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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어쩌면 스무 번』, 장편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음.

 

 

 

목욕

 

 

그 일을 결정한 건 아버지였다.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에 따르면 아버지는 직접 병원으로 가서 서약서를 작성했다. 목사는 김한수가 처음 듣는 얘기임을 아는지 그 일의 의미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순전히 아버지의 결정임을 강조하려는 듯 ‘자발적으로’라는 말을 연거푸 사용했다. 김한수는 목사의 말을 들으며 어쩐지 아버지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 모르게 일을 벌인다는 뜻에서였다. 가족이라고는 김한수뿐이었지만.

아버지 칭찬을 늘어놓는 목사를 피해 시선을 돌리다 상조회사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김한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인 듯했다. 감염병 상황에서도 상조회사는 직원을 여섯명이나 파견했다. 그들은 드문드문 앉아 있는 조문객에게 번갈아 시선을 두며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 오면 반듯하게 서서 예를 갖췄다. 상조는 아버지가 가입해둔 것이었다. 아버지는 보험과 다른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와중에도 매월 노령연금 일부를 헐어 상조에 가입했다. 의사에게 의지한 적은 없지만 장의사만큼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목사가 상가를 떠난 후 그와 일행이던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장기기증 유족 모임의 총무라고 소개했는데 직함이 박힌 명함을 건네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목사님의 설명이 상세하지 않은 듯하여 조금 보충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김한수는 거절하려 했다. 조문객이 거의 없고 전날 잠도 잘 잤지만 누군가와 아버지를 화제로 얘기를 나누는 일이 어색했다. 게다가 모임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는 걸 보니 그 모임도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회원 간의 친목과 호의로 겨우 운영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한수의 짧은 침묵을 그러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총무가 목사의 설명 중 누락된 부분이 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고인이 자의로 서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사실을 먼저 일러주었다. 목사가 시신 및 장기 기증과 관련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협약 병원에 서약서를 쓴 교인이 제법 되지만 유족이 결정을 번복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도 했다.

말을 마친 그는 번복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김한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김한수는 생각해보겠다고 형식적으로 대답했으나 목사의 말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결정을 재고할 마음은 없었다. 총무는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상가를 떠났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장례를 치른 지 육개월 만에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해 간 병원에서 이송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김한수는 그 일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실은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장례를 마쳤다. 상조회사 직원이 도운, 예와 절차를 다한 장례였다. 납골당의 빈 유골함 앞에서 가까운 친척들과 고개 숙여 간단히 제를 지내기도 했다. 고지식한 고모가 이러는 법은 없다면서 나무랐지만 그게 다였다.

하지만 종종 장례식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아니라 모르는 누군가의 상가에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장례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체를 보았는데도 그랬다. 조금 차가워 보였으나 여전히 살집 있는 몸이었다. 이상하리만치 담담했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닮았으나 아버지라는 실감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 담당자는 연락을 받고 온 김한수에게 실습이 끝난 시신을 어떻게 운구해 갈 것인지 물었다. 김한수는 당연히 병원 측에서 편의를 제공하리라 여긴 터라 황당해하며 쳐다보았다. 담당자는 자신이 더는 돕지 않음을 분명히 하려는 듯 결정되면 알려달라 이르고는 자리를 피했다. 김한수는 기회를 놓쳤지만 담당자는 이런 일을 여러번 겪은 것 같았다. 실습이 끝난 시신의 운구를 떠맡은 유족에게 항의의 말을 듣는 일 말이다.

김한수는 도움받을 사람을 떠올리려 애썼다. 당연한 연상으로 상가에 방문한 목사를 먼저 생각해냈다. 그만큼 기증 후 절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장황하게 사정을 설명한 끝에 목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예배 중인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운구를 도와줄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농담이라 여길 것이다. 육개월 전에 장례를 치른 아버지의 시신을 이제 와 함께 운구해달라는 김한수의 전화를 근무 중에 받는다면 누가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도울 사람을 찾지 못하면 김한수는 혼자서 아버지를 둘러업어야 했다. 살아 있을 때보다야 무겁지 않겠지만, 그게 이 일의 핵심이었다.

