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
혼돈의 미국 대선, 미국 민주주의는 쇠퇴하는가
서정건 徐正健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현대 한미관계의 이해』(공저)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공저) 등이 있음.
seojk@khu.ac.kr
1. 들어가며
미국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른 나라 민주주의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와 지난 4년간의 트럼프 시대는 우리에게 미국 정치와 사회의 여러 민낯을 보여주었다. 2016년 대선에서 허세와 막말 그리고 자기자랑으로 일관하는 아웃사이더를 소위 중서부(Midwest) 3개 경합주가 선택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거의 모든 행정명령과 행정합의를 폐기 혹은 탈퇴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너나 할 것 없이 의회정치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언론은 저마다 한쪽 편만 옹호하고 다른 편은 비방하느라 분주했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은 정해진 수순처럼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에 잇따라 5 대 4 판결을 내며 보수 편을 들기에 급급했다.
우리 같은 외부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트럼프 대통령 지지세가 확인된 만큼 미국 내부에서도 리더십 실패를 실패라고 인식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분분해질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예외가 아닌 회복으로 평가하는 백인 유권자 규모가 여전하기에 민주주의 논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이들에게는 진보 편만 드는 주류 언론과 엉터리 여론조사 기관만 오직 문제가 될 뿐인지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우리가 미국을 민주주의의 전형이라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온 만큼이나 지금은 미국 민주주의 쇠퇴론이 국내 여기저기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재평가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선거 결과가 당일에 나오지 않았고 또한 패자가 쉽게 승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민주주의가 ‘폭망’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생각해볼 거리들이 적지 않다.
이 글은 지난 4년을 비롯해 과거 미국 국내정치와 외교정책의 주요 지점을 정리하고 특히 2020년 대선 과정을 돌아보며 미국 민주주의의 변화를 살피고 향후를 전망해본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자주 던진 연유로 인해 실제 미국은 어떠한가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미국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보는 작업은 추후 미국을 향한 우리의 사고와 전략을 가다듬는 데 필수적이다. 미국을 너무 좋아할 필요도 너무 싫어할 이유도 없는 세상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2. 미국 정당정치, 2016년 대선, 그리고 트럼프 시대
1980년 레이건 당선을 기점으로 뉴딜 시대가 마감되었다. 이후 작은 정부, 감세 정책, 국방비 증대 등이 현재까지 미국 정치의 기본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초래된 1984년 레이건 재선과 1988년 아버지 부시 당선은 뉴딜 민주당 후보들의 잇따른 패배와 함께 미국 정치의 흐름 변화를 확증시켜주었다. 부시는 1991년 1차 걸프전쟁에서 국제주의적 접근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국내 경제침체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다. 결국 대선 3자 구도까지 겹치며 공화당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실패로 끝난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1992년 임기를 시작한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은 군대 내 동성애자 이슈와 의료보험 개혁 실패로 1994년 공화당의 이른바 깅그리치 혁명(Gingrich Revolution)을 맞게 되었다. 1954년 이후 무려 40년 만에 하원을 공화당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에 클린턴은 1996년 재선 과정에서 큰 정부 시대의 종말을 선언함과 동시에 복지정책 개혁 명목으로 우클릭을 시도한다. 1996년 대선 해 ‘복지에서 직장으로’(Welfare to Work)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1935년부터 시행되던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했고 대공황 대응책으로 1933년에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도 규제 개혁을 명목으로 1999년에 폐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업무 영역 분리가 허물어졌는데, 이것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을 딛고 당선된 아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초당파적인 세제 개편을 통해 1조 3천억 달러 규모의 세금 인하를 실현시킨다. 또한 아버지가 못 이룬 교육 대통령의 꿈을 이루고자 ‘뒤처지는 아동 없애기 법안’(No Child Left Behind Act) 통과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자 부시의 관심사와 어젠다는 완전히 재정비되기에 이른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2003년 이라크전쟁을 개시함으로써 탈냉전시대 ‘미국의 대전략’(American Grand Strategy)을 다시 한번 정립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2005년 이후 이라크전쟁이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전쟁의 동기라던 대량학살무기(WMD) 존재가 거짓으로 드러남에 따라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하게 된다. 게다가 2008년 유례없는 대규모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공화당 정권은 막을 내리고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다.
