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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진영 文眞鍈

1987년 강원 춘천 출생. 2009년 창비장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소설집 『눈 속의 겨울』 등이 있음.

anch012@naver.com

 

 

 

미노리와 테쯔

 

 

내가 그 얘기 했나?

수민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 손으로는 칼국수 면발을 집으려고 애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 액정을 빠르게 터치하고 있었다. 수민은 근래 한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막내 작가로 라디오 방송국에 취직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시사방송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아이템 회의가 열렸고, 최신 뉴스도 섭렵해야 했고, 인터뷰이가 연락을 해 오기도 했다. 눈 한번 마주치기가 힘들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세월의 힘이랄까, 우리는 까페에서 만나 한마디 말도 없이 두세시간 동안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무슨?

미노리랑 테쯔, 이혼한 거.

에이.

말 안 했나? 진짜임.

언제?

수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작년 초인가, 하고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놀라버렸다. 미노리와 테쯔가 헤어졌다니. 어쩐지 한 시절이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래서 함께 살게 되는 일은 과연 어떤 걸까 처음으로 생각해본 건 그 둘을 만나고서였다. 연애에는 젬병인 내가. 나는 늘 가망 없는 사람에게 빠지곤 했는데 그것도 뭐 상대를 만지고 싶다거나 애정을 돌려받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것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와의 관계가 구체적인 것으로 변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나는 재빨리 도망치곤 했다. 자기애가 과해서 그렇다는 게 수민의 진단이었다. 그럴 리가.

그걸 왜 인제 말해?

까먹었지 뭐, 하고 수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혼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미노리와 수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런 무심함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토오꾜오에서 돌아온 뒤 수민은 미노리와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토요일마다 회화 학원에 다니기까지 했다. 단지 미노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몇년 뒤 수민이 일본드라마를 자막 없이 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참으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그후로도 수민은 몇차례 일본에 가서 미노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맥주잔을 들고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미노리와 그런 미노리와 뺨을 맞대고 윙크하고 있는 수민의 사진이 메신저로 날아왔을 때 묘한 질투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밴드도 하는 모양이더라.

수민이 말했다.

밴드?

어, 밴드에서 베이스 친대. 인스타에서 봤어.

수민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더니 자, 하고 내 눈앞에 미노리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피드를 천천히 내려보았다. 베이스 기타를 어깨에 메고 밴드 멤버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노리. 콘택트렌즈를 꼈는지 예의 그 뿔테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다. 바닷가에 놀러 간 미노리. 형광 분홍색의 서프보드 앞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미노리는 혓바닥 내미는 걸 좋아하는구나. 혀의 한가운데 동그란 은색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멕시코 음식을 먹는 미노리. 입을 커다랗게 벌린 미노리의 입안으로 따꼬가 들어가기 일보 직전. 아크릴화를 그리는 미노리. 홋까이도오에 놀러 간 미노리. 혓바닥을 내민 수많은 미노리들이 화면 안에 있었다.

식당은 이제 안 하는 것 같던데.

테쯔 소식은 모르겠다고 수민은 말했다.

미노리는 무슨 일 해, 그럼?

나도 몰라, 연락이 끊겼거든.

그래?

응. 답장을 안 하더라.

어깨를 으쓱하는 대신 수민은 한쪽 눈썹을 들었다 내렸다. 수민의 버릇이었다.

사진도 안 올라오던데.

그러고 보니 미노리가 올린 마지막 사진의 날짜는 지난여름이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수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테쯔 트위터 찾음.’ ‘작가 되고 쓸데없이 검색력만 상승.’ 울고 있는 토끼 이모티콘, 그리고 다른 의미 없는 이모티콘이 세개 정도 연속으로 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링크된 주소로 들어가보았다. 읽을 수 없는 일본어로 된 피드가 죽 펼쳐졌다. 프로필 사진과 소개 문구는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팔로워는 마흔두명이었다. 마지막 트윗은 지난주에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온라인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자유롭게 반복하고 차분히 궤도를 읽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운동이다. 그 궤적도 의미가 없다. 그 궤적을 바라보는 시간은 의미에 가까운 것이 있다.’

