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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새로운 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

 

통일문학사를 다시 생각한다

모국어 내부의 타자를 만나는 길

 

 

김형수 金炯洙

시인, 소설가. 1959년 전남 함평 출생. 1985년 『민중시2』로 등단. 저서 『소태산 평전』 『문익환 평전』, 장편소설 『조드』 등이 있음.

millemi@hanmail.net

 

 

1. 모국어를 가꾸는 ‘한 태도’

 

통일문학사라는 낱말처럼 답답한 표현도 없다. ‘통일’문학은 너무도 자주 통일‘문학’에 방해가 된다. 매번 정신도 방법도 시대적 감수성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북한문학을 설명하는 장황한 일이나 민족현실과 윤리적 당위를 강조하는 일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이 문학의 열정을 정치적 상상력의 늪으로 끌고 갈 때마다 나는 그같은 고민을 처음 독대했던 자리로 돌아가보고는 한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이다!”

태초의 자리는 이곳이었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라는 말에서 전해오는 경이롭고 감동적인 울림은 어떤 유장한 선율을 타고 있다. 나는 문단에 나와서 이 주제가 한국문학의 영혼을 이끌면서 우리의 지성을 세상사 속으로 널리 확장해가는 과정을 목격해왔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형성돼 있던 전통이었다. 가령,

 

이광수·염상섭 시대의 작품을 읽어보면 우리말이 문학 언어로서 아직 미숙하고 초보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장구한 세월 한문의 지배가 계속되었고 우리말은 주로 구비적인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부득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1900년대는 한국어가 근대적인 문학 언어로 막 출발하는 단계에 있었어요. 이광수는 염상섭이나 김동인보다 훨씬 능숙한 언어를 사용했어요. 한국어를 문학적 언어로 연마하는 과정에서 이광수는 개척자적인 공적을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1

 

이같은 발언은 「소니의 블루스」(Sonny’s Blues, 1957)를 쓴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 『오셀로』(Othello)에서 인종차별을 느끼고 백안시했던 셰익스피어를 훗날 망명을 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언어에 대한 개척자로 재발견했던 순간을 연상케 한다. 한국문학의 선행 세대들의 가슴속에 타고 있던 숭고한 모국어의식은 우리에게 문학의 숙명에 대한 인식을 점화시키고, 그리 오래지 않은 식민지 시절의 추억담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일본어 이쪽에서 우리 모국어는 낡고 못난 것으로 버림받고 지극히 불온한 것으로 짓밟혔어. 아예 조선어는 조선지방의 낡은 사투리라고 여겼고, 어느 때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임종 직전의 위기에도 처했으나 끝내 사어(死語)가 되지 않고 우리 언어로 계승되었다네.2

 

그래서 그 시절의 작가들이 1945년 8월 15일을 ‘정치로서의 해방’이 아니라 ‘모국어 해방’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인다. 내가 아는 훌륭한 문학은 모두 그같은 ‘운명의 자각’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물론 ‘모국어 해방’이 ‘정치로서의 해방’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언어는 출현하는 것 자체로 이미 정치가 된다. 그래서 염무웅은 다시 말한다.

 

예술가는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시대현실에 깊이 연루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윤동주와 신동엽의 시를 단지 쉽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그들이 시에서 행한 사유의 깊이, 세상과 대결한 자세의 진정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3

 

혈기왕성한 스무살의 나이에 전쟁과 분단을 겪은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외치되 모국어의 남반부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사유의 대상으로 하였고, 문익환은 수천년 민중의 삶이 일군 생태공동체, 문화공동체로서의 언어공동체를 자연의 것, 신의 것으로 파악하여 기껏 몇십년짜리 체제들이 함부로 분할하고 훼손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막힐 때마다 김남주 같은 정신들이 다시 출현하여 추상같이 고하고는 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

 

