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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홍콩으로부터의 사색
정규식 鄭圭植
원광대 HK+연구교수. 공저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 2』, 공역서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 등이 있음. guesik@hanmail.net
* 이 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에 게재한 칼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말해주는 것들: 동아시아 ‘탈냉전’과 ‘동아시아적 시각’의 간극」(2019.6.21)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이전의 고민들을 좀더 구체화해 확장한 것이다.
1. 홍콩시위에서 무엇을 사유할 것인가?
최근 홍콩에서 전개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 반대 시위’(이하 홍콩시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태가 더욱 격화되고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이미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이번 홍콩시위의 근저에는 중국의 홍콩 정책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만과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위기감이 깔려 있다. 현재 홍콩의 행정수반은 직선제가 아니라 친중국파가 다수인 선거위원단의 투표로 선출되고, 중국정부의 최종 임명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안이 시도되었던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은 행정수반과 법원의 결정만으로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곳으로도 쉽게 범죄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따라서 홍콩 시민들은 인권운동가나 반중(反中) 인사들이 편의적으로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홍콩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인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법안의 완전 철회와 시위 관련 체포자 석방, 경찰 폭력진압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의 계속되는 강경대응과 정체불명의 무리에 의한 ‘백색테러’까지 자행되면서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번 시위와 관련해 현재까지 총 4명이 사망했으며(추락사 1명, 투신 3명),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또한 이미 140여명이 체포됐으며, 그중 44명이 기소됐다(8월 8일 현재). 이에 따라 시위대의 구성도 점차 다양해지고(소위 엄마부대, 아빠부대, 흰머리부대의 등장과 노동자 파업으로의 확산), 시위의 양상도 점점 반중 색채를 보이면서 과열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기념일에는 시위대가 의회 격인 입법회 건물을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21일에는 중앙인민정부 홍콩특별행정구 사무판공실 건물에 내걸린 중국 국가 휘장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됨으로써, 사태가 본격적으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투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 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로 규정했다. 이 글을 한참 쓰고 있는 7월 29일 중국정부는 홍콩 반환 이후 최초로 시행된 홍콩 주재 사무판공실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폭력시위에 대한 홍콩 경찰의 엄격한 법집행을 촉구했다. 심지어 우 첸(吳謙) 중국 국방부 대변인과 양 광(楊光)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홍콩특별행정구 주군법(駐軍法) 제3항 제14조를 근거로 중국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 조항에는 홍콩 주재 인민해방군은 홍콩 내정에 개입할 수 없지만, 홍콩 정부가 공공질서 유지와 재해 구호를 위해 중앙정부에 요청하는 경우 투입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홍콩시위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그 결과와 영향은 훨씬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이번 홍콩시위의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 구조를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나아가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이 사건을 홍콩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온전히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홍콩시위의 역사적 복합성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홍콩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특수한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며, 지리·정치·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은 식민주의, 민족주의, 제국적 상상이 착종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냉전구조의 복합성이 2014년 홍콩의 ‘우산운동’과 대만의 ‘해바라기 운동’에서도 표출되었으며, 그렇기에 2019년 홍콩시위도 아직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 냉전구조의 복합성에 정위(正位)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일국양제’의 균열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중국 사상계의 곤혹, 그리고 동아시아 탈냉전과 ‘민주’의 문제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일국양제’의 균열과 중국 사상계의 곤혹
이번 홍콩시위는 표면적으로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이 원인이지만, 그 심층에는 ‘홍콩인’의 정체성 및 중국과의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내장되어 있다. 150여년의 영국 식민지배와 냉전 시기 국제적인 경제도시로의 발전, 그리고 중국으로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된 홍콩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는 ‘혼종성’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홍콩에서는 배타적 반중국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홍콩 본토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혼종성과 배타성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홍콩이 중국 대륙의 국가중심성·중화민족성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홍콩의 정체성 정치가 강화”1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84년 홍콩반환 협정이 체결되고 오년 후에 발생한 톈안먼사건을 계기로 홍콩인들에게 중국은 ‘민주’와 대립되는 독재와 억압의 국가체제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기억으로 인해 홍콩인들에게 주권 반환은 홍콩의 역동성과 다원성이 중국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의해 침식당하고, 중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일원으로 통합을 강요당하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홍콩인들의 집단적 기억과 정체성은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즉 2003년 ‘국가안전법 입법 반대’ 시위, 2007년 ‘국민교육과정 도입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 요구’ 시위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번 시위도 기본적으로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이번 시위는 시 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일국양제에 대한 해석이 점차 달라지고 홍콩에 대한 간섭과 탄압이 심해지면서 더욱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 진핑은 2014년 발표한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라는 백서에서 홍콩의 관할권은 중국 중앙정부가 전적으로 보유하며, 일국양제의 ‘일국’과 ‘양제’를 동등한 가치로 인식해서는 안 되고, ‘양제’는 ‘일국’을 바탕으로 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라고 새롭게 규정했다. 이후 홍콩 시민사회에는 일국양제에 근거한 홍콩의 자유로운 공간이 점차 사라져 중국에 완전히 종속될 것이라는 불안감과 공포가 팽배해졌으며,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감정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홍콩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운동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핵심은 ‘대일통(大一統)’을 실현할 제도적 방편으로 모색된 ‘일국양제’ 체제의 균열이다.
