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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류진 張琉珍

1986년생.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이 있음.

jace.ryujin@gmail.com

 

 

연수

 

 

출발지에 집 주소, 목적지에는 출근지의 주소를 검색해 넣었다. 그리고 자동차 길 찾기 버튼을 눌렀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우회전 두번 바로 좌회전 한번.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직진. 계속 직진. 사거리에서 크게 좌회전. 그리고 직진 또 계속 직진. 그렇게 얼마간 가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했다. 큰길까지 나가는 작은 길들을 제외하면 크게 둥근 ‘ㄱ’ 자 모양의 길이었다. ㄱ 자의 가로획을 달리는 데 십분, 세로획을 달리는 데 십분. 합해서 이십분의 거리. 출퇴근이 차로 이십분 걸린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부러워했다. 이번엔 자동주행 버튼을 눌렀다. 액정 화면 속에 출근길 도로가 일인칭 시점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화면을 눈으로 좇으면서 쥐고 있던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견고하게 양각된 로고를 엄지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매만졌다. 신형 A5 스포트백.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페이스, 날렵하게 빠진 뒤태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 차를 타고 이제 출근만 하면 되는데.

나는 운전을 못한다. 잘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못한다. 기능시험에 두번 낙방, 도로주행 세번 낙방 후 네번째에 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마저도 구년 전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중 한번은 사고를 냈다. 예의 그 샛노란 차를 타고서. 조수석에는 감독관이, 뒷좌석에는 다음 응시자가 타고 있었고 나는 핸들에 바짝 붙어 앉은 채로 그저 차선만 따라 달리던 중이었다. 그러다 별로 크지도 않은 사거리를 지나던 때에, 길과 길이 교차해 차선이 잠시 끊어졌다 이어지는 그 짧은 찰나, 내가 달리고 있던 차선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헷갈려 어어, 어어, 하다 앞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충돌의 순간, 감독관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뒤에 타고 있던 응시자는 몸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바람에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쿵, 뒤이어 반사적인 비명.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뒷범퍼의 오른쪽 귀퉁이가 옴폭 들어간 SUV에서 운전자를 포함한 4인 가족이 뒷목을 잡고 줄줄이 내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주연씨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단순히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저지른 일을 똑바로 마주하라는 듯 책망과 비난이 가득했던 그 목소리. 이후에도 그 힐난조의 목소리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한동안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운전은 내게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 살면서 마주해온 여러 관문들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통과해왔다. 지역 명문고교 입시에 합격했고, 원하던 대학에 한번에 입학했고, 장학금을 받았고, CPA도—물론 공부하는 동안은 힘들고 어렵고 외로웠지만—삼년간의 공부 끝에 합격했다. 빅펌 네군데 중 맘에 드는 두군데에 원서를 썼고, 모두 최종 합격했으며, 그중 초봉이 더 높은 곳을 골라 입사했다. 스물다섯살 때의 일이었다. 무언가 해내고 싶은 마음,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모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까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는.

 

*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신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앞으로 최소 삼개월 이상 출근해야 하는 클라이언트의 오피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교통편이 애매했다. 버스로는 아홉 정거장일 뿐이었지만 타러 나갈 때, 그리고 내리고 나서 걷는 시간만 이십분이 넘었다. 같은 길을 차로 이동하면 도어 투 도어로 이십오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사내 홍보 게시판에 올라온 수입차 프로모션 행사, 때마침 눈여겨봐오던 신규 모델, 때마침 나온 상반기 인센티브…… 나는 덜컥 계약서에 사인해버리고 말았다.

출고일을 알리는 딜러의 전화를 받은 날, 포털사이트에 ‘운전 연수’를 검색했다. 결과를 최신순으로 정렬해두고 제목을 살폈다. 대부분 업체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의 광고성 글이었는데, 우리 동네 맘카페가 출처인 글을 하나 발견하고 곧장 클릭했다. 연수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추천한다는 본문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에는 강사의 연락처를 문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각각의 댓글에는 원글의 작성자인 ‘준서맘’이 일일이 비밀댓글을 달아두었다. 가장 최근 작성된 댓글은 바로 어제 달린 것이었는데, ‘10년 장롱면허 청산했어요. 정말 잘 가르치세요!’였다. 왠지 신뢰가 가서 문의해보려 했지만 카페 회원이 아닌 사람은 댓글을 달 수도, 쪽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나는 우선 카페에 가입했고 정회원 승급 조건을 맞추기 위해 가입인사를 쓰고 틈틈이 이런저런 글에 댓글을 달았다.

내 닉네임은 ‘주연맘’이었다. 그냥 내 이름 뒤에 ‘맘’만 갖다 붙인 것으로, 어차피 등급만 조정되면 따로 활동은 하지 않고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만 얻어 갈 생각이었다. ‘진짜 주연맘’과는 냉전 중이었다. 몇년 전부터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면서 들볶이는 일에 지쳐 있었고, 문제의 그날 역시 오늘도 한 소리 듣겠구나 하는 마음에 고속버스 안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잔뜩 차려둔 밥상 위로 내민 건 이미 가입이 완료된 수백만원짜리 결혼정보회사의 서류였다. 위태롭게 이어져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서류를 한 손으로 구겨 쥐고 있었다.