다른 트윗도 하나 읽어보았다.

‘농담이야말로 굉장히 진지하고, 침묵이 필요하다면 고요함과 약간의 음악이 좋고. 그래서 충분히 알고, 서로 이해할 것이고, 만날 수 없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번역기 탓이겠지만 그런 알쏭달쏭한 문장들이 계속 이어졌는데, 피드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주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움짤들이 있었다. 눈 속을 헤치고 걸어가는 러시아 고양이, 커다란 개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기 고양이 등등. 그런데 수민은 무슨 근거로 이게 테쯔의 계정이라고 하는 걸까? 그러다 사진 한장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싹이 돋은 아보카도 씨앗 사진이었다. 63일째,라고 쓰여 있었다. 테쯔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졌다. 나는 무엇을 확인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전부 우스워졌고 곧장 브라우저 페이지를 닫아버렸다. 그 많던 화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불과 며칠 뒤에, 미노리가 내게 DM을 보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고양이 사진과 어느 날 먹은 곱창전골 사진만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계정이 내 것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으나, 이름 세 글자의 이니셜과 생년을 붙여 만든 내 아이디를 보니 궁금해할 것도 없었다.

미노리는 간단한 영어로 서울에 왔다, 만나고 싶다, 그렇게 적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수민에게도 연락을 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나에게 만나자고 하는 걸까. 미노리와 내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수민에 대한 배신 비슷한 것이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한 건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장고 끝에 수민이도 같이 보는 거냐고 물었다. no,라고 마침표도 없는 단호한 메시지가 돌아왔다. why, 하고 내가 물었다. 상대가 메시지를 적고 있는 동안에만 나타나는 말줄임표가 깜빡거렸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깜빡거렸다. 그러기를 삼분쯤, 결국엔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그 깜빡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미노리는 모를 것이다.

다음 날 점심은 팀점이었다. 한달에 한번 팀원 모두가 함께 밥을 먹는 날. 테이블 앞에 앉아 순댓국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미노리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저녁 어떠냐고.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는 회사 전체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구팀장이 말했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말이야, 눈치가 있어야 돼. 상사가 얘기를 시작할 거 같으면, 핸드폰 보다가도 싹 치우고 말이야. 경청, 경청이 얼마나 중요해.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나는 구팀장한테 미움을 받고 있었다. 구팀장이 저녁 회식에 대해 떠드는 동안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오늘 저녁에 보자. 홧김에 미노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회식 따위 안 가면 그만이지.

내가 일하는 회사는 IT 관련 잡지를 만드는 곳으로, 처음엔 이미 발행된 종이 잡지를 온라인 페이지로 옮기는 작업을 아르바이트로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달쯤 지났을 무렵 손이 빠르다며 편집장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고, 약속된 삼개월이 지난 후에 계약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직원이 되자 나는 자연히 구팀장이 있는 디자인팀에 속했다. 알바일 때는 팀점에 따라가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달랐다. 처음으로 팀점을 하러 간 그날도 구팀장이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말이야, 하고 시작했다. 아직 뭘 모를 때라 나도 귀를 기울였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말이야, 리액션이 좋아야 돼. 상사가 농담을 딱 하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딱 0.5초 빠르게 웃음을 터뜨리라고.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딱 0.5초. 알겠어?

그 말에 팀원들은 와, 하고 웃었는데 나는 웃기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거기 신입이, 하고 구팀장이 나를 불렀다. 네? 하고 대답하자 신입이는 친구 별로 없지? 하고 구 팀장이 말했다. 많은데요 친구, 내가 대꾸했다.

아닌데, 친구 없게 생겼는데.

구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딱 그런 관상이거든.

