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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반비 2021

82년생 아무개의 라이프스타일

 

 

다드래기

만화가 dadure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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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주변인’이다. 감성이 아닌 삶으로 아날로그와 함께 성장했고 디지털의 포문을 열었으며 위로는 완전히 같은 것을 공유하면서도 극렬한 세대 차이를 겪고, 다음 세대와는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도 무서운 속도의 변화에 놀라고 두려워한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삶 또한 페미니즘의 격동과 함께한다. 페미니즘의 르네상스 1990년대에 성장했고 2000년대의 암흑기에 청춘을 보냈으며 2015년 ‘메갈리아’로 재발화된 페미니즘 운동에 후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동지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82년생이다.

이 책은 저자 김현미 교수가 ‘줌마네’를 통해 2018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 강연의 기록이다. 청년·중년 여성들의 공동체적인 자립과 성장을 지원하는 ‘줌마네’에서의 강연이라는 것이 이 책의 알파요 오메가 자체다. ‘일상의 여성학: 인간적인 노동과 삶을 위한 일상의 재배열’이라는 강연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이라는, 호기심을 가득 자극하는 제목으로 재탄생한 것은 “마켓 페미니즘”(187면, ‘소비를 통한 정치 참여’를 뜻함)에 친숙한 나에게 기가 막힌 한수로 다가왔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이후 여성의 무임노동 영역이 임금노동화되면서 여성의 노동은 더욱 세분화하고 복잡해졌다고 설명한다. “초남성적 발전주의”(218면)가 만들어낸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근로주의를 숭상하고 자활노동과 자율노동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가사와 돌봄노동을 여성 노동으로 본질화시켰다. 저자는 기존의 노동 개념을 재정의하고 시간을 재배열하여 ‘자율성’을 찾길 권한다. 그렇게 얻어낸 개인의 자율과 집단적인 결속의 균형과 연대를 위해 “정동적 관계”(240면)를 구성하여 인식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82년생 아무개, 나는 두번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불안정한 고용시장의 출발을 알린 피식자가 되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두번째 위기가 몰려왔을 때, 안정된 고용을 찾아 뛰어들었던 ‘콜센터’ 일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여성의 일자리처럼 포장됐으나 이는 지금도 ‘감정노동’과 ‘여성 노동’의 대표적인 암흑지대로 일컬어진다.

콜센터는 여성의 궁핍을 이용하는 자본가의 꼼수가 집결된 곳이다. 업무는 매일 소비될 뿐 숙련된 기술로 인정되지 않는다. 각 기업에서 요구하는 업무지식과 서비스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간주한다. 몇년의 경력자가 이직을 해도 급여는 처음부터 시작이다. 또한 성과주의 급여체계 때문에 승진을 마다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온갖 감정노동에 시달려도 성과급 하나로 보람을 느끼는 상위권 근무자들은 ‘관리자’로 승진해 실무 성과급이 없어지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경력단절로 일터를 떠났다가 콜센터 상담원이 되어 돌아온 여성들은 과거의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재직했던 공기업 콜센터에는 IMF 전에 정규직 출신이었던 중년 이상의 선배들이 절반이었다. 4년제 대학 출신임을 앞세워 젊은 저학력 인력들을 무시하기도 하는 “여왕벌 신드롬”(289면)도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고용 외주화의 역사 현장이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여성 일터’라는 환상은 ‘어떤 여성성이라도 결국 같은 터널로 나오도록’ 하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콜센터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돌봄’과 ‘친밀성’이 상품이 되면서 어떻게 여성을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지 보여주는 아주 분명한 예시다.

2000년대 중반 공기업의 지역 콜센터 일부에서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량 해고 사태로 이어진 적이 있다. 사측은 여성의 고용 불안정을 무기로 삼고 동료들이 노조원들에게서 등을 돌리도록 회유했다. 그러나 고난의 시간을 거쳐 결국 그 콜센터는 지금도 아주 귀한 ‘노조 있는 콜센터’가 되었다. 육아노동이 집중된 직원이 많았던 콜센터에 재직할 당시에는 임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해달라는 건의가 꾸준히 무시당했다. 그러던 곳이 시대가 변하고 여성 고용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생긴 후 어린이집을 만들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는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변화였지만 결국 이를 쟁취해낸 것은 다름 아닌 여성 노동 현장의 기혼여성 당사자와 미혼, 비혼의 동료들이었다. 가치관은 달라도 공통의 요구를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합류적 사랑”(318면)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에 오기까지 여성의 조직에서 어떤 투쟁과 연대가 있었는지 간과해선 안 된다.

2015년 한 여성 게임 성우가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티셔츠를 입었다가 해고되는 사건(227면)이 페미니즘 재점화에 급격한 화력을 발휘했다. 수많은 발언들이 오고 가고 ‘나무위키’에 동료 웹툰 작가들이 ‘메갈’이라는 명명으로 명단에 올랐다. ‘#나도 메갈이다’에 합류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트위터를 하지 않았던 당시의 한발 느림 때문이다. 최근 비혼 여성의 생계·질병과 관련된 작품을 낸 후 나무위키의 몇 항목에서 나에 대한 언급을 발견했다. ‘여성 문제에 관심을 높이려는 다드래기 작가는……’ 그리고 주석으로 친절하게 ‘자신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이야기한 적이 없음’이라고 설명이 붙어 있다. ‘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삶과 상관없이 페미니즘이란 실체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타율노동’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고 ‘자활노동’으로 혼자의 삶을 규칙적으로 꾸려가며 ‘자율노동’으로 공동체와 협력하며 살고 있지만(155면) 나의 지위와 소득수준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것에 충족되지 못하니 판단이나 발화의 가치가 낮은 것인가 생각할 때도 있다. 지금도 온라인 속의 상당수 연대에는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했던 초남성적 발전주의의 전복을 상징할 부와 능력을 갖춘 ‘선지자’ 혹은 ‘영웅’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이는 SNS 속에서 ‘익명화’되거나 ‘셀프 브랜딩’된 페미니즘의 마이크로 셀럽들의 판단과 제시에 기대려는 더 경직된 사고를 드러내기도 한다.(297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협력적인 관계는 바로 능력의 탁월함이나 피해의 고통에만 주목하지 않고, 실재하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과 자원을 갖는 것이다. 이미 여성들은 수치적으로, 구체적으로 평등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남성적인 사회가 쌓아 올린 공고한 탑이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직접 강남역으로 나섰고 ‘미투’ 운동으로 피해를 공유하며 연대의 속도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일상에서 드러내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이 또다른 공격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온라인 밖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여성 문제에 관심을 높이려는’ 82년생 아무개씨는 어떤 ‘셀프 브랜딩’도 하지 못했고 존경할 만한 성과도 부도 인격도 쌓지 못했지만 일상에서도 고립되지 않았다. 메갈리아 탄생 이전의 여성 노동 현장도 그 문제점의 파도 속에서 싸워왔다.

자, 그럼 오늘 82년생 아무개씨는 과연 ‘선언’을 할 것인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의 시작을 따지자면 ‘여학생이라서 반장에 선출될 수 없다’라는 말이 아직 만연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일 것이다. 그 사실에 의문을 품은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선언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시대에 불안정성은 여성의 약점이 아니다. 불안정성은 “‘가부장 없고 직장 없는’ 기간이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시대”의 “존재 조건”(325면)이 된 만큼 이를 수용하는 시선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정해진 규칙이 아니다. 이미 변화하면서 여기까지 온 만큼 앞으로 걸어갈 시선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