“왜 그래? 왜 쓸데없는 짓을 해? 그리고, 이게 대체 얼마짜리야? 돈이 그렇게 많아? 이런 데 쓸 돈 있으면 엄마 옷이나 좀 사 입든지!”

내가 결국은 서류를 바닥에 내던졌을 때도, 엄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걸 다시 주워 올렸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니. 비싼 과외를 시켜줘봤니, 해외연수를 보내줘봤니…… 주연아, 너는 내가 따로 신경 못 써도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왔잖아. 그게 얼마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는지 아니?”

엄마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내오면서 말했다.

“네가 여태까지 다른 건 알아서 다 잘해왔으니까, 이건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너 결혼만큼은, 내가 꼭 시켜주고 싶어.”

또 시작된 엄마의 요지경 화법. 마치 내가 갖고 싶어했지만 끝내 가지지 못한 결핍을 자신의 큰 결심으로 채워주겠다는 뉘앙스. 문제는 내가 비혼주의자이며, 엄마에게도 그 사실을 이미 여러번 말했다는 사실이었다.

“왜 또 거룩한 척하면서 나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야? 내가 결혼 생각 없다고, 결혼 안 할 거라고,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건, 엄마가 해줄게.”

또 못 들은 척.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엄마의 청력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결혼 안 하겠다는 말만은 필터라도 걸어놓은 듯 튕겨냈다. 나는 먹던 밥숟가락을 식탁 위에 딱 소리 나게 내려놓고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그날 이후로는 서로 전화 한통 오가지 않았다. 벌써 두달째. 냉장고의 밑반찬들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안내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카페에 가입한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정회원으로 승급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나는 글 작성자에게 쪽지로 강사의 연락처를 물었고, 전화번호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준서맘 소개로 왔다 그러면 잘해줄 거라길래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고 카페를 괜히 한번 둘러보고 있는데 전체 글 목록에 새 글이 떴다. ‘사고팔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무심결에 클릭해보니 자동차 캐릭터가 그려진 손바닥만 한 삼각팬티 열장을 다섯장씩 두줄로 나란하게 펼쳐놓은 사진 한장과 그 각각의 팬티를 하나씩 찍어 올린 사진 열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개당 천원이고 열개 다 하시면 팔천원에 드려요. 기저귀를 막 뗀 30개월 무렵의 아이가 입으면 딱 좋다는 말과 함께 전부 깨끗이 빨아서 다려놨다는 부연설명이 적혀 있었다.

카페에서 육아용품들이 거래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입던 팬티까지 사고파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입던 팬티를 천원 주고 사는 삶과 입던 팬티를 팔아서 천원을 버는 삶, 둘 다 생경하게 여겨졌다. 예전에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커뮤니티의 글에서 남편의 팬티를 빨 때마다 미세하게 똥이 조금씩 묻어 있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푸념을 본 적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공감한다는 댓글들을 보고 한번 더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기혼의 삶을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끝을 알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디테일을 하나도 모른 채로 누군가와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 생각만 하면 그지없이 아찔했다. 안쪽에 똥이 묻어 있는 성인 남자의 후줄근한 트렁크 팬티를 상상하자 참혹함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재빨리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브라우저를 닫았다. 남아 팬티 한개 천원 열개 팔천원의 세계로부터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내 팬티만 빨면 돼. 그건 팬티 한장만큼 가벼운 일이었다.

카페에서 받은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자 메신저에 자동으로 새 계정이 떴다. 프로필을 눌렀더니 새하얀 테니스 원피스를 입은 웬 까무잡잡한 여자애 사진이 나왔다.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은 채로, 초록색 라켓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공을 쳐내기 직전의 순간을 찍은 것 같았다. 상태 메시지는 ‘한국의 샤라포바’였다. 나는 ‘운전 연수해주시는 분 맞나요? 준서맘 소개로 연락드립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곧바로 이렇게 답이 왔다.

 

(아래 서식 작성 요망)

이름:

주소:

나이:

혈액형:

차종:

면허취득 시기:

원하는 연수 날짜 :

 

순식간에 답이 온 것으로 보아서는 새로 입력한 게 아니라 어딘가 저장해둔 걸 복사해서 보낸 것 같았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구나, 하는 안도도 잠시. 혈액형은 대체 왜 필요한가 싶어 의아해졌다. 혹시 연수 중에 교통사고가 날까봐 그런가? 수혈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그게 아니고서야 운전연수에 혈액형이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우선 서식을 채워 보낸 뒤에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이번에도 바로 답장이 왔다.

기본 하루 두시간 반씩 다섯시간 기준 12만원 열시간 22만원입니다.

잠시 고민하다 답을 보냈다.

일단 다섯시간 먼저 해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 십만원 추가해서 열시간으로 바꿔도 될까요?

이번에는 한참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원래 안 되는데 준서 엄마 소개로 오셨다니 해드릴게요.

어디 소속되어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원래 안 되는 건 또 뭘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아까 말한 요금은 강사 차 기준이고 자차연수는 만원 추가되세요.

