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제20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안미옥 황규관 2인을, 본심위원으로 고형렬 천양희 한기욱 3인을 위촉하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심사규정에 따라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예심에서 검토한 결과와 본심위원의 추천을 통해 아래 총 9권의 시집이 본심에 올랐다.
강성은 『Lo-fi』, 권선희 『꽃마차는 울며 간다』, 문동만 『구르는 잠』, 박성우 『웃는 연습』, 송진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이수명 『물류창고』, 이영광 『끝없는 사람』,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허영선 『해녀들』(가나다순).
본심은 11월 1일에 진행되었는데, 오늘의 한국시가 그 넓이와 깊이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심사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자연스레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된 논의에서 본심위원들은 우선 강성은 박성우 송진권으로 대상작을 압축하여 긴 토론을 이어간 끝에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창비 2017)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웃는 연습』은 농촌공동체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는 한편,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 평가되어 수상작으로 기쁘게 합의되었다.
심사평
고형렬(高炯烈) 시인
지난 일년간 발간된 시집 중에서 예심을 거친 아홉권의 시집에 파묻혀 한달을 같이 지냈다. 역시 시란 무엇으로 정의해도 규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이론으로도 그것이 완성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물과 공기처럼 다른 곳으로 계속 빠져나가려고 분발하는 존재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세계는 여러 층위 중에서 독특한 영역과 개성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한 중심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횡단하며 말을 던지고 길을 간다. 그 두 줄기는 역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내용과 형식이라는 시법의 격차로 나타났다. 길이 두개뿐이지만은 않을 터인데 어찌 보면 그 길은 현실에 대응하는 전통이자 답습일 수도 있겠다.
비존재의 고스트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서 환상보다 더 환상적이고 복잡한 현실과 세계 안에서 바라보는 강성은 시집 『Lo-fi』는 그 시상의 전개가 낯설지 않다는 의견이 일치되면서 송진권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와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이 최종 경합의 대상이 되었다. 두 시집을 살피는 과정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공동수상자를 내자고 제의할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견을 좁혀가며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에 접근할 수 있었다.
송진권의 시는 백석의 의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서사 전개에서 사변적인 걸림돌들이 자주 노출되었고 오브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진부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와 동시에 박성우 시의 배려, 따뜻함, 이해 등등은 또다른 단순성과 평이함에 머물렀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 이곳의 시와 현실 상황을 방기하고 소외시키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이해에 갇힌 순응들이 그의 시가 기도하는 반시대적 항체라는 느림의 시학과 은밀한 치유의 정신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시인이 농촌공동체의 퇴락한 잔영 안에 머물렀을 잠깐의 휴식을 더 큰 비약의 가능성으로 기대하기에 충분한 단계로 보고 박성우를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처음으로 회귀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 복귀하는 길도 있다. 자신을 에워싼 고치는 어떤 모습으로 있으며, 허공에서 거미는 무엇을 견디고 있을까. 그가 누구이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해가는 문법과 시련을 통과하기 마련이다. 이 생존의 모순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미학의 형상을 얻으려는 시인은 자신과 타자에 대응하는 긴장과 불황 속에 서 있는 미지수의 존재이기도 하다.
