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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음.

glala95@hanmail.net

 

 

 

하나의 숨

 

 

그 전화를 받기 전, 나는 부암동에 있는 퓨전식당에서 기현씨와 함께 주문한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엔에스에 빈도 높게 올라오는 식당이라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올 수 있는 곳이라고, 기현씨는 은근히 칭찬을 바라는 소년처럼 싱긋 웃으며 말하고는 내 컵에 물을 따랐다. 물 따르는 소리가 둥글고 투명했다. 그가 우리 각자의 집에서 거리가 먼 유명 식당에 굳이 예약까지 해놓은 이유라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즈음 몇번의 시도 끝에 김포에 들어서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그는 내년 여름쯤에 내가 가구와 가전제품, 그리고 여러 생활용품을 장만하여 자신과 함께 그 아파트로 입주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상할 건 없었다. 비혼주의자가 아닌 삼십대 중반의 여자와 남자가 소개로 만나 세 계절 동안 데이트를 해왔다면 그 상식적인 귀결이 결혼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린 건 애피타이저로 게살수프가 나온 직후였다. 휴대전화 액정에 뜬 하나의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조금 의아하긴 했다. 하나는 뭐랄까, 오해로 야단을 맞거나 피해를 입어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그 오해가 풀리면 그제야 뚱한 얼굴로 아니랬잖아요,라고 투덜대고 말 학생이었다. 아무리 용건이 분명하대도 교사가 퇴근한 시간에 전화를 거는 행동은 내가 파악한 하나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기현씨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휴대전화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하나와 통화를 길게 할 것 같지는 않아 외투는 의자에 그대로 둔 채였다.

하나는 잔업을 끝내고 회사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고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게 때로는 심심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곤 하는데 오늘 저녁엔 내가 당첨되었다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랬구나,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하나가 하려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내용도 짐작됐지만, 가능한 한 그 화제에서 비켜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화제에 이미 조금은 질려 있었다. 1학기 기말고사 이후부터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중소 규모의 여러 회사에 취업이 되어 학교를 떠난 학생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봐줄 수 없는지 직접적으로 묻곤 했다. 그럴 때 당장 때려치우고 학교로 돌아오라고 멋지게 말하는 건 내 몫이 될 수 없었다. 일단 학생들이 흡족해할 만한 회사가 희소했고, 설혹 조건이 맞는 새로운 회사를 찾는다 해도 단기이력은 재취업에 방해가 되곤 했으므로 입사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학교 일에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 무렵 학교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나로선 노동의 열도랄지 밀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내 인격으로는 불가능했다. 평소에는 학폭위 구성이니 전교생의 전출입 현황조사니 하는 피로한 업무만 맡기다가도 회식 날이면 다음 계약 때는 정교사도 가능할 거라고 교사들마다 돌아가면서 말해놓고선 계약해지라니, 사람을 쓰라리게 하는 해고방식이었다. 여러 고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전전하던 나는 삼년 전 그 학교에 기간제교사로 채용된 뒤부터는 일년 단위씩 재계약을 해온 상태였다.

하나와 연결된 휴대전화 저편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종종 퇴근시간 넘어서도 잔업을 시키는 공장, 공장에서 일정 거리를 걸어야 나오는 기숙사,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그 풀잎들 사이에서 통신하는 벌레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유추한 범위는 그 정도였다. 하나가 일하는 공장이 휴대전화가 유일한 낙인 황량한 곳에 위치했다는 것이나 공장에서 기숙사를 오가는 길에는 환한 조명을 밝힌 상점이 전무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환경이 열아홉살 하나에게는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과 다를 것 없다는 데까지는 생각을 확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가 내게 절박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날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때는 하나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쓸모가 없어진 시점에 도착한 아주 크고 무거운 수하물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뒤늦게 내게 온 그 이야기를 나는 내 머릿속 창고에 정연하게 보관할 수는 없었다.

“샘, 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잦아들었던 귀뚜라미 소리가 또다시 크게 들려온다고 생각한 순간, 한동안 말이 없던 하나가 그렇게 불쑥 물었다. 난감했다. 학교를 떠난 학생들한테서 늘 듣는 말이고 예상한 질문인데도 평소보다 더 난감했던 건 사실이다. 하나는 이미 회사 적응에 실패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여름방학 때 취업됐던 그 의료기구 만드는 공장 말이야, 벌써 잊었어? 너 거기서도 고작 한달 일했잖아. 한 회사에서 적어도 일년은 이력을 쌓아야 더 조건 좋은 데로 갈 수 있다는 거, 하나야, 너도 알잖아.”