주지하듯이 일국양제는 중국정부가 반환된 홍콩에 적용한 제도로서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제도의 공존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정부는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하면서 ‘중화민족의 부흥’과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실현을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필연적으로 일국양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하며, 이로부터 중국 사상계의 곤혹이 감지된다. 먼저 일국(一國)과 관련해서는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로 중국 사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제국담론(조공체제론, 문명국가론, 천하론 등)이 향후 어떻게 이 문제에 응답할지가 주목된다.2 특히 중국에서 자유주의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쉬 지린(許紀霖)은 ‘공유하는 보편(共享的普遍)’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신천하주의’를 주장한다. 즉 현재 중국 지도부가 강조하는 중국몽은 단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만을 추구하는 민족국가 중심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탈중심·탈등급화된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천하주의의 구체적 제도형태 중 하나가 일국양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영서의 지적처럼 쉬 지린의 논의에는 일국양제가 확대될 때 국가주권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없다. 더구나 “중국과 이웃한 타자인 아시아 여러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보다, 현대 중국의 국가정체성에 더 밀착해 있기에” 동아시아 역내 갈등을 해소할 설득력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3 앞서 말했듯이 중국정부는 이번 홍콩시위를 국가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일국양제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로 규정했다. 이러한 현실적 갈등 국면을 중국 사상계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2011년 왕 후이(汪暉)가 했던 주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이 다른 어떤 체제와도 다르게 독립적·자주적으로 사회발전 노선을 탐색해왔음을 강조하면서, 정당관계와 정치 진행 과정에서 발전한 일종의 특수한 정치적 독립성이 국가·경제 등의 영역에서 드러났는데, 그 실체는 사회주의적 역량의 부단한 ‘자기조정’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즉 제도적인 민주주의는 부족하지만, 대신 지식계를 중심으로 한 이론논쟁과 당내 노선투쟁 등이 중국의 혁명과 개혁과정 모두에 중대한 작용을 해왔다는 것이다.4 이번에 발생한 홍콩시위는 이러한 왕 후이의 주장이 사실인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지를 판단할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중화민족의 부흥’과 ‘홍콩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국민국가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기반한 국가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홍콩을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홍콩이라는 공간을 중국 체제를 위협하는 불안요소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탈민족적이고 탈국민국가적인 동아시아 공동체 모델 창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도 중국 지식인 내부에서 홍콩시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자체가 현재 중국이 처한 사회적 경직성과 사상적 곤혹 상황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양제(兩制)와 관련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즉 중국은 과연 아직도 사회주의체제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일원인가라는 오래된 문제가 중국과 홍콩의 양제 구도를 통해 다시 쟁점화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중국의 발전방향을 두고 벌어진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을 복기해보자. 그 핵심 내용은 중국의 발전모델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찬성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 사이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논쟁’으로 전개되었다.5 그러나 허 자오톈(賀照田)의 지적처럼 당시 신좌파 진영은 서구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을 근거로 중국 발전모델을 신자유주의로 성급하게 단정함으로써, 중국의 현실 사회경제의 발전에 대한 대안적인 사유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신좌파의 논의는 손쉽게 관변담론에 흡수·통합되었다. 특히 2008년 말 미국 금융위기 이후 서구의 여러 지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지만 중국은 높은 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면서, 많은 신좌파 지식인들이 중국의 경제적 성과와 체제적 우수성을 강조하는 ‘중국 모델론’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중국 모델론은 단순한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신감을 넘어 정치적 영역, 즉 국가통치행위와 제도 방면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까지 진화했다. 이러한 중국 모델론에 대한 정치 지도부의 호응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후 진타오(胡錦濤)와 시 진핑이 거듭 강조한 ‘3개 자신감’, 즉 진로자신감(進路自信), 이론자신감(理論自信), 제도자신감(制度自信)이다.6
