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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장남수 『빼앗긴 일터, 그 후』, 나의시간 2020

꺼지지 않은 공장의 불빛

 

 

안미선 安美仙

작가 misennam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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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빼앗긴 공장의 불빛이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불빛은 행간에도 스며들어 저자가 다 말하지 못한 슬픔과 억울함, 기쁨과 자부심까지 샅샅이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장남수는 1977년 원풍모방에 입사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스스로 삶을 바꿔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배웠다. 작지만 빼앗길 수 없는 몫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으로 익혔다.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한 폭력에 맞서 외치고 구속되고 1980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강제 해고되면서도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국가기관과 회사, 여론의 사주에 의해 노동조합이 아비규환 속에서 무너질 때에도 그녀는 끝났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자신이 목격한 빛났던 공장의 한때를 잊지 않고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몫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꿈이 짓밟힌 자리에서 그 불씨를 잊지 않으려 서성이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공장의 불빛은 그들의 마음에 둥지를 틀었기에 이제 아무도 꺼뜨릴 수 없게 되었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모였다. 동지들을 불러 모아 밥을 해 먹이고 회의를 하며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고, 우리에겐 힘이 있다고 서로 부추겼다. 손이 퉁퉁 붓도록 묵묵히 노동을 하면서 대가 없이 헌신해야 해도 그들은 서로 곁을 지켰다. 권리를 외치다 YH 노조의 동갑내기 김경숙이 죽고, 피땀으로 지킨 노동조합이 회사와 정보기관의 획책 속에서 다른 조합원의 폭력 아래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도 그들은 함께 일하고 싸웠던 공장의 아늑함을 잊지 않았다.

원풍모방 노동조합이 있었던 공장은 밥이고 집이고 고향이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생활을 받쳐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곳이었고, 같은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동료들이 있는 곳이었다. 남 보란 듯 끼고 다니던 책을 내려놓아도 남부끄럽지 않게 자존감을 키워준 곳이었다. 생활과 삶을 나아지게 하려고 애면글면 서로 애써준 곳이었고, 각박한 생계 속에서 나와 남을 칼금처럼 긋던 경계를 녹여준 곳이었다. 무관심의 벽을 무너뜨리고 따뜻한 어깨를 함께 겯게 해준 곳이었다.

일터를 빼앗기고 나서도 장남수는 더듬거리며 세상 속에서 그 불빛을 가늠하며 걸어간다. ‘노동자도 힘이 있고 권리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함께해서 세상을 바꿔내야 한다.’ 뚜벅뚜벅 앞으로 가는 걸음 앞에서 지난 시간의 꺼진 빛은 닿을 수 없지만 놓칠 수 없는 등대의 빛이 되었다. 탈춤을 하면서 속 시원히 속엣말을 내뱉고, 부당한 요구에 맞서 싸운 경험이 녹아 있는 곳이었기에 비록 빼앗겼어도 그들은 일터를 떠나지 않고 평생 지켜냈다.

“그렇다. 노조도 깨지고 복직도 못했으니 현실적으로 패배하였다. 하지만 굴복한 패배가 아니었기에 40년을 만났다. 함께한 분노의 동맹이 이 자리까지 왔다. 혹여 그때 비굴했다면 이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굴복한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을까?”(309면) 빼앗긴 일터의 시간 다음에는 굴복하지 않기 위한 시간이 이어졌다. 원풍노조원들의 집을 사무실로 쓰며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조직을 결성하고, 노동자들의 모임과 민주화운동권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지켜간다. 『원풍회보』와 『민주노동』 홍보물을 만들고, 갈라지는 운동사회의 어려움 속에서 “어두운 길, 앞뒤 좌우를 휘젓는 센 불길 옆에서 작은 촛불 들고 가는 듯 아득하기도 했지만”(149면) 투쟁현장을 찾아간다. 위태로운 노동 속에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전국노동자대투쟁 때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기 위해 여행가방 하나 메고 달려가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까지 도우고자 노력한다. 낯선 곳이라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애쓰는 곳이면 고향처럼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거제도로, 광명으로, 제주도로, 삶터와 일터를 찾아 전전하면서도 희망이 있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해고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비정규직 남편과 살아가며 겪은 생활고 속에서도 장남수는 이 궁핍함으로 그칠 수 없는 자신의 존엄을 생각한다. 그건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아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는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단단한 땅에 발붙여 살아가게 만든 그 옛날 봄날의 함성 때문이었다.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여서, 고향과 가족에 얽힌 사연과 개인적 소회들,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간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다. 예순이 넘어 뒤돌아보며, 단순히 한 시대의 노동자로 규정되기보다 개성 있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실려 있다.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겼다. 남들이 불러준 이름 대신 자기 이름을 부르고자 할 때, 그 속에 숨은 욕망과 내밀한 상처까지 함께 솟아오른다. 평생 따라다닌 배움에 대한 열정과 열등감, 따뜻함을 갈구했지만 때로 채워지고 때로 좌절된 마음의 허기도 배어 있다. 차별과 무시와 배신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한껏 날아가는 차돌멩이처럼 살아온 삶을 노래하며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글의 토막마다 한땀씩 바느질한 듯 정성스러움이 묻어난다.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었다, 비추고 싶었지만 비춰지지 않았다, 한껏 달렸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노래했고 달려왔다.’ 그런 외로움과 자부심이 글에 눅진하게 배어 있다.

한편,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 회고조로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된 느낌을 준다. 개인적인 회한과 자기연민을 담은 독백처럼 다가오게 될 위험도 있는데, 이 책을 덮고 목이 마른 느낌이 든다면 아마 그 때문이리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노동자의 기록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다음 세대 노동자들의 삶과 거친 싸움 속에 놓인 그들의 마음에도 좀더 시선을 주었다면, 목격한 기억들이 더 현재성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딸과 어머니 세대의 이름으로 국한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지금도 이어지는 싸움과 거리의 분투를 좀더 가까이서 이름 불러준다면, 그 불빛에 실린 감정들이 더욱 되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켜내고 싶은 공장의 불빛은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인 자신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부서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외치려고 길에서 어깨를 결은 이들이 지금도 그때처럼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