“……”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아. 그건 남들도 다 똑같아, 하나야.”

“……”

“하나야, 좀 참아봐.”

“……”

하나는 조용했다.

다음 달에 공장으로 현장점검을 나갈 테니 그때 보자고 말하려는 순간, 하나가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다 알아들었다고 연이어 대답했다. 자신의 일에 곧잘 싫증을 내는 학생에게라면 해줄 만한 충고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이내 단념했다. 예민한 십대와 마음을 다쳐가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하나에게 이제 나는 고작 두달짜리 선생이었다.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 통화를 종료하고 식당 쪽으로 돌아서자, 그새 여러개의 접시가 놓인 테이블과 흐뭇한 얼굴로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기현씨가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에서 떠나가는 기차의 식당칸을 건너다보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고, 먼 나라의 입국 심사대 앞에 혼자 선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식당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열리면서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명료한 금속음이 아니라 메아리가 번지는 몇겹의 엷은 소리였다.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잔, 잔, 잔, 울리는 그 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중에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식당 안이 텅 빈 암흑이 된다거나 내가 그 암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상상이 이어지리란 걸 짐작도 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

 

그날 이후 하나에게서는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고, 나 역시 하나와 통화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무겁게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기현씨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고 가길 원했지만 나는 그에게 내 얄팍한 통장과 예정된 실업을 알리는 것이 주저됐고, 동시에 그 주저가 견딜 수 없이 불편해지곤 했다. 하나와 통화하고 한달여 뒤 교무실에서 그 전화를 받으면서도 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을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고 그 사고의 진동이랄지 파고를 현실적으로 감각하지도 못했다. 그때 나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서류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은 채 휴대전화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오후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는 학년부장 선생의 차를 타고 바로 평택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갔지만 그날은 하나의 응급수술 직후여서 하나 어머니만 겨우 만나고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자꾸만 밀려들었으므로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 하나가 취업하면서 그 회사로부터 받은 계약서니 협약서를 검토해야 했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적용범위를 알아봐야 했으며, 교감이나 교장뿐 아니라 교육부와 노동부에도 사고경위를 보고해야 했다. 통곡하듯 우는 학생들을 달래는 일과 전교생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성금을 관리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나흘 뒤에야 나는 다시 평택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번엔 나 혼자였다. 하나 어머니가 병원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먼저 알아보고는 다가와 반겨주었다. 안으로 말려 있는 사람, 처음 봤을 때처럼 나는 그녀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손끝으로 내리누르고 있는 사람인 듯 어깨가 미묘한 곡선으로 굽은데다 뒷목이 그 어깨에 파묻혀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를 따라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면회시간에 맞춰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는 하나를 십분 정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응급수술 이후에도 출혈이 있었다는 하나의 뇌는 회복되지 못했다. 하나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땐 자연스럽게 하나 어머니를 따라 병원 안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녀는 할 말이 있어 보였고, 내게는 그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는 커피숍에서 내게 두가지 부탁을 했는데, 첫번째 부탁은 같은 반 친구들을 통해 하나의 에스엔에스 계정을 알아봐달라는 거였고, 두번째 부탁은 하나가 일하던 회사에 갈 때 동행해달라는 것이었다.

“포도를 줬거든요, 내가.”

회사에 가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사고 바로 다음 날에 회사에서 사람들이 와서 위로금을 주더라고요. 의료보험으로 처리되지 않는 병원비도 있지 않느냐면서요. 처음에 난 하나가 실수로, 그러니까 우리 하나가 덤벙대서 3층 작업장에서 떨어진 줄 알았으니까, 고마워서,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당장 줄 건 없고 그때 마침 손에 들려 있던 포도 한봉지, 그걸 줬던 거예요. 고작 포도라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말한 뒤, 포도가 이번 생의 회한이 축적된 결정(結晶)이라도 된다는 듯 그녀는 포도, 포도, 포도, 낮은 목소리로 연거푸 중얼거렸다. 포도 그 한봉지를 몽땅 그 사람들한테 줬다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그리 멍청할 수가 있느냐고요.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던 그녀의 중얼거림……

위로금을 건넸던 회사 사람들은 하나 어머니에게 천천히 읽어보라며 서류봉투 하나를 남기고 갔다.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의사의 호출이 있었으므로 하나 어머니는 저녁에야 그 봉투를 열어볼 수 있었다. 봉투 안에는 회사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가 들어 있었다. 그 서류가 수상쩍다고 여긴 그녀는 다음 날 하나가 지내던 회사 기숙사를 무작정 찾아갔고 그곳에서 하나보다 두살 많은 강현호라는 이름의 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하나와 같은 팀에서 일했던 하나의 직속 선배였다.

