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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화길 姜禾吉
1986년 전주 출생.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음.
nananawhy@naver.com
복도
아니, 곱씹을수록 기분이 나빠.
그날 밤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건 아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그냥 남편은 그 말을 끝낸 뒤 더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그래서 솔직히 괜찮아 보였다. 뭐랄까,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저 황당한 일을 겪고 약간 짜증이 난 사람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남편 성격이 원래 그랬다. 자신을 압박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일에 감정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물론, 네가 이런 것까지 다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가 불쾌감을 나름대로 열심히 참았다는 것이고, 덕분에 나 역시 그 상황을 그러려니 하며 대충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분리수거장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찜찜한 기분으로 주위를 슬쩍 돌아보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지 걱정했고, 만일 나에게도 남편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즈음 나는 꼭 분리수거장에 대해서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썼다. 예민했다. 다만 그 공간이 유독, 내 마음을 증폭시켜줬을 뿐이다. 그래 증폭. 작년 겨울, 이 집에 이사 온 직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불길하게 흔들리던 마음. 금방이라도 터질 듯, 잔뜩 부풀어오른 나.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
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제 막 재개발이 시작된 동네였다. 너도 잘 알겠지만, 아파트 두 단지 중 입주를 먼저 시작한 1단지에 우리 집이 있었다. 1단지와 2단지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아이보리색 바탕에 기하학적인 보라색 로고가 선명한 이 건물들은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 중간 즈음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건물들 사이의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고 단지들을 구분하는 표지판도 없었다. 그러니 어디가 1단지이고, 어디부터가 2단지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집을 보러 왔던 첫날, 나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이 풍경이 단박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아파트라는 것이 좁은 땅에 건물을 높게 올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살도록 만든 거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에 있는 텅 빈 판자촌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한쪽은 빽빽이 들어찼는데, 다른 한쪽은 휑하니 비어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역세권도 아니었다. 이사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 그날, 집을 보러 왔던 바로 그날 말이다.
겨울이었고, 밤에는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눈이 아니라 비라니 참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산자락이라 그랬던 걸까. 유독 추웠던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는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핸드폰의 지도앱을 뒤적거렸다.
초행길인데다 두 단지가 잘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도를 신경 써서 봐야 했다. 우리 집은 1단지 100동 101호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도를 살피며 볼멘소리를 내뱉던 나와 달리, 남편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소 수선스럽게 굴었다. 자기야, 저기 나무가 많다. 건물들이 확실히 다 높네. 저건 뭐지? 무슨 석상이 있어. 산동네라 그런지 저런 게 있네? 덕분에 공기는 맑은 것 같아. 아, 그러면 여름에 모기가 많으려나? 등산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자기야, 어떻게 생각해? 어, 저기 좀 볼래?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지도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 부근에 201동이 있으니까 지금 여기에서 100동이 보여야 맞을 것 같은데…… 나는 인상을 썼다. 그 순간, 남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 100동 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웃었다.
아파트 1단지 바깥, 길가 바로 앞에 상자를 쌓아둔 것 같은 모양새의 작은 건물 세채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건물이 100동이었다. 말 그대로 길에 무슨 보따리를 내놓은 모양새였다. 심지어 우리 집은 1층이어서, 베란다에서 길가까지 몇 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판자촌과 우리 집 사이의 길도 너무 좁았다. 차와 사람이 오가는 도로라기보다는 그냥 어떤 건물의 길고 좁은…… 그래, 복도 같았다. 복도. 물론 집 앞에 화단을 만들고 낮은 담벼락을 둘러 세워 구분 지어놓기는 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안을 들여다보기로 한다면 집안 거실까지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이건 추측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날, 바깥에서 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나와 남편이었으니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임대주택이라 그런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지만, 분명 틀림없이 그런 것 같았지만, 정확하지 않았으니까. 임대주택이 왜. 무슨 문제가 있어서? 굳이 이렇게 지어놔야 하는 이유가 있나? 법에 그런 게 있나? 아니면 건설업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뭐 그런 원칙이 있나?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잖아도 차가운 뒷덜미가 더 서늘해질 뿐이었다. 나는 뭘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른이 되면 뭐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내 문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어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였는지, 그것조차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갭 투자는 뭐고, 비과세는 뭐고, 청약은 뭔데? 이 모든 게 다 뭐지? 그래도 확실히 알고 있는 단 하나가 있었다. 이 집, 파빌아파트 1단지 100동 101호는 우리가 신청한 뒤 네번 만에 당첨된 신혼부부 임대주택이라는 것. 그것도 후보로 한참 기다리다가 겨우 들어오게 된 집이라는 것이었다. 결혼 3개월째, 우리는 남편이 살던 9평짜리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나는 괜찮아.”