선배 작가들이 고수한 이같은 ‘한 태도’를 그리는 일은, 문학사라는 것이 지극히 학구적인 정진을 담은 서술 행위만을 의미하기에는 너무 크고 지엄한 현실을 껴안은 것임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더러 눈앞의 작품 동정만 보고 작가적 생애의 실감을 몰각해도 어쩔 수 없이 문학의 행로는 좀더 커다란 궤도를 그린다. 한국현대사의 수난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황석영의 자전 『수인』(전2권, 문학동네 2017)은 그의 삶이 원고지가 아니라 모국어의 대지를 가로지르는 혈투 속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방북 때 밝힌 ‘분단시대의 작가로서 마지막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소감도, 또한 사석에서 자주 꺼내곤 하는 ‘나는 역사라는 엄처시하를 떠날 수 없었다’는 말도 모두 그가 지닌 모국어정신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이다. 통일문학사라는 낱말은 이렇게 한국 근현대사라고 하는 엄처시하에서 숨쉬어온 모국어문학의 장엄한 족적을 내포한다.

 

 

2. 파도 소리에도 사투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에 내재된 결코 중단되지 않는 ‘독트린’의 하나였다. 위정자들을 긴장에 빠뜨리는 이 불온한 깃발은 통일을 논의할 때보다 인류 문화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훨씬 더 위용있게 펄럭인다. 그리고 그것은 바깥으로 눈길을 돌려 외부를 휘돌아보았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조국은 언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국어가 죽어도 문학은 죽지 않는다. 어떤 작가가 문학적 기념비를 쌓는 동안에 그의 모국어가 소리 없이 숨지고 있었던 사례는 많다. 가령 20세기의 아프리카 작가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동안에도 그들의 모국어는 멸종의 길을 가고 있었다.

 

지금 세계 언어 6천8백 종은 날마다 소멸하고 있네. 100년 안에 절반 내지 90퍼센트가 없어진다는 유네스코의 암담한 전망도 있지. 실제로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영어만 남겨지는 미래를 예상할 수 있네. 더구나 인터넷 언어로서의 영어가 시장은 물론 문화의 각 부문까지 다 점거할지도 모른다네. 그렇게 되면 지상의 중소언어는 사어(死語)가 될 것이네.4

 

이때 문학은 모국어의 수호자인가 침략자인가? 이같은 물음은 한국문학의 개성이 모국어의식의 건강성에 있다는 점을 한껏 도드라지게 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 붙은 이름과 소리들에는 고유성이 숨어 있다. 파도 소리에도 자신의 고유성, 즉 사투리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람들은 언어 생태계의 파괴가 그 자체로 생명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어는 모든 문화활동의 토대요, 모든 민족어는 사실상 모든 민족문화의 주거지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어휘들 속에는 우리의 과거를 형성하는 사건들이 보관되어 있으니, 우리는 민족정신의 대부분을 그 언어에서 추론한다. 그래서 에머슨(R. W. Emerson)의 말대로 “언어는 수백 년 내려오는 동안 설득력이 강한 개개인들이 저마다 돌 하나씩을 쌓아올린 일종의 기념비인 것이다.”5

만약 ‘작가의 조국은 언어’라는 명제가 작가를 모국어의 수호자로 둔갑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려면 문학은 적어도 두개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 문학은 ‘문화의 일부’로서 ‘문화예술’일 수 있는가? ‘문화’가 정체성, 소속감, 관습, 전통과 관련된 것이라면 ‘예술’은 장르라는 추상적 틀 위에 구축된 ‘범세계적 전문영역’의 성격을 띤다.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문화에 동화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벗어남으로써 권위를 얻는 기현상이 여기에서 생긴다. 둘, 작가의 조국은 ‘언어’인가 ‘모국어’인가? 언어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말을 가리키지만 모국어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모어)’이다. 재외동포에게는 모국과 조국이 다르듯이 작가도 모국어의 숙명을 얼마든지 다르게 가질 수 있다.