하나 어머니는 그날 강현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내게 전하는 동안 여러번 울먹였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번씩 그녀와 내 쪽을 흘끗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 시선을 의식할 여력은 없었다. 나는 부암동 골목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불과 한달 전에 다녀온 곳인데도 깜박이는 전등 아래서 펼쳐본 책처럼 그 풍경의 윤곽은 불연속적이었다. 아주 높은 곳, 거의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곳에 매달린 전등 하나가 고요하게 점멸을 반복하며 그 골목을 비추고 있기라도 한 듯…… 그 골목에 대한 기억 중 윤곽이 뚜렷한 건 귀뚜라미 소리뿐이었는데, 그 소리는 점점 더 증폭되더니 이내 내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시끄러웠다. 현실의 막(幕)을 뒤흔드는 그 시끄러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그녀의 울먹임이 멈춘 줄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그녀가 의아하게 날 보고 있었다. 그제야 큐 사인을 인식한 배우처럼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하얀색 봉투를 꺼냈다. 두둑한 봉투를 보자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던 그녀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이라는 내 설명을 듣고서야 경계를 푼 듯했고, 더이상 내가 내미는 손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때 맞닿은 그녀의 손이 너무 차가워서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단순히 찬 느낌이 아니라 식었다,라는 느낌에 가까워서였다. 내부의 동력으로는 원래의 온도를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찬기……

발이 시렸다.

그때부터였을까, 커피숍에서 하나 어머니의 찬기에 놀랐던 그 순간부터 발이 시리기 시작했던가.

그러고 보니 얇은 스니커즈가 젖어 있었다. 평택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젖은 스니커즈를 골똘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온 것도 아니고 물을 흘린 적도 없는데, 대체 어디에서 신발이 젖어버린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온몸이 젖어 있는 건 아닐까, 마치 누수가 진행되는 몸인 양. 옆자리엔 노숙자로 짐작되는 노파가 커다란 짐가방을 품에 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그녀에게서 세상의 온갖 오물 냄새가 났다. 마침 문자 수신음이 들려와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해보니 성금에 대한 하나 어머니의 감사 인사가 담겨 있었다. 기현씨와 031로 시작하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 기록도 보였다. 기현씨는 주말에 고향에서 올라오는 어머니와의 저녁식사를 환기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고, 031은 수원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의 전화번호일 것이다. 하나의 사고가 있기 며칠 전, 나는 영어과 정교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서류를 제출했는데 다음 날, 그 학교의 교무부장이라는 중년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게 됐다. 정교사니까요, 아무래도,라고 그는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전화는 정교사 자리를 얻으려면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다는 걸 지원자에게 미리 알리는 게 목적인 듯했다. 그는 돈의 액수까지 밝히는 건 범죄라고 생각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항간의 소문이 맞는다면 신입 정교사의 이년 치 연봉은 될 터였다.

빛이 들어왔다. 대기에 어둠이 스미면서 시외버스들의 주황빛 헤드라이트가 대합실 내부에까지 번져 들어온 것이다. 버스가 한대씩 떠날 때마다 주황빛은 금세 대합실에서 빠져나갔지만, 그 불빛이 사라진 곳이 곧 어둠의 차지는 아니었다. 이미 형광등이 켜진 채였고, 형광등 아래엔 노파의 주름과 의자와 자판기, 벽시계의 스크래치니 불에 덴 자국 같은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늙고 낡은 세계가 있었다.

 

*

 

“어디, 여상 선생님이라고요?”

그녀가 물을 한잔 마신 뒤 물었다. 오랜만에 화장했는지 코와 입술 사이엔 파운데이션이 뭉쳐 있었고 연보라색 투피스는 다소 작아 보였는데, 그런 허술한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요즘은 여상이니 상고니, 그런 말 안 써요. 특성화고라고도 하고 마이스터고라고도 불러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구식 이름을 써.”