네, 하고 답장해놓고 나서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자차로 하는 게 더 저렴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름값이 안 드는데 왜 만원 더 비싼 거지? 연수용 강사 차에는 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달려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교통사고 위험부담 차원의 금액인가…… 내 차로 하면 그런 보조 브레이크도 없고…… 사고 날 확률이 더 높으니까…… 아, 교통사고 생각은 제발 그만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자꾸 운전만 떠올리면 생각이 교통사고 쪽으로 질주했다. 자차연수의 추가 요금이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는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런 질문으로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기는 싫었다. 어쨌든 이 사람과 최소 다섯시간은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했고, 되도록 분위기 좋게 가는 게 나았다. 만원이 뭐라고. 나에게도 천원, 이천원 하던 고시생 시절이 있었다. 만원, 이만원 하던 사회초년생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빅펌의 구년 차 회계사, 시니어 매니저였고 작은 돈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강사의 메시지가 또다시 도착했다.

바닥 얇은 컨버스, 벤시몽, 플랫슈즈류 착용. 개인 물 준비.

대체 어떤 사람일까. 뭔가 어설픈 와중에 또 묘하게 프로다운 구석이 있었다.

 

*

 

얇은 은테 안경을 쓴, 작달막한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조수석 쪽의 창문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나는 눈인사를 하면서 얼른 버튼을 눌러 창문을 열었다. 창문이 미처 다 내려가기도 전에 머리통이 먼저 쑥 하고 들어왔다.

“연수받으실 분 맞죠?”

“예, 안녕하세요.”

차 문을 열고 들어와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들고 있던 락앤락 보온병을 컵홀더에 꽂아 넣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왼쪽 겨드랑이에 웬 짤따란 막대기를 끼운 채였다. 반짝이는 금속 재질로, 당연히 금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색은 금색이었다. 그걸 쭉쭉쭉, 연속해서 잡아빼자 짤막했던 봉이 골프채만큼 길게 늘어났다.

“잠시 작업 좀 할게요.”

그녀가 갑자기 내가 앉은 운전석 아래쪽으로 허리를 굽혀 머리를 집어넣는 바람에 깜짝 놀라 다리를 오므렸다. 브레이크와 의문의 금색 봉을 한데 묶어 연결하려는 것 같았다. 앞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그녀의 뒤통수 쪽은 흰머리가 잔뜩이었다. 한참을 엎드려서 달그락거리던 그녀가 다시 허리를 곧추세워 앉았다. 피가 쏠려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알고 보니 이 금색 막대기는 ‘연수봉’이라는 것으로, 연수 도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대신 눌러줄 수 있게끔 제작된 것이라고, 그녀가 빨개진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면서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 전날 밤부터 내내 나를 좀먹고 있던 두려움이 옅어지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대뜸 말했다.

“스티커, 저거 가지고는 안 돼요.”

“네?”

“초보운전 스티커 말이에요. 보이지도 않는 걸 붙여놨더구만.”

“아, 네……”

왜인지는 몰라도 초보운전 스티커는 하나같이 조악했다. 그렇다고 안 붙일 수도 없고, 새 차에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스티커를 붙이기는 싫어서 바쁜 와중에도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뒤져서 겨우 찾은 스티커였다. 각진 정방형의 테두리 안에 영문 대문자로 ‘NEW DRIVER’라고만 적혀 있는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크기도 다른 스티커들에 비해 작았지만, 제 기능은 충분히 할 법하다고 여겼다.

“내일은 A4용지에 초, 보,라고 한글로 크게 인쇄해 오세요. 궁서체로.”

초반부터 혼나는 분위기라 어쩐지 주눅이 들었다. 도로에 나가면 혼날 일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어쩌지, 싶어 걱정하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수업이 시작됐다.

“자, 브레이크 한번 밟아보세요.”

시키는 대로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녀가 연이어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엑셀 한번 밟아볼게요”, “왼쪽 깜빡이 한번 켜볼게요”, “이제 오른쪽 깜빡이……”

“저기, 선생님.”

강사님이라고 하려 했는데, 회사에서 동료를 부르는 호칭이 ‘선생님’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선생님’ 소리가 나와버렸다.

“저 그 정도로 초보는 아니에요. 예전에도 연수받아본 적 있거든요.”

“근데 왜 또 받아요?”

그러게. 나는 왜 또 연수를 받고 있을까.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게…… 옆에 사람 태우고 연습은 꽤 해봤는데요, 혼자 나가려고만 하면 심장 떨려서 못하겠어요. 꼭 사고 날 것만 같고.”

나는 그동안 분석한 나의 문제점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나는 운전하는 법은 아는 것 같다. 어떻게 하는지는 다 안다, 아는데, 아무래도 겁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 같다. 선생님이랑 같이 도로에 나가서 실전 경험을 쌓고 운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싶다. 우선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위주로 연습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당장 출퇴근이 제일 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말을 중간에 자르더니 코스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시동부터 걸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좀 상한 채로 시동 버튼을 눌렀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그녀가 가르쳐주었고, 나는 그제야 제대로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자, 출발.”

브레이크에서 떼어낸 발을 엑셀로 옮겨 밟았다. 차가 나가기 시작했다.

