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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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혜경 李惠敬

1960년생. 1982년 『세계의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그 집 앞』 『틈새』 『너 없는 그 자리』, 장편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기억의 습지』 등이 있음.

kedieng @ gmail.com

 

 

 

타나 토라자, 죽은 이를 위한 축제

 

 

이태 동안 살았던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 내가 목표로 잡은 여행지는 술라웨시섬의 타나 토라자( Tana Toraja)다. 한번도 못 가본 곳.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으로 나오니 웬 남자가 따라 나온다.

“타나 토라자에 가느냐? 내일 아침 열시경 그곳에서 장례식이 있다, 우리가 데려다주겠다.”

그는 끈질기게 따라붙지만, 나는 그에게서 연락처만 받고 공항을 빠져나온다. 택시 카운터에서 시내까지 가는 티켓을 끊는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좀 먼 편이다. 길가에서 다리를 꽁꽁 묶어 우북하게 쌓아놓은 게 더미를 보기도 하고, 펄펄 뛰는 생선을 파는 것도 본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다.

시내로 들어가서 몇군데 숙박업소를 둘러본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 때문에 포기한다. 카펫은 호흡기가 약한 나에겐 불편하다. 근처의 쇼핑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KFC에서 닭 요리를 시켜서 먹는다. 여기까지 와서 KFC라니, 나는 속으로 내가 속물임을 인정한다. 나오다가 베차를 잡는다. 자전거 페달로 움직이는 베차는 이곳에서 흔한 탈것이다. 이곳의 베차는 족자카르타의 것에 비하면 몹시 작다. 사람이 몸을 웅크려야 할 만큼 작다. 천장도 둥글지 않고 되로 깎은 듯 일직선이다. 바퀴를 감싼 틀도 두번 꺾은 직선이다. 천장도 둥글고 바퀴틀도 둥글게 휘어진 족자카르타의 베차가, 그곳 또는 자바섬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키가 크지 않고 부드럽고 단단하게 생긴 청년의 베차를 탄다.

“나는 숙소를 찾고 있어요.”

“이곳엔 호텔이 많아요. 천천히 찾을 수 있어요.”

청년은 여기저기 데려다준다. 내가 방을 보는 동안, 청년은 베차에서 기다린다. 한낮의 땡볕 아래. 삶 …… 저 땡볕 아래 노동으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푸른 청춘. 결국 나는 깨끗한 방을 찾아낸다. 하루 10불 정도인 숙소. 환전소에서 돈을 바꿔서 숙소비를 치른다. 체크인하고 나와서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딘가 물었더니, 중국계인 듯한 호텔 식당 주인은 자기네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테이블이 네개 남짓한 식당이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먹고 싶어요. 우선 산책부터 하고요.”

거기에서 바다 쪽으로 한 블록 걸어가니까 식당이 나온다. 커다랗고 텅 빈 홀. 물걸레로 막 바닥을 훔치고 난 것처럼 습한 기운이 감도는 어둑한 홀이다. “밥 먹을 수 있나요?” 물었더니 된다고 한다. ‘달고 새콤한 소스를 끼얹은 생선 요리’를 주문한다. 통째로 나온 커다란 생선은 살의 결이 쫄깃하니 맛있다. 이따금 복병처럼 가시가 나오지만. 어둑하고 습기 찬, 아무도 없는 커다란 식당. 정면에 밴드를 위한 스테이지까지 있지만 그곳은 비어 있다. 이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면서 그게 또 마음에 든다.

부른 배로 천천히 걸어 석양이 아름답다는 마카사르만(灣)으로 나가본다. 해는 일출 때처럼 급히 떨어진다. 수평선에서 가로로 벌어진, 손으로 가로결을 뜯어놓은 것 같은 구름 사이로 해의 붉고 환한 빛이, 하늘엔 파랑, 비취색, 옥색, 붉은색, 주황색…… 온갖 색이 다 흩어져 있다. 하루의 노역을 마친 배는 검은 음영만으로 사람들을 드러낸 채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그 노역과 무관하게 즐기는 모터보트. 발정한 듯한 모터보트는 파도 위를 겅중거린다.