그러다 유족 모임의 총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던 말 때문이었다. 그 도움이 시신의 운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당연히 그의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지만 김한수는 자신이 가입하지도 않은 유족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온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리로 전화를 걸어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총무를 찾았으나 전화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총무인데 김한수는 물론 그의 아버지를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한수는 끈질기게 장례식 상황을 상기시켰고 그런 후에 빈소를 방문했으리라 짐작되는 전임 총무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하지만 전임 총무 역시 김한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아버지 이름을 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더는 모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한수는 납득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도울 의무가 전혀 없었다.

“화장장 예약은 했어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김한수에게 물었다.

“화장장이요?”

그는 운이 좋으면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일러줬다. 김한수는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라 구급차요? 하고 무기력하게 되물었다. 총무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는 병원이 어디냐고 물었다.

총무를 기다리는 동안 김한수는 몇곳의 민간 구급차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는데 법률을 근거로 시신 이송이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총무가 ‘운이 좋으면’이라고 말한 게 그 때문인 듯했다. 병원 담당자에게 시신 인수를 재촉하려는 듯한 전화가 몇차례 걸려왔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바디백에 싸인 채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총무는 목례로 김한수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침대 앞부분을 잡아끌었다. 김한수는 얼른 뒤쪽으로 가 침대를 밀었다. 병원 입구에서 담당자가 뚜렷한 근거 없이 더이상 이동이 불가하다고 제지하자 총무는 으레 겪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를 끌고 주차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이없어하는 담당자를 뒤로하고 김한수도 덩달아 뛰었다.

김한수가 자동차 뒷좌석 문을 열자 총무는 무게와 길이를 가늠해보듯 아버지 시신을 훑었다. 바디백 사이즈 그대로 뒷좌석에 들어갈 수 없으니 좌석 크기에 맞게 아버지를 적당히 구겨 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는 김한수에게 잘 잡으라고 이르더니 바디백 윗부분을 받쳐 들었다. 그는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한 듯 행동했다. 세상 어디에나 죽은 사람이 있다는 듯 굴었다. 김한수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 아랫부분을 받쳤다. 바디백에 감싸여 있지만 손에 닿은 신체 부위가 고스란히 느껴져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속이 빈 아버지는 가벼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무거웠다. 생전과 다름없이 무거웠다. 그게 김한수를 조금 울적하게 했다. 죽어서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

아버지는 엉덩이가 쑥 빠진 자세로 얼마간 허공에 들려 있다가 조금씩 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화장장까지 가는 동안 총무는 기증원과 협약을 맺지 않은 병원에서는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담담히 사정을 설명했다. 김한수는 애써 입을 다물었다. 정당치 않은 줄 알지만 총무에게 화를 낼 것 같아서였다.

화장장은 예약이 밀려 대기해야만 했다. 김한수는 거의 마지막 차례였다. 담당자에게 급한 사정을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여기 다 그런 사람들이에요.”

담당자가 말했다. 유가족 모두 시신과 함께 차에서 대기한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운구차는 아래쪽 별도 공간에 시신이 누워 있고 김한수는 뒷좌석에 겨우 눕혀 놓았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총무는 시계를 보더니 먼저 가보겠노라고 인사했다. 김한수는 붙잡고 싶었으나 그와는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음을 상기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잘 ‘수습’하고 오라고 덧붙였다. 김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일을 단지 처리해야 할 일로 여길 작정이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좁은 차 안에서. 아버지는 죽었고 몸이 파헤쳐졌고 다시 봉합되어 이제는 완전히 소멸되기 직전이었다. 병원에서 시신 기증에 관한 서약서를 쓸 때만 해도 아버지 역시 김한수와 이런 식으로 헤어질 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하며 서약서를 쓴 것일까.