아주 잠깐,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마침 누군가 재빨리 어머 팀장님 관상도 볼 줄 아세요, 하고 물었으므로 화제는 그쪽으로 넘어갔다. 고마운 사람.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구팀장에게 찍혔다. 찍혔다고는 해도 특별히 나를 괴롭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내가 한 작업에 대해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다른 팀원들에게만 커피를 사다 주거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보면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른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평생직장도 아닌데 그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구팀장 말대로 나는 어쩌면 그런 관상인지도 몰랐다. 사실 내 지인들, 혹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수민을 통해 알게 되어 수민과 함께 어울리다가 가까워진 사람들이었다. 수민이 없어도 내가 그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수민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오래된 친구였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었으니까. 게다가 초중고 동창이었고, 같은 학원에 다녔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나란히 입학하고 나서는 일년 정도 함께 살기도 했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해서 한쪽의 부재를 상상해본 일조차 없었다.

우리는 세트처럼 붙어 다녔다. 수민이 소금이라면 나는 후추랄까. 우리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수민이 발랄한 쪽이라면 나는 얌전한 쪽. 수민이 적극적인 쪽이라면 나는 소심한 쪽.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고 서로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그게 오랜 우정의 비결일 수도.

수민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곁에 있던 나도 덩달아 친구가 많은 것처럼 느끼곤 했다. 내가 수민을 좋아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수민을 좋아했다. 수민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별것 아닌 일도 대단한 일인 양 말하는 재주. 별 볼 일 없는 것도 굉장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재주. 수민에게는 맛없는 음식도, 재미없는 영화도 없었다. 수민과는 쇼핑을 함께 가면 안 된다. 뭐든지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 걸 타고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세계를 긍정적으로 감각하는 능력 같은 것. 수민 앞에 각양각색의 실패를 가져다 놓으면, 마법 지팡이라도 흔드는 것처럼 그것들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걸 수민 매직이라고 불렀다.

 

그해 수민은 아나운서 시험에서 삼년째 낙방하고, 삼년 정도 했으면 됐잖아, 하는 마음으로 다른 진로를 알아보려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모 휴게소에서 반년간 먹고 자며 호두과자를 팔고 난 직후여서 생애 가장 두둑한 잔고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는 마음으로 룰루랄라 떠났다. 나중에 보니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어서 못 떠나고, 돈이 있으면 에너지가 없어서 못 떠나는 거였다. 에너지가 있으면 시간이 없고. 그런 우주적인 순환. 돈, 시간, 에너지, 그때도 그것들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뭐랄까 그 세가지가 아주 적당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날은 토오꾜오 여행 셋째 날이었다. 우리는 시모끼따자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민은 뭔가 직접 하고 사진으로 인증하기를 좋아했고, 나는 여행을 온 건지 만 건지 싶게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시모끼따자와는 수민에게도 내게도 괜찮았는데,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들로 들어차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도 어슬렁거리기에도 좋았기 때문이다.

수민은 방문할 장소에 어울릴 옷과 액세서리를 미리 준비해 오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날 수민은 꽃이 수놓인 리넨 튜닉과 짧은 반바지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뭘 입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수민의 개인 사진사나 다름없었다. 달리 할 일도 없었으므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수민은 열댓걸음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동네 길냥이와 친구가 된 수민. 모자 가게에서 밀짚모자를 써보는 수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수민.

그러다 이내 배가 고파졌다. 마침 근처에 외양만 보면 꽃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입구가 식물 화분으로 가득한 작은 식당이 있었다. 간판을 보니 태국 음식점인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갈대처럼, 키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구부정한 남자가 카운터 뒤에 서서 어서 오라고 말했다. 잘생겼다, 수민이 팔꿈치로 나를 툭 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응? 내가 보기에는 그냥 보통이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잘생긴 편이라고 쳐도 옆 사람을 팔꿈치로 찌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담한 내부에는 4인용 테이블이 세개 있었고, 바 좌석이 대여섯개 있었다. 손님은 아직 우리뿐이었다. 수민과 나는 부엌과 마주한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남자가 메뉴판을 건넸다. 수민이 그것을 받아 들며 산뜻하게 아리가또오, 하고 말했다.

