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부동산공화국을 넘어 땀이 대우받는 세상으로 가는 길
전강수 田剛秀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저서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 『토지의 경제학』 등이 있음.
gsjun59@gmail.com
1. 들어가는 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촉발된 국민 여론의 변화가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압도적 표차로 패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소멸 직전까지 갔던 국민의힘이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이번 선거 결과는 일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역시 LH 사태다. 3기 신도시 개발의 실무책임을 맡은 LH의 직원들이 투기이익을 노리고 개발예상지역 농지를 매입했다. 이들은 희귀수종 심기, 지분 쪼개기, 맹지 매입, 알박기 등 전문 투기꾼들도 혀를 내두를 투기 수법을 구사했다. 투기 방지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내부정보를 활용해 투기이익을 추구했으니 죄질이 고약하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할 법률은 없었다. 농지법은 이들의 농지취득을 허용했고, 이해충돌방지법은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제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 행위를 처벌하고 투기이익을 몰수·추징할 법률도 미비한 상태였다. LH 직원들은 개발 정보를 일상적으로 접할 뿐 아니라 제도와 법률의 허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제도와 정책은 물길과도 같다. 물이 물길을 따라 흐르듯이, 사람들은 제도와 정책의 방향에 맞추어 행동한다. 많은 정보와 함께 현행 제도와 법률의 허점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LH 사태가 터진 후 국민의 분노는 LH 직원들과 그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등 문재인정부 인사들에게 집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동안 부동산 적폐청산에 소홀했음을 시인하고 국민 앞에 사과했다.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 행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도 진행되었다. 국회도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위 LH 5법 등 관련 법률의 제·개정에 속도를 냈다.
그런데 과연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들의 토지 투기를 방지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들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투기에 뛰어들도록 유인한 제도적 환경은 그냥 두어도 괜찮을까?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이 아닌 사람들의 투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달달한 것’이 있으면 주변의 벌들이 몰려드는 법이다. 이를 그냥 두고 몰려오는 벌을 쫓으려고만 한다면 벌을 막지도 못하고 자칫 쏘이기 쉽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등한히 한 채 공직자 단속에만 골몰한다면, 또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달달한 것을 치우는 방법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정부가 토지보유세를 강화해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국공유지를 확충하면서 거기에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위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토지보유세 강화에 따르는 조세저항이 두려우면 기본소득과 연계하면 되고, LH 자금 사정으로 미루어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만 공급하기가 어렵다면 LH를 해체하는 대신 토지주택청을 설립해 일을 맡기면 된다.
아래에서는 우선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불고 있는 부동산 투기 광풍의 원인과 함께 부동산 문제가 한국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밝히고자 한다. 그다음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한국사회를 정의롭고 활력 있는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2. 부동산 투기 광풍의 원인과 문제의 실상
(1) 부동산 투기 광풍의 원인
LH 직원들의 투기는 현재 한국사회에 휘몰아치고 있는 부동산 투기 광풍의 와중에서 벌어진 일이다. 투기란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매매에서 나오는 시세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어떤 물건을 매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투기이익이 한 사회의 정상적 투자수익보다 커지는 경우 민첩한 사람들부터 시작해 투기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그러면 부동산값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그에 따라 투기 행위도 더 확산한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사회 전체가 광풍에 휩쓸린다.
현재의 부동산 투기 광풍이 시작된 것은 2014년경이다. 참여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세계금융위기가 겹치면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긴 침체로 빠져들었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사업과 함께 부동산 시장 부양 정책을 적극 추진했으나 지방 광역시의 부동산 시장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지는 못했다. 부동산 시장 부양 정책의 완결판은 박근혜정부에서 나왔다. 2014년 박근혜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 장치를 모조리 해제하며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펼쳤다. 노골적인 투기 조장 정책이었다. 꿈쩍하지 않던 수도권 부동산값이 마침내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전세계 여러 국가에서 시행된 확장적 금융 정책과 저금리 정책의 기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시중에는 유동성이 넘쳐났다.