그런데 최근 중국정부에 의한 노동자 탄압과 친기업 정책이 확산되면서 중국 체제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재개되었다. 2016년 1월부터 2월까지 벌어진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은 홍콩대학의 교수이자 대표적인 중국 노동연구자인 푼 응아이(潘毅), 그리고 역시 홍콩 출신으로 중국인민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딕 로(盧荻), 난징재경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인 루 잉시(盧映西), 그리고 미국 유타대학 교수인 리 민치(李民騏)이다. 이들은 이른바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사유화·시장화·금융화를 척도로 중국을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규정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각각 다른 주장을 펼쳤다.7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기존 신좌파를 비롯한 중국 대륙의 지식인이 아니라, 홍콩을 포함한 해외의 중국 출신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을 제외한 중화권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반중 정서가 단순히 독재 반대나 독립 요구 차원이 아니라, 중국이 아직도 사회주의체제인지 아니면 이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후이 보겅(許寶強)이 지난 2014년 홍콩에서 발생한 우산운동을 통해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현재 홍콩이 직면한 위기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의 빈부 양극화, 생계만을 추구하는 발전주의,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로 향하는 추세”이며, 이를 초래한 “역사적·현재적 원인은 한마디로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홍콩의 식민적 성격이 중국 사회주의 전통의 자본주의 발전기획과 결합한 것”이다.8 바로 여기에 홍콩시위의 역사적·현실적 복합성이 존재한다.
3. 도래하지 않은 ‘동아시아 탈냉전’과 동북아 지역질서의 재편
홍콩시위의 역사적·현실적 복합성은 우리에게 이미 오래된 질문이 되어버린 ‘동아시아에 탈냉전 시대는 도래했는가’라는 문제를 다시금 마주하게 한다. 일찍이 최원식은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창작과비평』 1993년 봄호)에서 탈냉전시대를 맞아 “협량한 민족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연대의 전진 속에서 진정한 동아시아 모델을 창조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도래”(212면)했음을 선포했다. 한국에서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동아시아론’의 포문을 열었던 이 논문은 탈냉전시대의 도래와 동아시아의 지각변동에 대한 예리한 통찰(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1991년 소련 연방 해체, 중소분쟁의 종결과 한중수교, 중국의 세계경제 체제로의 진입 등)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차원의 민중세상”(213면)을 열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민중연대를 강조했으며,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백영서의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 ‘이중적 주변의 시각과 복합국가론’ 등 다양한 형태의 동아시아론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26년이 흐른 지금, 동아시아에서의 ‘탈냉전시대 선언’은 너무도 빨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탈냉전시대와 민중 중심의 동아시아적 시각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홍콩시위는 ‘신냉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작금의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 재편의 시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경제적 측면의 상호의존이 점차 강화되는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과거와 같은 진영 간 대립으로 격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과거처럼 폐쇄적 형태의 양극체제가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통합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하에서의 갈등과 분화가 새로운 진영논리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9 이미 미중 간 무역전쟁이 기술과 금융, 군사 분야로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중국 외교정책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간 무역분쟁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중국과 미국 간의 패권경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홍콩도 ‘핵심현장’의 하나로 등극한 것이다. 최근 우 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아시아 평화에 대한 위험’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번 홍콩시위를 독재와 민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시위대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미국의 온라인매체 슬레이트(Slate)는 홍콩의 시위가 중국과 대만 간 대결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시 진핑 주석의 중국몽이 부딪치면서 전개되는 미중 간 세력 격돌은 신냉전의 상황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체제 구축 및 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상의 험난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2018년 3월 이후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은 표면적으로 통상무역과 관세를 둘러싼 경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체제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 경쟁과 체제경쟁이 내장되어 있다.