김한수의 옆자리 동료는 얼마 전 다른 제약회사에서 이직했는데, 아버지와 의논한 끝에 이직 결정을 내렸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김한수는 조금 놀랐다. 부모와 장래를 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아서였다. 김한수도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와 인생을 상의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되고 나니 어떻냐고 묻고 싶었다. 바디백 안에 든 아버지는 시치미를 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저녁때에야 순서가 돌아왔다. 김한수는 아버지를 조금씩 끌어당겨 차에서 내린 후 품에 안아 세우고 천천히 몸을 돌려 등에 업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온몸에 힘을 주어야 했다. 무거웠다. 걸음을 떼기 어려울 정도여서 덕분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죽고 나서야 김한수에게 삶이 뭔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삶은 속이 갈가리 찢긴다 해도 무게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화장을 시작하고 유골함을 받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유리창으로 살펴볼 수 있었지만 김한수는 멀찍이 떨어진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다. 붐비던 대기실이 텅 빈 후에야 전광판에 완료 안내 문자가 떴다.

납골당으로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김한수는 면포에 싸인 유골함을 옆자리에 싣고 원룸으로 돌아왔다. 삼일장을 치를 때보다 몸이 더 고단했다. 유골함을 현관 앞 마루에 내려놓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가 새벽에 뭔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서 잠이 깼다. 베란다 문을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김한수는 어두운 방에 희끄무레 놓인 유골함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김한수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독립한 후로 볼일이 있을 때면 김한수가 아버지 집으로 갔다.

잠을 설친 탓인지 그날은 내내 무거운 몸으로 여러 약국을 돌았다. 일이 일찍 끝나면 납골당에 갈 생각으로 아버지 유골함을 차에 실어뒀으나 그럴 시간을 내지 못해 종일 아버지와 함께 영업을 다닌 셈이 되었다. 퇴근 무렵에는 근처에서 외근 중인 동료에게 전화해 술을 마시자고 졸랐다. 술을 마시는 동안 동료는 김한수가 무슨 말을 하건 약 팔고 있네, 하고 대꾸했다.

대리기사가 떠난 후 김한수는 아버지 유골함을 꺼내 집으로 가지고 왔다. 취한 와중에도 차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려다 유골함을 떨어뜨릴 뻔해서 아버지 앞에 쪼그려 앉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울렁거려 변기에 대고 토했다. 배 속이 더럽구나. 변기에 고인 토사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김한수는 손짓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진짜 더럽죠?”

“어서 치워라.”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미간을 좁혔는데 아버지에게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다.

“내 속이 얼마나 더러운지 잘 알겠죠?”

“그게 뭐냐. 토사물이 더러운 거지.”

“그게 아니죠. 식도하고 위만 거쳤다 나온 건데 이렇게 시큼하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잖아요. 내 속이 더럽죠.”

“그래, 더럽게 더럽다.”

아버지는 속 시원히 동의하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김한수와 아버지는 오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상상 속에서도 아버지는 이내 자리를 떴다.

다음 날 김한수는 갈증 탓에 알람도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더는 잠이 오지 않을 듯해 피하듯 집을 나섰다. 가장 안쪽에 있는 제 자리로 가려고 거대한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 책상에 놓인 실적표가 죽 보였다. 회사에서는 아침에 출근하면 볼 수 있도록 막대그래프가 그려진 실적표를 출력해 매일 책상에 올려뒀다. 최근에 그래프를 채운 색깔이 경고등처럼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해왔던 일이지만 새삼스럽게 그래서는 안 된다 싶은 일이 있는데, 날마다 실적을 재촉하는 일이 그랬다. 실적표를 구겨 쓰레기통에 넣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딱히 갈 데가 떠오르지 않아 화장실 변기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곧 익숙한 냄새가 풍겨서 김한수는 오늘 하루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완전히 다른 하루가 되리라고 예감했다. 사람 속이 더럽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던 것이다. 목으로 삼킨 음식이 내장에 고였다 배출되는 동안 형태와 성분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냄새까지 풍기게 된 걸 보면 사람 속은 더러운 게 틀림없었다.