이튿날 숙소에서 아침에 마가린과 아마도 파파야 잼일 성싶은, 단맛조차 미지근한 잼을 발라 빵을 먹고 나온다. 밤의 흔적일 노점상들의 수레가 아직도 남아 있다. 과일 수레, 어묵과 비슷한 박소를 파는 수레, 그리고 아이스크림 수레, 음료수 수레…… 방죽엔 사람들이 물새처럼 앉아서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다. 날마다 보는 바다를, 아침마다 내다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속이 비치지 않는 더러운 물속에서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 물장구를 친다. 이건 아침을 새로 맞는 세례의식과도 같다. 그중의 몇몇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나는 미끄러운 방죽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사진을 찍는다. 아까부터 말을 걸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실없이 뒤를 쫓던 남자를 물리치기 위해 나는 딴전을 피운다. 베차를 타고 우중판당 박물관으로 가는데, 사람들은 베차 운전수에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고, 베차 운전수는 속없이 우중판당 박물관으로 간다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십분도 채 안 되어 그곳에 도착한다. 입구의 경비실에서 바나나잎에 싼 밥을 먹던 사람에게 불려 가 이름을 적는다. 박물관은 오전 여덟시에 문을 연다. 거의 한시간 남짓 남았다. 나는 그동안 경내를 구경한다. 1545년, 고와왕 때 세워진, 처음엔 흙벽돌이었다 나중에 돌로 쌓은 성곽.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요새로 지었다는 건물. 안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A자 형태인데, 동편과 서편,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은 박물관으로 쓰였다. 마당 가운데엔 3층 높이쯤 되는 회벽 건물이 있고, 미음자 형태의 건물 뒤편으로는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성곽은 돌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곽 높이까지, 성곽 바깥편 마을의 집 지붕들이 높이 올라와 있다. 이 정도 높이로 방어가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오토바이로 먼저 와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남자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한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할 때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다. 그러니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달라.”

나름대로 단호하게 말했더니 남자는 뜻밖이다 싶게 선선히 물러간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다. 박물관이 문을 여는 시각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려 하니 잔돈은 모자라고 큰돈밖에 없다. 매표소에 있던 사람은 단체 할인표를 끊어준다. 박물관에서 물으면 ‘잔돈이 없어서 이 표를 끊어주었다’라고 말하라고 일러준다. 친절하고 소박한 마음. 목조 2층 진열실. 맞은편으로 가서 미니어처 프람바난 사원을 본다. 현재의 프람바난 가장자리까지 많은 탑들이 늘어서 있다. 다섯겹 또는 네겹으로. 로로 종그랑을 위시한 주탑을 둘러싼 탑들. 옛날 돈을 진열해놓은 곳에선 오늘날과 표기법이 다른 돈들을 본다. ratus가 ratoes로, rupiah가 roepiah로 표기된 돈들. 아마도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표기법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어쩌면 이 건물도 그 시기에 지어졌을 것이다. 아래층의 도자기실로 들어가려다가, 창살 너머를 내다본다. 고요한 그늘뿐인 실내와 달리, 잘 다듬어진 정원에는 벌써 아침 볕이 그득하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다. 가슴 철렁해지는, 남자의 애절한 노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노래를 듣는다. 흙바닥에 얼굴을 묻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혼곤한 낮잠. 터미널로 나를 데려다주기로 한 택시는 아홉시에 오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리다보면, 새벽에 타나 토라자에 닿는다고 들었다.

타나 토라자로 가는 버스 터미널은 밤인데도 흥청거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묵은 피로들이 공기 중에 비듬처럼 떠다닌다. 돈 내고 전화할 수 있는 와르텔에 가서 족자카르타에 있는 친구 B에게 전화한다. 떠나오기 전, 그녀와 함께 디엥고원에 갔었다. 그녀는 족자에서 만난 좋은 친구였다. 이제 아주 떠난다는 감상 때문이었나? 아니면 이곳에서 나 홀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감상이었을까? 짧은 통화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내가 탄 자리엔 발받이가 고장 났고, 그래서 배낭을 발밑에 두고 거기에 발을 올린다. 내 옆자리, 창가 쪽에는 암본 태생이라는, 타나 토라자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젊은이가 앉아 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한다. 밤길이다. 하늘은 흐리고, 달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자다 깨다 하면서 밤길을 달린다. 버스에 오르기 전 산 물을 간간이 마시면서, 때로는 입을 헹구면서 간다. 옆자리 남자가 호주머니에서 빗을 꺼내어 정성스럽게 머리를 빗는다. 머리에 기름칠이 짙은 남자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자취를 남긴다. 중간에 두세번, 버스가 휴게소에 멎는다. 내려서 가본다.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는 화장실도 있고, 뜻밖이다 싶게 청결한 화장실도 있다. 정작 타나 토라자 부근에선 잠들었다. 새벽녘, 도착할 즈음에 깨어났다. 타나 토라자로 들어가 두번째 들른 집에서 묵기로 한다. 강가의 숙소, 2층이라 온통 눈앞에 펼쳐진 자연. 아침을 시켜서 먹고 여행사를 찾아 나선다. 이곳의 자연은 한국 같다. 자바섬에선 휑한 벌판에 삼각뿔로 돋은 산만 보았는데, 여기선 제법 산맥이 흐른다. 여행사라기보다는 심부름센터 같은 곳이다. 일가족과, 관광고등학교에 다니는 그 집 딸 아니와, 아니의 친구라는 청년이 있었다. 첫날은 자유롭게 버스를 타고 다니고, 실습을 위한 거니까 돈은 안 줘도 되고, 그 대신 점심값이랑 차비만 지불하면 되는 조건으로 그 청년과 나섰다. 청년의 이름은 코르넬리우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청년에게 물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극작가가 있는데, 아느냐?” 청년은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조그마한 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갈아타는 정류장은 혼잡하다. 트럭 위에 짐을 가득 싣고, 그 위에 또 올라탄 사람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삼간다. 사람들은 외국 여자가 혼자 이 조그만 버스에 탄 게 신기한 모양이다.