문재인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출범했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권이 출범하자 국민은 이제 부동산 투기는 어렵게 됐다고 판단했다.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많은 사람이 앞으로 집값이 내려갈 것으로 판단해 계속 세입자로 머물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근본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정권 출범 후 4년 내내 시장을 적당히 마사지할 단기 조절 정책만 내놓으며 집값 뒤를 쫓아다니느라 허둥댔다. ‘핀셋규제’와 ‘핀셋증세’로 일관하다가 역대 최고의 집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효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단기 시장조절 정책에 일부 주거복지 정책을 덧붙인 데 대해 약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뿐,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한마디로 배신감이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이었음을 국민이 깨달은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펼쳤을까?
첫째,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투기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1 투기란 ‘괴물’과 같은 존재임에도 그것을 제압해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정책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4년 내내 투기를 근절할 근본 정책을 제외한 채 정책수단을 강구하는 바람에 26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도 투기 광풍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혹자는 이렇게 분석하기도 한다. ‘문재인정부는 근본적인 부동산 개혁의 중심인 부동산보유세 강화 정책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강한 조세저항을 초래해서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고 재집권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손을 대지 않기로 작정했다.’
몰라서 그랬든 알고도 일부러 그랬든 문재인정부는 부동산보유세 강화라는 강력한 수단을 줄곧 회피하다가, 2020년 7·10 대책에 와서야 제법 강력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놓고는 세금까지 무겁게 한다는 생각에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모두가 문재인정부 반대세력으로 돌아섰다. 만일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부동산값이 폭등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역대 최다의 풍선효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주택자는 물론이고 세금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 1주택자도 모두 정부를 지지했을 것이다. 또 2030세대가 패닉바잉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4·7 재보궐선거에서 그들이 대거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문재인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투기를 자극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펼쳤다.2 정권 초기부터 매년 10조원, 5년간 50조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고, 다주택자의 임대주택등록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해 다주택 보유를 자극했다. 임대주택등록제가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준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도를 일부 개선했지만, 기등록자가 누리는 혜택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러니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약 160만호에 달하는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고 그들 수중에 잠겨버렸다.
셋째, 다주택자가 보유한 기존 주택이 시장에 나오도록 만들면 될 것을 문재인정부는 3기 신도시를 지정하는 등 신규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틀림없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고, 가격 상승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터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고 가격 폭등 문제는 공급 확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급부족론 내지 공급확대론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자 등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활용해온 단골 메뉴이다.
투기 광풍이 불 때 추진하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투기를 자극해 부동산값 상승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고, 실제 공급이 이루어질 무렵에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역전되기라도 하면 거꾸로 가격 하락을 증폭시킨다. 더욱이 문재인정부의 신규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주택 투자를 수도권에 집중시키는 것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지역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요컨대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단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가격 폭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국토 균형발전도 저해하는 나쁜 정책이다.
더욱이 LH 사태가 3기 신도시 예정 지역에서 터졌으니 이 정책은 정치적 효과도 최악이다.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안겨주면 부패 발생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LH 사태 발발 후 문재인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자고 역설하면서도, 서울과 수도권에 신규 주택공급을 더욱 확대하는 내용의 2·4 대책(2021년)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저기 단것을 계속 깔아놓으면서, 달려들면 혼내겠다고 벌들에게 엄포를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율배반의 전형이다.
요컨대 작금의 부동산 투기 광풍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붙인 불에 과잉 유동성이라는 기름이 부어져서 일어났고, 문재인정부가 어설프게 대응하는 바람에 최악의 형태로 발전했다. 2020년 중반부터 문재인정부는 투기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정책을 강화했지만 이미 실기한 뒤였고, 부동산값 폭등과 세 부담 증가가 결합하는 바람에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2030세대와 5060세대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난감한 처지에 떨어지고 말았다.
(2) 부동산 문제의 실상
부동산 투기 광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 말 연간 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이 30%를 넘는 엄청난 투기가 발발한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10~15년을 주기로 투기 광풍이 불었다. 사실 해방 후 한국은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무척 건강한 상태로 출발했다. 1950년 지주의 농지를 유상몰수해서 그 땅을 경작하던 소작농에게 유상분배하는 농지개혁이 단행되었기 때문이다. 농지개혁으로 대지주의 나라가 단번에 평등한 소농의 나라로 변모했다. 대지주의 과도한 소작료 수탈에 신음하던 농민들이 자기 땅이 생기자 밤낮없이 농사일에 매달렸고, 늘어난 소득을 다 쓰지 않고 저축해서 그 돈으로 자식들 공부를 시켰다. 이렇게 교육받은 농민의 자식들에게서 사회 엘리트 계층과 읽고 쓸 줄 아는 우수한 공업 노동력이 배출되었다. 해외 학계에서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공평한 성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3 이런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농지개혁이 창출한 평등지권(平等地權) 사회4의 힘이었다.
