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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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 2019

폐허의 천사

 

 

이경진 李京眞

서울대 독문과 교수 hanabi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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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종전 직후 초토화된 독일의 풍경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형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폐허의 천사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일명 드레스덴의 ‘천사’로, 독일의 사진작가 리하르트 페터(Richard Peter)가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에서 가까스로 파괴를 면한 시청사탑 위의 석조상 ‘보니타스’(Bonitas)를 폐허와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본래 ‘보니타스’는 ‘자비’를 의인화한 인물상이지만, 그 조각상이 거대한 폐허로 변해버린 드레스덴 시가지를 홀로 내려다보는 처연한 뒷모습이 마치 세계의 종말을 굽어보는 천사를 연상케 하여 이런 별칭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에서 우측 전면에 위치한 천사는 보는 사람을 반 이상 등지고 서서 왼팔을 살짝 앞으로 우아하게 뻗고 있는데, 마치 우리에게 눈앞의 풍경을 보라고 청하는 듯하다. 거기에는 굳이 천사의 손끝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사진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초현실적인 파국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은 전소되어 앙상한 골조만이 남아 있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드레스덴의 천사에서 벤야민(W. Benjamin)의 그 유명한 ‘역사의 천사’가 떠오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차대전 발발 직전에 벤야민이 구상한 역사의 천사 역시 묵시록적인 광경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의 천사는 파국의 현장에 남아서 구원의 본분을 다하고 싶지만 ‘진보’라 불리는 거센 폭풍이 날개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고 미래를 향해 막무가내로 떠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드레스덴의 천사는 그런 파괴의 한복판에서 절박한 이미지로 박제되어버린 역사의 천사 이후를 보여준다. 결국 막을 수 없었던 파국 속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은 학살당하고 수천만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년간 쌓아올린 문명의 금자탑은 무로 돌아갔다. 역사의 천사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구원의 빛은 스러지지 않았을까? 아니, 이제 구원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우리는 드레스덴의 천사 이미지 외에도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Der Engel schwieg, 임홍배 옮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전 직후 집필된 뵐의 소설은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8일에 시작한다. 여전히 폭격의 잔불이 타오르고 있는 도시의 폐허에서 소설의 주인공 한스가 “처음 마주친 얼굴”은 도시가 무너져 내리면서 떨어진 분진을 허옇게 뒤집어쓴 천사의 그것이다. “천사의 얼굴은 부드럽고도 고통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굴과 머리는 우중충한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앞을 보지 못하는 두 눈의 동공에는 거뭇한 먼짓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8면) 독일 패망 직전 탈영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스는 곰페르츠라는 군법무관 서기가 그를 대신해 죽음을 자처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다른 군인들보다 조금 일찍 고향 쾰른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생명을 빚진 곰페르츠의 부고를 그의 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부인이 입원해 있던 빈센트 수도회 병원을 찾아가는데—소설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전화로 쑥대밭이 된 병원의 입구 계단을 오르다가 순간 인기척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 천사상이었다. 그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사상의 먼지를 털어내보는데, 그럴수록 실망스럽게도 천사상의 미소는 생기를 잃어간다.

