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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경동 宋竟東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 있음.
umokin@hanmail.net
저작권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에 관련한 글을 한편 써달라고 하는데
괜스레 켕긴다. 나는 누구의 삶을 팔아
그동안 얼마를 챙긴 것일까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온
내 아내의 저작권은 몇 %일까
알량한 시 한편에 3만원도 받고
5만원도 받던 신인 시절엔
고료에 저작권은 고사하고
청탁이라도 한번 더 해주면 했는데
어느덧 나는 자꾸 비굴해져가는 노후를 위해
물려줄 것 없는 아이의 후년을 위해
달콤한 저작권을 꿈꾸고 있지는 않는가
그를 저작권으로 바라다보고 있지는 않는가
그들의 흔들리는 비참과 울분을 굳건한 저작권의 계기로
상상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 눈물겨운 현장을
저작권의 마르지 않는 우물로 들여다보지는 않는가
친구를 경쟁상대로 여기지는 않는가
왜 내가 저 꽃들의 저작권을 탐해야 하는지
왜 내가 저 흙의 저작권을 탐해야 하는지
왜 내가 저 태양의 저작권을 탐해야 하는지
왜 내가 당신의 삶의 저작권을 탐해야 하는지
내 삶의 저작권도
실상은 내게 있지 않다
사다리에 대하여
살며 참 많은 사다리를 보았다
어려선 주로 나무 사다리들이었다
생선 궤짝에서 뜯은
썩은 널빤지로 만든 사다리
써금써금해 한두 칸이 푹푹 주저앉던 사다리
가끔 산에서 쪄온 옹이 진 나무들로 만들어
삐뚤빼뚤하지만 운치 나던 사다리
자른 아시바를 용접으로 붙여 만든 사다리
오래되면 용접부위가 찢어져 위험하던 사다리
쇠파이프에 목재를 대
목기와 철기 시대가 서로 어색하게 만나던 사다리
아무리 두꺼운 반생이*로 엮어놓아도
세월이 흐르면 능청해져 칸칸 사이 간격이 달라지던 사다리
큰 공장 굴뚝에 아예 붙어 있던 사다리
겨울이 되면 손이 쩍쩍 달라붙던 사다리
허공 위 철길처럼 평형으로 위태롭게 놓여 있어
매번 목숨을 내어놓고 건너야 하던 사다리
곰빵*을 지고 올라야 하던 사다리
질통*을 지고 올라야 하던 사다리
배관을 놓기 위해 올라야 하던 사다리
닥트*를 놓기 위해 올라야 하던 사다리
덴죠*를 하기 위해 올라야 하던 사다리
설비를 하기 위해 올라야 하던 사다리
구로공단 닭장촌에 있던 사다리들
폭이 어깨너비도 안되는 직각사다리를 타고
광어처럼 모로 올라야 하던 판잣집 2층
그 방에서 다시 다락으로 오르던 사다리들
닭장집 지붕마다 만들어놓은
스티로폼 상추밭 궤짝 고추밭 깨진 다라이 토마토밭으로 오르기 위해
집집마다 보초처럼 기대놓던 사다리들
어떤 건 늘씬하고 어떤 건 땅딸하던
제각각의 사다리들
한순간에 와 하며
공장 담벼락을 넘던 수많은 사다리들
지상엔 살 곳이 없어 하늘로 오르던 사람들이 붙잡던 마지막 사다리들
CC카메라탑 위 조그만 둥지 위로
구리스가 칠해진 한강다리 난간 위로
까마득한 송전탑 위로
망루로 차벽 위로 기어오르던 사다리들
그 아래에서 어디론가
까마득히 떨어지던 마음들
언제인가는
어디쯤엔가는 있다는
계층이동
계급상승의 사다리를 타보고 싶기도 했지
하지만 이젠 모두 지난 일
우린 언제쯤 별을 더 잘 보기 위한
아름다운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
따사로운 햇볕에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한
예쁜 집을 손수 짓기 위한
감과 사과와 배를 따기 위한
지붕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작은 고양이를 위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그런 작은 사다리들에 대하여
--
*모두 건설현장에서 쓰는 속어. 반생이: 굵은 철사 / 곰빵: 벽돌을 져 나르는 일 / 질통: 미장용 시멘트 범벅을 담아 옮기는 통 / 닥트: 환기구 공사 / 덴죠: 내장 목공일 중 천장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