하지만 평등지권의 힘은 계속 유지되지 못했다. 1960년대 말 이후 박정희정권이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한 도시개발을 추진하면서 땅값이 폭등했고 개발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향연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소수의 권력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투기에 가담했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가 형성되면서 점차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평등지권이 실현된 상태에서 땀과 절제와 진취적 기업심을 존중하던 사회가 어느덧 투기와 불로소득에 기대는 ‘탐욕의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5 필자는 이를 ‘부동산공화국’이라고 부르며, 그리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힌 것은 박정희정권이었다고 판단한다. 한국은 1960년대 말 부동산공화국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후 줄곧 그 길을 걸어왔다. 작금의 투기 광풍과 LH 사태는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가계부채 증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자영업자 압박, 기업의 지대추구 행위 조장,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의 부패 야기, 지역 간 양극화로 인한 지방 소멸, 거시경제의 불안정성 증대 등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를 유발한다. 최근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이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표출된 일종의 사회 병리현상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국가의 장기 지속성을 위협받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한국이 부동산공화국의 길을 치달은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이다. 한때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한국 땅을 전부 팔면 미국 절반을 살 수 있고, 캐나다를 여섯번, 프랑스를 여덟번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6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수집한 지가 통계를 사용해 GDP(국내총생산) 대비 토지자산의 배율을 계산한 결과, 한국은 4.6배(2019년 기준)로 16개국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6 통계 수집이 가능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니 한국의 땅값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국민소득에 대비한 땅값 총액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 한국 국민이 부자라는 뜻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땅을 팔아서 외국 물건이나 자산을 살 수도 없고, 자기 땅을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외국으로 가는 사람도 극소수다. 대부분의 국민은 그냥 비싼 땅을 아래에 깔고 생활하고 생산할 뿐이다. 게다가 모든 국민이 땅을 골고루 나눠 가지고 있다면 모두가 고액 자산가라고 볼 수 있겠으나, 한국에서 땅은 매우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개인 토지의 100분위별 소유 세대 현황’(2019년) 통계를 활용해 개인소유 토지자산의 지니계수(가액 기준)를 계산해보았더니 0.813이라는 값이 나왔다. 지니계수는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는 낮아지고, 1에 가까울수록 높아진다고 해석한다. 0.8을 넘는다는 것은 한국에서 토지소유의 불평등이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음을 뜻한다.7
앞에서 해방 후 한국은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평등지권 사회를 실현했다고 말했다. 통계 미비로 농지개혁 직후의 토지자산 지니계수가 얼마였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0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2003년에 세계은행이 발간한 한 보고서에는 1960년 무렵 토지자산의 지니계수를 추산한 결과가 나와 있다.8 보고서가 추산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0.3을 약간 초과하는 수준으로 조사대상 26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는 당시 한국의 토지분배가 분석 대상 26개국 가운데 최고로 평등했음을 뜻한다. 물론 0.3을 약간 초과한다는 것이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농지개혁 이후의 상황을 짐작할 때 그리 어긋난 계산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값을 받아들인다면 약 70년이 지나는 사이에 한국의 토지소유는 엄청나게 불평등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주택의 경우 토지처럼 상세한 분위별 소유현황 통계가 발표되지 않아서 정확한 지니계수를 계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7~18년 사이에 다주택 보유자 상위 1%가 보유한 주택 수가 1인당 평균 3.2채에서 7채로 증가한 것이라든지9 주택 자산가액의 상위 10%와 하위 10% 배율이 2018년 37.57배에서 2019년 40.85배로 올라간 것10에 비추어 주택소유의 불평등도 상당히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팬데믹 상태로 빠져들면서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21년 4월 20일 신한은행이 발표한 ‘2021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2020년 기준)에 따르면, 총자산 상위 20% 가구의 부동산 자산은 2019년 대비 5.7% 늘어난 반면 하위 20% 가구의 부동산 자산은 8.5% 감소했다. 부동산 자산 5분위 배율, 즉 하위 20% 대비 상위 20% 가구의 부동산 소유 규모는 2019년 142배에서 2020년 164배로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자산의 양극화를 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요즈음 주위에서 부동산 한번 잘 사서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면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고, 연예인들은 성공해서 돈을 벌면 제일 먼저 건물을 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기존 연구에서 부동산소득은 소득불평등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부동산이 자산불평등의 최대 요인임은 워낙 자명해서 그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소득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하니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과도 맞지 않는다. 기존 연구들이 이런 이상한 결론을 도출한 데는 대부분 과소보고의 우려가 있는 표본조사 자료를 이용한데다가 부동산소득 계산에서 귀속임대소득과 부동산 자본이득을 누락한 사정이 작용했다. 공식 통계인 국민소득계정조차 임대소득에서 토지와 비주거용 건물의 귀속임대소득을 제외하고 있고 부동산 자본이득은 새롭게 창출된 가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예 소득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으니, 연구자들이 부동산소득의 범위를 좁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 모른다.