청년이 나를 안내한 곳은 무덤이다. 산을 한참 올라간 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 그 바위를 뚫고 낸 네모진 구멍들. 그 안에 시신이 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높은 곳에 안치시키려 한 것일까? 한개의 바위 안에 네모진 문이 스무개는 되어 보인다. 낡은 나무 문과 새롭게 단 나무 문. 그 앞에, 그리고 옆에, 사진이 있거나 꽃이 놓여 있기도 하다. 바위에는 또다른 구멍을 뚫기 위한 작업 중인 듯, 나무로 엮은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파다 만 구멍도 보인다. 그리고 아래쪽엔 채 치우지 못한 상여와 그 상여에 매달렸던 꽃의 흔적이 지저분하다. 죽음잔치를 치르기 위해서 몇달이고 몇년이고 기다려야 하는 시신들. 타나 토라자에선 죽음을 ‘죽은 이를 위한 축제’로 여긴다고 했다.

 

그 무덤에서 나올 땐 이미 볕이 따갑다. 코르넬리우스와 나는 한길을 걸어 내려온다. 중간에 목이 말라서 들른 가게엔 거만해 보이는, 그 거만함으로 인해 외로워 보이는 한 남자가 왠지 비굴하고 종속적으로 보이는 다른 젊은이와 함께 있다. 남자는 내게 말을 건다. 어디에서 왔느냐, 왜 혼자 다니느냐? 망원경을 내보이며 한번 보겠냐고 묻는다. 나는 예의상, 그리고 호기심도 없지 않았으므로 망원경으로 저 아래, 광활한 들판 너머의 산을 본다. 하지만 렌즈가 잡아당긴 풍경은 멀리서 보는 것만큼 사실적이진 않다. 남자는 시종일관 남을 낮추보는 눈길로 ‘너’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나에게 수작을 건다. 자기는 여자를 찾는 중이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그러는 남자에게 나는 말한다. “그래, 그런데 우리 남편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는 놀라는 시늉을 한다. “정말 결혼했느냐?” 외국에 살면서 거짓말이 늘었다. “그럼, 내 남편은 태권도 사범이야. 지금 자바섬에 있어.”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나오는 길에 검은 사롱을 입은 사람들과 만난다. 어디선가 장례식이 있는 모양이다.

“보고 싶은가요?” 코르넬리우스가 묻는다.

“물론, 나는 이 장례식을 보러 여기까지 왔어요.”

장례식은 내일이지만, 길가에 널린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코르넬리우스를 따라, 길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집으로 간다. 길은 진창이고, 돼지들이 청년들의 목도에 거꾸로 매달린 채 간다. 꽥, 꽤액……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돼지도 있고, 눈가에 진물이 흐른 채 체념한 듯한 돼지도 있다. 집 입구엔 대나무로 엮은 정자 같은 게 줄줄이 이어졌다. 마당 안쪽엔 몸뚱이가 해체된 소 대가리가 나뒹굴고, 피가 낭자하다. 검은 옷을 입은 서른명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원을 그리고 서서 그레고리안 성가의 음률처럼 단순한 음조의 노래를 부른다. 돼지를 백마리쯤 잡는 큰 장례란다. 입구에서 놀던 아이들이 와서 관람권을 판다. 코르넬리우스는 한장만 사라고 말한다. 골짜기 건너편은 왕이나 귀족들이 묻혔다는 낡은 무덤이다. 20미터는 됨직한 절벽을 마주한 곳에 서서 바라본다. 묵은 무덤 하나는 나무 문이 삭아서 그 안에 놓인 해골이 어렴풋이 보인다. 무덤에서 흘러내린 물—시체 썩은 물일지도 모른다—이 벽면에 검은 얼룩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절벽 위쪽엔 나무의 뿌리가 절벽을 감고 돈다. 골짜기는 서늘하다. 이 골짜기로 들어와, 대나무를 자른 비계를 놓고 바위를 쪼아대며 묘를 만들었을 사람들. 죽은 다음에 이토록 서늘한 곳에 묻히는 게 그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들의 영혼은 바라던 대로 천국에, 하늘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까?

