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문광 『탄허 선사의 사교 회통 사상』, 민족사 2020

탄허 스님의 불교 회통 사상에 대한 획기적 연구

 

 

이원석 李元錫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lws3904@hanmail.net

 

 

190_455

문광 스님의 『탄허 선사의 사교 회통 사상』은 2018년 8월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탄허 택성의 사교회통사상 연구」를 간략하게 수정하고 「서언: 몽견탄허기」를 붙여 출판한 것이다. 참고로 사교 회통이란 유학·불교·선도〔노장〕·기독교의 회통이고, 그 중심은 불교이다. 지면의 제한으로 탄허(呑虛) 스님과 저자의 소개는 생략하고, 본서의 중요 내용을 살펴보겠다. 다만 사상사의 용어 서술에 대해서는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탄허의 회통 사상은 가학(家學)과 부친 김홍규와 관련된 보천교리, 처가인 토정 이지함의 학풍, 그리고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에게 출가한 이후 10년가량의 참선과 이력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회통은 『주역』 「계사상」의 ‘관기회통(觀其會通)’에서 비롯되어 ‘융회관통(融會貫通)’에 근사하며 최치원·원효·함허에게서 그 전통이 고찰되었다.

탄허 회통론의 핵심은 선과 화엄이고, 선체교용(禪體敎用)의 교학관과 일로(一路)의 향상론(向上論)도 덧붙여졌다. 전자로는 선적 사유[禪觀], 돈오점수론, 성자리론이 있다. 특히 후자의 화엄은 탄허의 회통 사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화엄경』은 대소승을 포괄하는 불승(佛乘)·일승(一乘)으로 최고의 진리를 담은[圓敎] 유일한 요의경(了義經)으로 규정된다. 화엄의 성기설(性起說)은 법계(法界)의 연기를 부정하고 보광명지(普光明知)라는 법계 본체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논리로, 참선과 회통하여 화엄선으로 나아간다. 그 아래에 사사무애(事事無碍)를 중심으로 하는 무애설도 있다. 이상은 선교뿐만 아니라 사교의 회통의 기반이다.

탄허의 사교 회통 체계에 대한 분석으로, 우주의 근본인 태극에서 64괘로 펼쳐지는 역리(易理)와 거꾸로 태극으로 수렴되는 역학(易學)을 불교의 생멸문과 환멸문으로 배대하되 후자가 중시되었고, 성적(惺寂)·영지(靈知) 등의 선 개념은 『주역』의 도와 회통되었다. 단하 자순(丹霞子淳)의 「태극도서(太極圖序)」의 선리(禪理) 재해석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이나 『주역』의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 물물각구일태극(物物各具一太極)과 통철(洞澈)되었다.

유학에서 안자의 ‘극기복례’와 증자의 ‘일이관지’는 선불교의 돈법(頓法)으로, 유교의 입지(立志)는 불교의 발심(發心)과 대거(對擧)되었다. 유교의 극기·성선·양지(良知)·천명·『대학』의 삼강령(三綱領)·중(中)이나 사무사(思無邪)는 불교의 무아·성자리·보광명지(근본지)·성명(性命)·성수불이(性修不二)·불성과 회석(會釋)되었다.

노장에서는 탄허의 현토역해 『노자 도덕경』과 『장자 남화경』 선주(選註)가 분석되었다. 전자에서 노자의 천선(天仙)·무명(無名)·묘요(妙徼)는 화엄의 일승·진공(眞空)·불성과 보살행과 융회되었다. 보다 중시된 후자에서 내편의 종지로 삼은 무기(無己)·물화(物化)·연독(緣督)·심재(心齋)·망형(忘形)·좌망(坐忘)·혼돈은 불교의 무아·아공법공(我空法空)·중도·이근원통(耳根圓通)·용무생사[生死不二]·좌선·무념과 회통되었다.

기독교와 불교의 화쟁(和諍)은 전통사상을 초월하였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전지전능·천국·예수·산상수훈·동자(童子)와 좁은 문은 불교의 삼신(三身)·도자리·진리·도통한 각자·허심·동자의 성자리와 회통되었다. 탄허의 사교 회통 사상은 역경결사와 교육불사로 구현되었다.

탄허의 말세론과 미래관은 탄허의 자에서 나온 간산(艮山)사상으로 독특하다. 불교의 투쟁뇌고·소옹(邵雍)의 금수운·기독교의 종말론은 각종 화산 폭발, 지진 빈발 등의 이변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는 오행과 『주역』, 특히 일부(一夫) 김항(金恒)의 『정역』을 토대로 지도(地道)의 변화 가운데 이천칠지(二天七地)를 강조한 해석으로 결실과 성숙을 맞이한다. 이에 따라 지구의 중심이자 간방(艮方)에 위치한 한국은 남북통일 등 다양한 청사진으로 제시된다.