자산소득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헤이그(R. Haig)와 싸이몬스(H. Simons)의 포괄소득 개념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포괄소득은 ‘일정 기간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의 증가분’으로 정의되므로 부동산 자본이득과 귀속임대소득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사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할 때 그것은 대부분 부동산 자본이득이다. 이를 뺀 통계로 논의를 진행하니 상식과 괴리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아래 표는 부동산소득을 자본이득과 임대소득의 합으로 보고 그 크기를 추산한 결과를 보여준다.
2012~15년에 20~30% 사이에 머물러 있던 GDP 대비 부동산소득의 비율이 2016년부터 급상승해서 2018년에는 48.8%로 올라갔다. 부동산에서 GDP의 절반에 가까운 소득이 발생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그후에도 계속됐음을 생각하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 토지와 주택의 소유가 극도로 불평등한 상태에서 막대한 부동산소득이 발생했으니 결과가 어땠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소득의 급증은 자산소유 계층 간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부동산소득은 속성상 불로소득의 색깔이 강하므로 증가할수록 사회적 위화감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부동산소득으로 인해 계층 간 양극화가 진행되면 이는 바로 세대 간 양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주택소유 비중이 가장 높은 세대는 60대이고 아래로 갈수록 그 비중은 점점 낮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2030세대가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음을 절감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것은 세대 간 양극화의 나락을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이다.
더욱이 부동산소득의 급증은 계층·세대 간 양극화를 넘어 지역 간 양극화를 초래한다. 김용창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주택 부문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의 수도권 집중이 극심해지고 있다.11 2018년 전국에서 발생한 양도차익 가운데 부산·울산·경남이 차지한 비중은 4.9%에 불과했던 반면, 수도권이 차지한 비중은 무려 82.8%에 달했다. 2014년에 두 지역의 비중이 각각 13.4%, 66.2%였음에 비추어 보면 불과 4년 사이에 부동산소득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격화됐음을 알 수 있다.
부동산소유가 극도로 불평등한 가운데 투기 광풍이 불어 막대한 부동산소득이 발생하자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경제적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 때문에 국가의 장기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3. 부동산 문제의 해법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면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의 부동산 관련 부패를 근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해 투기 발발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자와 관련해서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한국주택공사법 개정안, 이해충돌방지법 등이 통과되어 제도적 환경을 상당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영농인의 농지 투기를 근절할 수 있도록 농지법을 개정하고, 고위 공직자와 부동산 간의 연결고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부동산 관련 부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도입하는 작업은 미진하다.