 

엄마가 세상을 뜨신 건 내가 이십대의 끝자락에 있을 때였다. 엄마는 3년 동안 자리에 누워 계셨다. 옆방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이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의하는 동안 엄마는 혼자 눈을 감으셨다. 직장에서 연락받고 내려갔을 때 엄마는 이미 병풍 뒤에 계셨다. 거기 계신 게 엄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중에 이모는 나의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동생을 잘 돌봐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몇해 뒤, 이번엔 이모가 세상을 떠나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모는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딸 하나를 키우며 사셨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이 있는 동생네 집으로 오셔서 과일을 받아다가 해수욕장에서 판매하셨다. 나의 둘째 언니는 이모 곁에 있다가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지나가면 “아버지!” 하고 반갑게 불렀다. 가난한 처형 옆에서 자기를 부르는 딸이 아버지에겐 반갑지 않았다.

내가 찾아뵈니 이모는 방바닥에 누우신 채로 빨대로 소주를 몇모금 삼키실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잠결인 듯 가늘게 노래를 부르셨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꿰매주신 색동저고리,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팔순 가까운 이모님이 부르시는 동요…… 그런 뒤에 다시 소주를 한모금 삼키셨다. 미음이 아니고 왜 소주였을까? 내가 떠나오려 할 때 이모는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너 혼자 살지 말고 결혼해라.” 평생 혼자 살아오신 이모님의 말씀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집을 떠났다. 그리고 한주일 뒤, 이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이모는, 내 주위에선 드물게 사람의 마음을 볼 줄 아는 분이셨다. 사람은 결국 두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의 길이거나 힘의 길. 이모는 그중 사랑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 곧바로 걸어가셨다. 반면 아버지는 힘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드셨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 코르넬리우스는 지름길을 택한다. 마을로 난 길이다. 천연염료를 썼다는 마을의 집은 배의 용골 모양으로 치솟은 지붕, 검은색과 짙은 밤색이 주조를 이룬 무늬들. 마을을 벗어나 논둑길에서 턱진 부분에서 내리다가 그만 진창에 미끄러졌다. 내 신발이 너무 낡았던 탓이다. 육칠년은 신어서 원래의 청색은 간데없고 회색이 되어버린 신발. 도랑물에 바짓가랑이를 씻어내며 속으로 신발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읊조린다. 군데군데 바위가 박힌 논이 영남 지방 어디메쯤을 닮았을 논 한가운데, 적도 아래,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우기의 벌판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없애야지, 하고 나에게 말해준다.

논길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드는데 마침 아주 작은 승합버스 한대가 다가온다. 코르넬리우스와 함께 그 버스에 오른다. 물러서는 풍경들. 시내로 들어서서 걷는데, 억수 같은 소낙비가 쏟아진다. 술라웨시는 아직 우기라서 볕이 쨍쨍하다가도 오후 세시경이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 코르넬리우스와 나는 비를 그으러 한 노인네가 내다보는 집 옆, 평상 같은 곳에 앉는다. 죽죽 쏟아지는 소낙비, 잠깐 비가 듣는 틈에 나와보지만, 갑자기 기세 돋운 비에 또다시…… 코르넬리우스는 친구가 한다는 학원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쓰인 글씨는 여행사다. 들어가니, 입구에 낮은 탁자를 두고 코르넬리우스의 친구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십자말풀이 비슷한 것이다. 바둑판 모양의 틀에 알파벳이 쓰인 말을 하나씩 잇달아 놓아서 가로로도 세로로도 영단어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자 선생이 억센 발음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영어 선생이고, 코르넬리우스보다 훨씬 영어가 낫지만, 그러나 내게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코르넬리우스의 겸손이 더 마음에 든다.

그날 저녁, 숙소로 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잠들었다.

꿈속에서 웬 할머니가 슈퍼에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빵을 사서 돈을 내고 그 자리에서 뜯어 드셨다. 할머니가 나가신 뒤, 그 할머니가 두고 간 돈이 가랑잎이었다는 걸 알고 소스라치는 슈퍼 주인을 보았다. 할머니는 그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신 뒤였다.

청주 근처의 절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절을 지키던 보살이 어느 날 말했다. 근처 마을의 작은 슈퍼에 한 할머니가 저녁 무렵에 오셨다, 그리고 빵을 사서 드셨다, 가신 뒤에 보니 할머니가 내신 돈은 지폐가 아니라 가랑잎이었다고. 알고 보니 그 할머니, 제삿날이라 제삿밥 잡수시러 오셨는데, 아들이 교회 다녀서 제사를 모시지 않았고, 그래서 슈퍼에서 빵을 먹고 가셨다고. 새벽에 깨어나니 정신이 멍하다. 오래전 한번 들은 그 이야기가 왜 그리 남았던가.