네,라고 대충 대답하려는데 기현씨가 나 대신 그렇게 대꾸했다. 그녀에게서 태어나 그녀가 훈육하는 방식대로 성장하며 그의 내부에 쌓여왔을 모든 감정—애정과 불만, 애틋함과 부끄러움, 미안함과 원망 같은 것이 한데 섞인 말투였다. 중요한 건 명칭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리에서 내 직업적 신분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진실은 고백의 과정을 거치면 창백한 죄의식으로 표백되게 마련이고, 나는 보속을 바라는 죄인처럼 그들 앞에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기현씨는 내가 정교사는 아니더라도 무기 계약직은 된다고 알고 있었으니 어머니에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얘가 얘기했나.”

젓가락으로 꽁치구이 한점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그녀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열여덟살에 상경했어요. 뭣 모르고 서울로 올라오긴 했는데,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 취업이 되나. 먼저 서울에 와 있던 우리 언니가 어찌어찌 손을 써서 성수동에 있는 편직물 공장에 날 넣어줬지. 매일 열다섯시간씩은 일했을 거야. 잠 안 오는 약 먹어가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젊은 시절 속으로 녹아들어갔는데, 내게는 예상범위 밖의 이야기였다. 기현씨는 내게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의 이력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고,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우리가 서로의 가족에 대해 아는 거라곤 각각 1남 2녀와 2녀라는 형제관계, 부모와 형제들의 직업, 내 경우엔 조카의 이름과 나이, 그의 경우엔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기 같은, 그러니까 가족 개개인의 깊이가 아니라 둘레에 국한되어 있었다.

“오야지라고, 나 같은 시다 위에 있는 기술자들을 그렇게 불렀거든. 그치들이 어찌나 야비했는지 몰라. 막내여동생이나 딸뻘 되는 어린 시다들이 영양실조니 빈혈 같은 거에 걸려서 몸 굼떠지고 손 느려지면 욕하고 때리고…… 한번은 내가 오야지한테 무슨 말대답을 했거든. 그랬더니 그자가 미싱 돌리다가 달려와서는 내 아랫배를 사정없이 차대는 거야, 스무살도 안 된 처녀애 배를 말이야. 다들 지켜보면서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지. 내가 그때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

말하며, 그녀는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금세 붉어졌고 동조와 위로의 말이 필요해 보였지만, 곁에서 기현씨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아참, 그때 다른 오야지는 또,라고 말을 이어가려 하자 그는 더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듯 엄마, 제발,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녀는 기현씨의 반응에 돌연 말을 뚝 멈추더니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잠기운이 남은 채로 억지로 깨어난 아이처럼 무구하고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침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감색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메인 요리인 모둠회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그 뒤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면서는 화제가 완전히 바뀌었다. 결혼식 시기, 결혼에 대한 내 부모의 반응, 선호하는 식장 유형과 예상되는 하객 수, 신혼여행지로 갈 만한 휴양지, 그리고 갖추어야 할 살림의 목록과 종류—구체적으로는 세탁기와 냉장고는 AS에 어려움이 없는 국내 대기업 제품이 좋고 소파랄지 침대는 무조건 큰 사이즈를 사야 후회하지 않으며 식기세척기나 건조기는 구매목록에서 빼더라도 공기청정기는 꼭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웨딩잡지에 나오는 매뉴얼 같은 이야기였다. 아니,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그녀가 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녀의 아들이 새삼 알았다는 듯, 혹은 동의한다는 듯 고갯짓이나 짧은 대답으로 호응해주는 모양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이룬 공감대에 개입하지 않았고 개입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의 정교사가 되려면 통장에 있는 예금을 다 써도 수천만원을 따로 대출받아야 했고, 수천만원의 대출금과 그에 따른 이자를 갚는 생활이란 소비를 최소화한 형태여야 도리에 맞을 터였다. 내게는 새 가전제품과 새 가구, 우아한 그릇들, 휴양지로의 여행을 향유할 여력이 없었다.

“아까는 내가 주책맞게 재미도 없는 얘길 너무 많이 했죠?”

저녁식사가 끝나고 식당에서 나올 때,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물었다. 기현씨는 카운터에서 밥값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아니에요, 집중해서 들었는걸요.”

나는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는데, 그녀의 젊은 날에 대한 가치평가나 섣부른 연민이 배제된 대답은 그 정도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요즘 반 학생 한명이 다쳐서 바빠졌다고요?”

“아, 그게……”

“많이 다쳤어요?”

“아, 아니에요, 그냥 조금요……”

나는 얼버무렸다. 하나에 관해서라면 기현씨에게도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채였으므로 오늘 처음 만난 그녀와 굳이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요즘이야 공장에서 다칠 일이 어디 있겠어. 보호장비 다 있지, 누가 때리길 해,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길 해. 우리 때랑은 다르지. 완전히 다를 거예요, 그죠?”

