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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준형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창비 2021

한미관계 뒤에 숨은 미 군사주의의 실체

 

 

박인규 朴仁奎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inky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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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던 2018년, 백낙청 선생은 북핵 협상 성공의 의미에 대해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면서 국제사회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한평아카데미 발언 2018.7.12.)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된다면 북한은 자신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한 채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런 기적 같은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3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과 북미 관계는 교착과 갈등, 불신과 대립의 과거로 돌아갔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동아시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해 위의 세 목표는 반드시 달성돼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냉전 종식 이후 30년 이상이 지나도록 동아시아 냉전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천착이 필요할 것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의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는 한미관계사의 측면에서 동아시아 대결 구조의 배경과 현재를 분석한 책으로 이해한다. 우선 “한·미관계는 깊어져야 하지만, 한미군사동맹은 약화되는 것이 국익에 바람직하다”(26면)는 저자의 주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아가 “동북아에서 실질적인 다자협력이 가능해지고, 그것도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관계가 복구되고 미·중관계가 갈등보다는 협력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359면)는 진단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한다.

문제는 이런 바람직한 목표의 달성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평자는 미국의 군사주의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판단한다. 더 정확하게는 군사력을 통해 세계를 미국식 자본주의 일색으로 평정하겠다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2차대전 이후 미국 대외전략의 일관된 목표다. 냉전 종식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해체하고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후세인과 카다피 등 이라크, 리비아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이러한 미국 세계전략의 현실적 적용이었다. 명분은 자유와 민주였으나 실질은 미국과 다른 체제의 생존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군사주의와 관련해 이 책에서 더 다뤄졌다면 하는 점이 있다.

미국 군사주의가 완성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을 빌미로 미국은 군사비를 일거에 4배 증액하고 이후 2년간 군수물자 생산을 7배 늘렸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완성하고 샌프란시스코 단독강화를 추진했다. 방치했던 타이완 방어에 나섰고 베트남 독립전쟁과 관련, 프랑스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했다. 이렇게 전쟁국가 체제를 완비함으로써 중국 공산화와 소련의 핵무기 완성에 따른 사회주의권 및 제3세계의 거센 도전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개입을 주도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이후 “코리아가 나타나 우리를 구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외전략 형성에 미친 이 중대한 영향이 분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다룬 제2장에서 이야기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케네디 행정부 이후 미국의 선택으로 재개된 베트남전쟁, 즉 대규모 군사고문단 파견과 1963년 응오딘지엠 암살, 1964년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한 북폭과 전면전으로의 확대 끝에 결국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베트남전쟁과 2003년 이라크전쟁의 실상이 제대로 지적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을 다룬 제4장에는 “1954년 제네바협정에서 (…베트남의) 남북 분단체제는 유지하기로 합의했다”(106면)는 서술로 끝나는데, 협정 후 2년 내 즉 1956년 남북 베트남 총선이 합의됐으나 미국의 주도로 이 국제적 약속이 파기됐고, 이것이 이후 20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도,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9·11테러 연루와 같은 거짓 이유를 들어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강행한 예방전쟁이었다는 점과, 그 결과 중동지역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고 대규모 난민의 유럽 이주 등으로 서방의 극우 인종주의가 심화되는 등 전쟁의 부작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됐어야 한다고 본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두 전쟁이 미국의 위상과 평판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보유 금을 탕진했고,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의 신뢰를 상실했다”라고 요약했다. 미국의 군사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나토나 일본과는 달리 전시작전통제권을 100퍼센트 미국에 위임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미국의 대외 군사작전에 연루될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평자가 주목한 부분은 제12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미국, 제15장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제16장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과 한·미·일 관계 등이다. 12장에서는 한국 대외전략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노력에서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의 극명한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고, 15장과 16장을 통해서는 2011년 11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천명 이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사드 배치 강행 등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제, 나아가 한·미·일 군사동맹이 구축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은 아직 한미동맹이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방위동맹이라고 믿고 있지만, 현실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냉전 외교를 반대해야 할 당위성은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미국의 전략체제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편입되어 있기에 운신의 폭은 크지 않다.”(428면)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열쇠가 결국 남북관계의 복원”(같은 곳)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한·미의 굳건한 동맹을 통해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것과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촉진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433~34면) 하는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의 트릴레마(trilemma)” 때문이다. 한국의 3대 목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달성, 한미동맹 유지인데 이 셋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고 한가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비핵화와 한미동맹을, 진보진영은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중시한다.(434면) 즉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미동맹의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반발이 실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저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 트릴레마를 극복하고 동시에 세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견지하고 있다”(454면)고 했는데, 평자가 보기에 이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난제다. 결국은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즉 미중 대립 속에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한국 외교의 결정권을 어느 세력이 갖느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그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김대중정부 이후 한국의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남북관계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드 배치 등에서 극단적 차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내년 대선이 중대한 분기점으로 부각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