“응?”
“나는 이 집 괜찮은 것 같다구.”
그러더니 덧붙였다.
“베란다 블라인드를 좀 두꺼운 걸로 설치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면 여기서 하나도 안 보일걸? 그래도 불안하면 안쪽 문에 커튼을 하나 더 달자.”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다시 웃었다. 그래. 남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의 이런 점이 싫지 않았고. 덕분에 초조하던 마음이 가라앉긴 했다. 집의 좋은 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겨울이었는데도 화단의 꽃나무들이 꽤 풍성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봄여름에는 아마 더욱 무성해질 것이다. 나는 집 안에서 바깥을 보는 상상을 했다. 주말 아침마다 푸른 잎과 색색의 꽃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 창밖을 보며 남편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두꺼운 블라인드를 설치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면 바깥의 누구도 우리를 절대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고, 안쪽의 우리 역시 안전할 것이다. 사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그랬다. 집이니까. 함께 살 집이니까. 정말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하는 날에 비가 왔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한시간쯤 내렸나. 마음먹고 산 스탠드 갓이 조금 젖었다. 습기 때문에 바닥 걸레질을 여러번 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속을 썩였던 건 블라인드였다. 이 집에 가장 먼저 들여야 하는 건 소파나 텔레비전이 아니라 블라인드였기에, 우리는 날짜에 맞춰 배송을 받았고 짐을 풀자마자 바로 설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 모두 뭔가를 조립하고 설치하는 일에 서툴렀다. 우리는 인터넷의 설치 동영상을 몇번이나 되돌려보고, 수시로 길이와 거리를 재가며 블라인드의 수평을 맞췄다. 그렇게 끙끙대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 안 청소를 마저 끝마쳤을 때는 저녁 여덟시가 넘어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블라인드는 완성해서 걸었고, 집 안은 아직 어수선했지만 오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늑해졌다. 다만 배가 고플 뿐이었다. 남편은 이미 지쳐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그는 뭐든 좋으니 빨리 먹기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배달앱을 뒤졌다. 사실 나도 배가 고파 정신이 없었다. 핸드폰 화면에 가장 먼저 뜬 메뉴를 그대로 말했다.
“샌드위치 어때?”
남편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약간 더 푸짐한 거 없나?”
“음, 그럼 따꼬?”
“아, 따꼬 좋다.”
나는 서둘러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바닥은 차가웠고, 공기에는 새집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남편은 옆으로 돌아눕더니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배가 고프긴 했지만,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듯 나른하기도 했다. 그가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몇번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건너편으로 손을 뻗어 노트북 전원을 켰다. 유튜브 채널 이것저것을 눌러보다 어떤 영상 하나에서 멈췄다. 며칠 전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의 요약본이었는데, 우리가 십대였을 때 인기가 많았던 가수가 그때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남편이 웃으며 뒤에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계속 노래를 불렀다. 재밌었다. 익숙한 사람이 나와서 즐거운 걸까. 아니면 지금 그냥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 걸까. 영상 속의 가수도 방송에 나온 게 기쁜 듯 수시로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사회자가 물었다. 왜요? 가수가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목소리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사회자가 또 물었다. 그럼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그가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극복이라뇨. 그걸 어떻게 극복해요.
그냥 받아들인 거죠.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배달기사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난데없이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새집에 다급히 울려 퍼졌다.
“저기 고객님…… 어디 계세요?”
“네?”
황당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파빌아파트 100동 101호 맞으시죠?”
이번에는 남편이 대답했다.
“네, 맞아요.”
“고객님! 집이 비어 있는데요?”
초인종이 고장 났나? 나는 급히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등 뒤에서 남편과 배달기사의 대화가 들려왔다. 분명 파빌아파트가 맞나요? 주위에 뭐가 있나요? 어느 방향으로 가셨어요? 아, 혹시 석상 보이세요? 네. 그거요. 네, 그 텅 빈 마을 건너편 아파트가 맞아요. 맞게 오신 것 같은데…… 대체 어디로 가신 거예요?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거실로 돌아왔다. 배달기사와 남편 모두 서로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심각하게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 사람 어디로 간 거야?
