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후세에 물려줄 최고의 통일 열쇠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기자들이 오랫동안 사고가 너무 주눅들어서 남북경협과 관련하여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침을 날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는 ‘기레기’로 지칭되는 일부 기자들의 편협한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세대에게 분단체제의 이데올로기와 문화가 부지불식간에 행해온 세뇌교육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가을호 특집에서 백낙청이 언급하듯이 분단 70년은 우리로 하여금 “반공·반북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을 받아들이게 했으며, 우리 민족의 시각이 아닌 주한미군과 핵우산 등을 제공하는 우리의 안보 지킴이, 미국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민족의식은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학교교육과 언론을 통해 상시적으로 주입된다.
통일의 미래를 예상할 때 마냥 낙관할 수 없는 것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조차도 누군가 ‘왜 꼭 통일을 해야 해?’라고 물어올 때 민족은 함께해야 한다는 당위를 벗어나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하며, 젊은 후배 세대는 더 심할 것이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북한이라는 존재는 통일의 파트너가 아닌 정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이용되어왔으며, 사회개혁 세력 내에서도 계급문제 등 다른 과제들과의 우선순위를 놓고 분열의 빌미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촛불혁명으로 어렵게 사회가 정상궤도에 오르려는 지금의 흐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라도 분단으로 인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소모는 지양하고 그 에너지를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에 투여해야 할 때다.
이제 이념정치의 시대는 가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고들 한다. 더이상 선언이 아닌 일상적인 문화교류와 정규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일을 희구하는 감정이 생기게 하고, 통일이 아닌 분단상태에 의구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 후세에 줄 수 있는 최선의 통일 열쇠가 아닐까 생각한다. 분단을 넘어, 왜곡된 현실의 질곡을 넘어 평화공존의 미래를 상상하는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정용조 biz7107@gmail.com
거리를 두는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뒤에 이어진 추석연휴, 어르신들 사이에서 어떤 말들이 오갈지 제법 긴장된 마음으로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남북 간 평화의 움직임에 대해 할아버지께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거라 생각했다. 내 짐작과는 달리, 밥상머리에 올라온 대화 주제는 ‘백두산 천지’였다. 올해 아흔이신 할아버지는 남북 두 정상이 천지에 오른 일을 두고 당신도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작은아빠는, 육로로 백두산에 갈 날이 머지않았을 거라고, 그때 꼭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가을호 특집 ‘분단 너머의 한반도’ 중 오창은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백두산 천지보다 동시대 북한소설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공동의 문학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이태준, 박태원, 이기영 등의 작품으로 동시대 북한소설을 짐작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거울 밖으로 나온 북한소설들」은 나의 갈급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었다. 북한에서 출판된 문학작품은 “공식 문학, 당의 문학”이지만, 그러한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소설에서 문학적 성취를 찾을 수 있다는 언급이 반가웠다. 특히 “남성을 이기는 여성의 서사”라는 김해룡의 단편소설 「서른두송이의 해당화」를 자세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글의 끝부분에서 나는 “거리를 두는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쳤다. 동시대 북한소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구경꾼’이 아닌 ‘진중한 독자’가 되겠다며, 아직은 이를지도 모르는 다짐을 했다.
성수진 ssj218@naver.com
이게 전부 트럼프 덕분이라고?
특집 「‘트럼프 독트린’과 한반도」는 국제관계를 지도자 개인 차원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을 쓴 서재정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남북미 정상의 강력한 캐릭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근 남북관계 진전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충동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기사가 적지 않다. 서재정은 이러한 무성의한 보도를 비판하며, 중국과의 무역전쟁 선포나 빠리협약·이란핵협상 탈퇴는 트럼프행정부가 짠 고도의 국가전략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가 나왔다. 이제 트럼프정부의 전략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지켜볼 일이다.
이유채 sweetbox122@naver.com
남북경협이 남북 모두에 필요한 이유
이석기의 「김정은시대 북한경제의 변화」는 북한의 경제개혁과 경제관리체계 개편을 분석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70년대 성장기, 80년대 정체기, 90년대 몰락기를 거친 북한경제는 지금 지표상으로는 회복 중이다. 특히 김정은시대에는 민간 서비스업 활성에 힘입어 평양 등 대도시의 시장경제활동이 활발해졌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도입으로 기업의 자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가와 기업의 역할을 재조정하려는 시도나 시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를 통해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점에서는 김정은의 경제개혁에 점수를 줄 만하지만, 개혁 범위가 아직 제한적인 것은 그 한계라고 본다. 남북경협의 전면화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경제에도 성장 동력이 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시아 경제권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은 지금의 섬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구용훈 ggussy@naver.com
전 스타트업 재직자가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
재밌다고 소문난 장류진의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다. 스타트업, 특히 IT 계열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래저래 웃을 요소가 꽤 많았다. 개발자로 일하는 친구에게 추천해주니 이미 읽은 상태였다.
“합시다. 스크럼.”
전 직장에서도 애자일 방법론을 기반으로 스크럼을 도입했다. 시스템은 비슷한데, 작품에서 말하는 ‘데일리 스크럼’을 ‘데일리 미팅’이라 불렀다. 독자의 흥미를 끌 포인트를 잘 포착한 셈. 이외에도 스타트업 내의 호칭 에피소드(제니퍼는 진짜 어디에나 하나씩은 있을 이름이다)부터 귀하디귀한 iOS 개발자 캐릭터까지 남일 같지 않다. 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동마켓’은 아직 비즈니스모델이 없다. 인원도 그리 많지 않은 걸로 보아 시드투자를 받은 정도가 아닐까. 그래, 한창 힘들 때지.
마지막으로 ‘덕질’로 마무리되는 작품의 엔딩이 감동적이었다. 안나는 케빈과 거북이알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는데, 그 단초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거북이의 사진을 함께 보고, 케빈이 가지고 싶어하는 레고를 떠올려보고. 아마도 안나가 조성진을 많이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자세히 바라보는 것. 의외로 많은 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장류진의 신작은 이번 겨울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떤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할지 벌써 기대된다.
중명 jjmini01@naver.com
서늘한 가을의 시리도록 강렬한 만남
나는 계간지를 받으면 항상 시 꼭지부터 펼쳐서 찬찬히 읽는다. 이번 계절을 돌이켜보자면, 김성규 시인과의 첫만남이 강렬했다. 그의 시 「진심」과 「평화」는 간결한 제목과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의 진심은 어디 갔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들었다. 「평화」는 「진심」과 죽음이라는 결을 같이하는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폭력과 평화,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군상들. 누군가는 흘려 넘길지 모르는 단어들도 콕콕 내 가슴을 찌르고 나의 용기가 되어주었다. 섣불리 내 의견을 말하기 어려울지라도, 함부로 다그치는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내 진심은 오롯이 나의 것임을 기억하며 꿋꿋하게 지켜나가려 한다.
김민영 kkemo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