“어허, 그렇게 콱콱 밟지 말고 지그시 눌러야지. 그치, 그렇게.”

근데 왜 반말을 하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백미러를 조정하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말이 좀 짧을 수 있어요.”

도로연수를 하다보면 정신이 없으니까 ‘요’자를 붙일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탐탁지는 않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얌전히 네, 하고 대답하자 그녀가 처음으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내 눈에 초보들은 다 아기 같단 말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그것도 갓 태어난 갓난아기.”

 

새벽 여섯시의 도로는 한산했다.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가거나 멈추거나, 우회전하거나 좌회전하거나, 차선을 바꿨다.

사이드미러의 각도는 지평선이 아래위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게끔 조정. 절대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오래 두지 말 것. 딱 일초만 볼 것. 이초까지는 허용. 힐끗, 봤을 때 뒤차의 차체가 지붕부터 바퀴까지 온전히 다 보인다면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다는 뜻. 그때 엑셀을 세게 밟아 속도를 높이면서 핸들을 슥 꺾어 들어가면 차선 변경 끝.

깐깐하다는 맘카페에서 소문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썩 친절하지는 않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는 스타일이었고 상황에 맞는 공식을 알려주면서 가르쳐 기억하기가 편했다. 조수석에서 때마다 적절히 눌러주는 금색 연수봉의 도움을 받아 어느새 차선 바꾸기를 스무번쯤 성공하고 큰 사거리에서의 좌회전, 유턴에 이어 과속방지턱을 부드럽게 넘는 것까지 성공했을 때, 그녀가 물었다.

“근데, 수업을 이렇게 일찍 해서 어떡해. 남편은 굶고 출근했나?”

“남편이요?”

“여기는 밥 안 차려줘도 돼?”

“저 결혼 안 했는데요.”

했어도 안 차려줄 건데요, 저도 바빠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한테 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상상만 해도 진이 빠졌다. 무엇보다 지금은 운전 중이었다. 내겐 너무나 낯선 이곳, 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온 정신이 운전에 쏠려 다른 쪽으로는 논리가 다 무력해진 느낌이었다.

“아가씨구나. 나이가 좀 있어서 결혼한 줄 알았지. 어쩐지 너무 아가씨 같더라 했어. 딱 보기엔 그냥 이십대 같네.”

그녀는 느닷없이 내 피부의 탄력성을 칭찬하더니, 뒤이어 내 결심을 높게 평가해주었다. ‘미리’ 연수를 받기로 마음먹은 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무슨 말인가 싶어 더 들어보니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 낳아보면 알겠지만 그때 차가 꼭 필요해질 거라는 말이었다. 둘째 임신하고 배불러서 뒤늦게 연수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만난 지 두시간밖에 안 됐는데 멋대로 내 자녀 계획까지 세우는 무례함에 초반에 가졌던 신뢰와 호감이 급격히 하락했다. 더 불만인 것은 오늘의 연수 시간이 한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출퇴근하려고 연수를 받는 것인데 계속 엉뚱한 길만 다니고 있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출퇴근길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좀 기다려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준다니까.”

주연씨는 평생 출퇴근만 할 거냐, 어떤 상황에서도 운전할 줄 알게 연습을 해두면 그건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말이 이어졌다. 오늘은 기본기를 다져놓고 내일 출퇴근길을 주행해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오늘 한시간과 내일 두시간 반, 총 세시간 반이었다. 내가 십년 가까이 못한 운전을 앞으로 세시간 더 연수받는다고 잘하게 될까. 결국 다섯시간 더 추가하게 하려고 일부러 내가 원하는 코스는 안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설명했다. 선생님이 여태까지 겪은 학생들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겁이 많아서 지금부터 빨리 출퇴근 코스를 연습해두어야 한다……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주연씨 겁 많은 거 아니에요.”

나는 황당해서 처음으로 전방에서 시선을 거두고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요?”

“겁 많은 사람이 어떻게 운전을 이렇게 해. 말이 안 돼.”

고개까지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겁이 많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엑셀을 콱콱, 밟고 핸들을 그렇게 홱홱, 돌리냐는 말이야. 진짜 겁 많은 사람은 그렇게 못해요.”

그녀가 틀렸다. 나는 겁나고 두려웠다. 그건 분명했다. 내가 누군가의 앞길을 막고 있을까봐 무서웠고, 꾸물거리다가 다른 차와 부딪칠까봐 무섭고 조급했다. 그러니 반사적인 동작이 바쁘고 성급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이렇게 기본기만 연습하다가는 절대 자차로 출퇴근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말없이 굳은 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그녀는 내가 원하던 출퇴근 코스를 왕복해보는 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오피스 주소를 입력하고 다시 출발했다.

“선생님, 이따가 좌회전인데요, 지금부터 왼쪽으로 붙어야겠죠?”

“네. 슬슬 잘 보고 옮기세요.”

그녀가 알려준 대로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사이드미러를 일초, 힐끔 보고, 뒤차가 지붕부터 바퀴까지 온전히 보이는 것을 확인한 뒤, 핸들을 꺾어 좌측 차선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조수석에서 귀를 파고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동시에 뒤차가 날카롭게 경적을 울려대며 옆 차선으로 스쳐 지나갔다. 빠앙— 하는 소리가 끊이지도 않고 한참이나 강도 높게 이어졌다. 마치 나에게 시위하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리 질렀다.