그런데 4·7 재보궐선거 후 심각한 문제가 등장했다. 선거 패배를 반성한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효과가 큰 부동산보유세를 후퇴시키려 해서 하는 말이다. 정권 출범과 함께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해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주었어야 함에도 계속 미적대다가 부동산값을 폭등시키고 나서야 주택 과다 보유자를 중심으로 세 부담을 무겁게 하는 바람에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모두의 불만을 산 것이 더불어민주당 선거 패배의 원인이다. 사실이 이처럼 자명함에도 더불어민주당 내에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중심으로 보유세를 강화한 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엉뚱한 진단이 횡행하는 듯하다. 1주택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종부세·재산세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니 말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한국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얄팍한 정치 계산에 몰두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이 절에서는 부동산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근본 조세 정책과 함께 부동산세제 관련 현안에 대한 대책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택공급과 주거복지도 무척 중요한 주제이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1)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근본 정책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는 것은 부동산의 매매와 보유를 통해 높은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과이익의 발생을 위해 소유자와 거래자가 비용을 들이거나 희생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그 이익은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토지보유세는 제대로 설계할 경우 지대를 환수하고 지가 차액을 감소시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 보유비용을 높여서 투기적 동기를 억제한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면 토지보유세를 의미있게 강화하면 된다. 사실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는 한국 부동산 정책의 오래된 숙제였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는 조세저항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 정책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극히 가벼운 보유세를 수십년간 방치했다.
노무현정부 때 보유세 강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는 했다. 종부세는 그 정책의 상징이었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 강남 주민, 보수언론, 그리고 시장만능주의 학자들은 똘똘 뭉쳐 노무현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을 공격했다. 이들의 공격이 주효해 국민 여론은 돌아섰고 이는 이명박 집권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전봇대를 뽑는 이벤트를 연출한 다음 곧바로 종부세 무력화에 착수했다. 과세기준 금액을 높여 과세 대상자를 줄이고 세율을 전반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해 세 부담을 가볍게 했다. 노무현정부가 장기계획으로 추진하던 과세표준 현실화 계획도 중단해버렸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조항들에 대해 위헌·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음 그래프는 종부세 무력화를 전후해 세수의 규모와 구성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종부세가 무력화된 직후인 2009년 전체 세수는 급감했고, 특히 주택 종부세 수입은 1위에서 3위로 추락했다. 2016년에는 세수 규모가 약간 증가했으나 구성은 2009년과 변함이 없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일 이명박정부에 의한 종부세 무력화가 없었다면, 2017년에는 종부세 부담이 상당히 무거워졌을 것이고 이 현상은 특히 주택에서 두드러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발발한 서울 아파트값의 폭등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가볍게 지나갔을 것이다.
LH 사태 발발 후 대대적인 민심 이반의 조짐이 보이자 문재인 대통령은 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3월 1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을 날로 심화시키고, 우리 사회 불공정의 뿌리가 되어온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일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고백했고, 같은 달 29일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는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으로 나뉘는 인생과 새로운 신분사회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에 손대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부동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최대 질곡이며, 그 중심에 부동산 불로소득이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것을 제거할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를 위해 어떤 사람은 양도소득세를 말하고, 다른 사람은 1998년에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를 부활하자고 주장한다. 또다른 사람은 현행 종부세-재산세 틀 안에서 보유세 강화를 실현하자고 제안한다. 얼핏 생각하면 시세 차액을 일부 환수하는 양도소득세와 토지초과이득세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효과가 클 것 같지만, 둘 다 결함이 있다. 전자는 매물 잠김 효과와 조세 전가를 수반하고, 후자는 토지 이용을 가장한 조세회피, 지가 평가를 둘러싼 논란, 강한 조세저항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토지초과이득세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1998년 폐지될 때까지 과세 베이스가 점점 축소되어 세금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해갔다.