김한수는 그대로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객기를 부리기는 했지만 막상 갈 데는 없어서 대로변을 분주히 오가는 버스와 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공연히 쳐다봤다. 여기서 뭐 해? 출근하는 동료가 김한수를 툭 치고 가기도 했다. 김한수의 답을 들을 새도 없이 그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건물 후문 쪽으로 돌아가 가게들이 영업을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순댓국집 앞에 배달 온 무와 배추가 쌓여 있어 개수를 셌다. 양평해장국집 주인은 김한수가 어슬렁거리자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 식당가 끝에 있는 단골 칼국숫집에도 가보았다. 닫힌 유리문 안쪽에 종이가 붙어 있길래 들여다보니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며칠 못 온 사이 그리된 모양이었다. 할머니와 손녀가 하는 곳이었는데 팥칼국수가 특히 맛있었다. 사무실 사람들 중에는 그걸 좋아하는 이가 없어서 김한수는 종종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할머니는 매번 칼국수를 주면서 공깃밥도 내주었다. 하루는 사무실 동료와 함께 갔는데 공깃밥을 주지 않아 물어보니 혼자 오는 사람에게나 주는 보너스라고 했다. 가뜩이나 속이 허할 테니 뭐라도 먹여 보내야 한다면서. 한동안 문을 닫는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음식을 하는 할머니 건강에 문제가 생긴 듯해, 김한수는 어두운 가게 앞을 잠시 서성였다.

칼국숫집 건너편 오래된 상가에는 철물점이 있었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물점 벽에, 이석헌 잡부일 잘합니다,라는 문장이 전화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다. 처음 그걸 발견한 옆자리 동료는 누군가 철물점 주인인 이석헌씨를 엿 먹이려고 써둔 낙서라면서 키득거렸다. 다음번에 보았을 때는 철물점 주인이 놀고 있는 이석헌씨의 구직을 위해 적어둔 문장 같다고 말을 바꿨다.

“그럼 이석헌씨는 누구야?”

김한수가 물었다.

“누구긴 누구야, 잡부지.”

동료가 웃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김한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석헌씨가 주인이건 아니건 잡부일을 하는 사람인 건 틀림없어서 함께 웃지는 못했다. 가만히 봐야 알 수 있게 작은 글씨로 쓰여 있던 문장은 이미 지워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한수는 편의점에서 소주와 컵라면을 사서 밖에 내놓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삼십분 정도 먹다가 들어갈 작정이었는데, 마시다보니 조금 배짱이 생겼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김한수를 지나치며 그걸로 점심을 때우느냐고 물었다.

사무원으로 붐비던 거리가 한산해질 즈음 팀장이 편의점으로 왔다. 팀장은 육포를 사 와서는 김한수 옆에 앉았다. 그는 김한수가 따라준 소주를 한잔 마시고 육포를 씹으며 자신은 실적표를 보고 사무실에서 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너는 울지 않았으니까 나보다 나아.”

“울 수도 있죠.”

“그래, 너도 그럴 수 있어.”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잘 놀고 내일 보자.”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한수는 느긋이 앉아 육포를 씹다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해냈다. 운구를 도와준 전임 총무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안 한 것이다.

그는 이번에도 김한수의 이름을 듣고 누구냐고 물었지만, 시신을 인수받은 병원 이름을 말하자 바로 알아차렸다. 찾아뵙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괜찮다며 거절했다. 김한수는 못 알아들은 척 그가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고 했다. 총무는 다소 난감한 듯 웃었지만 더 말리지는 않고 찜질방으로 오라고 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으려는데 그가 문자로 주소를 보내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찜질방은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 여덟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도로명 주소가 낯설어서 그렇지 막상 가보니 아버지가 생전에 살던 동네였다. 총무와 아버지가 같은 교회를 다닌 것도 두 사람이 한동네에 살아서인 듯했다.

아무리 목욕에 열중한다고 해도 끝내고 나왔을 법한 시간인데, 다시 전화를 걸자 총무는 여전히 찜질방이라고 했다. 잠시 후 누군가 찜질방 매표소에서 김한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총무였다. 김한수는 그를 따라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손님이 왔다. 주로 중장년층이어서 그런지 대개 현금으로 입장료를 내거나 월정액 회원권을 내밀었다. 현금을 받으면 총무는 카운터 아래로 손을 뻗어 커다란 나무상자에 집어넣었다. 상자에는 헌금함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쓰여 있고 윗부분에 지폐 들어가는 구멍이 가로로 뚫려 있었다. 그는 밤이면 통을 열어 안에 든 현금을 죄다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갈까. 자기 전에 그날 벌어들인 현금을 셀까. 그걸 집 안에 쌓아뒀다가 몰아서 은행에 가져갈까. 돈을 받아 헌금함에 넣으면 어떤 기분일까. 매번 기도하는 마음이 들까. 때 묻은 돈을 헌금 대하듯 해서 이렇게 큰 찜질방 사장이 된 걸까.