그 순간이었다. 어쩐지 싸한 기분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블라인드 너머,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짐승? 작고 앙상한 뭔가가 아주 천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화단에, 바로 우리 화단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때 남편이 반가운 소리로 외쳤다.
“아, 기사님! 이제 알겠어요. 2단지로 가셨네요. 여기는 1단지예요. 1단지 100동 101호요!”
그러고서 전화를 끊은 남편이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입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파트이고 새 동네이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다급히 남편의 팔뚝을 붙잡았다.
“왜 그래?”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밖에 누가 있는 것 같아.”
그가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확 걷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메마른 나뭇가지들뿐이었다. 나는 도로 너머로 보이는 휑한 판자촌을 응시하며 팔등을 문질렀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착각한 걸까.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우리 집 앞에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의아했다. 배달기사는 왜 2단지로 간 거지? 분명 1단지 100동 101호라고 주소를 적었는데, 왜 그곳으로 갔지?
물론 이 아파트 단지 구조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1단지와 2단지가 잘 구분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100동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지도에 나오잖아. 게다가 우리 집은 단지 바깥에 툭 떨어져 있지 않은가. 건물 겉면에 100동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데, 그걸 못 봤단 말인가. 복도에 놓인 이 거대한 보따리 같은 집을.
초인종이 울렸다.
헐레벌떡 찾아온 배달기사가 따꼬를 건네주며 미안함이 가득한, 그러나 약간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착각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고객님, 집 주소가 지도에 안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식은 따꼬를 먹으며 파빌아파트 1단지 100동 101호를 검색해봤다. 정말로 우리 집은 지도에 나오지 않았다. 구글맵에도 네이버 지도앱에도, 어떤 지도앱에도 나오지 않았다. 임대주택이 아닌 아파트 건물들만 지도에 나와 있었다. 201동, 202동, 203동…… 그리고 2단지 100동 101호. 나는 처음 집을 찾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집을 찾을 수 없어서 지도앱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때를 말이다. 남편이 거리에서 100동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결코 집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또르띠야에 양배추와 돼지고기를 가득 넣고 매콤한 소스를 잔뜩 뿌려 넣은 뒤 돌돌 말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이 뜨거워졌다. 매운 기운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컵에 사이다를 따라 마셨다. 목을 꽉 채우고 있던 따꼬가 겨우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따꼬에 매운 소스를 더 많이 발랐다. 주위는 조용했다.
남편이 또르띠야에 사워소스를 듬뿍 바르며 말했다.
“생각해봤는데…… 이 건물 말이야.”
“응.”
“우리야 뭐 그냥 마음 내려놓고 결정한 거지만 말이야.”
“응. 그런데?”
“밖에서도 다 보이고, 지도에도 안 나오잖아.”
“응.”
“이 집이 싫은 사람은 끝까지 싫을 것 같아. 절대 안 들어올 것 같아.”
나는 대답 대신, 빈틈없이 꽉 닫힌 블라인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건너편에서 뭔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기사님. 제가 배달앱 메모장에도 적어놨는데 아마 못 보셨나봐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네. 여기는 1단지구요. 아마 기사님은 2단지로 가신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서 그곳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네네. 그 집에서 나오셔서 아래쪽으로 내려오시면 횡단보도가 있어요. 네, 매우 좁죠. 거기를 건너오시면 이제 1단지예요. 네. 편의점이 보이는 바로 그 아파트입니다. 네. 네! 코인 세탁소도 있어요. 두 단지가 구분이 잘 안 되어 있죠. 참 이상해요. 아무튼 1단지로 들어오셔서 지하주차장으로 오시면 100동 표지판이 보이실 거예요. 그 표지판을 따라오시면 엘리베이터 입구가 있습니다. 거기서 벨을 눌러주세요. 그러면 문을 열어드릴게요. 안쪽 바로 건너편에 101호가 있답니다. 네, 빨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다행인 건 그래도 택배가 오배송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택배기사들은 한 구역을 계속 담당하니까 그런 모양이었다. 집의 위치를 헷갈려 하는 이들은 대체로 이 동네에 처음 오거나, 지도만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음식점 배달기사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남편과 나는 기다렸다는 듯 기계적으로 설명을 했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막 이사 와서 새집을 꾸미는 중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틈이 날 때마다 몰래 인테리어 사이트에 접속해 온갖 가구를 검색했다. 집에 와서는 그릇을 검색했고, 주말이 되면 남편과 함께 백화점이나 쇼룸으로 쇼핑을 갔다. 책장의 색을 비교하고, 수납함의 크기를 따져보고, 온갖 오브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인생에서 뭔가를 이렇게 고심하며 사들이는 건 처음이었고, 이렇게 돈을 많이 써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혹시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언제나 그렇게 친절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걸까. 기사님. 여기는 2단지가 아니라 1단지입니다. 네. 여기에 살고 있어요. 저희는 여기에 있답니다. 그래. 불친절할 게 뭐가 있겠는가. 설명하면 해결될 일인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어쨌든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만간 우리 집도 지도에 등록되리라고 말이다. 그러면 더이상 헷갈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던 일들도 다 추억이 되리라.