“주연씨! 내가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하지 말랬지!”

나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저, 아직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이드미러 보고 바퀴까지 다 보여서 차선 바꿨는데.”

“아이고. 여기는 자동차전용도로잖아요.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로 차가 쌩, 쌩, 달리는 데란 말이야. 차가 다가오는 속도도 고려해야지!”

그건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 나는 억울한 마음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차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뒤, 택시를 불러 출근했다. 일하는 내내 새벽의 연수가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두시간 반 동안 많이 극복한 줄 알았는데 마지막 미꾸라지 사건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구년 전 면허학원에 처음 등록했을 때, 그 시절 그대로.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었다.

운전면허학원의 바랜 개나리색 차, 그 구질구질한 시트에 앉기만 하면 나는 처음 겪는 세계에 홀로 내던져진 아이처럼 초조해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상식적인 생활감각이 강제로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엑셀을 너무 밟거나 덜 밟았고, 비상등과 깜빡이 켜는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후방주차를 하겠다고 핸들을 바쁘게 돌리면서 후진과 전진을 반복했지만 결국 똑같은 궤적만 몇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기어를 R에 놓는 순간부터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서 그랬다. 나는 머릿속에 차의 이미지를 반전시켰다가 다시 반전시키기를 반복하다 어느 게 원본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엑셀을 또, 지나치게 세게 밟고, 주차선 뒤편 화단에 한쪽 뒷바퀴를 걸친 채로 강사한테 혼이 났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학원 전체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런 주제에 도로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운전대를 잡은 나, 그러니까 엑셀과 브레이크를 순간 헷갈리거나, 깜빡이를 깜빡한 채로 차선을 바꾸거나, 좌회전하면서 중앙선 왼쪽으로 진입해 역주행하는 나 때문에 약속된 도로의 질서가 망가지고, 모든 게 박살 날 것만 같았다. 어렵게 면허증을 손에 쥔 뒤에 몇번은 도로에 나가봤지만 동승자 없이 운전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핸들만 잡으면 늘 사고와 충돌, 그로 인한 교통 혹은 신체의 마비, 죽음에 대해 떠올렸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제 혼자 운전을 해봐야겠다는 결심보다는,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만 들었다.

그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아찔한 순간들이 반복 재생되었다.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미꾸라지처럼, 하지 말랬지, 자동차전용도로잖아, 차들이 쌩, 쌩, 차들이 쌩, 쌩, 차들이 쌩, 쌩, 쌩, 쌩……

어둠 속에서 모로 누운 채로 휴대폰을 켜고 ‘운전공포증’을 검색했다. 그중 ‘운전공포증 극복하기’라는 제목의 웹 문서를 눌러 들어갔다. 첫번째 챕터인 ‘긴장 완화 연습하기’를 훑었다.

먼저 차내에 좋아하는 것을 놓기. 좋아하는 인형, 좋아하는 향수,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놓는다. 다음은 복식 호흡하기.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셔 공기가 폐의 아래쪽까지 들어차게 한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들이마셨다가 숨을 삼초간 참는다. 열부터 거꾸로 세며 서서히 숨을 내쉰다. 똑같은 호흡을 열번 반복한다……

두번째 챕터는 ‘긍정적인 확언 하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전운행 중이며 과속하지 않는다. 운전은 매일의 일상적인 일이다. 나는 이 일에 참여한 주의 깊고 조심성 밝은 운전자다. 반드시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다른 차보다 느리게 가기 위한 오른쪽 차선이 준비되어 있다. 잘못된 길로 들어왔더라도 위험하게 차선을 옮길 필요는 없다. 분기점을 지나쳤다면 안전하게 우회하면 된다. 불편감을 느끼면 언제든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공포감을 통제할 수 있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단체에 언제든 가입할 수 있다…… ‘긍정적인 확언 하기’ 챕터는 이렇게 끝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운전처럼 누구나 다 하는 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자 도저히 못할 것 같던 마음이 정말로 옅어지는 것 같았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다시 검색창으로 돌아와 결국은 ‘교통사고’를 검색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매일 다양한 이유로 도로에서 죽고 있었다. 나는, 이제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죽고 싶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죽음을 떠올리면 왜 하필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 내 마음에 든 지 고작 이삼년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안 돼. 이제 와서 죽기는 싫어. 그 순간 누군가가 “주연아, 운전 같은 거 정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됐다, 됐어.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를 마”라고 비난조로 말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

 

다음 날 만난 그녀의 손에 하얀 종이 한장이 들려 있었다. 폰트의 크기를 하나만 더 올렸어도 ‘초’만 남고 ‘보’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겠구나, 싶을 정도로 꽉 찬 궁서체로 ‘초보’라고 적힌 A4용지였다. 글씨가 너무 커서 아연해졌다. 그녀가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왜요, 주연씨. 창피해요?”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닌데……”

“비싼 외제차에 이런 거 붙이기 싫지?”

응, 붙이기 싫다. 그녀가 내 속을 읽었는지 눈을 흘겼다.