‘한 언어’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약소언어의 죽음이 쓸쓸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문학에조차 버려지는 고독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문제가 하나의 언어가 건강을 잃고 상업적 거래의 기능, 말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의 기능에서 약해져가면 불원간 도태의 위험에 처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를 살리는 기능은 어디에 있을까?

고대 중국에서 사회적 열세를 말로 만회하거나 정치적 화를 언어로 모면한 달인의 일화는 주로 시가와 함께 이야기된다. 셰익스피어가 영어의 자질을 높였다는 평을 듣고, 뿌시낀이 러시아어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을 듣는 것도 문학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우리말에도 ‘언어의 달인’들이 있는데, 김병연(김삿갓)은 뜻글자인 한문으로 의성어 의태어를 자유로이 구사했고, 김소월은 근대의 여명기에 한글의 서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모범을 구가했다. 산업화 이후에도 이문구, 서정인 같은 고유의 문체미학이 등장하는가 하면 1980년대의 김지하는 축조적 문법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문화운동을 펼친 적도 있다. 주의할 것은 이같은 말의 활력을 되찾는 문제적 현상이 매번 표준어가 아닌 주변부 언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서정주는 「팔도 사투리의 묘미」라는 산문에서 경상도 말의 최대 강점을 “경어와 평교어와 하대어 중에서 말맛이나 음이 다채영롱하게 잘 발전된 것은 평교어”6라고 보면서 그 예를 「밀양아리랑」의 “날 좀 보소”에서 들고, 또 전라북도 말에서 사치도 제법 할 수 있었던 농민층의 예술적 감각이 음악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예를 높이 산 바 있다. 이렇게 주변부 언어, 즉 방언이라 불리는 샛강에서 위대한 말들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모이는 ‘말들의 장터’로서의 ‘문학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

 

 

3. 모국어들의 충돌

 

2005년 당시 어떤 자료에서 보았던지 나는 우리 모국어의 크기를 남쪽 5천만, 북쪽 3천만, 해외 1천만, 이방인 1천만을 합하여 1억 규모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상에서 바로 1억의 숫자가 향유하는 이 ‘모국어 영토’를 분할한 주범은 분단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도 살아남은 단일 문학장이 서울 문단과 평양 문단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은 1945년부터이다. 8·15 이후 모든 예술 영역이 서울 중심과 평양 중심, 자본주의적 경향의 예술계와 사회주의적 경향의 예술계로 분화되는 것을 보면서 양쪽 문학인들이 공유지를 쪼개지 않기 위해 긴급회동한 것은 1945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문학자대회였다. 하지만 남북은 끝내 결별하여 하나의 문학장이 불가피하게 둘로 나뉘고 만다.

내 생각에는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체제는 다르더라도 모국어가 하나이면 둘은 굳이 번역할 필요조차 없이 통해야 옳지만 분단체제는 혹여 ‘내통’하는 장면이라도 발각되면 누구도 예외없이 가혹한 응징을 가했다. 그러한 예를 심하게는 ‘분단으로 인한 언어자살 현상’과 ‘분단에 의한 언어살해 현상’으로 들 수 있는데, 가령 김구 ‘주석’을 부를 때 쓰던 낱말을 김일성 ‘주석’ 때문에 못 쓰게 되는 것은 분단으로 인한 언어자살 현상에 속하고, ‘먼 바다 고기잡이배’라고 했다가 간첩 혐의를 받을 것이 걱정되어(나는 이 이야기를 이광웅 시인에게서 들었다) ‘원양어선’이라고 하는 것은 분단으로 인한 언어살해 현상에 속한다. 이같은 모국어 학대는 남과 북뿐 아니라 두 문학장의 바깥에 위치한 재외동포에게도 엄청난 화를 초래했다. 가령 북의 문법체계로는 남의 소비자를 만날 수 없고, 남의 문법체계로는 북의 독자에게 말을 걸 수 없다. 해외에서도 연변에서 출간된 책들은 남쪽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북한 책들과 구별되지 못했다. 실제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둘 중 하나에 편입될 수 없는 대부분 지역에서 모국어는 또다른 작은 장터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통일문학사라는 낱말이 탄생한 자리는 이곳이었다.