어떤 삶도 시대도 시인을 감싸주거나 편안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천양희(千良姬) 시인
예심에서 올라온 아홉권의 시집 중에 세명의 본심위원이 각각 세권을 추천하여 긴 시간 동안 논의하였다. 나는 송진권의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박성우의 『웃는 연습』, 강성은의 『Lo-fi』를 추천했다. 논의 끝에 세 심사위원이 동의한 『웃는 연습』이 2018년 백석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문학상은 말할 것도 없이 작품이 좋아야 하지만 그외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있기도 하며 때로는 운이 따른다고도 한다. 가령 한 시집으로 여러 상을 받는다든가 이번 시집이 예전 시집의 연장선상에 있다든가 하는 사항을 감안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예심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심위원의 공정함과 시에 대한 깊은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을 눈이 아프도록 읽어야 하고 거기에 사심은 금물이다. 내가 이 말을 굳이 하는 것은 요즘 문학상이 너무 많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 떠돌아서다. 이것은 사족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박성우의 시를 읽을 때마다 인생이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시인이면서 시인이어야 한다는 진술 속에 그의 시적 방법론이 스며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시를 이해하는 일은 몰입 속에 진실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생애 앞에 펼쳐지는 풍랑을 시의 진로로 받아들이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웃는 연습』 중 이전 시집에서는 볼 수 없던 한줄의 짧은 시들이 우리에게 최초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처럼 새롭고 놀랍다. 「칫솔과 숟가락」의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칫솔과 숟가락이다”라든가 「뱀」의 “내 몸이 길어져서 짧은 하루였다” 등에서 시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 한줄의 짧은 시가 이렇게 긴 여운을 주다니 박성우는 언어의 백만장자구나 싶다.
「마흔」이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삶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웃는 연습』은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느끼며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시집이다. 때로는 멀리 보는 눈보다 주변에서 맴도는 걸음이 작은 기척처럼 느껴지는 아쉬움은 있으나 그것은 결코 시의적인 동어반복이 아니라 앞으로의 진화를 예고하는 단계일 것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스며들게 하는 시쓰기와 사는 일의 근원적 가없음에 격려를 보내며 수상을 크게 축하한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본심에 오른 아홉권의 시집은 최근 우리 시의 한층 다양해진 성향과 표현방식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재현과 반재현, 전통적인 농촌과 포스트모던한 도시, 순정한 서정과 해체적 반서정, 단시와 산문시 등 실로 대조적인 경향이 나란히 공존한다. 이 다양한 성격의 시집들 가운데서 시인 특유의 시선과 감각이 적실한 말로 화하고, 그 말이 이 시대에 의미심장한 울림을 갖는 세권의 시집에 주목했다.
송진권의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와 강성은의 『Lo-fi』는 동일한 시간대의 시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언어와 정서, 그리고 어법에서 판이하다. 한쪽은 사실주의 계열의 전통적 서정에, 다른 쪽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반서정’ 혹은 ‘다른 서정’에 속하지만 둘 다 각각의 영역에서 독특한 언어의 진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송진권의 시는 농경민의 전통 속에 살고 자연(동식물)과 분리되지 않은 존재만이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언어가 돋보인다. 실감나는 충청도 방언에다 미세한 어감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시는 그 곡진한 발성법과 어우러져 온전한 삶과 존재를, 그런 온전함이 살아 있는 마을공동체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절창 같은 명편이 여럿이지만, 토속과 전통의 세계에 대한 회의가 신기할 만큼 부재하다는 것이 걸린다.
강성은의 언어는 반대로 공동체적 삶의 활력이 소진된 후에야 도래하는 세상과 존재를 보여주는 듯한데, 세상은 곧 비세상(환상)이요, 존재는 곧 비존재(유령)가 되는 경우다. 마치 고성능 홀로그램을 통과한 듯 말간 그의 언어는 잡다한 개체적 특수성이 제거된 존재와 삶을 조명하기에 최적화된 듯하다. 덕분에 꿈과 현실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 세상의 온갖 경계를 무시로 가로지르는 시의 동선이 더없는 파격임에도 정서적으로는 잔잔하다. 이런 경지는 온갖 욕망과 분노로 들끓는 현실을 그 질감 그대로 포착하는 단계를 가볍게 지나쳐버린 감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점은 성취이자 한계로도 느껴진다.