총무가 손님에게서 받은 돈을 통에 넣으려다 말고 김한수를 쳐다봤다.

“크고 좋네요.”

김한수가 민망해서 얼른 말했다.

“여기 단골이던 목사가 주고 갔대요. 교회가 망했거든요.”

김한수가 잠자코 있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 해요. 교회도 망하는 세상이잖아요.”

뭘 알고 하는 말일까. 김한수가 그를 쳐다봤지만 훈수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 같았다.

“아, 전 여기 사장 아니에요. 직원이에요. 그나저나 내가 여즉 총무인 줄 아는 걸 보니 모임 안 나간 지 한참 됐죠?”

총무가 물었다. 한번도 안 나갔다고 하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소개가 늦었네요. 송지오라고 해요. 그날은 찜질방이 휴무여서 다행히 짬이 났어요.”

김한수는 송지오에게 영양제 세트를 건넸다. 차 트렁크에 언제나 넣어 다니는 것이 있지만 차를 가져오지 않아 근처 약국에서 샀다. 김한수가 납품단가를 아는 줄도 모르고 약사는 많이 깎아준다며 생색을 냈다. 그는 평소 약국장들에게 하던 대로 허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했다. 김한수는 그런 말에 익숙했다. 감사하다거나 신세를 졌다는 말에.

“글쎄 됐대도요.”

송지오가 손사래를 치며 쇼핑백을 김한수에게 다시 건넸다. 영양제를 두고 잠시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송지오는 끝내 받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서는 모르겠더니, 주차장에서야 누구신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교회에서도 뵌 적 있지만 그보다는 찜질방에 자주 오셔서 기억에 남았어요.”

아버지가 액자에 끼워둔 사진을 보고 교회에 다니나보다 짐작한 적은 있었다. 찜질방에 자주 다녔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라면 그는 언제나 할 말이 없었다.

“농담을 잘하셨어요.”

“농담이요?”

“한번은 오랜만에 찜질방 안에서 마주쳐서 식혜를 사드렸더니 나가실 때 굳이 돈을 쥐여주시더라고요. 천원을요. 식혜는 사천원이었는데 말예요.”

송지오가 크게 웃다가 김한수를 의식했는지 웃음을 멈췄다.

“뭐든 공짜는 싫다시잖아요. 교회에서 식사를 하시면 꼭 고장 난 데를 찾아서 고쳐주셨고요. 기술이 워낙 좋으셨어요.”

김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삶을 건사해왔다.

“하루는 목욕을 하고 가시다 말고 다시 오시더니 성경을 읽어본 적 있냐고 물으시데요.”

송지오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김한수의 아버지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데도 왜들 고통을 겪느냐고 물었다. 송지오는 “그래요?” 하고 되묻고 말았다. 만약 질문이 더 이어진다면, 그러기 십상이어서, 목사님한테 물어보라고 떠넘기고 말 생각이었는데, 김한수의 아버지는 비밀을 알려주듯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죽더라고요.”

“네?”

“심지어 예수도 죽잖아요.”

누가 들어도 농담이어서 송지오는 조금 웃었지만 김한수의 아버지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 김한수처럼. 김한수가 내내 굳은 표정이어서 송지오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의 아버지가 욥에 대해 말한 것 말이다. 김한수의 아버지는 욥이 고통스러워 죽은 게 아니라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고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늙어서 죽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가봐요.”