다음 날 아침, 여행사에서 만난, 침착한 눈매가 인상 깊던 아니가 왔다. 차만 보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맨 처음 간 곳은 역시 장례식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뒤편의 산자락으로 걸어 올라간다. 산자락 곳곳에는 무덤이, 해골이 널려 있다. 절벽 우묵한 곳에 나무로 만든 관이 삭아 내리고, 그 안에 해골과 뼈들이 안치되어 있다. ‘아롱’이라는 이 관은 배 모양 또는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아니는 나를 데리고 론다라는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 안에도 뼈가 있다. 육탈한 뼈들. 어떤 뼈는 골다공증이었는지 퍽퍽하게 구멍이 뚫려 있다. 오래된 뼈는 고목나무 등걸 같다. 남자애들 몇이 올라가다가 그 뼈 중의 하나를 붙잡아 자기 허벅지뼈와 비교하며 웃는다. 저 젊음도 곧 무너지고, 한줌 뼈로 돌아가리니. 청소를 하던 관리인인 듯한 남자는 제지하지 않고 그냥 바라본다. 레모 마을에선 절벽 위에 관을 집어넣고, 그 옆에 망자를 대신한 타우타우라는 목각 인형을 만들어 모아놓고, 자바라에 자물쇠를 채워둔다. 그 절벽을 올려다보니 무섭다. 죽은 이들보다 인형이 더 무섭다.

논으로 내려가는 길섶의 어미닭, 낯선 기척이 들리자 갓 깨어난 듯한 병아리떼를 몰고 급히 길가 풀섶에 숨는다. 제 자식들 목숨 구한다는 자구책이었겠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환히 보인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길에서 만난 촌부는 붉은 잇몸에 검은 이. 푸른 손뜨개 목도리를 머리에 겹겹이 두르고, 맨발로 뜨겁게 달궈진 포장도로를 걷는다. 가게에서 여인들은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헤치며 서로 이를 잡아주고 있다.

죽은 아이들을 묻어주는 나무. 그 나무에선 흰 수액이 나온다. 사람의 젖처럼 진한 수액. 아이가 이도 나기 전에 세상을 떠나면, 나무 속을 파고 그 안에 아이를 묻는다. 관광객인 나를 따라온 꼬마들에게 아기를 바로 묻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중구난방이다. 뼈만 묻는다는 아이들도 있고, 아기가 숨을 놓자마자 묻는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 나무에 묻힌 아기는 나무의 젖을 먹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무의 이름은 우유나무다.

그곳에서 나와 다른 장례식에 간다. 아니의 아버지 또한 그 장례식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6개월쯤 전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다. 먼 곳에 있는 친척들은 장례식 소식을 들으면 바로 달려온다고. 대나무로 엮은 고상주택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위에는 천막이 쳐져 있다. 오늘 장례식을 치르는 집은 37개의 고상주택을 지었다. 가구마다 앞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거나 이름이 쓰여 있다. 모여든 일가친척은 그 건물에서 사흘 혹은 나흘을 먹고 잔다고 한다.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돌아가려고 하니, 무언가를 먹고 가야 한다면서 나와 아니를 한 집 안에 밀어 넣는다. 아까부터 호기심을 돋우었던, 색색의 조각천을 휘장처럼 두른 집이다. 우리나라 색동 보자기를 넓게 펼친 것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 안쪽에, 우리 식으로 말하면 종손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고, 주변에 할머니며 다른 이들이 앉아 있다. 다디단 차와 몇가지 과자가 나온다. 그걸 먹고, 준비해 간 담배를 한보루 놓고 나온다.

그날 밤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내가 앉은 자리는 맨 구석이다. 사람들은 잠이 든다. 산은 굽이를 이루며 내려오는 길을 만드는데, 한 굽이를 돌면 아스라한 안개가 나무를 혼몽하게 하고 있고, 조금 더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달을 조금 넘어 둥글어지는 달이…… 달빛에 죽어 아슴한 별이…… 그러다가 때로는 굽이를 돌면 턱, 가슴 치는 아스라한 절벽.