현행 종부세-재산세 틀 안에서 보유세 강화의 이상을 실현하자는 주장에도 한계가 있다.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너무 협소하고,12 재산세는 강화할 경우 광범위한 조세저항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선진국의 경우 부동산보유세를 GDP의 2% 이상으로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13 한국이 그 권고대로 하려면 지금보다 약 22조원을 더 걷어야 하는데, 이는 종부세 과세 대상자를 크게 확대하지 않는 한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그래서 차제에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세 보유세로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14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소유자에게 부과하는 대신 세수 순증분을 전액 모든 국민에게 1/n씩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 이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라고 불린다. 국토보유세는 자연물인 토지에만 부과하고, 주택, 나대지, 빌딩 부속토지를 각각 따로 합산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과세하는 용도별 차등과세를 지양하며, 납세자와 수혜자의 불일치를 해소한다는 점에서 종부세보다 훨씬 우수한 세금이다.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도입할 경우 전체 세대의 90% 이상이 순수혜 세대가 된다는 추정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소수의 순부담 세대로부터 조세저항이 나오겠지만, 90% 이상의 세대가 이를 막는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의 원리는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 존재하는 특권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15 토지는 천부자원으로써 모든 사람의 공동재산으로 거저 주어졌음을 생각할 때 그것을 차지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특권을 누린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토지 특권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 특권이 여럿 존재한다. 교육 특권, 일자리 특권, 지역 특권, 재벌 특권, 세습자산, 환경파괴와 자연자원 이용으로 누리는 특권, 빅데이터 독점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특권에는 반드시 특권이익이 따른다. 땀과 희생으로 얻는 노력소득은 땀 흘리고 희생한 사람에게 온전하게 돌아가는 것이 옳지만,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는 특권이익은 가능한 한 공적으로 환수해 모든 사회구성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다. 앞서 지적한 출생률의 극단적 저하와 지방 소멸 현상 등은 특권이익 독점으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의 결과이다. 이런 특권을 해체해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고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않는 한 이 과정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특권이익 있는 곳에 최우선 과세한다’는 것을 조세제도의 제1원칙으로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 원칙에 기초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는 국토보유세 도입 외에 재벌·대기업 법인세 중과, 누진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상속세·증여세 최고세율 인상, 자연자원 이용료와 탄소세 징수, 빅데이터세 부과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특권이익을 환수할 경우, 국토보유세만 걷는 것보다 세수 증가가 훨씬 커질 것이다. 그 경우 일부는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를 국가 소멸을 저지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 투입하는 것은 어떨까? ‘요람에서 대학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국가재건 프로젝트는 어떤가? 예컨대 연간 50조원 정도를 투입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기본주택과 무상조리원·무상탁아소·무상어린이집·무상유치원·무상고등교육 등을 대거 공급함으로써 한 아이의 출생에서 대학 졸업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16
2021년 4월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1조 8000억 달러(약 2000조원) 규모의 ‘미국가족계획’(American Families Plan)을 공개했다. 이 계획에는 3~4세 아동 유치원 무상교육, 커뮤니티 칼리지 2년 무상교육, 보육료 지급, 유급 육아휴직 확대, 건강보험료 인하 등이 포함됐다.17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상위 1%의 슈퍼리치와 기업에 대한 대규모 증세로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내용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 발상은 필자의 국가재건 프로젝트와 동일하다.
사실 이런 종류의 대형 프로젝트는 국가의 장기 지속성이 흔들리고 있는 한국에 더욱 절실함에도 우리 정치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배울 생각이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2) 부동산 세제 관련 현안에 대한 대책
앞의 내용은 장기 근본 정책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당장 문제가 된 부동산세제 관련 현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보유세 강화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되, 미비점을 보완하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등장하는 부작용과 불만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본적으로 차단해 투기를 근절하기보다는 단기 시장조절용으로 보유세 정책을 활용해왔기 때문에, 보유세 강화의 장기목표와 로드맵을 밝힌 적이 한번도 없다. 당장 보유세를 의미있는 수준으로 강화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루빨리 정책의 장기목표와 로드맵을 확정·공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동산 시장에 공표 효과(announcement effect)를 발휘해 투기심리를 일부 잠재우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2020년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다주택자나 법인에 초점을 맞추어 취득세·보유세·양도세를 모두 강화하기로 했다. 눈앞의 투기를 막고자 부득이 취한 조처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조세를 모조리 동시에 강화하는 것은 편법이며 향후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취득세 중과는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단,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는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투기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므로 보유세가 충분히 강화되기까지 유지하거나 약간 완화하는 정도로 개편하는 것이 좋겠다.
