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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기성 李起聖
1966년 서울 출생. 1998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채식주의자의 식탁』 등이 있음. leekisung85@hanmail.net
마르크스를 훔치는 시간
누가 나의 발을 훔쳐갔어, 노인이 내게 속삭였다. 차가운 밤이다. 나는 지하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늙은 도둑고양이로 착각한 모양이다. 노인이 내 누런 바지를 잡고 매달렸다. 나는 고양이가 아닌걸. 하지만 목소리는 어느새 배고픈 고양이 울음을 흉내내고 있다. 통로 밖은 어둠이다. 내 품속에 있는 건 당신의 발이 아니라, 마르크스인걸. 분노한 노인은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자 툭 떨어진 책이 두 발로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를 뒤쫓는 고양이, 노인은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개와 여덟개의 감정
꽃이 피지 않았다. 개는 오는가. 언제 오는가. 우리는 돌멩이를 던졌고, 햇빛이 골목의 그림자를 거두어갈 무렵에는 발이 차가워졌다. 개는 오는가. 수북한 돌멩이 위에 하나를 더 쌓으면서 우리는 하나 둘 그리고 여덟, 숫자를 세는 일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개를 기다렸고, 골목에서 서로를 미칠 듯이 그리워하는 감정을 갖게 되지만, 네가 개가 되었니? 묻지는 않았다. 꽃이 피었다. 무료한 꽃이 피어도 개는 오는가. 결국 오는가. 우리는 돌멩이를 하나 던졌고, 돌멩이가 멈춘 곳에서 나는 검고 긴 혀를 빼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