“……”

“그런데도 다들 공장에선 일하기 싫다고 하니, 큰일은 큰일이에요. 애들은 주는데 나중엔 누가 기계를 돌리고 물건을 만들는지……”

그녀는 마치 방백을 하는 배우처럼 내 뒤편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마침 식당에서 나온 기현씨가 그녀 곁에서 살갑게 구는 대신 거리를 둔 채 나무토막처럼 서 있는 나를 흘끗 쳐다봤다. 낯설었다. 그의 얼굴이 생전 처음 본 듯 낯설기만 했다. 그 순간, 울음이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엄청난 피곤이 몰려왔다.

우리는 후식을 먹지 않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외투만 겨우 벗은 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몸은 거추장스러울 만큼 커다란 물병 같았고, 그래서 이리저리 뒤척일 때마다 몸 안의 모든 것이 출렁이는 듯했다. 알았으니까, 부암동 골목에서 내가 하나에게 했던 말과 기현씨의 어머니가 필터 없이 쏟아낸 말들이 닮았다는 걸 잘 알기에 출렁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니 출렁여야 마땅하다고,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누운 채, 침대맡에 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와 하나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반에서 하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주희가 하나 어머니와 내게 알려준 계정이었다. 팔로워 열세명에 팔로잉 열다섯명, 별다른 자기소개도 없고 게시물은 고작 스무개 남짓인, 누가 봐도 소극적으로 관리되던 계정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그리 간단하게 해석되지 않았다. 마지막 게시물 때문이었다. 그 게시물엔 밤의 해변에서 찍은 하나 자신의 그림자 사진과 함께 #망상해변 #그림자 #저게진짜 #또가고싶다 #아니못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나가 그날, 그러니까 나와 성과 없는 통화를 했던 그날 어떤 마음으로 그림자 사진을 올리고 그 문구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의 하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란 건 분명했다. 그림자, 진짜, 가고 싶다, 못 가, 이 퍼즐들을 꿰맞출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였지만 올해의 귀뚜라미들은 모두 일생을 마친 건지, 아니면 서울에는 원래 귀뚜라미가 살지 않는 건지, 본능에 순종하는 생명체가 노동하듯 규칙적으로 날개를 비비며 내는 그 마찰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는 십구년을 살았다. 도로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문득 그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가 아는 세상이란 십구년의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그 범위가 제한된다는 것을, 마치 가을 한철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귀뚜라미처럼……

 

*

 

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공장 주변에는 뜻밖에도 다른 공장이 없었다. 하나 또래의 젊은 노동자들이 몰려다니는 활기찬 공장지대의 풍경을 상상했던 나는, 야산과 낡은 가옥이 시야의 대부분을 채우는 이차선 도로 옆 좁은 인도를 걸으며 자꾸만 환기되는 이미지에 마음이 산란했다. 해가 지면 아주 캄캄해질 이 길을 걸으며 자주 겁먹었을 하나, 누구에게든 전화할 수밖에 없어서 전화해놓고 무섭다고 투정하는 대신 덤덤한 목소리로 심심하다고 말했을 하나, 일종의 조난신호를 보내듯 담임교사에게 전화한 날에도 절박한 마음은 숨긴 채 그저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되느냐고 묻던 하나, 쓸데없이 조심스러운 것이 많았던 그 하나들의 이미지……

곁에서 하나 어머니가 구두가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편한 구두라고 대답했는데도 그녀는 수시로 내 구두 쪽을 내려다봤고 공장 정문에 다다를 즈음엔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었다.

“하긴, 엄마인 나도 하나 연애에 대해선 아는 게 없는걸요. 그냥요, 한번이라도 누구랑 사귀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손도 잡아보고 뽀뽀도 해보고, 그럼……”

“……”

“그럼, 지금 그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네, 그러면 좋죠, 좋겠네요.”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고 그녀는 나처럼 그럼요, 좋죠, 알맹이 없는 허술한 말을 되풀이한 뒤 허공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공장은 작업장용 건물 두채와 창고 한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경비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하나 어머니와 나를 제지한 건 작업장용 건물로 막 들어가려 할 때였다. 하나 어머니는 약속이 돼 있다고, 연락을 주고받은 직원의 이름까지 댔지만 남자는 그런 전달사항이 없었다고 대꾸했다. 아닌데, 그럴 리 없는데, 중얼거리며 하나 어머니는 가방에서 명함 한장을 꺼냈고 휴대전화에 명함에 적힌 번호를 신중하게 꾹꾹 눌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약속을 했다는 직원은 좀처럼 하나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듯했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은하나 직원, 아시죠? 저분은 은하나 직원 어머니고 저는 학교 선생인데요, 사고 뒤에 회사에서 받은 위로금을 돌려주려고 왔습니다.”

