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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계영 庾桂瑛
1985년 인천 출생.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ygy815@hanmail.net
불이야
너희 내면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긴 다리로 가득해
스케이터의 발끝처럼 멀리 더 멀리 미끄러지는
불이야
소년아 소녀야
지붕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높이 더 높이 올라가보는 것뿐이다
너흰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정을 찾을 때까지 떠돌아야 한다
그래서 너희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지붕 밑을 떠돌게 되었다
친구를 때리면 안된다고 한번쯤 말해보기 위해
주먹을 찾아 떠돌았던 생전의 싸움터처럼 말이다
불안의 주기를 딴 낮과 밤이
공중 가득 흰 모가지를 끼얹어놓았다
전신이 눈먼 밤마다
지붕 위를 기웃거리던 빛은 구경꾼의 등 뒤에 달라붙어
집으로 돌아갔다
구경꾼들은 자기 자신을 구경하는 데엔 도가 튼 사람들이지만
익숙한 지붕 아래 너희를 담아두고
가장 소중한 것이라 부르며 오래 간직할 것이다
너를 자신의 일부라 믿으면서 말이다
소년과 소녀와 불꽃이야
생각의자
불가능해요 그건 안돼요
간밤에 얼굴이 더 심심해졌어요
너를 나라고 생각한 기간이 있었다
몸은 도무지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없는데
나는 내 몸을 생각할 때마다 아름다움에 놀랐다
나는 고작 허리부터 발끝까지의 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냉동육처럼 활발한 비밀을 간직한 나무의 하반신을 생각할 수 있다
나무의 상반신은 구름이 되고 없다
어떤 나무의 꽃말은 까다로움이다
사람들은 하루를 스물네 마디로 잘라둔 뒤부터
공평하게 우울을 나눠가졌다
나는 나도 아닌데
왜 너를 나라고 생각했을까
의자를 열고 들어가 앉자
늙은 여자가 날 떠났다
나는 더 오래 늙기 위한 새 의자를 고른다
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