‘국내 이슈 우선’(nation-building at home)을 기치로 내건 오바마가 2008년 당선 및 2012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소위 ‘오바마 연합’(Obama coalition)이 형성되었다. 청년, 여성, 흑인 및 라띠노 유권자,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연합체 성격이었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레이건 시대 미국 정치 흐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10년 오바마 시기 첫번째 중간선거에서 티파티(Tea Party) 운동의 득세로 상하원을 공화당에 다시 빼앗기고 결국 민주당 주도의 개혁 입법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6년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가 ‘오바마 연합이 과연 오바마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였다. 만일 그렇다면 힐러리 후보든 혹은 그 이후 어떤 후보든 개인의 면면과 상관없이 늘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미국 정치의 흐름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대선 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젊은 세대와 흑인 그룹은 선거 참여에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다. 여성과 라띠노 유권자들 또한 오바마 당시보다 저조한 민주당 지지율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들은 ‘승리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오바마 연합을 이후에도 계속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깃발을 드는 후보 개인과 선거연합의 정책이 동시에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떠안게 된 공화당은 어땠을까? 간단히 말해 선거 승리를 위한 지지층 구성에 변화를 추구했다. 2000년대 공화당의 절체절명 어젠다였던 라띠노 유권자 포섭 노력은 거의 사라지고 백인 중심의 유권자 그룹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해졌다. 그동안 노조 등의 요인으로 백인 노동자계층은 주로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되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2016년 대선 과정에서 공화당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화 폐해를 가장 절감하던 백인 저학력・저소득 유권자들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느꼈을 상실감과 분노감은 우리 같은 외부인들이 상상하기 쉽지 않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주로 인종과 경제라는 두 변수로 좌지우지되는 미국 대선은 이들에게 울분 표출의 최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트럼프 시대 공화당은 라띠노 유권자 대신 백인 노동자 그룹을 소위 ‘트럼프 연합’(Trump coalition)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트럼프 연합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닌데, 재선 여부를 알 수 없었던 데다 트럼프 개인의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오바마 연합과 대조적으로 트럼프 연합은 백인 노동자, 개신교도, 농촌 지역 유권자, 사회적 보수주의자, 반(反)국제주의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2016년을 기점으로 미국 정치가 확실한 정체성 정치로 돌아섰다고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이들 그룹 맞춤형 국내・외교 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민주당의 경우 2016년 대선을 통해 당내 마지막 대표적 중도주의자 힐러리가 패배함으로써 쌘더스(B. Sanders)를 위시한 진보세력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물론 상원의원과 주지사 중에는 중도파가 상당수 포진하고 있지만 2020년 진행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바이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의미있는 수준의 당내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특히 이념과 당파의 영향력이 지대한 미국 연방 하원에서 2018년 중간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획득하면서 민주당의 진보세력은 점점 더 영향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다만 민주당 진보 그룹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중국에 대한 무역 강경책을 트럼프 대통령이 선점함에 따라 이들의 입장 정리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미국 정당이 특정 대통령의 정당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대통령의 이념과 정책 등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지배 연합이 나타남과 동시에 당내 조직 또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성원으로 채워지게 됨을 뜻한다.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이끈 링컨의 공화당,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이끌며 뉴딜연합을 구축한 프랭클린 로즈벨트의 민주당, 작은 정부로의 복귀를 외치며 뉴딜 시대를 종식한 레이건의 공화당 등이 그 예다. 트럼프가 공화당에 미친 영향은 적극 투표자들 중심인 후보 경선(프라이머리)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트럼프와 다른 노선을 취하는 경우 애초에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없고, 당연히 본선에서도 자기 소신을 제대로 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공화당 의원 및 후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2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당시 12명의 현직 공화당 상원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 중 2020년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경우는 콜린스(S. Collins) 한명뿐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12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영향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또한 공화당 안에서 여러 주가 2020년 대선 후보 경선을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친트럼프 성향으로 공화당 조직이 변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공화당이 트럼프가 내세우는 무역전쟁 및 이민제한 등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 영구적이자 근본적으로 변화 중인가는 분석이 쉽지 않다. 