“그런 말 구구절절 할 거 없고요, 그냥 외부인 출입증만 보여주면 됩니다.”

남자는 완강히 버티며 대답했다. 목소리와 태도는 완강한데 눈동자는 흔들렸다. 외부인 출입증 같은 건,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서류일지 모른다. 뒤를 돌아봤다. 하나 어머니는 상황의 흐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재발신 버튼을 눌렀다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보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머리칼이 헝클어져 내려오고 보풀이 인 외투가 뒤로 젖혀진 것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그 행동에 완전히 몰두해버린 사람 같았다. 그때 똑같은 디자인의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 두명이 나타나 건물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경비가 아니라 중간관리급 직원으로 보였는데, 하나 어머니가 휴대전화에서 얼굴을 떼고는 뚫어지게 건너다보자 얼른 고개를 외로 틀었다. 순식간에 이성을 잃은 그녀가 그들의 점퍼를 잡고 늘어지며 팀장 불러내, 하나네 팀장을 나는 꼭 만나야겠어, 악을 쓸 때도 그들은 끝내 하나 어머니를 바로 보지 않았다.

보았을 텐데.

사출기를 돌리는 일을 배우고 실습해보는 대신 창고 안 낡은 작업대에 앉아 좁쌀만 한 부품을 분류하거나 완성된 제품을 포장하던, 선배들의 잔심부름이 유독 몰리는 날이면 우체국과 은행, 때로는 병원까지 다녀오느라 퇴근 무렵에야 공장에 다시 나타나곤 하던 하나를 그들도 그때 보았을 텐데. 공장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하나의 몸을, 요란하게 나타났다가 다시 요란하게 떠나가던 구급차를, 청소를 해도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을 피 얼룩을, 분명 다 보았을 텐데……

하나 어머니가 강현호 직원에게서 들은 말은 또 있었다. 사고 바로 전날 하나가 사직 의사를 밝히자, 팀장은 회사 허락 없이 일을 그만두는 건 계약위반이라고, 회사에서 나가고 싶으면 회사의 연말 세액공제금을 대신 내야 할 거라고, 회사가 그런 혜택도 없이 여고생을 왜 뽑겠느냐고 대꾸했다. 다시는 너네 학교에서 학생들 데려오지 말라고 상부에 보고하겠다고도 했고, 공장에서 일할 거면 미리 운동해서 힘 좀 길러놓지 않고 지금까지 뭘 했느냐고 따지듯이 묻기도 했다. 그 살이 다 근육이면 내가 왜 일을 안 주겠느냐고, 어? 가만 보면 가방끈 짧은 애들이 자기 관리도 못한다니까. 능력이 별게 아니야. 절제야, 절제. 그때 그의 목소리는 근처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컸다. 하나가 어떤 자세로 팀장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전해 들은 바가 없지만, 그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던 모욕감은 눈송이 같은 입자의 형태를 띠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욕감의 입자가 분분히 날리는 투명한 구(球)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하나가 내 눈에는 보이는 듯했다. 다음 날, 하나는 공장이 문을 닫는 밤 시간에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고 3층에서 추락했다. 혼자서라도 사출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파악한 뒤 운용해보려 했다가 사고가 난 걸까. 혹은, 그저 분풀이로 사출기 한대를 망가뜨리려다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발이 미끄러진 건 아닐까. 그날 공장의 폐쇄회로카메라를 끈 사람은 경찰의 추정대로 정말 하나였을까.

어제, 하나가 2학년 때 하나의 담임을 맡았던 교사가 말했다.

“하긴, 스스로 뛰어내린 거면, 그걸 밝혀내면 뭐가 좋아지겠어. 누구 마음이 편해지겠느냐고. 그러니 다들 쉬쉬하는 거겠지.”

나는 그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명백한 건 없으니까, 목격자도 없고 증거 영상도 없으니까, 해변의 그림자로 존재했던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 밤의 하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모르며 간절하게 모르고 싶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모든 추정이 기각되어야 한다고, 나는 온힘을 다해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최선생, 오늘 왜 보자고 했는지 나 알아.”