우리의 모국어 연표는 전국문학자대회가 열렸던 1945년 12월에서 남북작가대회가 개최된 2005년 7월 사이에 아무것도 기록할 내용이 없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은 이 빈칸에서 발생된다. 바로 이곳에서 남한의 작가들은 각종 필화사건과 투옥사건 등으로 분단체제에 저항하면서 1988년 남북작가회담을 시도했고, 1989년에는 문익환, 황석영 등의 방북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에 통일문학위원회를 설립하고 고은, 송기숙 등 위원장들의 헌신적인 노력 속에서 조선작가동맹과 접촉을 시도한 끝에 마침내 평양에서 남북작가대회가 개최되었다. 2005년에 성사된 남북작가대회(공식 명칭은 2005년 평양 민족작가대회이다)는 “지역정신의 건강성을 모아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로 가자!”는 전망을 안고 추진되어 2006년 6·15민족문학인협의회 결성, 2007년 전주 아시아아프리카문학페스티벌 개최, 2008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한국작가회의로 개명하는 순서로 실행에 옮겨졌다. 그것들이 뜻했던 바를 모두 채울 수 있었다면 우리 문학은, 한국작가회의와 조선작가동맹에 소속된 작가들이 하나 된 민족문학인 기구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들과 연대하면서, 지구촌 문학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과 북의 문학은 한동안 모국어운동의 소강국면으로 빠져든다. 김재용, 김성수, 오창은 등 소수에 의한 학술활동을 빼고는 통일문학에 대한 열정 자체가 고갈되었다. 그 결과 근자에 조성된 정치적 희망 속에서 확인되는 공백은 너무도 크다. 다들 경험했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남북의 문학이 창조적 충돌을 보인 바가 없다. 다만 그에 연동된 희망의 파편들이 없지 않았으니, 『작가들』 2018년 겨울호 특집에서 이지순의 「타자의 문화정치학으로 북한 시 읽기」 같은 경우가 그런 예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바야흐로 “적대보다는 공존을, 단절보다는 교류를”(127면)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필요한 통합의 방향성이 이제 정초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의 시대적 당위성을 넘어서 앞으로 모국어의 내부에 있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또한 통일시대 문학의 현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껴안을 때 필요한 철학이나 관점은 없는지, 이런 전망 구축의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문학사는 이미 단일성보다 타자성을 중시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문학의 영감과 직관이 정치가들의 의식과 감각보다 훨씬 앞섰던 시대의 작가들이 ‘모국어 안에서 다시 이념의 울타리에 갇힌 자아’의 숙명을 넘어서기 위해 고투했던 열정을 필요로 한다. 통일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적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은 염원이 아니라 당위의 명제였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문화적 과정은 사라지고 ‘정치적 사건’만 남는 일말의 공허를 확인한다. 민족사적 재구성의 현장에서 문학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오늘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대지라 할 모국어의 숙명을 등져온 결과다.

 

 

4. 모국어 내부의 타자를 만나는 길

 

