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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대흠 李戴欠
1968년 전남 장흥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등이 있음. e-siin@hanmail.net
당신은 北川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힘들어도 아파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기마저 남기지 않는다
北川의 물
가장 맑은 것이 모여 북천인 게 아니라
온갖 더러움까지 다 들어 북천은
때 묻지 않는다
북천에서는
할 일 없어진 물은 물끼리 놀다 가고
나무는 나무끼리
향기는 향기끼리 섞이며 깔깔거린다
발가벗은 꽃과 알몸인 나비와
아무데나 핀 나무와 풀과 짐승들이
먹고 놀고 싸는 일만 하다가
북천으로 흘러간다
별들도 제 궤도에서 마음껏 놀다가
우수수 떨어져내리고
어떤 별은 꽃으로 몸을 바꾸고
또 어떤 별은
사랑의 입술이 된다
꽃의 말과 새의 말과 사람의 말이
구분되지 않는 북천이라서
노래하는 새의 입에서 별빛이 쏟아지고
꽃향기는 말 떼가 되어 내달리기도 한다
사람도 사랑도 새도 나비도 죽음도
꽃이나 별 떼도 하나로 흐르는 북천
북천에 발 담그면 발은 나비가 되고
얼굴을 씻으면 환하게 지워진다
제 그림자를 몸 안에 거둔 이들이
북천이 되어 흘러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