선반이 부러진 예배당 의자를 알아서 고쳐놓을 때나 천장이 높은 본당의 전등을 갈러 도움 없이 사다리에 오를 때의 그는 억척스럽고 어리숙해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때의 그는 제대로 아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겪은 일을 가만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주차장에서 굳은 몸을 안고 있을 때도 송지오는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한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 일로 다시 뭔가를 겪고 의미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김한수 아버지뿐일 것 같았다. 송지오가 입을 다물 테니 김한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를 것이다. 송지오는 김한수에게 자신 역시 유족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김한수는 아버지였고, 송지오는 아들이었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아들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했다. 목사가 운을 뗐지만 아들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하고 싶었던 송지오가 따랐다. 석달쯤 지나 병원 측으로부터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송지오는 그날 죽은 아들의 몸을 다시 봤다. 마음이 찢어져 영영 기워지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김한수 아버지의 말대로 그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송지오는 이후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모임도 관뒀다. 목사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목사로부터 자신이 한 일을 두고 선하다는 말을 듣기 힘들었다. 목사가 누군가의 쓰임을 칭송할 때마다 들이받고 싶어졌고 한번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왔으니 몸이라도 녹이고 가요.”

송지오가 그렇게 말하며 찜질방 입장권을 내밀었다. 이래 봬도 이곳 물이 암반수라 담그기만 해도 몸이 반들반들해진다고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오는 손님 그냥 보내는 거 아니라면서 김한수를 안쪽으로 떠밀기까지 했다. 그 참에 김한수는 영양제가 든 쇼핑백을 떠넘기듯 송지오에게 건넬 수 있었다. 송지오가 어쩔 수 없이 쇼핑백을 받아 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옷을 갈아입고 황토방에 누웠더니 노곤했는지 깜빡 졸음이 왔다. 송지오가 살짝 몸을 흔들어서야 김한수는 눈을 떴다.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송지오는 먼저 가보겠노라고 인사했다. 김한수가 자신도 따라나서겠다고 하자 송지오는 나가봤자 갈 데도 마땅치 않다며 식혜를 두잔 사 가지고 왔다. 고맙다는 말을 하러 왔지만 딱히 나눌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두 사람은 식혜를 맨바닥에 나란히 두고 앉아 민숭민숭 찜질방 여기저기로 시선을 두었다.

곳곳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코를 골며 잠든 노인도 있었다. 송지오는 손님들이 알은척할 때마다 매번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고 간혹 마스크를 대충 걸쳐 쓴 손님이 보이면 밉지 않게 잔소리도 했다.

“노인분들이 많으시네요.”

“윗동네 분들이에요. 거긴 딱히 씻을 데가 없는 집이 많으니까요.”

그제야 김한수는 감염병의 와중에도 손님이 계속되는 걸 이해했고 아버지가 자주 이곳에 온 이유도 깨달았다.

“몇해 전에 후원을 받아서 교회에서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요. 혼자 사시는 분들 모시고 가느라 아버님께도 청했는데 안 가신다더라고요. 공짜라 싫다고요. 교회 수리를 맡으시라니까 그제야 그러마 하셨어요. 그후론 전등 가는 일이며 페인트칠, 지하실 청소, 보일러 점검을 죄다 맡아 하셨고요.”

성지순례 명목이었지만 다른 패키지 팀처럼 명소 몇곳도 돌아보도록 일정을 짰다. 총무로 동행한 송지오는 경비도 체크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체력이 떨어지는 노인들도 챙겨야 해서 참으로 정신없는 일정을 보냈다. 그러던 중 막바지에 한 전쟁박물관에 가게 됐다. 박물관 안에서도 뒤처지는 노인들을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섰는데, 유독 김한수 아버지가 한 캐비닛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일행과 간격이 벌어질 것 같아 송지오는 그에게 다가가 뭘 보고 있느냐고 재촉 삼아 물었다. 김한수 아버지가 천천히 캐비닛을 가리켰다. 전쟁 당시 민중들이 사용한 물품을 전시해둔 칸에 낡고 오래된 수동 커피밀이 놓여 있었다.

“이것 보세요.”

김한수 아버지가 말했다.

“어지간할 때도 손수 커피를 갈아 마셨네요. 총알이 빗발치는데도 이걸 갈고 향도 맡고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나봐요.”