우리가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커다란 종이 상자를 든 여자가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데님으로 된 벙거지를 쓰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우리를 향해 스미마셍, 스미마셍, 하고는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게 뭐냐고, 남자가 물은 모양이었다. 타마네기, 케이꼬상, 잇빠이 같은 단어들이 들렸다. 이웃의 케이꼬상이 양파를 잔뜩 줬는데 고마워서 어떡하지, 그런 얘긴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었다. 여자는 오른쪽 어깨를 한번 휘휘 돌리더니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앞치마의 끈을 여미며 남자와 몇마디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가보다, 싶었지만 그때까지도 두 사람이 부부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팟타이와 솜땀을 주문했다. 여자가 낭비 없는 동작으로, 망설임 없이 척척 음식을 만드는 것을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 카운터 위에 엽서 사이즈의 그림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펜과 색연필로 그린 가게의 외부 모습이었다. 예쁘다, 잘 그렸다, 그런 얘기를 수민과 내가 한국어로 주고받고 있는데 이 사람이 그린 거야, 하고 남자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보다는 일본어 실력이 조금 나은 수민이 알아듣고 소오데스까, 스고이, 하고는 엄지를 들어올렸다.

전적으로 수민의 붙임성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두 사람의 이름이 미노리와 테쯔—테쯔야의 애칭—라는 것, 부부라는 것, 가게를 시작한 지는 이년 정도 되었으며 미노리의 나이는 우리보다 불과 세살 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민과 나는 당시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었으므로, 이미 결혼한데다 가게까지 꾸리고 있는 미노리가 굉장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마칠 때쯤, 저녁에 테쯔의 친구가 근처에서 라이브를 하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미노리가 물었다. 수민은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손뼉을 치며 좋다고 대답했다. 내가 저녁때는 장사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미노리는 우리는 우리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아, 하고 말했다. 우와, 그것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너는 어떤데? 하고 테쯔가 내게 물었다. 나도 좋다고 대답했다. 테쯔가 수민과 나를 세트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미노리와 테쯔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제법 넓은 일층과 다락방처럼 생긴 이층이 있는 술집이었다. 천장에는 미러볼이 돌아가고, 알전구가 벽을 따라 불을 밝히고 있었다. 몸이 다 파묻힐 것만 같은 커다란 빈백 소파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에스닉한 무늬의 방석과 쿠션들, 낮은 테이블과 고물 피아노가 하나 있었고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무대라고 할 만한 공간은 없었지만, 한구석에 스탠드 마이크와 의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할 모양이었다.

우리는 위태롭게 생긴 나무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라기보다는 사다리에 가까웠다. 이층에 들어서자 테쯔는 소인국 건물에 들어선 거인처럼 허리를 거의 완전히 굽혀야 했다. 아, 비루, 하고 미노리가 말하고는 아래층을 향해 소리쳐 주문했다. 알았다는 대답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남자가 맥주 네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계단을 절반쯤 올라왔다. 미노리가 몸을 굽혀 쟁반을 받았다. 잔을 하나씩 나눠 가진 우리는 새삼스럽게 하지메마시떼, 하며 어색하게 건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할까, 말을 고르는 사이 아래층으로부터 기타를 조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민과 나는 테라스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했고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는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고, 쉬는 날에도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새롭고 근사하게 느껴졌다.

공연은 무척 짧았다. 가수는 기타를 연주하며 본인의 자작곡을 세곡 정도 부른 뒤, CD는 카운터에서 살 수 있다고 말했고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기 모인 사람들 전부가 지인이거나 지인의 지인들인 것 같았다. 일종의 품앗이 같은 것.

가게 내부는 적당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맥주를 두잔째 마실 때쯤에는 우리 테이블도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었는데 우리는 단순한 영어에다 약간의 일본어, 약간의 한국어, 그리고 다량의 보디랭귀지를 섞어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미노리와 수민이 주도했다. 테쯔는 대체로 조용히 듣고 있다가, 미노리가 어떤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거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마치 원하는 곳에 정확히 패스를 찔러 넣는 축구선수처럼 필요한 말을 던져주곤 했다. 합이 좋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미노리가 유명한 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자퇴했다는 이야기. 그러고서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요리 수업을 듣게 되었고 결국엔 가게까지 차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둘 다 토오꾜오 태생으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동네를 제집 삼아 드나들었는데 수년이 지나고 나서야 서로 만났다고 했다. 바로 이 술집에서. 공대를 졸업한 테쯔의 꿈은 사실 작가가 되는 것. 소설도 시도 아닌 것을 쓰고 싶다고 했다. 테쯔는 녹색 엄지야, 하고 미노리가 말했다. 그게 뭐냐고 수민이 물었다. green thumb,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 가게 앞의 화분은 전부 테쯔가 가꾸는 것이라고 했다. 수민과 나는 그들에 비해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일들은 오늘을 포함해, 앞으로 무수히 대기하고 있을 거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던 것 같다.