“무슨 무슨 아우디가 주연씨 지켜주는 줄 알아요?”

그녀가 이어 말했다.

“이게 주연씨 지켜주는 거야.”

그러면서 손에 들린 A4용지를 팔락팔락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흔들었다.

 

‘초보운전’도 아닌 그냥 ‘초보’. 그 두 글자의 힘인지 정말 도로가 한결 친절해진 느낌이었다. 실수하거나 꾸물거려도 경적이 전날만큼은 울리지 않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거 붙이니까 정말 빵빵거리지 않네요.”

“그치? 근데 그건 주연씨가 어제보다 오늘 더 낫기 때문인 것도 좀 있어요.”

칭찬까지 받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으로 출근길 코스를 무리 없이 성공했다. 그녀가 우쭐대듯 말했다.

“거봐요. 어제 기본기 연습해두면 출근길은 아무것도 아니랬지?”

이번에는 주차 연습을 하기 위해 오피스의 지하주차장 진입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시 그녀의 금색 봉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살살 좀 밟아”, “어허허, 왼쪽 너무 붙었다”, “아니지, 오른쪽으로 너무 붙었다”, “방향 잡히면 그대로 쭉 가라고. 핸들 많이 돌릴 필요 없어요.”

머리로는 분명 이해했는데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양쪽 벽에 부딪힐 위기를 몇번이나 넘기며 한참을 빙글빙글 돌다보니 속까지 메스꺼워졌다. 지하 오층에 도착하자 그녀가 투덜거렸다.

“여기는 주차장 들어가는 길이 너무 좁네. 별로다 별로.”

차가 한대도 없는 새벽의 지하주차장에서 좌측 후방주차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역시 공식과 함께였다.

주차하려는 칸의 바깥 선과 어깨선이 직각으로 닿는 상태에서 시작. 핸들을 우측으로 끝까지 돌리고 전진. 사이드미러를 보고 뒷바퀴가 주차선의 사분의 일을 밟을 때 스톱. 기어를 R로 바꾸고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끝까지 돌리고 후진. 기어가 R일 때 핸들 방향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 처음엔 누구나 헷갈림. 안 헷갈리는 사람이 이상한 거임. 그럴 때는 자동차의 궁둥이를 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쉬움. 마무리는 방지턱에 궁둥이가 걸릴 때까지 천천히 후진하다 단정하게 정차하면 끝.

공식대로 하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이어서 우측 후방주차, 전방주차, 일렬주차에 차례로 성공했다. 그녀가 말했다.

“잘하는데? 주차는 더 안 해도 되겠어요. 내가 문자 보내줄 테니까 이대로만 하면 돼.”

휴대폰을 꺼낸 그녀가 메모장 앱을 켜더니 장문의 글을 전체복사해서 나에게 전송했다. 그녀의 주차 비법이 짧은 진동음과 함께 순식간에 내 주머니 속에 도착했다.

그녀는 새 코스를 제안했다. 이 건물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좁기 때문에 좁은 길에서 완급조절하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면서, 멀지 많은 곳에 자기가 잘 아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있는데 연습하기에 제격이라고 했다. 그 좁고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서너번만 왔다 갔다 하면 이 주차장쯤이야 아주 쉽게 다닐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때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연씨, 배고픈가보네.”

“네, 아침을 못 먹어서.”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선생님은 남편 아침밥 차려주고 나오시나요?”

“아니?”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녀가 여전히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버럭 소리쳤다.

“무슨 아침밥 같은 소릴 하고 있어! 내가 이 새벽에 일하러 나오는데 밥을 어떻게 차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무언가를 사 먹기로 합의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었지만 걸어서 오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는 것을 운전하는 중에 눈여겨봐두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편의점까지 걸으면서, 나는 그녀의 체구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앉아 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았는데, 차에서 나와 걸으니 깜짝 놀랄 정도로 작았다. 발걸음 역시 굉장히 느리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아침인데도 햇살이 제법 강해서 빨리 시원한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싶던 차에, 그녀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아이, 주연씨! 좀 천천히 가. 발걸음이 왜 이렇게 빨라?”

“제가 그런가요?”

나는 내가 빠른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느리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바삐 걸으며 말했다.

“주연씨는 성격이 참 급해.” 그리고 이어 말했다. “O형이라 그래.”

“네?”

“우리 막내딸도 O형이거든. 승부욕도 강하고, 성격이 아주 급해.”

그제야 나는 그녀가 연수 전에 혈액형을 물어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말 혈액형으로 성격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지금 혈액형 믿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했죠?”

“아니요?”

“혹시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나도 믿는 건 아냐. 근데 또 이렇게 맞는 건 맞을 때가 있더라고. 신기하죠? 그래서 난 항상 학생들한테 물어봐. 미리 성격을 파악해두면 확실히 수업도 잘되더라고.”

그러면서 다시 한번 덧붙였다.

“믿는 건 아니지만.”