이는 트럼프의 거의 모든 정책 결정과 이행이 주로 입법정치가 아닌 행정명령 차원에서 이루어진 탓이기도 하다. 의회에서는 트럼프가 주도하는 정치와 외교의 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빅 텐트’ 정당, 즉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정당인 데 반해 공화당은 이념과 원칙을 중시하는 정당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런 공화당이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백인 저학력 남성, 농촌 유권자, 기독교도 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체성 정당으로 정말 변신한 것인지 주목할 만하다. 이번 2020년 하원선거도 이를 살펴볼 중요한 계기인데 트럼프적 메시지로 무장한 공화당 후보들이 대거 워싱턴에 입성하게 되었다. 대선에서 경합주 플로리다의 라띠노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 등이 작용한 다소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공화당은 앞으로도 백인, 기독교도, 꾸바계 라띠노 등을 중심으로 선거연합을 짜려고 할 것이다,
결국 미국 정치는 양극화 정치와 정체성 정치의 혼재 국면을 여전히 경험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퇴출되더라도 그가 2016년에 비해 900만표 이상을 더 얻은 상황을 공화당이 외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얼마간은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인종 구성 면에서 공화당에 불리한 흐름임은 분명하지만 두 정당 모두 당분간 기존 지지층을 확고히 하면서 상대편 일부를 정책과 레토릭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게 될 것이다.
3.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 경선과 본선
올해 미국 대선의 경우 상반기에 코로나 관련 중국 이슈가 급부상했지만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 후보와의 차별성 부족으로 인해 하반기에 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법과 질서, 보수 대법관, 경제재개 등 보수 유권자들의 직접적인 관심 사안에 주력하여 선거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중국이나 북한, 혹은 러시아 등 어떠한 국제 이슈도 크게 부각되지 않은 선거로 남을 전망이다. 또한 2008년 오바마가 얻은 6950만표보다 올해 트럼프가 더 많이 득표하면서(11월 둘째주 현재 약 7300만표) 2016년 승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에 2024년 대선에서도 공화당의 ‘트럼프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지지층의 존재로 ‘미국 우선주의’ 또한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바이든이 현재 새로운 톤과 스타일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의회선거 경우 기존 116대 상원에서 53대 47로 다수당을 유지하던 공화당이 경합주 현직 의원 중 두명 패배(애리조나, 콜로라도), 두명 승리(메인,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민주당은 현직 의원 한명 패배(앨라배마)를 기록했다. 조지아주에서 벌인 2석 경쟁은 양당 모두 50퍼센트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내년 1월 5일 결선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이 2석을 민주당이 가져가는 경우 50 대 50이 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의장이 됨으로써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반대로 공화당이 한석이라도 건진다면 117대 상원에서도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하원 또한 예상과 달리 공화당이 매우 선전했다. 다수당은 결국 민주당이 되겠지만 의석 수 차이는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두 정당 내부의 계파 움직임이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이전보다 그 위상이 더욱 올라갈 것이다.
그간 현직 대통령은 대부분 형식적인 경선을 통해 후보로 재지명되어왔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1980년 지미 카터가 재선에 도전했을 때 당내에서 도전자가 등장했는데 바로 케네디 대통령의 막냇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었다. 케네디 가문의 최종 주자로 명망이 높았기에 카터 진영이 바짝 긴장했지만 케네디는 결국 자멸하고 만다. 인터뷰 도중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지를 묻는 간단한 질문에 거의 2분 동안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그는 ‘케네디’이기에 대통령은 당연직이라 생각했던 것 아니냐는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후보 사퇴를 결정했다. 미국 언론의 엄격한 사전 검열과 기득권 정치인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미국 대선을 복기해보자. 민주당의 경우 2016년의 뼈아픈 교훈을 곱씹으며 트럼프 대통령 몰아내기를 지상 목표로 후보선정 작업에 돌입하였다. 지난 2월 3일 아이오와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정해진 순서대로 경선을 실시하고 득표율의 비례 배분 원칙에 따라 대의원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경선에서는 소위 ‘맥주파’(beer-track)와 ‘와인파’(wine-track) 간 경쟁이 이어져왔다. 맥주파는 노동자, 노년, 온건파 백인과 흑인 유권자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며 휴버트 험프리, 월터 먼데일, 빌 클린턴, 조 바이든 등이 대표적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와인파는 고학력 백인 진보 그룹, 무당파, 청년이 주요 지지층이고 조지 맥거번, 개리 하트, 폴 송가스, 제리 브라운, 하워드 딘, 그리고 버니 쌘더스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바이든은 첫 경선 경쟁인 2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등, 이어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5등으로 쳐졌다. 아이오와에서는 쌘더스 상원의원이 부티지지(P. Buttigieg) 전 사우스벤드 시장과 동률을 이루었고 2월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도 쌘더스가 다소 앞선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2월 22일 네바다 코커스에서도 라띠노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쌘더스가 앞서며 대세론이 만들어졌다. 