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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백겸 金伯謙
1953년 대전 출생.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山 하나』 『북소리』 『비밀방』 『비밀정원』 등이 있음. finance8@naver.com
생명나무와 뱀
유전자정보의 집합인 게놈은 뱀 두마리가 서로 몸을 꼬아서 올라간 쌍두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의 인장(印章)에는 교접하는 쌍두사의 형상인 뱀신 닝기쉬즈다1가 있습니다
헤르메스가 사용한 카두케우스2 지팡이와 모세의 권능을 수행한 청동 뱀의 지팡이도 있군요
아즈텍의 깃털 달린 뱀신 케찰코아틀3은 위대한 쌍둥이로도 불렸고 죽음을 통해 부활하는 힘의 기원이었습니다
생명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에는 고대의 뱀이 있어서 이브에게 선악의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아마존의 샤먼들은 지금도 엑스터시에 젖은 채 환상 속의 뱀으로부터 식물과 약초의 지혜를 전수받는다고 합니다
탄트라 행자인 요기들은 호흡으로 미저골(尾低骨) 아래 잠자는 뱀의 기운 쿤달리니4를 일깨워 머리를 들게 합니다
불의 요가와 꿈의 요가와 빛의 요가가 ‘생명의 나무’5인 척추를 거꾸로 올라가는 기술입니다
태양과 달의 기운으로 일곱개의 차크라를 각성시킨 쿤달리니는 요기의 정수리에서 ‘천개의 꽃잎으로 피어난 연꽃’6을 각성시켜 요기의 영혼을 불사에 이르게 합니다
생명의 비밀한 힘들은 왜 뱀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요
고대인들은 어떻게 뱀의 이미지와 형상으로부터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환각식물이나 엑스터시의 힘으로 유전자에 숨어 있는 생명의 프로그램을 엿본 해커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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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소포타미아의 식물 생성을 관장하는 신.
2.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헤르메스의 지물이며 권능의 지팡이.
3. 아즈텍에게 문화를 전수한 신.
4. 인체의 회음 부분인 물라다라 차크라에 머무는 성력(性力).
5. 유대신비주의 카발라에 등장하는 세계의 창조와 구조에 관한 상징.
6. 쿤달리니가 인체의 정수리에 이를 때 피어나는 해탈과 깨달음의 상태.
세포 도시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찍은 세포를 들여다보면 세포는 하나의 도시국가입니다
3만개의 단백질 교환 센터가 에너지와 물질을 풀어 고도질서의 세포 도시를 운영합니다
중앙에 세포핵이 성전처럼 있고 핵산에는 생명체의 시원인 DNA가 이스라엘의 성궤처럼 모셔져 있군요
질소염기 AGCT의 알파벳으로 쓰여진 유전암호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염색체 23쌍은 500면 4000권의 장서로 채워진 도서관과 같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100조 세포 도시가 모여 복잡계의 질서를 이룬 은하성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생태계는 약 3000만종으로 분류된 생명연합의 다중우주이군요
그러나 이 모두는 세포라는 문법으로 쓴 생명의 책들
플라타너스의 잎맥과 당신의 정맥은 수액과 혈액을 운반하는 상동(相同)기관입니다
몸속의 DNA의 총길이는 약 2000억 킬로미터
야곱의 사다리처럼 지상에서 하늘까지 늘어선 ‘생명의 나무’입니다
5억년 전 캄브리아기에 생명의 폭발이 일어나 생명의 에덴동산이 지구에 펼쳐졌습니다
1만년 전 인간의 의식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문명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는 지식이 매 2년마다 배증하는 정보 폭발의 시대
뇌 안의 가상세계가 현실의 시공간을 지나 풍선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뇌세포도 DNA가 쓴 문법이므로 인간의 의식이란 ‘생명장(生命場)’ 스스로의 생각일까요
식물들의 오라1와 페로몬2도 식물들의 의식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질문의 답을 품고 있는 생명은 번식의 춤을 추느라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해바라기는 태양 아래 꽃을 피우고 공작새는 채색 무늬의 꽁지깃을 부채처럼 펼쳤습니다
당신은 연인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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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물과 인체 등의 생명체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장. 키를리안 사진술로 촬영한다.
2. 동물종의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되는 체외분비성 물질이지만 식물의 수액도 기능이 겹치는 부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