잠시 뒤, 그녀가 내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에게 종례 후에 컴퓨터 실습실에서 잠시 볼 수 있느냐고 제안했던 이유를 상기했다. 앞으로 학교 차원에서 하나를 도울 일이 생긴다면 교사 경력이 이십년이 넘는데다 정교사인 그녀가 그 일의 적임자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알아. 다 아는데,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할게요. 성금 또 내야 되면 낼게. 열번 스무번 낼게. 근데, 그 이상은 자신 없어. 어설프게 나섰다가 나중에 감당 못하면, 그게 더 못할 짓이야. 살아보니 내가 그건 알겠더라고요.”

그녀는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섞어가며 그렇게 말을 이어갔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쉬운 단념에 사나워졌던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공평하게 비정하다면 한 사람의 비정은 모두의 비정으로 희석된다고, 세상 어디에도 더 비정한 비정은 없다고, 그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뒤편엔 유리창이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초겨울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학교를 빠져나간 학생들이 어디로 갈지, 아니 갈 곳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길은 멀었다.

하나 어머니와 나는 결국 공장 안으로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떤 꿈속의 길처럼 그녀와 나란히 걷는 이 길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고 생각할 무렵, 빈 택시 한대가 지나갔다. 나는 맹목적으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은 뒤 하나 어머니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길이 막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원래는 서울에서 마트 직원으로 일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병원 근처에 있는 모텔에 방을 얻어 장기투숙을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하나에게 아빠는 없다고, 이혼이나 사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없었다고, 그래서 가족은 하나와 나 단둘이라고, 그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갔다.

“얼마 전에 무슨 시민단체에서 일한다는 분이 병원에 찾아와서 그러대요, 이 사회가 하나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요. 그런가요, 선생님?”

“……”

“근데요, 그거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못나서 하나가 저렇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중퇴에 미혼모에, 나 좀 못난 거 맞잖아요.”

“하나 어머님, 약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약한 게 아니고요, 내 현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나 솔직히 하나가 인문계 대신 취업 잘되는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고마웠어요. 미안한 건 잠깐이고 오래오래 고맙더라고요. 하긴, 선생님 같은 분은 그때 제가 느낀 고마움을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한테 잘못이 있다는 게 아니라요, 그것도 현실이니까요.”

“……”

왜였을까. 그 순간, 오랫동안 물속에서 거친 숨을 참고 있다가 그제야 물 위로 떠오른 듯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불가해할 만큼 맑아져서 당혹감마저 밀려왔다. 하지만 더 당혹스러운 건, 그때껏 그녀가 내 처지를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근데요 어머니, 혹시 제가 기간제교사인 건 아세요?”

“……네?”

“그러니까, 저는 비정규직 교사라고요. 이주 뒤면 저는 하나의 담임교사가 아니에요. 선생도 아니고요.”

이어서 설명하자, 그제야 그녀가 커진 눈으로 내 쪽을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내년에는 선생님이 학교에 안 계신다는, 그런 말인가요?”

“네, 저는 올해까지만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선 순식간에 슬픔이 지워지고 새롭게 실망감이 차올랐는데, 나는 그 변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하나가 깨어날 때까지 서류를 정리해주고 팀장을 고소하는 일에 동참해주고 어려운 자리에 선뜻 동행해주는 교사가 필요할 테니까. 어쩌면 그녀는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택시 안에는 어색하고도 견고한 침묵이 흘렀는데, 나는 그 침묵을 깰 수 없었고 깨고 싶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쪽 차창에 얼비치는 그녀의 옆얼굴이 지금 하나의 꿈속을 채우는 이미지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택시는 곧 병원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내가 버스터미널에서 내릴 때 합산해서 내면 되는 택시비를 극구 미리 계산하고는, 내년에 혹시 다른 학교로 가게 된다면 연락 달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어머님도 하나 소식, 전해주세요.”

나는 하나에 관한 한 그 어떤 전망도 없는 무해한 말을 선택해서 고작 그렇게만 대답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한번 보더니 헐겁게 안아준 뒤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가 다시 움직이기 직전까지,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작고 마르고 동그랗게 말린 그녀를 나는 최대한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그날 나는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의 통증 때문에 구두를 벗으면서도 나는 인상을 썼다. 하나 회사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오랜만에 신발장에서 꺼내 신은 구두였다. 가죽에 잦게 닿으면서 상처가 생긴 뒤꿈치에 연고를 바르며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두를 벗은 순간부터 가벼워지기 시작한 내 마음을. 동시에, 내가 하나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 한명임을 밝힐 기회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란 걸 강렬하게 예감하고 있다는 것도……

그날 이후 하나 어머니는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갔고 이주 뒤, 예정된 대로 나는 학교에서 계약해지되었다.

