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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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宋竟東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등이 있음.

umokin@hanmail.net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하면서는

한진 노동자들이 조남호 회장과 교섭하며

자신들 정리해고 철회뿐만 아니라

정규직인 자신들보다 우선해고된 1500여명의 비정규직과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고용되어 있다는

2만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 권리와 관련된 문제를

의제로 삼아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조남호는 수빅조선소로 수주 물량을 빼돌려

한진중공업의 일거리를 없애 만든 인위적인 경영상 위기를

정리해고 명분으로 삼았다. 그런 필연적인 연유를 떠나서도

처지가 같은 노동자들끼리 함께 살기를 모색하는 것

난 그게 온당한 노동자들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꾸는 소리는 하지 말라 했다

 

박근혜의 노동3권 개악에 대항해

‘을들의 국민투표’ 운동을 할 때는

정부를 참칭해 대통령선거 전국 투표소 수인

1만 4천개소를 조직해보자 했다

민주노총 총파업과 노농빈이 중심이 된 민중총궐기에 더해

시민사회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주요 전략으로 제안되었다

황당했는지 별반 얘기들이 없었다

벗들과 함께 2500개소까지는 만들어본 듯하다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뇌사상태에 빠지며 조성된 공안정국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할 때 꿈은

2011년 세계 자본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1퍼센트의 금융자본주의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운동을 외쳤던

주코티 공원 텐트촌을 상상하며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청와대 앞 도로까지를

분노한 사람들의 텐트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꿈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이 겨울에 누가 여름용 텐트를 짊어지고 나오겠냐

명백한 불법농성을 공권력이 가만히 있겠냐

하지만 이 역시 나처럼 꿈꾸기와 전복을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배낭을 메고 나갈 수 있었다

결국 야심 찼던 퇴진촌 택지분양에 실패해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아래에 세운

모델하우스 규모 텐트촌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장상설무대, 촛불기원탑,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 광장신문발행위원회, 광장토론위원회, 마을회관,

마을진료소,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등을 둔

작은 꼬뮌은 만들어본 듯하다

 

그때마다 운동권 내부들로부터도

그렇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하지 말라는 질책과

힐난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것 있는가

이제 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

 

 

비대면의 세계

 

 

화성에 온 것 같아요

지구 종말이 온 것 같아요

지금 오전 열한시인데…… 하늘 전체가 주황색이어서 너무 무섭습니다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마치 화성에 온 것 같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수만번의 번개가 치며

한달째 100여곳으로 번진 산불이

대한민국 서울 면적의 20배를 태우고도

꺼지지 않고 있는데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전세계 산소의 20퍼센트를 생산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는

2019년 7만건의 불이 올해 8월까지 10만건의

산불로 이어지며 일년째 타오르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지난 2월 초 남극 마람비오 기지는 때아닌 여름으로

인류가 남극에 발을 디딘 후 역사상 최고 기온이 관측되고

세계에서 가장 추운 북극 북동부 베르호얀스끄에선

38도의 무더위가 찾아오고, 기후변화의 카나리아라는

그린란드의 대륙빙하가 한반도 2배 땅을

1.25미터 높이로 잠글 양인 532조 리터까지

역대 최고 속도로 녹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라 하고

 

안데스 히말라야 등 고원에서 수억년

태양열을 반사하며 지표를 식히는 지구의 거울이었던 빙벽들이

녹아 흐른 빙하호가 지난 십년 새 1.5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우기도 아닌 한반도에 세번의 태풍이 연달아 오고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가 창궐한 까닭도

기후위기 기후재난 기후변화 때문이라는데

 

너무들 한다

아마존 우림이 파괴되는 것이

다국적 식량자본과 소고기 문명을 위한 목축자본

그리고 다국적 광산업을 위해 무차별 개발을 밀어붙이는

브라질의 신종 독재자 보우소나루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너무들 한다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원인이

전세계 석유자본 산업자본의 무한 탐욕 때문이라는 것은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상품 문화 때문이라는 것은

자동차 문명 플라스틱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그 잘난

개발과 발전의 신화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전세계 0.1퍼센트 자본가의 무한한 독점과 축적

1세계 부르주아들의 무한한 안락과 풍요를 위한

약탈과 탐욕의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교육도 언론도 문화도 정치도 너무하다

 

이 모든 종말과 파멸의 주범은

산불도 폭염도 미세먼지도 오존층도 아닌

태풍과 토네이도와 사라져가는 종다양성도 녹아가는 빙하도 아닌

박쥐도 천산갑도 멧돼지도 고양이도 아닌

사스도 메르스도 에볼라도 코로나19도 아닌

 

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온

인간 그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무한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