나는 혈액형 믿는 게 우습다고 생각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개를 더 크게 끄덕였다. 그렇게 주억거리다보니 어쩐지 그 말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O형이고, 성격이 급했다. 어쨌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의식적으로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그녀와 속도를 맞췄다. 우리는 촉촉한 카스텔라와 삼각뿔 모양의 커피우유를 하나씩 사서 다시 오피스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어제보다 맑은 날이었다. 반짝이는 오피스의 유리창에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비쳤다. 그녀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주연씨 되게 좋은 회사 다니네?”

이 건물은 내가 다니는 곳이 아니었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클라이언트의 오피스였다. 진짜 우리 법인의 본사 건물은 이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다.

“나쁘지 않은 회사죠.”

“주연씨 같은 여직원들도 많아요?”

잠시 고민했다. 사실 회계사는 남자가 많은 직업이다. 이번 프로젝트도 참여하는 다섯명 중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네.”

“오십대도 있어요?”

아까보다 더 더디게 발을 내디디며 헤아렸다. 오십대.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여자 선생님들 중에 오십대가 있었나? 오십대면 전무급인데, 우리 법인에 여자 전무는 한명도 없었다. 전무가 아닌 상무급을 생각해봤지만 오십대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당장 떠오른 한명도 오십대는 아니고 사십대였다. 정말, 정말로 단 한명도 없는 것일까. 내가 대답했다.

“있어요.”

“그래요?”

나는 마지막 남은 카스텔라 한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네, 되게 많아요.”

걷다보니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룸에 도착했다. 그녀가 몇시지?라고 혼잣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측면 버튼을 꾹 눌렀다. 액정 화면이 밝게 빛났다. 슬쩍 내려다보니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걸어둔 그 테니스 소녀의 사진이었다. 금세 불이 꺼졌다. 그녀가 버튼을 다시 눌렀다. 테니스 소녀가 또다시 나타나자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액정화면의 가운데를, 그러니까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은 까맣게 탄 소녀의 얼굴을 두어번 문지른 뒤에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려 그걸 안 본 척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다른 사진을 한장 그렸다. 테니스 소녀가 커다란 우승컵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트로피.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녀 혼자 들지는 못하고 한쪽만 받쳐 들고 있다. 다른 한쪽을 받쳐 든 사람은 선생님이다. 키가 작아서 우승컵이 그녀 쪽으로 한참 기울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테니스 소녀의 미소보다 더 크고 환하다. 아마 그 장면은 그녀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중년 여성을 알고 있다.

“내 오십 평생, 오늘이 가장 기쁜 순간이다.”

CPA 합격발표가 났을 때 엄마가 내게 한 말이었다. 그전에도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전교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마지막 남은 커피우유 한방울과 공기가 동시에 빨대를 통과하는 소리가 그녀와 내 입에서 후루룩, 났다. 이제 그녀가 말한 오솔길 코스를 연습해야 할 차례였다.

 

얼마간 그녀의 지시에 따라 가다보니 도로 양옆에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는 S 자 형태의 커브길이 나왔다. 핸들을 꽤 능숙하게 꺾으면서, 내가 물었다.

“여기가 아까 말씀하신 그 오솔길이죠?”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이게 무슨 오솔길이에요. 참나, 오솔길이 뭔지도 모르는구만.”

그러면서 한참을 웃다가 또 한번 새청 맞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주연씨. 여기는 꽃길이다, 꽃길!”

그녀가 말한 오솔길은 십오분 정도 더 달린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이 울창한 산로의 초입으로 들어서자, 조금 전 지나온 길은 꽃길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비포장도로, 말 그대로 흙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 이런 길이 있었나 싶었는데, 아마 와본 적이 있었어도 차가 다니는 길이라고는 상상 못했을 것 같았다. 자갈들이 타이어에 밟히는 소리가 자근자근 나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의 표면이 시트를 거쳐 내 엉덩이와 등에도 고스란히 감각되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보다 더 급한 커브길이 높고 또 낮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면 갈수록 더 깊고 우거진 숲이었다. 늦여름 아침 햇살이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들어와 눈앞에 반짝였고, 창문을 통과해 내 뺨에 닿았다. 나뭇잎이 드리워진 모양에 따라 한쪽 볼이 따뜻해졌다가 서늘해졌다가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자칫 벗어나면 언덕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전에 없이 편안했다. 나는 엑셀을 밟았다가 뗐다가, 핸들을 감았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오솔길을 내달렸다.

슬슬, 밟았다가, 슬슬, 뗐다가. 살살, 감았다가, 다시 살살, 풀었다가.

지켜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완급 조절을 좀 아는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우거진 숲길이 끊기면서 순식간에 시야가 탁 트였다. 동시에 오른편에 커다란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호수 너머 반대편까지 가려면 한참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넓고 고요한 수면 위에 찬란하게 부서졌다.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는데, 내리면서 조금 놀랐다. 주행 중에 핸들에서 손을 떼고 무언가를 조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엑셀을 밟은 발에도 살짝 더 힘을 줬다. 하늘과 구름, 연둣빛 잎사귀들을 머금은 호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운전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드라이브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전이 하고 싶어 핸들을 잡는 사람들의 마음을.

“선생님.”

“응?”

“이 길 너무 예뻐요.”

그녀가 흐흐, 웃더니 대답했다.

“예쁘죠?”