 

*

 

기현씨와는 헤어졌다.

결정적인 다툼은 없었다. 고통이든 아련함이든 나선 모양의 궤적을 남기게 마련인 이별의 절차도 없었다. 기현씨의 어머니와 식사한 날 이후로는 간간이 통화를 해도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더니 그 상태로 두달 정도가 지나자 통화하는 일 자체가 중단되었고, 어느날 문득 서로에게 전화하지 않은 날들이 이렇게나 많이 쌓였다면 헤어진 걸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뿐이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기현씨에게 내 상황을 밝히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 나는 그 생략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지금 판촉물 회사에 다닌다. 봄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강사나 교사가 아닌 회사원으로 산 지 한 계절이 지난 셈이다. 내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컵과 우산, 다이어리와 파우치와 에코백 등에 들어가는 영어 문구를 작성하는 일인데 상품 포장과 발송, 회의록 정리와 서류 복사도 내 몫이 될 때가 많긴 하다.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린 사람이 상사라는 것이나 근무기간 일년을 채우면 재계약 심사가 있으리란 것, 그런 건 크게 두렵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하나의 숨과 관련된 것, 오직 그뿐이었다. 처음엔 하나의 숨이 멈추었다는 하나 어머니의 전화를 받게 될까봐 두려웠는데, 그런 전화가 오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자 다른 두려움이 생겼다. 길을 걷다가 퓨전식당이나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을 발견하게 되면, 마트나 병원 앞을 지나갈 때도, 심지어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하나는 어김없이 내 삶으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럴 때 하나의 숨이 내가 들이켜는 숨과 섞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웠다. 인공호흡기를 통과한 하나의 가느다란 숨이 물결처럼 움직이는 공기를 타고 내가 생활하는 곳에까지 유입되고 있으며 내가 그 숨을 들이켜면서 하나 대신 일하고 돈 벌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

어느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하나의 숨을 생각했다. 그때 지하철은 당산철교를 통과하고 있었는데 한강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 한마리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아닌 강에 나타난 갈매기는 꿈과 현실 사이의 통로에서 길을 잃은 천사의 은유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갈매기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현실의 출구에서 빠져나간 갈매기가 이번엔 내 숨을 싣고 하나의 꿈속으로 들어가길,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그 여름,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취업에 성공한 학교 친구 몇명과 함께 망상해변에 놀러 간 거라고 주희는 알려주었다. 주희도 그 무리에 있었는데, 하나가 여행 내내 이상할 만큼 겉돌았다는 말도 했다. 그림자 사진을 찍을 때도 하나는 혼자였다. 그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고, 다 같이 해변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서 대학생이라고 속이고는 떠들썩하게 맥주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좀처럼 술을 마시지 않던 하나는 어느 순간 술집에서 나가더니 해변 쪽으로 걸어갔고 주희는 그런 하나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하나가 걸어간다.

하나의 눈에만 보이는 갈매기가 하나를 유인하고 있다. 밤이긴 했지만 야간조명 덕분에 멀리 있는 파도도 뚜렷하게 보인다. 파도가 발끝에 닿을 듯 말 듯한 곳에서 하나는 걸음을 멈춘다. 조명을 받아 길어진 그림자 안에는 발자국들이 빼곡하다. 아무렇게나 모래를 밟은 사람들의 발자국—물결과 물방울과 삼각형 같은 신발 바닥의 무늬를 내려다보며 하나는 그 그림자가 실체 같다고 생각한다. 진짜는 그림자고 자신은 허상이라고…… 하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다고, 어차피 이곳엔 진짜가 없으니, 왜냐하면 지금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주 긴 꿈을 꾸고 있으므로. 꿈 바깥에 두고 온, 차창에 얼비치는 도시 같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깨어난다 해도 그곳 역시 꿈일 거라고, 그러니까 꿈 바깥의 꿈일 뿐이라고 믿으면서. 다만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을 이어간다. 그래서, 오직 그 얼굴을 지키기 위해서, 행복은 가짜가 아니라고 느끼는 그들의 그 한순간을 위해서, 가까스로, 자꾸만 꺼지려 하는 심장을 바닥에서부터 부풀리며, 하나는 또 한번……

하나의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