이지순은 통일문학사의 새로운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북한 시는 우리가 그동안 경험해왔던 시와 다른 지평을 보여준다. 해방 전 문학, 해방 후 남한의 문학을 기준점으로 놓고 ‘이질성’을 이야기하기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우리의 화두가 된다면, 북한 시는 북한의 ‘시’로서 자기 규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앞의 글 144면)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분단 70년을 넘기면서 모국어의 환경이 셀 수 없이 많은 고립된 장터를 가진 ‘모국어 내부의 타자들’이 되고 만 현실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타자는 한편으로 자의식을 촉발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므로 모국어 내부의 경쟁도 활성화되면 얼마든지 생산적일 수 있다. 예컨대 남측 작가의 귀에 닿는 평양 언어는 많은 창조적 영감을 자극한다. 나의 경우 계몽기 가요의 어휘들이 특히 그랬는데, 나는 남측 서민 중에서 비교적 많은 수의 토종 어휘를 아는 편인데도 신민요 「노들강변」의 ‘노들’, 가요 「찔레꽃」에 나오는 “철의 객점 북두성이 그립습니다”의 ‘철의 객점’이나 ‘북두성’이 철따라 이동해 다니는 객점의 부엌데기를 뜻한다는 것을 북쪽 작가들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이는 비단 어휘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 언어 속에는 수만가지 낱말과 숙어, 은유가 들어 있고, 또 그런 것을 조직하여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수많은 문법 구문이 있다. 실제로 남자친구를 ‘바지’라 하고, 여자친구를 ‘치마’라 하는 환유의 힘도 어쩔 수 없이 북쪽 풍경과 닿아 있다. 인간의 것은 머리요 짐승의 것은 대가리라 하는 (언어에 인격을 담는) 관습 때문에 ‘소머리국밥’이라는 어휘에 북한 작가들이 구토증을 느끼는 모습은 내가 놓쳐버린 집단 심성으로서의 민족성을 되돌아보게까지 한다. 그것은 재외동포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언젠가 용정을 취재할 때, 흡사 15세기적 발음을 연상케 하는(1988년 송우혜가 쓴 『윤동주 평전』에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사용된 함경북도 방언이 ‘세종조 당시의 어음’과 가장 닮아 있었다는 증언이 담겨 있다) 모국어의 철자법과 억양, 더 중요하게는 어문의 용례들에서 강물 같은 기억의 저수지가 방류되는 느낌을 맛보았다. 누구나 자신의 언어를 잃으면 과거로부터 격리되는 법이다. 토착 언어의 달인들이 들려주는 뛰어난 음악성, 정교한 표현법,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그래서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는 경험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의 모국어는 여러개의 문학장을 가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여러개의 국가언어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한반도 남쪽 작가들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태도를 취하더라도 남한 문학 역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기축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또다른 이념체제에 포섭된 국가문학이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의 감수성을 결정하는 미적 준거 틀은 어쩔 수 없이 지배자의 용모를 닮는 까닭에 때에 따라서는 세대 간의 차별성이 국경이나 대륙 간의 간극보다 클 수도 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21세기의 개인들이 서 있는 자리를 역순으로 짚어보면 확연해진다.

20세기가 ‘독립’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관계’의 세기라는 말이 있다. 어떤 개인도 자아실현의 무대를 작은 마을이나 도시 혹은 국경 안에 가두고 살 수 없다. 쉬운 예로 오늘날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서점이라 해도 내국인이 쓴 책만 팔지는 않는다. 아시아의 시골 아이들도 모두 세계문학의 교양을 읽는데 그 ‘세계문학의 장터’를 그간 유럽이 편집해왔다. 제3세계 작가들에게 각 대륙의 권역별 불균형은 거의 숙명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내부에는 전혀 다른 유형의 거장들이 출현하여 독자적 문학정신의 길을 개척한다. 유럽문학이 근대문명 속에서 끝없이 은폐되어가던 인간 존재의 총체상을 되찾는 일에 선구적 기여를 해왔다면, 그곳에서 문명을 배워온 아시아문학은 다시 인간을, 인간이 애초에 떠나온 대지의 일부로 되돌려보내는 시대를 선도해갈지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의 세계는 아시아의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있는 이같은 문학의 가치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읽어갈 수 있을까? 역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산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문학적 의지를 어떻게 해야 지상의 광범한 사람들 앞에 제출할 수 있을까? 속되지만 냉정하게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말하자면, 약소언어권의 작가들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로는 ‘시장진입’이 어렵고, 미숙하게 습득한 권력언어로는 ‘시장경쟁’에서 불리해진다. 이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사적 지평에 떠 있는 문학적 기제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유럽 근대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문학의 에너지가 고갈된 지금이야말로 아시아 각국이 모국어의 작가들을 미학적 교섭이 가능한 공동의 장으로 불러낼 때라고 본다. 그것은 인류가 국가적·민족적 배타성을 극복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정신을 담는 미적 형식을 획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려면 오랜 세월 동안 분단체제에 시달려온 우리의 모국어도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 장터들을 넘어선 ‘좀더 큰 장터’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21세기의 통일문학사에서 찾아내야 할 출구가 여기에 있다.

