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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재오 『영국 낭만주의와 역사인식』,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

지금 우리가 읽는 법, 지금 우리가 사는 법

 

 

유선무 柳先茂

아주대 영문과 교수 smryu@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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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의 문학비평 저널 『재현』(Representations)의 2009년 특별호 주제 ‘지금, 우리가 읽는 법’이 시사한바 요즘 비평계에서는 ‘읽기’가 여전히 쟁점이다. ‘꼼꼼한 읽기’(close reading)는 더이상 문학연구의 유일한 핵심역량으로 제시되지 않으며, ‘증후적 읽기’(symptomatic reading) ‘원거리 읽기’(distant reading) ‘표면 읽기’(surface reading) ‘회복적 읽기’(reparative reading) 등 다양한 읽기 방법론이 개진·실험되고 있다. 이같은 다양한 방법론의 등장 배경에는 기존의 읽기 방식이 더이상 새로운 문학적 통찰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불만, 즉 제대로 된 읽기에 대한 갈증이 존재한다. 그런 만큼 개별적 읽기 이론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각각의 읽기가 지니는 비평이론적 타당성이나 설득력의 유무보다는, 이들의 이론이 실제 비평에 적용될 때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새로운 문학적 진실을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다. 읽기 방법론이 단순한 이론의 잔치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의의를 지니기 위해서는 읽기의 기본을 받치는 주춧돌로 기능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소란스러운 읽기 방법론 사이의 각축전은 특정한 이론을 문학작품 분석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일부 방법론에 대한 반성이자, 문학작품을 정면으로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떠오르는 의미를 포착해야 하는 문학 읽기의 기본에 대한 재점검이다. ‘지금, 우리가 읽는 법’에 대한 고민은, 문학의 장르적 개별성에서 발원하는 정동적 에너지에 집중하면서 작품의 의미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읽기의 상식이 점점 퇴색하는 현상에 대한 반성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무슨무슨 ‘읽기’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영국 낭만주의와 역사인식』에 수록된 열편의 논문은 이러한 읽기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존 키츠(John Keats)의 대표작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편편은 고도로 전문화된 비평가들의 분석틀을 적용하거나 작품 분석 역사의 복잡한 지형도를 그려가지 않는다. 진솔하게 작품을 마주 보며, 작품의 세부를 꼼꼼하게 읽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해나간다. 이러한 비평 방식 덕분에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그의 연구에 접근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의 용이성이 논의의 깊이를 덜어내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읽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방법론은 논문을 관통하는 지속적인 관심사—어쩌면 그의 연구 대상인 낭만주의 시인들의 관심사와도 겹치는—에서 부분적으로 발원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단행본 발간을 염두에 두고 쓴 논문들이 아니기에 얼핏 논점이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글들은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초점을 맞춘 낭만주의 시인들은 공통적으로 문학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살아내면서 문학적 재현에서 구축되고 전파되는 앎의 문제를 천착했으며, 이러한 앎이 사회적 정의와 공동체적 연대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논문들은 이러한 시대적 고민들이 첨예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을 선별했으며, 작품의 세부 내용을 당대의 역사적·문화적·정치경제적 맥락과 연결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국면과 결부해 블레이크의 『예루살렘』(Jerusalem)이나 워즈워스의 『서곡』(The Prelude)을 읽는다거나, 근대화라는 격변의 흐름 속에 워즈워스의 「마이클」(Michael)을 위치시키고, 자본주의적 질서의 고착화 문제와 블레이크의 자유개념을 대립시키는 식이다. 문학의 문화사회적 역할에 대한 낭만주의자들의 고민은, 시간을 돌아와 21세기 한국에서 영문학자로 살아가는 저자의 현실인식과 만난다. 그가 진단하고 고민하는 지금의 한국은, 낭만주의 시인의 영국이 그러했듯이 국가주의적 이기심과 자본주의적 마비, 개인주의적 자유의 팽창 등으로 인해 공감과 연대의 문화가 해체되고, 자유의 가능성이 소진된 시공간이다.

저자에 따르면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문학적 실천이란 “생명을 위한 지성의 전쟁”(88면)이나 다름없었고, 전쟁의 목표는 지성을 공동체적 연대를 향해 발휘해 비로소 증오와 죽음의 문화를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마이클」이 “추상적 합리주의와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하나의 대안적 인간 발전의 표본”을 제시하고 이를 계승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독자를 호명한다는 그의 주장에 잘 드러나 있다.(140면) 마찬가지로 저자는 영문학 교수이자 문학비평가로서 자신의 영역에서 ‘지성의 전쟁’을 치르면서 그가 마주한 한국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영문학의 주체적 수용에 고민하면서, 비평의 실천을 지식인의 역사적 개입의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이유이다.(211면) 18세기 말 영국문학이 지니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충실하게 주목하는 한편, 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곡진한 믿음에 기대어 낭만주의 문학의 문제의식과 21세기 한국의 현실을 공명시키는 그의 ‘읽기’가 일반 독자에게도 가닿는 방식으로 쓰인 것도 그 때문이다. ‘지성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대중을 향하고, 국가 공동체를 향하며, 더 나아가 인류를 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영문학의 정치성과 비판적 상상력』(사회평론아카데미 2019)과 짝을 지어 고 김재오 교수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1주기에 맞추어 간행되었다. 고인은 40대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스무편의 논문을 남겼는데, 이를 그의 세부전공 분야인 낭만주의 관련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으로 분류해서 각각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공 분야가 아닌 논문을 모은 논문집도, 낭만주의 시인을 다룬 논문집과 동일한 ‘읽기’의 표본을 보여준다. 문학과 정치의 내적인 연결성 회복을 천착하는 작가 혹은 이론가들을 연구 대상으로 선별하고, 이들의 통찰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며 새롭게 해석하는 한편, 이를 아우르는 자신의 비평작업을 역사에 개입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인문학자의 사명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양한 ‘읽기’의 이론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지금, 바른 ‘읽기’의 이정표가 필요한 후학들, 전공 분야의 학자들을 넘어서 소통의 폭을 넓히고 싶은 동학들,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역할을 궁금해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