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보면 현재의 시기는 ‘헤게모니 이행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잠재적 헤게모니 권력인 중국의 급부상이 격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맞물려 중국은 명실공히 G2로 급부상하면서 미중관계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즉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0년경부터 시작된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에 대응해 중국의 핵심이익을 강조하는 ‘신형대국관계’를 제기하면서, 지역 내의 주도적 위치를 점한 다음 미국과 ‘협력적 동반자’ 관계라는 위상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2014년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신(新)실크로드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아시아·태평양 지배 전략에 대응하는 유라시아 경제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 지역질서의 재편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홍콩도 백영서가 말한 ‘핵심현장’으로 ‘발견’되어야 한다.10 그에 의하면 핵심현장이란 동아시아 질서의 역사적 모순, 곧 제국과 식민과 냉전의 중첩된 영향 아래 공간적으로 크게 분열되어 갈등이 응축된 장소를 의미한다. 잘 알려졌듯이 지난 7월 1일 홍콩 시위대의 입법회 점거 당시 영국 식민지 시기의 홍콩기가 의사당에 내걸렸으며, 이후 21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휘날리며 집회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화 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월 30일 진행한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시위는 미국의 작품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며, 외부세력이 홍콩을 어지럽히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홍콩시위를 지지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시위 진압용 장비를 수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2014년 우산운동의 주역이었던 조슈아 웡(黃之鋒)이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기업의 이름이 적힌 최루탄 가스통과 고무탄 사진을 올린 것이다. 이어 그는 “홍콩 경찰이 미국에서 만든 고무탄과 최루탄으로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다”면서, 미국정부의 시위진압 장비수출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시위가 점차 장기화되고 격화되면서, 홍콩사회 내부의 충돌도 격화되고 있다. 즉 친정부(혹은 친중국) 시위대와 반정부(혹은 반중국) 시위대 사이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사태가 갈수록 혼돈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4. 끝나지 않은 ‘민주수업’과 동아시아 공생의 길
마지막으로 이번 홍콩시위는 우리에게 ‘민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장정아가 지적했듯이 “홍콩인의 기억 속에 중국 반환은 곧 자유와 민주의 박탈로 상상”되었다.11 즉 식민시절은 민주사회였고, 중국 반환으로 민주를 빼앗겼다는 왜곡된 집단 기억 속에서 홍콩인들은 과연 민주가 무엇인지, 이전의 홍콩은 과연 민주사회였는지를 제대로 성찰할 기회가 없었다. 실제로 영국 식민지 시기 홍콩 시민들에게 부여된 정치적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참정권은 일부 부유한 자본가에게만 주어졌고, 1980년대 초반까지 결사나 집회의 자유도 제한적이었다. 이렇게 볼 때 홍콩인들은 지난 우산운동과 이번 시위를 통해 ‘민주수업’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홍콩시위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은 어떠해야 할지 성찰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근대화의 경로를 밟아온 중국과 한국에서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동일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현재 한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들에서 인민의 정치적 지배를 침해하는 기업권력의 횡포, 금권정치의 장으로 전락한 선거제도, 시장논리로 점철된 ‘신자유주의적 합리성’ 등으로 인해 국가는 더이상 ‘인민의 지배’가 아니라, 경영관리 운용의 구현체로 기능하는 현실을 보이고 있다.12 즉 민주주의가 다양한 사회경제적 영역에 급진적으로 확장되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함에도 오히려 자본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에 의해 포위되어가는 ‘탈-민주화’ 추세를 걷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역시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재발견하여 사회적 위기를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즉 왕 후이의 말처럼 합법성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체제적 성격의 정치위기가 늘 상존하는 현실과 인민대중들의 공정과 사회적 평등에 대한 강렬한 요구, 당 내부의 민주화 문제, 반부패 문제,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조성한 ‘탈정치화’ 상태의 극복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13 요컨대 서로 다른 근대화의 과정을 거쳐온 한국과 중국의 현실적인 위기 상황들이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마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극복의 방향은 정치의 주체와 범위, 그리고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와 직결되기에 더욱 중요한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한국사회는 냉전체제하에서 북한 사회주의와 대결하며 성립된 반공국가이며, 이후 전쟁과 휴전을 거쳐 분단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전쟁정치의 보편화와 일상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신 이후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정치권과 언론에서 동원하는 ‘빨갱이’ 담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국가 내의 적에 대한 환기와 상징화는 어떻게 상대적 평화시기에도 ‘전쟁정치’가 연장될 수 있으며, 이 전쟁정치하에서 사람들이 상호검열과 자기검열의 내면성 통제를 통해 ‘밖’의 존재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단속하는지를 잘 보여준다.14 또한 중국의 경우도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에서 나타나듯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민에 대한 규정과 중국공산당의 성격 변화가 현재 드러나는 