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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이체 李異體
1988년 충북 청주 출생. 200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가 있음. chronogram@naver.com
살아남은 애인들을 위한 이별 노래
한번의 연애가 끝나자 한편의 시가 완성된다
당신을 필사해온 내 이력의 최후
모든 외마디는 명멸한다
돌아오지 않는 폐곡선,
오늘은 누구라도 나를 조심했으면 좋겠다
상처는 녹슨 뼈에 새겨지는 방식으로 남겨진다
필름이 끝나는 소리가 난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곁에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남겨지는 거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입에서 귀로 흘러들어가는 종언
나는 당신을 저주하는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날짐승들은 흙을 더 많이 기억한다
부르튼 눈동자로 보는, 푸르지 않은 수평선
모두 잊고 태워버린 시집에는
완벽하게 윤색된 기억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거짓말들로 꾸려진 가구들은
언어의 공백을 감정하느라
사무치도록 흉측했을 것이다
오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오해하는
아무 이유 없이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버려진 퍼즐 한조각 같은 불구로 남기를
당신보다 당신의 비밀을 사랑해요
사랑의 애인이란 그토록 외로이 무능하다
처절하고 치졸하다
연애, 가장 소원한 애무로 위로받는 일
타인이 쓰고 간 축축해진 칫솔을 다시 쓰면서
때로, 만나본 적 없는 소문이 나를 살해한다
창가에서 상념과 함께 불그스름하게 젖어드는
육신을 위해 날개를 만들 것이다,
촛농을 녹여 만든……
어떤 애인은 살아서도 방치되는 의미에 가깝다
당신의 뼈를 잊지 않을게요,
부둥켜안아도 만질 수 없던 그 내부의 울림을
입술들을 다시 모아 붙이면
침묵을 폭로하던 홀몸이 부서질 것이다
어떤 익명이 나를 안으면 그 이름이 되겠다
윤회의 집에 이르러,
불살랐던 시집들이 낳은 잿더미가
뿌옇게 바닥을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내 심장을 기억해주시겠습니까
가면들은 저마다 자신을 풍자한 언어에 불과할 뿐
제 몸이 아픈 줄 모르고 떠났다가
죽어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통증을 얻으러 나선 전쟁터에서
수레 가득 주워온 죽음들끼리 서로 부대낀다
저 무일푼의 생애들을
현생에 초대된 적 없는 연애로 봐도 될까
나는 당신이 버리지 않은 시구로만 독해되겠다
비유로부터 빌려온 애인이
헐벗은 습성을 보채고 있다
몇가지 다른 종류의 침묵들이 갖고 싶어지는 순간
문 열린 독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아가(雅歌)
좋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나는 신(神)의 죽음을 목도한 참된 짐승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린 가시떨기나무가
촉수처럼 하늘 곳곳을 더듬고 있는데
오늘은 표현을 잃어버렸다
거추장스러운 폐허에
함몰된 빛
빛의 매음녀들
들리지 않아도 만질 수 있는 목소리,
태어나면서 헤어진
사산된 쌍둥이 형제처럼
성전(聖戰)으로 변질된 싸움이다
궁색한 의문에
무딘 화살들을 순장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무섭다
연주할 수 없는 악기가 필요하다
검은 피의 웅덩이에서 쐐기들을 건져올린다
무덤가에서 우상들은 심리를 앓고 난 후
남몰래 한그루
심어놓은 신(神)을 기억하였다
기억은 삶을 거역하는 유일한 형식
이 세상을 죽이겠다
아무도 나를 좋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