이 소설은 이른바 전후 독일의 폐허문학(Trümmerliteratur)을 대표하는 작가 하인리히 뵐의 강령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뵐은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 되돌아온 고향에서 발견한 것”, 즉 연합군의 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패망한 고국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이 작품을 썼다. 그런데 이러한 핍진성 탓인지 당시 출판사에서 “독자들이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책에 무조건 질색”한다며 출간을 만류하였고, 소설은 결국 작가의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다.(「작품해설」 224면) 하지만 역자가 해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설이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후 황량한 돌무지로 되돌아간 도시, 그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궁핍과 기아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당시 독일 독자들이 집단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던 듯하다. 실제로 전후 독일문학의 무능에 대해 뼈아픈 비판을 가했던 제발트(W. G. Sebald)는 뵐의 이 소설만이 “당시 폐허에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본 모두를 사로잡았던 그 경악의 깊이에 근접하는 표상을 전달해 준다”(W. G. 제발트 『공중전과 문학』, 이경진 옮김, 문학동네 2018, 22면)고 상찬했다. 그는 대다수의 독일 전후문학 작가들이 2차대전 막바지에 독일이 겪은 공중전의 참상을 다루려 하지 않았고 다뤘다 하더라도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뵐의 이 작품만은 희귀한 예외로 인정한 것이다.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조국은 전후 독일인들에게 수치스러운 현실이었고, 이런 현실을 환기하는 작업은 재건의 의지를 불태워야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위험하고 불온한 선동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발트는 뵐의 이 소설이 “가망 없는 우울”에 젖어 있는, 그 당시에는 읽혀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작품이었으리라고 투찰한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죽은 목숨이었던 한스가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새로운 삶의 의지와 희망을 얻게 된다는 표면적인 줄거리를 우울 속으로 가라앉히는 모티프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중에서 앞서 이야기한 천사의 모티프를 살펴보면, 뵐의 천사는 앞의 드레스덴의 천사나 벤야민의 천사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절망적인 시대상을 보여준다. 한스가 마주한 천사는 내려앉은 도시와 함께 먼지에 뒤덮여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다. 적어도 다른 천사들은 눈앞의 파국을 똑똑히 지켜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천사는 그 파국 속에서 이미 죽음을 맞이한 듯하다. 백합 한송이를 들고, 귀한 생명의 잉태를 고지하던 천사는 이제 사신도 아니요, 그저 시신처럼 무력할 뿐이다. 또한 소설에서 살아 있는 ‘천사’라 할 수 있는 곰페르츠 부인도 제발트의 해석에 따르면 불치의 우울증을 뜻하는 까만 피를 토해내더니 결국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곰페르츠 부인은 나치 시대에 사업을 크게 번창시킨 집안에 반기를 든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탐욕에 눈이 먼 시아버지로부터 남편의 재산을 지켜 자선활동에 가치있게 쓰려고 한다. 하지만 나치와 손잡은 타락한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인 피셔 박사의 협박과 방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채, 결국 오랜 지병으로 죽어버리고 만다. 이런 곰페르츠 부인의 최후를 상징하듯 그녀의 장례식이 열리는 성당 묘지에서도 천사상은 무력하게 쓰러져 있다. 아니, 수난을 당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천사상은 말이 없었다. 천사상의 옆얼굴은 검은 진창에 처박혀 보이지 않았다. 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뒷머리 부분의 평평하고 경사진 단면은 뭔가로 내리쳐진 느낌을 주었”다.(216면) 상황을 한층 더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이다. 장례식에 참석한 곰페르츠 부인의 시아버지와 피셔 박사는 진창에 신발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천사상을 서슴없이 밟고 선다. 그러자 천사상은 두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꺼져갔다. “대리석 천사상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천사의 동그란 뺨은 무른 땅바닥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고, 말짱하던 귀도 서서히 축축한 진흙에 잠겼다……”(219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뵐은 이 소설에서도 나치정권에 협력한 가톨릭교회의 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어떤 희망을 남겨두고는 있는가? “천사는 말이 없었다”—이 문장은 소설의 마지막 장, 장례식 장면에서 여러번 반복된다. 가톨릭이 설파하는 인간성, 자비와 선량함을 수호하는 천사는 불의의 상황 앞에서 그저 무력하고 또 무력할 뿐이다. 혹은 가톨릭에 대한 뵐의 비판을 생각하면 천사의 침묵은 파국에 대한 침묵, 방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모두 절망적인 상황이다. 드레스덴의 천사의 몸짓에서는 눈앞의 파국을 막지 못한 자의 안타까움이나,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너희 인간들이 믿었던 진보의 귀결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가리켜 보이는 준엄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뵐의 천사는 눈이 멀고, 말을 하지 못하며, 죽음의 미소를 지은 채 차갑게 굳어서, 종내는 진창에 처박히는 것이다.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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