 

 

5. 하나가 되는 것은 커지는 것이다

 

모국어 문학장의 통합과정을 상상할 때 남쪽에서는 흔히 분단의 벽이 무너지기만 하면 북이 순식간에 자본주의 문화에 오염될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디지털 기기와 영상매체를 앞세운 대중문화의 압도적 위세 앞에 북은 속수무책이 되긴 할 것이다. 문화는 그 자체로서 개체의 매혹이 강렬한 쪽으로 유혹되고 감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당 노선’의 미학적 전달체계에 포섭돼 있었던 북의 경향이 언제 개인의 내면을 향하는 쪽으로 바뀔지, 북에서도 탈이념적인 세대가 언제 등장할지…… 따위에 사람들은 끌리는 것 같다. 이렇게 북의 문학이 일방적으로 남의 문학에 견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는 남의 문학이 앞서 있으니 후진적인 쪽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남의 문학이 북의 독자들 때문에 변할 소지는 없을까?

여기서 내세울 수 있는 가설의 하나는 문학이 권력 지향(이같은 증상에는 정치주의 과잉도 있지만 상업주의 과잉도 있다)과 그 낙수효과로부터 가급적 먼 거리를 유지하려는 기질을 남쪽보다 오히려 북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남북작가대회를 추진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누가 관직에 오르길 권하면 귀를 씻던 선비적 엄격성 같은 문사 기질은 북의 작가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보인다. 국제적으로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들보다 유럽의 작가들이 정치적으로 자유롭다고 여기는 것은 서구 중심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증상일 뿐 현실 해석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사실은 그 반대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소위 ‘남녀합반론’을 강변하고는 했다.

 

남학생 60명을 앉혀놓고 가르치던 선생이 사나이 이데올로기에 의탁해 있으면서 그것이 ‘반(反)계몽’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여학생 40명이 합반이 되고 나면 깜짝 놀라서 깨닫는단 말이에요. 아무리 소수의 여학생이 끼어들어도 사나이들끼리 의기투합했던 야만적 표현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져버리는 거죠. 그 선생은 이제 추가된 여학생 40명 때문에 좀더 보편적인 가치관, 좀더 높은 눈높이에서 나오는 발언을 선택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집니다. 남학생 60명을 가르치는 선생과 남녀가 합반된 백 명을 움직이는 선생의 차이가 여기에 있죠. (…) 합반된 후에는 선생님들의 인기 순위도 당연히 달라질 테고, 나아가서는 선생님의 자격 조건이나 소양의 수준도 달라질 거예요.7

 

물론 하나의 언어로 쓰인 작품이 전혀 체제가 다른 두개의 서적시장에서 수용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독일통일을 비롯한 타산지석의 텍스트들을 살펴야 한다. 전영애가 쓴 ‘분단과 통일의 성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독일의 현대문학』(창작과비평사 1998)에 조명된 독일통일은 문학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운 실패의 모델을 보여준다. 실러와 괴테의 저력을 지닌 독일문학은 히틀러 시대와 분단의 침체기를 겪은 후 독일통일이라는 중대한 재구성의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린다. 통일 후 독일의 독서시장이 프랑스의 독서시장에 일방적으로 견인될 만큼 취약해졌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구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 작가들끼리 서로를 정치적 스파이라고 투서하는 등 음해하는 장면은 안타깝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귄터 그라스가 독일통일의 과정을 실패로 규정하고 분개하는 모습은 먼 한반도에서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준다. 어쩌면 문익환이 1989년 방북 때 남북이 상호 교차해 서적판매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당시 그가 제안한 네개의 의견 중 김주석이 받아들이지 않은 유일한 것이 서적 공동판매대 설치였다.

