을 남긴다. 동일본대지진이나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아직 우리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세월호사건 같은 인재까지 재난의 정의에 포함된다.
하지만 재난은 가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와 형체 없이 조용하게 다가와 부지불식간에 질서를 무너뜨리고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진·홍수·태풍·폭우·폭설이나 질병의 확산으로 인한 인명·재산 손실을 재난으로 상상하지만 침묵 속에 다가오는 재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폭염사회: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Heat Wave, 홍경탁 옮김)는 그 보이지 않는 재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난여름 약 한달간 낮 최고 40도에 가까운 폭염과 열대야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폭염사회’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클라이넨버그는 1995년 여름 시카고를 강타한 폭염을 분석하며 이 조용한 재난과 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총체적으로 촘촘하게 그려냈다.
그해 여름 시카고는 뜨거웠다. 한달 동안 낮 최고 4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과 90%에 육박하는 습도는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재난 발생 직후에 큰 충격을 남기는 다른 재난과는 달리, 이 폭염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의 숫자가 급증했다. 지구온난화가 더이상 특별한 이론이나 주장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엄습한 문제가 된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도시의 비상대응 시스템이 가장 발달한 메트로폴리스인 시카고에서, 폭염 때문에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학자에게 매력적인 분석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중요한 출발점도 ‘재난은 짧은 시간에 그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균등하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극적인 사건’이라는 상식을 깨뜨린 것이다. 통계상 폭염이 한창이던 7월 14일에서 20일 사이에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739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클라이넨버그의 관심을 끈 것은 대부분의 사망자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범죄율이 높은 흑인 거주지에 살고 있던 독거노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시카고 폭염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사회학적이지만은 않다. 저자는 ‘자연적 이유’인 폭염이라는 기상이변과 함께 도시공간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의 문제와 시정부의 정책, 언론이 이 재난을 다루는 방식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인 이유’의 실타래를 풀어내 보여주고자 했다. 사회연결망이 끊어진 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과, 저소득층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사인에 대해 밝히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학적 부검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왜 하필 빈곤하고 범죄율이 높은 흑인 거주 지역에서 유독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이라는 방법을 제안한다. 재난에 대해서 기상학이나 의학적 부검, 역학조사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사회적 병인(病因)을 찾아내는 것이 사회적 부검의 목적이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심화된 시카고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인종·재산·사회적 연결망에 따라 재난은 차별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난다. 클라이넨버그의 연구를 통해 대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원룸호텔(SRO)에서 사망자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사회적 연결망이 미약한 흑인 독거노인들이 주된 피해자였음이 명확해졌다. 또한 1990년대 연방정부의 복지지원이 줄어들고 시정부가 ‘기업가 정부’(entrepreneurial government)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관리방식의 효율성이 강조되었고, 이에 따라 시민은 정부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평한 대상이 아니라 서비스의 ‘소비자’로 재정의되었다. 이로 인해 서비스 제공-소비의 연결망에서 배제된 계층의 소외현상이 가속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즉 신자유주의적 통치방식이 기후재난이라는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폭염사회』는 마지막으로 엘리트 중심의 신문과 방송 종사자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지적한다. 이들은 소외 인종·계층 문제를 제대로 담아내지 않고 단순히 선정적인 방식으로 폭염을 기사화했다. 이로 인해 재난의 심각성을 재현하는 데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 특히 미국의 문제를 부각한다. 2005년에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던 태풍 카트리나는 유독 저임금 흑인 거주지역에서 많은 희생을 남겼다. 이 사건에 대해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홍수 같은 재난이 “사회의 표면을,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쓸어가버림으로써 그 이면에 존재하던 근원적 권력구조를, 불의를, 부패의 패턴을,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불평등을 폭로한다”(2005. 9. 5)고 주장했다. 이처럼 재난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사회적 부검을 해보면, 재난은 사회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노출하는 사건이다. 시카고 폭염재난 이후 시정부는 ‘비상 기후대응 계획’(Extreme Weather Operation Plan)을 수립해 극단적 기후에 대한 대응방법을 체계화했다. 폭염으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독거노인이나 낙후된 건물에 사는 거주민을 모두 시정부가 마련한 ‘쿨링 센터’(cooling center)에 갈 수 있도록 무료 버스를 제공하고 이들에 대한 점검을 체계화했다. 그 결과 4년 뒤 다시 찾아온 1999년 폭염에서는 사망자가 대폭 줄어들어 110여명 정도였다.
지난여름 기나긴 폭염을 겪으면서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7월에 발생한 사망자가 1년 전과 비교해 1600명 정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198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악명 높았던 1994년 폭염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높은 숫자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로 작성된 통계치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기후변화의 문제, 부의 양극화, 도시빈민의 거주지 형태·분포 그리고 정부의 관리방식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소리와 형태 없이 다가온 폭염 같은 재난에 대해 사회적 부검을 해본다면, 천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의 모습은 어떨까? 1995년 시카고의 모습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까?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른바 ‘인류세’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이 옥탑방의 폭염을 체험하는 극적 미디어 효과가 아니라, 극단적 기후변화에 대해 도시가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 대응체계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