송지오는 전쟁 중이라도 그럴 때가 있겠지 싶어 심상히 넘겼는데, 그는 감탄한 듯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른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송지오의 말을 들은 후에야 김한수 아버지는 다음 전시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앞서가고 나서 영문으로 된 안내문을 읽어보니, 커피밀은 전쟁통에 커피를 마시려던 게 아니라 식량이 넉넉지 않아 수프를 끓여 먹으려 보리를 갈던 용도라고 했다. 실로 전쟁터답게 끼니를 때우는 데 커피밀을 써먹었다는 것이다.

애당초 감탄을 하지 않았음에도 더할 수 없이 시시해진 송지오는 전시실을 돌다가 김한수 아버지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 얘기를 해줬다.

“그래요? 커피가 아니라 보리를 갈았다고요?”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처럼 시시하다고, 사람은 그저 실용적인 존재라고, 언제나 먹고사는 일을 제일로 둔다고 송지오가 대꾸하려는데 그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그렇다니까요. 그렇게 대단하잖아요.”

김한수의 아버지는 전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다음 전시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송지오는 어째서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어서 그 표정을 기억해뒀다.

김한수는 통 아래 가라앉은 다디단 밥풀을 씹었다. 아버지는 좀 이르다 싶게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노인 취급을 받는 것이 더 편하다 여긴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이른 노인 행세는 주로 무능과 실수를 변명하는 데 쓰였다. 아버지가 왜 서약서를 썼는지 알 수 없었다. 신세를 지면 보답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송지오의 얘기를 들으며 뭔가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사람에 대해 경탄했다는 아버지가 낯설어서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아버지인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김한수는 그걸 확인하는 대신 중학교 때 일화를 털어놓았다. 문방구 금고에서 돈을 훔친 일을. 주인에게 들키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아버지가 알게 됐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이 남에게 끼칠 피해부터 계산하는 사람이어서 정작 아들에게는 매정하게 굴었다. 아버지는 김한수에게 돈을 쥐여주며 사과하고 오라고 했다. 이렇게 돈을 줄 거면 진작 나한테 줄 것이지. 김한수는 생각했지만 더 얻어맞을까봐 말로 하지는 않고 문방구 주인을 찾아가 돈을 내밀었다. 주인은 자수한 김한수의 머리통을 지폐로 쿡쿡 찌르며 졸업할 때까지 문방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 생각부터 났다. 김한수의 잘못에 수치를 느끼는 모습 말이다.

“너무했네요.”

송지오가 말했다.

“그러게요. 진작 용돈 좀 주죠.”

“아니요, 문방구 주인이요. 자수를 했으니 봐줘야죠.”

송지오는 더 이야기해보라는 듯 김한수를 쳐다봤다. 모든 문제는 과거에서 비롯되니까 언제든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해결하고 내상을 풀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덧붙이기도 했다.

“과거로요? 문방구 주인을 찾아가라고요?”

김한수가 물었다.

“거길 뭐 하러 가요. 번거롭게. 그냥 해파리나 돼보는 거죠.”

“해파리라니요?”

“해볼래요?”

그러더니 송지오는 바닥에 누워 사지를 축 늘어뜨렸다. 그는 미심쩍어하는 김한수에게 자기를 따라서 누워보라며 팔을 당겼다. 김한수는 송지오를 괜히 잡았다고 후회했다. 송지오의 생각과 달리 그 일은 김한수에게 내상이 아니라 교훈을 남겼다. 아버지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교훈을.

송지오가 다시 재촉하는 통에 김한수는 어영부영 바닥에 누웠다. 송지오는 몸의 힘을 빼고 입을 약간 벌려 조금씩 숨을 들이마시라고 했다. 김한수는 따라 했지만 힘을 뺀다는 게 뭔지 몰라서 그저 어깨를 바닥 쪽으로 조금 떨궜다. 송지오는 계속 말했다. 머리로, 그리고 목구멍과 흉부, 복부의 순서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몇번 흉내 내자 그럴싸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나 목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는 걸 여전히 알기 어려웠지만 그저 해당 신체 부위를 의식하며 천천히 숨을 쉬고 내뱉었다. 실제로 그리로 호흡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숨이 가닿는 느낌을 가지라는 뜻이지 싶었다. 여러번 반복하자 속이 시원해졌다. 몸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매점 쪽에서 누군가 부르자 송지오는 벌떡 일어나 그리로 갔다. 서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짐짓 피곤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김한수를 불러 손을 흔들고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인사했다. 김한수는 이번에는 송지오를 막지 못했다. 그러려면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는데 그럴 새도 없이 송지오가 찜질방을 나가버렸다.