어느새 내가 멀다고 가늠했던 바로 그 반대편 지점까지 와 있었다. 무리 지은 오리떼가 호수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

 

“저, 다섯시간 추가할게요. 내일 그리고 내일모레까지요.”

오솔길 코스를 지나 다시 아파트 지하주차장까지 온 내가 말했다. 이틀 동안 네시간 반의 연수를 받고 나니, 이제 그녀가 유능한 강사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다섯시간을 더 연습하고 나면 그때는 정말 혼자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추가 수업을 반길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싫어요. 나 안 할 거야.”

“아니, 왜요?”

“주연씨는 이제 곧잘 해. 더 받을 필요가 없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좀더 하고 싶어요. 저 딱 다섯시간만 더 하고 나면 그땐 진짜로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유, 시끄러워. 잠깐 다리 좀 치워봐봐.”

그녀가 허리를 굽혀 운전석 브레이크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연수봉의 끝과 브레이크를 다시 달그락거리며 분해했다. 그녀의 뒤통수와 등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의아해졌다. 정말 수업 더 안 해주려고 하나? 뭘 믿고 내 실력을 이렇게 과대평가하는 거지? 무엇보다 오늘 수업이 아직 삼십분이나 더 남았는데? 다시 허리를 펴고 앉은 그녀가 금색 봉을 착착 접어 넣으면서 말했다.

“나야 수업 더 하면 좋지. 우리 딸 레슨비도 벌고.”

조수석의 햇빛 가리개를 내린 그녀가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면서 이어 말했다.

“근데, 언제까지 연수만 할 거예요? 결국은 혼자 다녀야 하는데.”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다섯시간을 추가하고 나서도 다섯시간이 지나면 또 다섯시간을 추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녀가 한쪽 옆머리를 동그랗게 빼 내리고 반대쪽 옆머리를 귀에 꽂아 넣었다.

“앞으로 남은 삼십분은 원격으로 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그녀를 바라보며 눈만 껌뻑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왜, 왜 내리는 거지? 그러면 차에는 나 혼자잖아. 조수석 문이 닫혔다. 너무 놀라서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진동이 길게 울렸다. 눈으로는 이미 조수석 밖에 서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손으로는 휴대폰을 찾으려 가방 속을 더듬거렸다. 그녀가 반쯤 열린 차창에 대고 자기 휴대폰을 흔들면서 말했다.

“내 전화예요. 받아서 스피커폰으로 켜놔. 아까 배운 대로 여기서 회사까지 주연씨 혼자 가는 거예요. 알겠지?”

내 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스피커폰으로 조언을 해주겠다는 거였다. 넓은 차 안에 홀로 남겨지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인형도, 좋아하는 향수도,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도 놓여 있지 않았다.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나는 숨을 억지로 크게 들이마신 다음 열부터 천천히 세면서 내뱉기 시작했다. 십, 구, 팔, 칠, 육…… 그때 뒤에서 작고 짧게 빵, 하는 경적이 울렸다. 백미러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구형 은색 아반떼가 약속한 대로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스피커폰으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보이죠? 출발하세요.”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조수석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그 사실에 너무 몰두하지 않게끔 그녀가 스피커폰으로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자, 사람 건너나 안 건너나 확인하시고. 우회전, 천천히, 그렇지.”

“다음에 좌회전해야 하니까 기회 될 때마다 일차선으로 바짝바짝 붙으세요. 그렇지.”

“우리 차선 지금 말고 다음번에 바꾸자. 이 까만 소나타 지나가면 그때 바꾸자 우리.”

애써 진정시킨 호흡을 비집고 불안이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백미러를 올려다봤다.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뒤에서 날 주시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의지해 어느새 꽤 긴 길을 혼자 달려왔다. 그런데…… 잠깐만…… 이 길이 맞나……? 분명히 직진 차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내가 서 있는 곳은 더이상 직진 차선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왼쪽 포켓 차선으로 흘러들어와 있었다. 내 뒤에 붙어 선 그녀를 다급히 불렀다.

“선생님, 어떡해요. 저 잘못 들어온 것 같아요.”

“아이고, 그러네.”

우측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봤다. 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금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한참을 다른 길로 가야 했다. 그 길은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고, 혼자 주행하기에는 당연히 무리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핸들이 금세 축축해졌다. 왜 이렇게 땀이 나지? 이러다가 핸들에서 손이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심장이 또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외쳤다.

“내가 뒤에서 막아줄 테니까, 그때 오른쪽으로 차선 하나 옮겨요. 알겠지?”

그녀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옆 차선으로 파고 들어갔다. 신호 대기 중이던 차 여러대가 동시에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차갑고 신경질적인 경적은 내가 아니라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스피커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지금이야, 지금!”

그녀의 아반떼가 일차선과 이차선의 경계를 사선으로 막고 있었다. 나는 그 앞으로 생긴 공간을 재빨리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배운 대로 비상등을 켜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핸들을 잡은 흥건한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스탠드에 세워둔 휴대폰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말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어이구, 인사할 정신은 있어? 전방 주시하세요.”

스피커폰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 ‘운전공포증 극복하기’라는 웹문서는 www.wikihow.com의 ‘How to Overcome a Driving Phobia’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