 

이또오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 감옥에 있던 아들 안중근에게 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편지를 쓴다. “너는 대의를 행하다 갇힌 것이니, 적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마라. 네가 만약 이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내가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원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동생들 편에 보낸 이 편지와 수의를 본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한다. 젊은 자식더러 목숨을 버리라고 했을 그 어머니가 지어 보낸 수의는. 서른두살, 푸른 나이에 목숨을 저버려야 했던 안중근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머니의 말씀에 항소를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렸을 안중근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자카르타로 돌아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경유지인 타일랜드행 항공편을 끊는다. 보라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룬 타이항공 비행기에 오른다. 카, 카, 어미의 흘려보내는 듯한 어감이 인상적인 타이말. 앞으로 한주일, 말도 못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게 기껍고 두렵다. 비행기는 싱가포르를 거쳐 타일랜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 닿는다. 밤 10시 45분. 방콕 공항에 들어서 입국 심사대를 거치는데 친절하게 웃던 심사원이 통과하는 나를 부르더니 묻는다. “북한이에요, 남한이에요?” “남한요.” 대답하고 나와서 짐을 찾고, 밤새울 곳이 있는지 묻는다. 11시 40분쯤 되었는데, 공항 안은 시끌시끌하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들이 쉬었다 가는 지점, 벌써 한국말들이, 그 소음을 뚫고 내 귀를 툭툭 친다.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끌고 3층으로 올라간다. 거기에 스낵 코너가 있다. 벌써 플라스틱 벤치에 누워서 곤히 잠든 사람도 보인다. 스낵 코너에서 오렌지주스를 한통 산다. 주스는 신선하고 달다. 그러다가 남들 먹는 걸 보아가며 국수를 시킨다. 생녹두나물을 국물에 담그고 설익힌 식재료를 얹은 국수. 조심스럽게 먹어보니 맛있다. 국물까지 훌훌 마신다. 아직도 다섯시간쯤이 남았다. 나는 밀린 기록을 정리한다. 일본 사람 같은 여자가 혼자 앉아, 책과 영수증과 티켓들을 정리해가며 무언가를 기록한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 배낭여행족이 혼자 앉아 있고, 항공사 승무원인지 공항 직원인지 제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몰려와서 야참을 먹는다. 야간작업, 밤에 깨어 있는 수고로움.

맥도날드에 가서 커피를 주문한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나 듣는다!” 웬 남자가 길길이 뛰며 들어온다. 두 서양 남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더니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듣는다. 이 비행기는 내일 못 떠난다. 홍콩으로 내일 못 간다.” 문법을 무시한, 단어의 나열로 이어지는 말들이 단속적으로 쏟아진다. 태국인일 성싶은 사내가, 의아하고 냉정한 눈초리를 던지는 외국인 앞에서 그러고 있다. 연극 같다.

방콕에 당도하니 새벽 다섯시,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나는 밖이 궁금하다. 택시 카운터로 가서 택시를 잡는다.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택시 운전사와 함께 간다. 맨 처음 까오산 거리로 간다. 가는 길에, 한국에서 복사해온 『세계를 간다』에서 보아둔 호텔 이름을 댄다. ‘벤츠 대리점 뒤편’으로 나와 있는데, 가다 보니 정말 벤츠 대리점이 눈에 띈다. 호텔은 안뜰이 있는, 삭막한 디귿자 형태의 건물이다. 거기도 괜찮았지만, 낯선 도시에서 안전을 고려해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기다리던 운전사와 함께 간다. 타이호텔이다. 호텔은 낡았지만 정갈하다. 문들은 회청색이라 냉랭하기 짝이 없다. 입구엔 동상 같은 게 서 있고, 그 앞에 꽃목걸이, 시가, 차 등을 바쳤을 뿐. 방은 삭막하지만 안정감이 있다. 리셉션에 있는 사람은 중국계 또는 말레이계인 듯한데, 아무런 표정이 없다. 방에 들어와서야 그 방의 삭막함이 색상 선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은회색 커튼에 은회색 침대 시트. 그밖에도 갖출 건 다 갖춘 방이다. 일단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샤워를 하면서 보니 청결하다.

다음 날, 방콕의 사원들을 돌아본다. 우선 왓프라깨우로 간다. 입장권을 사려면 돈을 바꿔야 하는데, 내 수중엔 달러화밖에 없다. 그래서 환전소가 문을 열자마자 가서 돈을 바꾼다.

몇동이 되는지 모를 사원 건물은 번쩍인다. 우기, 해는 구름에 가려져 있으나 구름 건너편에서 찌는 듯한 열기로 자기의 존재를 환기해, 사람들은 볕 없이도 모자를 찾는다.

왕궁을 겸한 사원 벽면은 온통 유리투성이다. 외벽의 회랑은 황톳빛과 쑥색 작은 도기 기와로 무늬졌고, 외벽은 타일과 유리, 거울들로 반짝인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빛나는 사원을 지었는지. 목에 양란 목걸이를 두른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경상도와 전라도, 각종 사투리로 시끄럽다. 얼굴이 얽은 태국인 가이드는 “흩어지면 열한시에 탑 앞에서 만나요.” “자, 병아리반, 하나 둘 ……” 이렇게 구령을 붙여가며 사람들을 모은다. 또다른 남자 가이드는 회랑 벽면을 장식한 그림을 설명한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는데,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이 그 여자를 데려갔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에서 나왔을 이야기.