김한수는 이곳에서 밤을 보낼 생각으로 황토방으로 들어갔다. 해파리처럼 몸의 힘을 빼고 누워 서까래를 본뜬 천장 구조물을 쳐다봤다. 아버지가 머물던 작은 집이 떠올랐다.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보일러가 말썽이어서 수도를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집이었다. 그 집에서 아버지는 뚜렷한 기술 없이 이런저런 잡부일로 쪼들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중에도 매주 교회에 가서 일을 돕고 정기적으로 찜질방에 씻으러 다니며 몸이든 마음이든 단정히 해왔던 것이다.

다음 날 새벽 김한수는 욕탕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다.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탕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후 벌거벗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먼저 샤워기 쪽으로 가서 물이 튀지 않도록 수압을 조절한 후 몸에 물을 적셨다. 그런 후에 천천히 탕으로 들어와 김한수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얼마 후 몸이 덥혀졌다 싶었는지 다시 조심스럽게 일어나 샤워기 쪽으로 갔다. 이번에도 수압을 먼저 조절한 후 몸에 물을 뿌리고 천천히 비누칠을 했다. 김한수에게 등을 밀어달라 청하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그러려는 기색 없이 느리지만 전부 혼자서 했다.

노인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에 아버지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던 게 떠올랐다. 주인공이 아기를 씻기는 장면이 영 어설펐는지 아버지는 가벼이 혀를 차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아기를 씻길 때는 손목으로 머리와 목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야 한다고, 그런 다음 받친 손을 빼서 조금씩 물을 적셔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당시 무슨 일 때문인지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던 김한수는 못 들은 척 대꾸 없이 채널을 돌려버렸다. 아버지는 김한수를 힐끔 보며 입을 다물었다. 김한수는 줄곧 그런 게 궁금했다. 남들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드는 연민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김한수는 그저 지켜보았다. 일생에 거쳐 조금씩 삭은 구부정한 등허리와 홀쭉해진 시커먼 둔부, 탄력 없이 늘어진 살갗과 아래로 휜 척추뼈, 약품의 장복과 질병의 여파로 곳곳에 멍이 남은 노인의 몸을 보았다. 관절염과 류머티즘, 고혈압과 동맥경화 같은 질병이 거쳐가는 동안 용케 통증을 견뎌냈지만 어느 날 속절없이 숨이 꺼져들어가 기능이 정지되고 속이 마르고 종내는 딱딱하게 굳을 몸을 바라보았다.

찜질방에서 나온 김한수는 회사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른 시각인데도 새벽일을 하러 나선 사람들로 버스는 제법 자리가 찼다. 가는 도중 철물점에서 구직을 알리는 문장이 쓰여 있던 자리가 느닷없이 생각나 그리로 먼저 가보았다. 그것은 벽면 중앙이 아니라 창문틀 아래 작게 쓰여 있었다. 알아봐주면 좋지만 몰라줘도 서운치 않을 자리였다. 이제 보니 이석헌 잡부일 잘합니다,라고 적힌 밑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도 적혀 있었다. 아마도 이석헌씨는 살아오는 동안 그런 말을 숱하게 해왔을 것이다. 일도 받기 전에 감사를 표하고 실력이 좋아 일을 얻어도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 여겼을 것이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대우를 받아본 적 없어서 말이다.

아직 시간이 일렀지만 김한수는 그대로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텅 빈 사무실에는 책상마다 막대그래프가 그려진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김한수는 제 자리로 가면서 다른 사람 책상 위에 놓인 실적표를 죄다 걷었다. 그것을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넣으며 주말에는 납골당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