2020년 11월 3일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는데, 2020년 현재 토지 65.5%, 단독주택 53.6%, 공동주택 69.0%에 머물러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모두 9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다. 현실화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부동산 유형별·가격대별로 들쑥날쑥 엉망이었던 공시가격 체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므로 환영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부동산값이 급등하는 가운데 시세 9억원 이상 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까지 상승하는 바람에 2021년 과세에 적용할 공시가격이 상당히 올라가서 종부세와 재산세의 부담이 예상보다 많이 늘어나게 생겼다는 점이다. 4·7 재보궐선거 후 더불어민주당이 종부세와 재산세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여기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공시가격 조정은 부동산 유형별·지역별·가격대별 불형평을 시정하는 차원에서 계속 추진하되, 현실화율 인상 속도를 조절해서 보유세 부담의 급증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유세 강화 정책에 대한 비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1주택 소유자가 소득이 없는 경우를 사례로 들면서 정책의 ‘비정함’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현행 종부세 체계에 1주택 소유자 일반과 1주택 고령자에 대한 우대 조치가 포함된 것은 이런 비판을 수용해 법률을 개정한 결과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1주택 소유자로 소득이 없어서 납세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세이연제도를 도입해 매각·상속 등 현금화 시기까지 과세를 유예해주면 된다.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줬다고 비판받는 임대주택등록제는 과도한 특혜의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동안 일부 내용이 개선됐지만, 기등록자에게 주어지는 세제상 특혜는 그대로다. 이들이 전국에 걸쳐 가지고 있는 주택 수는 무려 160만채에 달한다고 한다. 세제상 특혜를 누리는데 보유주택을 매각할 리가 없다. 엄청난 수의 주택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임대사업자의 수중에 잠겨 있다. 따라서 일정한 유예기간을 준 뒤 기존 임대사업자가 누리는 과도한 세제상 특혜를 폐지하거나 대폭 감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보유한 주택이 대거 매물로 나옴으로써 주택 가격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4.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 안정에 몰두하는 대증요법을 넘어서야 한다.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한국사회는 부동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문제가 최대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정부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핀셋규제’ ‘핀셋증세’ 등의 방법으로 집값 뒤만 쫓아다니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다가 역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효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 글에서 소개한 부동산 정책은 주로 세제를 중심으로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방안을 모색해본 것이다. 그러나 조세만으로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고 투기를 근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지·주택 공급 정책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하고, 금융규제도 전세금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대 간, 지역 간 양극화를 완화할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부동산 정책에서 개선할 내용은 한둘이 아니지만 다 다루지는 못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부 정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정책철학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것은 분명한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부동산 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주창해왔다. 이는 토지와 자연자원이 천부성, 공급고정성, 위치고정성, 영속성 등의 특수성을 갖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거기에 높은 공공성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다만 소유제한이나 처분제한 또는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가능한 한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지보유세를 중심 정책수단으로 거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은 토지와 자연자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만큼 사용료를 부과하고, 그 수입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평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철학이 제대로 구현되면 경제는 불로소득이 아닌 노력소득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부동산공화국은 자연스럽게 해체될 수밖에 없다. 차기 정권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확실히 표방하며 그에 부합하는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서, 농지개혁이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복원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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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수 「부동산공화국 해체를 위한 정책전략」, 이병천 외 엮음 『다시 촛불이 묻는다』, 동녘 2021, 152~53면.↩
- 같은 글 155~56면.↩
- 전강수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여문책 2019, 50면.↩
- 모든 국민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뜻한다. 평등지권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토지 자체를 평등하게 분배할 수도 있고, 토지소유는 그대로 둔 채 토지가치를 환수해 모든 사회구성원이 똑같이 혜택을 누리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은 평등지권을 ‘평균지권(平均地權)’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타이완 헌법에 명기되어 있다.↩
- 전강수, 앞의 책 3장.↩
- 전강수, 앞의 글 144~46면.↩
- 같은 글 149면.↩
- Klaus Deininger, Land Policies for Growth and Poverty Reduction, World Bank Policy Research Report 2003.↩
- 경실련 보도자료 「재벌·대기업과 다주택 보유자, 지난 10년간 부동산 투기에 집중했다」, 2018; 「10년간 증가한 주택의 절반, 250만 호를 다주택자가 사재기」, 2019.↩
- 통계청 보도자료 「2019년 주택소유통계 결과」, 2020.↩
- 김용창 「부동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 해체와 공공성 강화」, 『투기 근절을 바라는 단체들의 연대토론회 자료집』, 2021.↩
- 주택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종부세 납부자는 전체 주택소유자의 3.6%에 불과했다.↩
- John Norregaard, “Taxing Immovable Property: Revenue Potential and Implementation Challenges,” IMF Working Paper WP/13/129, 2013.↩
- 전강수, 앞의 책 230~37면.↩
- 같은 책 238~40면.↩
- 같은 책 239~40면.↩
- 「첫 의회 연설 바이든 “미국이 다시 움직인다”…2000조원 美 가족계획 초점」, 헤럴드경제 202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