박성우의 『웃는 연습』은 앞의 두 시인의 세계 사이에 위치한다. 그의 시는 농촌공동체의 온전한 기운을 간직하되 그 어법은 구성진 발성으로 삶을 곡진하게 풀어놓기보다 세심한 감성으로 촘촘하게 묘사하는 쪽이며, 그의 사실적이되 정감어린 풍경 속에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사라질 것 같은 안타까움이 알게 모르게 스며 있다. 도시적 삶의 체험을 드러낸 시편들도 있는데, 농촌의 삶을 묘사하는 방식과 다르게 느껴진다. 가령 「뱀」 「회사원」 「쇼핑백 출근」에서 짧게 끊어 치는 잽처럼 알레고리를 사용하거나 「마흔」에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적인 독백체를 끌어들인다. 이런 어법 덕분에 이 시들은 마치 적자생존의 경쟁과 효율로 날카롭게 벼려진 도시적 삶의 감각이 존재의 한 부면에 새겨놓은 상흔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세 시집 모두 오늘날 한국시의 값진 성과로 내놓을 만하기에 심사과정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지만, 두 세계 사이의 어려운 자리에서 분투하는 박성우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수상소감
‘햇콩두부’ 냄새 같고 ‘붕어곰’ 냄새 같은
박성우 朴城佑
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동시집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어린이책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함께 사전』,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 수상.
가을밤이다.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도 「오리 망아지 토끼」도 「여승」도 「여우난골족」도 「고방」도 「고야」도 「정문촌」과 「가즈랑집」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도 모도 불러내 물큰물큰 백석 냄새를 맡아보는 시큰한 가을밤이다.
무신 맴들이 모여, 나를 여기로 보내나. 시금시금한 초저녁 전화를 끊은 뒤에 나는 스물한살 때를 꺼내 들어가본다. 이거 좀 들어드려도 될까요? 수녀님이 짐을 잔뜩 들고 내리던 차부의 이른 저녁, 수녀님이 들고 있던 짐을 나눠 든 게 연이 되어 나는 소록도와도 귀한 인연을 맺었다. 소록도 유치원 수녀님이던 이앙즈요셉 수녀님은 내가 섬에 닿을 때마다 나를 데리고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 벤치에는 눈이 깜깜한 도민고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다가 우릴 반기곤 했다. 손가락 마디가 촛농처럼 죄 녹아내린 할아버지는 내가 대신 단추를 채워드리는 걸 좋아했고, 내가 쫑알쫑알 숙소까지 따라가 간식거리를 축내고 오는 걸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고장 난 라디오 앞에 붙어 앉아 끙끙대던 여름 오후도 있었다. 어, 박성우 왔어! 눈이 아주 깜깜한 도민고 할아버지는 내가 일년 만에 찾아가든 이년 만에 찾아가든 인사하는 내 목소리만 듣고도 단박에 나를 알아봤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내가 늘 자넬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니까 알지!”
잠시 젖은 생각을 멈춘 나는, 오후 세시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양이 목덜미를 쓰다듬어본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 먹을 걸 내놓으라고 큰소리치던 당당하고 뻔뻔한 고양이. 따로 내줄 게 없어 멸치 한줌으로 가까워진 고양이. 양이 차지 않으면 다시 거침없이 방충망을 흔들어대는 고양이. 고양이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찾아왔다. 나는 내가 먹던 국물에 밥을 말고 멸치를 섞어 내주곤 했고, 고양이는 참 깔끔하게도 그걸 싹싹 비우고 갔다. 한데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앞으로 얼마간 집을 비워야 하는 오늘 아침, 한번도 어기지 않고 오후 세시 무렵에 찾아오던 고양이가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토방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밥을 챙겨주고 집을 나오려는데, 고양이는 어쩐 일로 배웅을 하듯 마당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고양이의 마음까지 보태지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앙즈요셉 수녀님과 도민고 할아버지와 오후 세시의 고양이와 가깝고 먼 곳에서 보드랍고 따순 마음을 두고두고 모아주는 모든 손길과 노모와 장모인 내 두 김정자와 같이 「머루밤」의 ‘송이버슷’ 냄새 같고 「초동일」의 ‘무감자’ 냄새 같고 「하답」의 ‘날버들치’ 냄새 같고 「적경」의 ‘미역국’ 냄새 같고 「추야일경」의 ‘햇콩두부’ 냄새 같고 「주막」의 ‘붕어곰’ 냄새 같은 이 상을 높고 귀하고 굳고 정하게 나누어보는 환한 가을, 달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