나와서 서성이는데 뚝뚝 운전수가 지도를 펼치며 다가온다. 첫 운전수를 그냥 보내고, 두번째 운전수가 끌고 온 뚝뚝에 오른다. 먼저 엑스포라는 곳에 간다. 엑스포 기념관인가, 언제 이곳에서 엑스포가 열린 것일까, 하면서 가보니 에메랄드 같은 보석을 파는 곳이었다. 그러니 손님을 데리고 오면 기름을 넣어주는 거겠지. 나는 그곳에서 그냥 나온다.

그다음에 이른 곳은 ‘물의 사원’이라는 곳이다. 여섯 모난 좁다란 법당 한가운데 수조가 있고, 그 위에 등신불로 보이는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 부처는 발치에 실꾸리 같은 걸 놓고 있고, 그 실꾸리에서 풀려 나온 실이 수조와 이어져 있다. 법당 벽면은 호리병 모양 유리병을 채운 진열장이다. 그 유리병 안은 맑은 물이다. 맨몸에 가사만 걸친 스님 한분이 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실로 주둥이를 비틀고 있다.

이젠 어디로 가나. 사원에는 질린 듯하다. 무턱대고 화려한 타일 조각들, 현란한 색에 물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비만멕 궁전으로 간다. 30명 이상이 차면 가이드가 이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궁전. 아래층, 계단 입구에서 가방과 신을 벗게 하고, 반바지 차림인 사람은 사롱을 두르게 하고, 나처럼 허리에 셔츠를 두른 사람은 복장 불량으로 지적을 받고. 우리나라 고궁이나 유적지를 관람할 때 이런 형식이 있었나, 문득 궁금해진다. 공원 안에 있는 그 건물은 연한 쑥색으로 내부를 칠했다. 나무로만 만들고 못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 건물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건물의 정형에서 벗어난 형태, 사람들은 줄을 지어 그 건물 안의 방들을 기웃거린다. 한때 건물 안에서 살았던 이들의 흑백 사진, 그리고 가구들. 길쭉한 육각형의 서재와 침대가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여 있는 침실, 그리고 침실이 있는 모퉁이의 욕실. 죽은 이들의 내밀한 삶이 낱낱이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 그리고 어느 방인가를 지나치려 할 때 자동 피아노가 연주를 한다. 그만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누가 도미노 패를 툭 건드린 것처럼.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네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게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했는지……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들 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사람은 태어날 때 몸 안에 죽음을 끼고 온다. 사람이 자랄수록 죽음도 더 커진다. 애니메이션의 거대한 괴물처럼. 몸 안에 깃든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그게 삶이려니……

아침 비행기로 치앙마이에 간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공항의 호텔 카운터에서 호텔을 소개받는다. 700밧쯤 되는 호텔.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택시로 무조건 100밧이라고 한다. 택시 운전사는 이곳에서 만난 누구보다도 영어를 잘한다. 소개받은 호텔은 뜻밖에 고층건물이다. 그리고 방콕의 호텔에 비해 삭막함이 덜하다. 짐을 풀고 나와 뚝뚝을 타고 왓프라싱에 간다. 들어가는 입구에 법당이 있고, 입구 오른편엔 아주 조그맣고 아름다운 누각이 있다. 법당을 지나서 뒤편으로 가자, 말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목조건물이 보인다. 굳게 닫힌 건물이다. 덧칠을 조금도 하지 않아 삭은 나무에도 도기로 장식했던 흔적이 보인다. 정면 문의 보살상은 사람들이 저마다 금종이를 덧입힌 듯 농담이 다르다.

다시 근처에 있는 왓체디루앙으로 간다. 회벽 칠한 법당은 서구적인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지만 정작 법당 안에 들어서니 아주 낡고 해묵은 분위기. 바닥의 타일에도 세월이 간직되어 있다. 노스님 한분, 커다란 불상 아래 웅크리고 앉아 경을 읽고 계시고, 젊은 승려 한분은 철망 쳐진 창가에 앉아 경을 읽으신다. 입구에는 ‘배고픈 개들을 위한 헌금함’ ‘집 잃은 어린이를 위한 헌금함’ ‘아픈 원숭이를 위한 헌금함’ 등으로 명목을 나눈 헌금함이 줄줄이 놓여 있다. 거기서 나와 뒤편으로 한가히 걸어가다가 나는 갑자기 무엇에 맞은 듯, 서버린다.