쌘더스는 2016년 경선 과정에서 얻지 못한 라띠노 표심을 위해 지난 몇년간 공을 들여왔고 특히 오카시오코르테즈(A. Ocasio-Cortez) 하원의원의 지지 선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라띠노 사이에서 ‘버니 삼촌’(Tio Bernie)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지지를 확보했다. 이는 결국 올해 대선 결과에서 드러난 바이든 후보의 라띠노 취약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대역전극이 벌어졌다. 탈락 위기까지 몰렸던 바이든 후보가 2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직전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제임스 클라이번(James Clyburn) 의원의 공개 지지를 받으며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상황은 급변했고 흑인 유권자가 절반이 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바이든은 쌘더스에게 대승(48.5% 대 19.9%)을 거두게 되었다. 승기를 잡은 바이든에게 온건파 지지층이 몰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14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치러지는 3월 3일 ‘슈퍼 화요일’ 직전에 부티지지와 클로버샤(A. Klobuchar)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하차한 일이다. 바이든은 예상대로 캘리포니아에서 패배한 것을 제외하면 텍사스,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등을 석권하며 쌘더스를 압도했고(10개 주 승리), 슈퍼 화요일 이후 블룸버그(M. Bloomberg)와 워런(E. Warren)이 하차하면서 바이든-쌘더스 양자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후 바이든은 3월 10일 중서부 경합주 중 첫번째 경선인 미시간에서도 완승을 거둔 데 이어 3월 17일 플로리다에서도 승리(62% 대 23%)를 거머쥐면서 바이든이 최종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극하게 되었다.
대선은 통상적으로도 과열 경쟁을 겪게 마련이다. 게다가 올해 미국은 이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코로나19)와 건국 이래 끊임없이 겪어온 오래된 위기(인종갈등)를 상반기에 한꺼번에 겪었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온 정치 및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 리더십 위기마저 겪고 있었다. 선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최근 동향을 살펴보자면 1992년 클린턴 당선 이후 미국 대선은 현직 대통령 재선 불패 결과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사실 이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클린턴 8년, 부시 8년, 오바마 8년으로 현직 대통령이 세번 연속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같은 사례는 미국 역사상 1801~24년 제퍼슨, 매디슨, 먼로밖에 없을 정도이다.
이와 관련된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24시간 볼 수 있는 케이블뉴스 채널과 인터넷, 그리고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위주로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바뀜에 따라 현직 대통령 측 선거 전략가들이 이를 활용해 대선 도전자를 애초부터 집중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된 측면이 강하다. 경쟁자에 의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가 정의되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마련인데 본선 경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현직 대통령의 선거 전략에 의해 라이벌 도전자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이번 선거가 이전의 패턴과 분명히 달랐던 점은 코로나 비상사태로 인해 정치 스케줄이 꼬여버림에 따라 현직 대통령이 떠오르는 상대 정당 도전자를 일찌감치 눌러 앉히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정황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해진 이후 바이든 후보가 잠행에 가까울 정도로 선거운동을 자제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를 자신의 입맛대로 비판하고 굴레를 씌우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2020년 미국 대선은 지난 세번의 현직 대통령 재선 과정과 달리 두 후보를 비교하는 ‘선택선거’가 아닌 현직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신임투표’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원들의 바이든 지지 배경으로 “트럼프를 낙선시키기 위함(70%)”이 “바이든이 좋아서(30%)”에 비해 현격히 높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이번 선거가 ‘트럼프 중심 선거’(Trump election)로 흐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초 바이든 후보가 펜실베이니아 대통령선거인단을 획득함으로써 선거 승리를 확정 지었다.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당선인데 현재 바이든은 290명을 획득했다. 이제 바이든은 46대 대통령으로 내년 1월 20일 정오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게 된다. 이번 선거를 제대로 분석하기에는 아직 데이터와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코로나 대응 미흡과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인해 트럼프가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우선 코로나 대응에 있어 과학과 의학을 무시한 채 13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일관한 리더십의 실패를 미국 국민들이 심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일 트럼프가 ‘보통 대통령’처럼 스스로 마스크를 잘 쓰면서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촉구했다면 바이든의 승리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트럼프는 본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의료진의 도움으로 호전된 이후에도 코로나에 걸린 것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 하는 등 미국 전역의 코로나 환자들과 그 가족 및 희생자 가족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또한 지난 5월 경찰의 목 짓누르기 검문으로 인해 살해당한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기억하며 흑인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 반대편에 서는 우편투표를 던진 것도 트럼프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 분열과 갈등을 틈타 자신의 개인 인기와 선거 이익을 추구해온 지도자의 종말을 보게 된 셈이다.