위기의 기저에 놓여 있다.15 즉 1949년 건국 초기에는 관료부르주아 계급과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계급은 인민의 범주에조차 속하지 않았지만, 이제 ‘선진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공산당의 성격 자체가 자본가를 일소하는 정당에서 자본가를 육성하는 정당으로 전환된 현실 자체가 이후 중국에서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첸 리췬(錢理群)은 통치 정당성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중국 체제의 위기를 강조한다.16 즉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권력귀족’ 집단이 출현하여, 공정과 사회적 평등을 강렬하게 요구하는 인민대중과 부딪히면서 발생하고 있는 계급모순과 권리수호(維權) 운동을 향후 중국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사실 정치와 민주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정의할지는 현 사회의 성격과 위기를 진단하고 또 대안을 모색하는 일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한국과 중국 및 홍콩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위기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을 재발견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은 실제 정치적 주체들이 갈등하며 마주치는 정치적 공간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공간들에서 제도정당이나 당-국가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사회운동들이 새로운 저항성과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의 촛불시위나 홍콩시위 등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따라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가 향후 이들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수준과 범위를 확장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한 대중의 다양한 저항적 잠재력을 정치화하고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도모하는 정치의 전복을 통해 기존 사회질서의 모순과 적대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삶의 양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 공생의 여정에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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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화 「홍콩의 집단 기억과 시위 그리고 정체성 정치」, 『중소연구』 2018년 가을호 167면. ↩
-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 제국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복합국가론’을 통해 사상적·실천적 대화를 시도한 백영서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백영서 「중화제국론의 동아시아적 의미: 비판적 중국연구의 모색」,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창비 2013. ↩
-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다시 보는 ‘새로운 보편’」, 최원식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 창비 2015, 381면. ↩
- 왕후이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 최정섭 옮김, 『황해문화』 2011년 여름호. ↩
- 백승욱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창비 2008, 322면. ↩
- 허 자오톈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 임우경 옮김, 창비 2018. ↩
- 이 논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남석 「중국의 신자유주의 논쟁과 그 함의: 푼응아이와 딕로의 논쟁을 중심으로」(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사업단 제11회 국내학술회의 발표문, 2018) 참고. ↩
- 후이 보겅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홍콩사회에서 ‘우산운동’을 사고한다」, 『창작과비평』 2015년 봄호 396~97면. ↩
- 신냉전적 상황에 기반한 동아시아 지역 갈등은 중국이 2017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반대로 무역보복을 단행한 것이나, 최근 일본이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수출규제를 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안보와 경제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
-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찾는 동아시아 공생의 길」,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18면. ↩
- 장정아 ‘이 폐허를 응시하라’: 홍콩 우산혁명과 그 이후의 갈등이 드러낸 것」, 『황해문화』 2016년 가을호 71면. ↩
- 웬디 브라운 「“오늘날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다……”」, 조르주 아감벤 외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김상운 외 옮김, 난장 2010, 88~99면. ↩
- 왕후이, 앞의 글. ↩
- 김동춘 「냉전, 반공주의 질서와 한국의 전쟁정치: 국가폭력의 행사와 법치의 한계」, 『경제와사회』 89호 2011, 357~61면. ↩
- 덩 샤오핑의 노선을 계승한 전 국가주석이자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 쩌민은 2000년 2월 ‘삼개대표론’을 제시했는데, 이는 당이 중국 선진 생산력의 발전요구, 중국 선진문화의 전진방향, 중국의 가장 폭넓은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하기만 하면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2001년 7월 장 쩌민은 7·1강화에서 사영기업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그 함의를 분명히 했다. 즉 사영기업의 발전을 독려하기 위해 사영기업가의 입당을 허용해야 하는데, 이들 사영기업가야말로 선진 생산력을 대표한다는 식의 논지를 성립시킨 것이다. ↩
- 전리군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전2권), 연광석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