흙벽돌로 쌓은 거대한 탑, 위쪽이 미륵사지의 석탑처럼 절반쯤, 그러나 완만하게 무너진 탑. 사면의 누대 위에 부처가 계시고, 정면을 제외한 삼면은 부처에게 이르는 길을 계단이 아니라 비탈로 만들어놓았다.

호텔로 들어오다가 프런트 데스크에서 투어를 신청한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와 샤워하고 잠든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하기로 한 투어. 십분 전에 내려가서 기다렸지만 가이드가 도착하지 않아 기다린다. 45분쯤에 나타난 가이드는 여자였다. 코치에 오르니 순 서양인들이다. 조금 가다가 차가 멎더니 가이드가 나더러 앞의 차로 옮겨 타라고 한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인가 싶었지만 그리로 갔다. 나중에 코끼리 탈 때 알았다. 짝이 안 맞은 것이었다. 가이드는 끌렝껭을 내민다. 바야흐로 태국은 끌렝껭의 철이다.

출발하고 한시간이 채 못 되어 코끼리 타기부터 시작한다. 차를 세우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니 코끼리들. 제가 태어난 밀림에서 제 뜻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두명씩 짝을 이루어 타는데, 짝이 없던 나는 앞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서양 남자와 함께 탄다. 젊고, 이마가 대머리에 가깝게 벗어졌고, 소 잡아먹은 것처럼 아무 말도 안 하는 청년. 코끼리 등에 얹은 수레 위에 나란히 앉아서 말없이 간다. 조금 있다가, 코끼리 모는 사람이 나더러 코끼리의 목에 타라고 한다. 등에 탄 것도 불편한데 목이라니. 나는 감히 그럴 수 없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리로 간다. 코끼리는 갈매기 모양처럼 가운데 골이 파인 머리의 왼쪽에 화상 자국 같은 흉터가 있다. 자세히 보니 담뱃불로 지진 상처다. 어떤 인간이 그런 걸까. 코끼리는 그 모욕과 아픔을 어떻게 참아낸 걸까. 거죽에 검은 털이 수직으로 숭숭 돋은 코끼리의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날벌레가 들러붙을 때마다 코끼리는 귀를 부채처럼 철썩여 쫓으려 하지만, 그러나 청년의 양발이 코끼리의 뒤편에 걸쳐져 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코끼리 아래쪽에 아주 작은 아기 코끼리가 엄마를 쫓아간다. 이렇게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모습 말고 다른 무엇을 아기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그 어미. 비탈길, 진 길을 비척거리며 미끄러지면서 걸어가는 코끼리떼, 이따금 코끼리가 쉬를 하는 동안 멈춰 선다. 그걸 보면서 관광객들은 웃는다. 사람이 쉬를 하는 동안 다른 동물들이 그걸 보면서 웃는다면?

50분쯤 되는 코끼리 타기가 끝나고, 산길을 걸어 카렌족 마을에 간다. 입구에서 가이드가 나뭇잎을 한장 뜯어와 찢는다. 나뭇잎을 잘게 짓이기자 핏물 같은 붉은 색이 배어 나온다. 조금 더 가니 목적지가 나온다. 카렌족은 주로 미얀마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다.

몇군데 들러서 쉬고, 폭포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평범한 물줄기에 지나지 않는 곳에 들렀다가 내려와서 뗏목을 탄다. 통대나무 열개를 엮어서 만든 뗏목이다. 어린아이들에겐 구명조끼를 입히지만 성인들은 그마저 없다. 하기야, 가다보니 빠진다 해도 어른 허리춤까지밖에 안 되는 깊이다. 우비를 집어 썼지만, 아무래도 물방울이 튄다. 바위가 있는 곳에서 격류를 만나, 아랫도리가 다 젖어버린다. 한시간 남짓 탄 보트에서 내리자, 가이드는 그걸 다시 해체한다. 그걸 차에 싣고 올라가 또다른 팀을 태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들 말이 없다. 차는 골목골목의 작은 숙소들을 돌며 승객들을 내려준다. 맨 마지막까지 남은 건 나와, 코끼리를 같이 탔던 청년이다. 나를 내려준 곳은 내가 머물던 호텔이 아니다. 거기에서 나는 젖은 엉덩이를 셔츠로 가리고 묵던 호텔로 뛰어든다. 신발도 다 젖었다. 이제 버리고 가도 되겠구나. 홀가분한 마음 하나, 허전한 마음 하나. 오래 신었던 신발 한켤레를 버리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이야. 정든 사람 떠나보내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울까. 정들지 말자고, 매워지자고, 오래 신어 낡고 바래버린 신발이 내게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