요약하자면 양극화를 부추긴 대통령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도입된 사전투표 방식에 의해 패배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다수에 의한 통치, 소수에 대한 보호라고 규정한다면 더욱 심화된 양극화는 미국 민주주의가 떠안은 커다란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지지세가 50 대 50으로 갈려 다수 세력이 명확하지 않은 현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를 보호하기는커녕 증오하는 풍토, 특정 이념 유권자들만 상대하며 다른 정당 지지자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미디어 환경, 연방 차원이 아닌 주 정부가 선거관리를 맡도록 한 헌법 규정에 따라 주마다 투・개표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난맥상 등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은 가히 위기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 보인 높은 투표율, 2000년 대선 당시 투표용지 부실로 조롱거리가 되었던 플로리다가 이후 선거규정 정비를 통해 올해는 경합주 중 결과를 가장 빨리 발표할 수 있었던 점, 모든 표는 개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에 따라 당파를 떠나 주 정부와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개표중단 요구를 거부한 점, 바이든 당선자가 사회통합과 동맹회복을 외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직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기에는 이르다고 볼 수 있다.
4. 바이든 시대 미국 외교 전망
미국 외교정책은 통상적으로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분석되어왔는데 이는 주로 냉전시기 반덴버그(A. Vandenberg) 상원의원의 “정쟁은 외교정책 앞에서 멈춰야 한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미국의 초당파적 외교정책 기조 때문이다. 또한 왈츠(K. Waltz)의 구조적 현실주의 주창과 더불어 형성된 국내정치로의 환원주의 경계라는 이론적 배경과도 연관이 크다. 현재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 미국 외교정책은 주로 국제정치학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지며 국제정치학자들이 강의하고 있다. 이들은 헌법, 의회, 정당, 선거, 미디어 등 국내정치 요인들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커리큘럼 또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등 국제정치 이념 사조, 미국 외교사, 지역별 현안, 안보・통상・협력 면에서의 이슈 정리 등으로 구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국 정치학계는 대체로 정치 제도 및 정치 과정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바, 이들은 외교정책 및 관련 이슈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다. 요컨대 학계 주류에서는 국내정치로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역사적 관계도 주로 국가와 국가 수준에서 연구되어왔다. 그런데 사실 양 국가 모두 국내정치적 요인이 작용해 관계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결과 중국 이슈는 급속히 국내 이슈처럼 다뤄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다시 말해 미국 내 대통령-의회 관계, 정당 경쟁 구도, 외교정책 관련 미디어 영향력, 국제 이슈와 선거정치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미국 내부의 정치적 관계들과 무관하지 않았던 미중관계사에서 독특한 사례가 있다. 남북전쟁 종료 이후 미국의 존슨 행정부와 중국 청나라 왕조는 1858년 체결된 톈진조약(청나라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4개국 공사가 맺은 개항 조약)의 내용을 확대하여 1868년 벌링게임(Burlingame)조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금지하고 최혜국대우 조항을 양국 무역거래에 적용할 뿐 아니라 중국 노동자들의 미국 이주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급진파 공화당이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중국과의 이 조약은 공화당, 민주당, 대통령 모두 환영하는 외교정책의 쾌거로 인식되었다. 이 정도로 초당파적으로 중국 문제에 뜻을 모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올해 대선 과정에서도 미중관계는 상반기에 중국을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지목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드라이브로 인해 악화일로였다. 하지만 여름 이후 후보 간 차별성 효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중국 문제는 선거 이슈로서의 중요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출구조사에서 드러났듯이 미국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코로나 방역이 아니라 경제회복이었지만 여기에도 중국 이슈를 끌어들일 여지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주지사들이 시행한 경제활동 규제 등 봉쇄(lockdown)조치를 비판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는 이전의 소련 공산주의 이슈와 달리 선거 혹은 국내정치 이슈로서 중국 문제의 영향력이 제한적임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는 일단 관세로 중국을 몰아붙이는 트럼프식 접근법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는 결국 미국 중산층과 노동자 그룹의 생활비 상승으로 귀결된다며 바이든은 이에 반대해왔다. 