 

어쨌든, 모국어로 쓴 작품이 자국 아닌 또 하나의 나라에서, 그것도 전혀 다른 체제에서 이중으로 간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작가들의 시야를 결정적으로 넓혀줄 것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작품의 성격에 투영될 것이다. 또한 세속화된 자본주의국가가 주제상실 혹은 대가(大家)의 부재 현상을 보인다면 새로운 시장 진입 의지를 장착한 소수자문학의 유입은 상당한 자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004년 무렵에 북쪽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전2권, 대훈 2004)가 남쪽에서 만해문학상을 받은 사건이 단발성으로 끝난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북의 문학에 과잉된 ‘사회주의 건설’이나 ‘지도자관’ 같은 정치 미학들은 남쪽에 내려오면 정치적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서대중의 자발적 환멸에 의해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남쪽 독서대중에게는 친북적 가치관뿐 아니라 반공주의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 작가들이 의존할 것은 작품의 보편적인 설득력, 주제의 호소력, 문체 등 미학적 개성밖에 없는데, 나는 이것이 모국어 안에서 이념의 국경을 지워가는 길이라고 본다.

 

 

6.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맞절할지니

 

결국 나의 결론은 신동엽이 노래했던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가 된다. 우리의 모국어문학은 모국어로 쓰인 문학을 총칭하지만 사실 모국어로 통하는 안락한 길은 어디에도 없다. 지상에서 1억의 인구가 사용한다는, 그래서 아무리 헐하게 잡아도 세계 10위권을 벗어나지 않는 세력을 가진 이 언어는 대부분의 서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국어의 이러저러한 상(像)들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가치관에 의하여 구축된 전혀 상이한 또다른 상(像)들의 복합체이기도 하다. 우리와 외국인을 구별하는 문화적 동질성의 핵이면서도 사실은 후발 산업화 국가들에 의해 개발도상의 모델로 이야기되는 서울이나, 수십년 동안 줄기차게 미국의 압박을 견디고 있는 평양의 삶만이 아닌, 제3의 것들까지 포괄해야 하는 그 숱한 부산물들의 총체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국어들 중에서 어떤 모국어로 세상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 역사 전개, 꿈과 상처의 내용들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제 지난 수십년 동안 함부로 규정되었던 ‘우리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겸손하고 진지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인즉, 우리의 모국어는 서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하나만의 한국어여서는 안 될 것이고, 남과 북, 해외 변방으로 흩어져서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 복수의 민족어들이어야 할 것이며, 결국은 다시 하나의 광의적 정체성 아래 모일 수 있는 단수의 민족어여야 할 것이다. 당대 문학의 숙명적 과제로서 ‘모국어의 재영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 염무웅 『문학과의 동행』, 한티재 2018, 374~75면.
  2. 고은 『두 세기의 달빛』, 한길사 2012, 302면.
  3. 염무웅, 앞의 책 170면.
  4. 고은·김형수 『고은 깊은 곳』, 아시아 2017, 42면.
  5. 데이비드 크리스털 『언어의 죽음』, 권루시안 옮김, 이론과실천 2005, 69면.
  6. 서정주 「팔도 사투리의 묘미」, 『미당 서정주 전집 10권: 풍류의 시간』, 은행나무 2017, 292면.
  7. 김형수·김재용 「분단시대의 문학에서 통일시대의 문학으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마치고」, 『실천문학』 2005년 가을호, 42~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