맥주를 세잔 정도 마시자 테쯔도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미노리는 조용해지고, 테쯔와 수민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한번 대화의 흐름을 놓치고는 멍하니 있다가 미노리와 몇마디 나누었을 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화에 열중해 있는 테쯔와 수민은 즐거워 보였다. 테쯔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의 얼굴은 늘 저렇게 환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보카도, 하고 테쯔가 말하는 게 들렸다. 응? 내가 궁금해하자 수민이 통역해주었다. 자기 생각에는 모든 게 다 아보카도라는데? 그 말에 나는 왁, 하고 웃었는데 농담이 아니었는지 테쯔는 웃지 않았다. 아보카도 씨앗에서 싹이 돋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느냐고 그는 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기다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리면 바로 그때 뿅! 테쯔가 말했다. 뿅,이라고 말할 때 자신의 두 손을 새싹 모양으로 만들더니 위로 들어올렸다.

어떻게 생각해? 테쯔가 물었다. 수민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테쯔가 나에게도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였을까, 매일 재능을 갈고닦다보면 멋진 작품이 뿅 하고 나온다든지. 미노리는 웃으며 테쯔는 술에 취하면 꼭 아보카도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테쯔가 뭐라고 대꾸했다. 미노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취하지 않았어, 하고 말한 것 같았다. 조금 피곤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층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제 예닐곱 정도였는데, 다 같이 모여 앉아 테쯔 친구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이 미노리와 테쯔를 불렀다. 이리로 내려오라고.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자, 기타를 잡고 있던 사람이 이제 수민과 나의 차례라고 했다. 호기심과 장난기 어린 눈동자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있었다.

역시나 수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르겠다고 했다. 비틀즈라니, 좋은 선곡이었다. 수민은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려하지는 않지만 제법 맑은 목소리로, 약간은 수줍은 듯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이 정말로 기쁜 듯이.

말 그대로 반짝거렸다. 젊음이라는 것에 얼굴이 있다면 바로 지금 저 애 같은 모습일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흐뭇하고 다정한 얼굴로 수민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후렴구가 시작되자, 모두가 let it be, let it be 하며 목청껏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누군가는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양옆으로 흔들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중학교 이학년 때, 수민이와 나는 한 반이 되었다. 늘 붙어 다녀도 같은 반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한달쯤 지나 반장 선거가 다가왔고, 선생님은 후보를 추천해보라고 했다. 수민 외에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수민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정희주를 추천합니다. 그게 나였다. 당황해서 수민을 돌아보니 수민은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칠판에는 수민과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혔고, 그렇게 투표가 시작되었다. 빈 종이를 받아 든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내 이름을 적었다. 표가 하나도 안 나오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으므로. 개표 결과, 내가 얻은 것은 두표였다. 그중 나머지 한표는 수민의 것이 분명했다.