결정적으로 기술 패권은 양보하지 않되 기타 이슈는 중국과 전략적 경쟁 혹은 ‘재앙 없는 경쟁’으로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부통령 시절 이란 핵협정(JCPOA)과 빠리기후변화협정 과정에서 중국과 맺었던 전략적 협력의 기억을 바이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지켜봐야 할 부분은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이양했던 외교정책 관련 권한을 어떠한 이유로든 되찾아오려고 할 때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마찬가지로 대중국 정책의 큰 전환을 추진한다 해도 현재 정당 경쟁 및 연합 구도상 그것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케네디 행정부 당시 초당파적으로 통과시킨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 232조(safeguarding national security, 가안보)에 근거하여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중국과의 관세전쟁으로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를 우려한 공화당 코커(B. Corker) 상원 외교위원장과 투미(P. Toomey) 공화당 상원의원은 115대 의회 당시 무역확장법 수정안 상정을 시도한 바 있다. “232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에 대해 의회는 60일 이내에 이를 승인할 수 있다. 별도 조치가 없으면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무효화된다. 해당 수입이 국가안보에 해를 끼치는지 여부를 조사할 권한을 상무장관에서 국방장관으로 이행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표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트럼프 일방주의를 경험한 뒤 열리는 바이든 시대에는 바이든을 견제하려는 공화당과 대통령 권한을 줄이려는 민주당의 협력을 통해 제도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에 대한 비호감 내지 반감이 코로나 상황 이후 더욱 증폭된 까닭에 의회 내 강경한 중국 경계 목소리는 지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서로의 시장과 공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미중관계 특성상 미국 의회가 입법정치로 관계 그 자체를 악화시키는 일은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바이든 시대에 한반도 이슈는 미국 정치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것인가? 트럼프 시대와 대비해볼 때 다양한 차원에서 유불리를 논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즉 톱다운(top-down) 방식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개인 스타일이 크게 주목받았지만 사실 근본적으로는 그가 공화당 대통령이라는 점이 더 주효했다. 과거에 닉슨 대통령이 반공주의자였기에 중국과의 타협을 놓고 미국 내에서 반대가 없었던 것처럼 트럼프 역시 공화당 대통령이었기에 당내 안보 강경파가 입을 다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무협상을 통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합의 토대 없이 벌이는 정상회담은 언제든 위험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는 한미 간에 북한 비핵화 이슈에 대한 공감대 형성 및 정보 공유 그리고 전략 모색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민주당 대통령 바이든이 추진하는 북한과의 타협은 이제 공화당 강경 보수파의 비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적절히 차단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우리 정부의 커다란 외교적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전쟁 실패 이후 군사력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의료보험, 기후변화, 이민정책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자는 여론이 팽배해져 있는 미국이기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호의적 상황 조성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바이든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마치 올해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전망이 쉽지 않다. 중서부 경합주들의 우편투표 깜짝 결과, 오바마를 능가한 트럼프의 득표력, 의회선거에서 공화당의 예상 밖 선전,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라띠노의 상이한 선택 등과 같이 미국 정치와 선거를 알 수 없도록 만드는 변수들은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이다. 우리의 국익이 최고 관심사여야 한다. 미국은 다양한 독립변수 중 하나가 되어야 하고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