우선, 장기간에 걸친 자료의 수집과 연구에 기울인 저자의 노고는 치하되어야 마땅하다. 탄허의 탄생 100주년(2013년)을 기점으로 탄허 연구가 본격화되었지만, 자료의 이용은 문제였다. 탄허가 저술·문집을 남기지 않았고, 방대한 역경서와 주석의 연구는 막대한 시간 소요와 술이부작(述而不作)에 따른 한계가 있었다. 문광은 역경의 주석뿐만 아니라 각종 테이프와 CD, 동영상 등의 강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여 연구에 이용하였다. 수많은 자료의 수집, 녹취와 분석은 엄청난 끈기와 시간, 노력이 투입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본서는 바로 그 결정체로 사료적 가치도 매우 크다.

본서의 의의는 학계에서 처음으로 광대한 탄허의 학술과 사상 전반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탄허의 선교관과 경학관, 학회발표 논문집, 기초적 연구서 등이 간행되었고, 탄허 관련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한 김광식의 『기록으로 본 탄허 대종사』가 출판되었다. 그렇지만 탄허의 학술 사상과 회통론에 대한 총체적 분석은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문광은 밝은 안목과 넓고 깊은 식견으로 불교의 선과 화엄을 중심으로 유교와 노장, 기독교를 포함한 회통적 사상체계를 치밀하게 분석하였다. 요컨대 본서는 탄허의 회통 사상 전반을 연구한 획기적 대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한계나 과제도 있다. 탄허의 정체성이나 회통론과 관련하여 선사상은 주목된다. 문광을 포함한 학계의 다수는 탄허를 선사로 본다. 그런데 회통과 관련하여 ‘생멸이 없는 본성·자성을 끊음 없이 끊는 것’이나 ‘만법귀일’ ‘심성’ ‘성’ ‘성자리’ 등을 탄허의 심오한 선사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쩐지 무게감이 부족하다. 최근 탄허의 선 이해는 선의 색채와 맛이나 역동성이 흐린 일반론에 머물렀고, 이는 교학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탄허의 선사상과 회통론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근세의 회통은 금고(今古)의 종통(縱通)으로 밝힌 성현의 도(道)와 의리로 당대의 다양한 학술과 사상을 비판, 방통(旁通)하여 통일성과 정제성을 갖춘다. 회통보다 낮은 절충을 제외하면 기타는 부회천착으로 규정된다. 탄허의 사상체계는 불교적 도(道)·일(一)·성(性)으로 삼교의 학술과 사상을 회통한 것이다. 탄허의 ‘도교’ 부정도 ‘도’와 혼동을 피하려는 측면이 있고, 과도한 종지의 강조도 회통을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제성의 문제가 있다. 성현의 학술은 심성·심학·성으로 병칭된다. 『대학』의 종지는 ‘치지(致知)’의 ‘知’가 아니라 ‘지어지선(止於至善)’의 ‘止’이고, 탄허가 중시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원래 도가의 수련과 관련된다. 청대의 완원(阮元)은 실학적 관점에서 이황처럼 ‘돈오’를 부정하였다. 탄허의 양명학에는 독창성이 부족하다. 특히 불교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불교’와 ‘회통불교’에 대한 동이(同異)나 ‘회통’의 유래도 천착될 과제이다. 이는 원효의 화쟁론을 비롯한 한국 불교에 대한 이해와도 밀접하다.

탄허가 사교를 회통한 궁극적 지향은 애매하다. 탄허의 역경과 교육은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미래관도 거리가 있다. 즉 탄허가 사교를 회통하여 구현하려는 사상의 최종 조감도는 선명성이 다소 부족하다. 여기에는 미래 『정역』의 시대에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 불교의 부흥, 조계종단의 부정, 거사불교의 긍정, 국사의 자임, 도의적 인재론 등이 체계화되어야 한다. 또한 간산사상은 불교보다 『정역』 중심의 삼교합일적 전통사상이나 보천교의 세계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본서의 성과가 폄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서술한 내용 외에도 이 책은 장차 탄허 스님이나 근현대 불교, 나아가 한국 불교의 역사와 사상의 연구에 있어 기반이자 출발로 중시될 것이고, 삼교 회통과 관련하여 근현대 전통사상·민간신앙·국학의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덧붙여 한국불교학회의 주관으로 문광 스님 등이 주도하는 탄허 강의 자료의 정본화 작업이 완결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