나이를 먹은 후 나는 종종 웃긴 이야기라며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생각하면 제법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느꼈던 것은 분명 모멸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뒷이야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수민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거냐고, 왜 나를 추천했냐고. 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후보가 없길래 그랬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때 알았다. 아, 이 애는 빈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을 때의 기분 같은 건 평생 모르겠구나. 아보카도 씨앗처럼 웅크리고 있던 뭔가가 그 순간 뿅, 하고 돋아났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테쯔가 말하려던 건 이것이었을까. 그렇게 한번 자라난 것은 되돌릴 수 없었고, 나는 그것을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숨겨두고 문을 잠갔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그 곡은 마치 피날레 같은 느낌이어서,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헤어지면서 미노리와 테쯔는 우리에게 공항으로 가기 전에 꼭 가게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하늘은 깨끗했다. 미노리는 따끈한 쌀국수를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 식물들로 가득한 그들의 가게는 담배 연기 자욱했던 지난밤의 술집과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미노리와 테쯔에게서도 숙취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이 시모끼따자와의 낮과 밤인가.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물론 그때 나는 그것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처를 알았다고 해서 실제로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느냐고. 헤어지면서 가게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한번씩 껴안았다. 테쯔도 수민과 나를 살짝 안아주었는데 키가 얼마나 큰지 얼굴이 그의 명치께에 닿았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서 오래된 책 냄새가 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수민은 구성작가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종일 수업이 있었다. 나는 모 건축회사에서 회계장부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음에는 상공회의소에서 자격증 시험 답안을 채점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이 없을 때면 수민이 종종 방송국에서 하는 녹취 아르바이트를 구해다 주었다. 주로 누군가의 인터뷰 촬영 영상을 보면서 그것을 문자로 타이핑하는 일이었다. 간단한 일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지 않았다. 분명히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어떤 문장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옮겨 적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생각보다 피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주변의 소리들이 활자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이 불가해한 세계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쏟아지는 말들의 의미를 해독하는 와중에 조금씩 소진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종종 두려웠다.

 

미노리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지하철역 앞에 서 있었다. 그때처럼 배기바지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예전보다 두뼘은 더 작아 보였다. 미노리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하고 인사했다. 길가에 벚꽃이 성급하게 피어 있었다. 한껏 멋을 부린 사람들이 즐거운 듯한 표정을 하고 지나갔다. 금요일 밤이었다. 술을 마시겠냐고 묻자 미노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비교적 조용해 보이는 까페로 들어갔다.

미노리는 한국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지난여름 오끼나와에서 서핑을 하다 만난 사람이라고.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또 시작한다고. 인스타그램에는 왜 사진을 더 올리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미노리는 피곤해졌어, 하고 말했다.

테쯔는 미노리 없이 식당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가게를 팔아 얻은 돈의 절반을 미노리에게 주었다고 한다. 미노리는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돈을 탕진할 거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좋게 헤어졌다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미노리는 덧붙였다. 너는 이유가 궁금하겠지만,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수십가지야. 물론 그중에 하나는, 하고 미노리가 뜸을 들였다. 수민이 얘기였다.

수민이 이따금 일본에 오면 테쯔까지 셋이서 함께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테쯔는, 미노리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수민을 바라보곤 했다는 것이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미노리가 노노노, 네버, 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안다고. 미노리는 그냥 슬퍼졌던 거다. 수민이 아니었다면 테쯔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안다는 걸 몰랐을 거라는 게. 어쩌면 평생.

나도 느꼈다. 그날 밤 수민과 테쯔 사이에 흐르던 것. 그것은 남녀 사이에 흐를 법한 묘한 기류,라기보다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었다. 무해하고 싱싱하게 꿈틀거리는 에너지. 그러고 보면 완전히 무해하지는 않은. 어째서 누군가의 젊음이 우리를 상처 입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근데 나를 왜 보자고 한 거야?

내가 물었다. 그러자 너에게 사과를 빚졌어, 하고 미노리가 말했다. 너를 좋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you and me, 미노리가 말했다. we are like, 음, we are like, 미노리는 그뒤에 붙일 단어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알아. 우리는 지구의 다른 한쪽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지. I know, 나는 말했다.

미노리는 천천히 단어를 고르며 이야기를 계속했고, 언제부터인가 완전한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무슨 말인지 다 알았다. 미노리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간혹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미노리가 입을 다물었고, 더는 우리 사이에 할 얘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까페 앞에서, 미노리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짧게 악수했고, 미노리는 그대로 돌아서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가 두통 와 있었고,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희주씨, 구팀장님 화났어요.’ 옆자리에 앉는 회사 동료가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수민이 보낸 실없는 이모티콘이 다섯개 정도 와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일렀고, 이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회식 장소인 돼지갈비집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반대편으로 걸었다. 금요일 밤의 홍대 거리를 통과해서, 반짝거리고 소란스러운 것들 사이를. 나는 그 안에 속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 모두가 나와 무관한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