그렇게 되리라.
우리 집은 여전히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래, 너를 만난 바로 오늘까지도.
*
그런데 이 이야기가 너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제 와서, 그것도 지금 이 순간에? 하지만……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었지. 그래, 어떤 기분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
……그러니 계속해도 괜찮겠니?
*
그날 밤, 분리수거장에서 있었던 일 말이다. 월요일이었고, 밤 아홉시쯤 되었다. 단지에서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만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놓도록 했다. 그래서 이틀 중 하루, 날을 잡아 쓰레기들을 다 갖다 버리는 것이 남편의 주중 일과 중 하나였다. 그는 말했다. 일주일간 쌓인 쓰레기를 깨끗이 비우고 나면 속이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고. 쓰레기가 너무 많다 싶은 날이면 나도 같이 동행하곤 했는데, 그날 남편은 혼자 두번 정도 다녀오면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며 내게 집에 있으라고 했다.
우리 집 출입구는 단지 바깥에 있기 때문에 분리수거장으로 가려면 그 복도 같은 길을 걸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소 복잡한 동선이었다. 하지만 나와 남편에게는 일상이었기에 이상할 게 없었다. 그는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마자 종이상자들을 살폈다. 송장 스티커가 아직 남아 있는지, 박스 테이프는 다 떼어냈는지 꼼꼼하게 봤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은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수도 없이 계속 왔다 갔다 할 테니까.
남편은 상자들을 확인한 뒤, 그것들을 들고 종이 분류함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 사람을 봤다. 피부가 검고 어깨가 다부진 중년 남자. 남편은 그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왜냐하면 그의 시선이 줄곧 남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눈길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바로 그 시선으로, 그는 남편을 위아래로 쓰윽, 살폈다. 남편은 신경이 곤두섰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불쾌감이 밀려온 순간, 남자가 먼저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디서 오셨어요?”
“네?”
남자가 이어 물었다.
“아니, 보니까 저 바깥에서 들어오던데…… 맞죠?”
“네, 그랬는데요.”
남편은 여전히 불쾌했지만,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이걸 왜 묻는 거지? 그때 남자가 혀를 차더니, 남편에게 말했다.
“저기요. 여기 파빌아파트 분리수거장인 거 알죠?”
“네…… 아는데요?”
남편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왜? 그걸 내게 왜 묻지?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바깥에서 들어온 게 뭐 어쨌다는…… 순간, 남편은 알아차렸다. 남자가 자신을 왜 이렇게 대하는지 말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 그래. 남자는 남편이 파빌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판자촌이든 저기 편의점이든 어디 다른 상가든 뭐든, 아무튼 이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민도 아닌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러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그래서 남자는 아주 기세등등하게 야, 너 지금 쓰레기 버리러 우리 집에 몰래 기어들어 왔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은 화를 꽉 눌러 참으며 손가락으로 단지 바깥을 가리켰다.
“저기요, 아저씨. 저쪽에 100동 보이죠?”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 얼굴을 보자 남편은 화를 내기도 귀찮아졌다. 얄팍한 인간 같으니. 남편은 어서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자신을 압박하거나 짜증 나게 하는 일에 감정을 많이 쏟지 않는 사람답게, 이 상황에서 서둘러 사라지기로 말이다. 그런데 남자가 또다시 말을 걸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저기…… 미안합니다.”
그러더니 남자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두꺼운 어깨를 매만졌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지난주부터 바깥에서 안으로 계속 누군가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네. 그렇군요.”
남편은 대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남편은 평소답지 않은 어떤 충동이 속에서 일렁이는 걸 느꼈다. 그건 남자를 때리고 싶다거나 멱살을 잡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나쁜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잊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인지 모를 그 충동이 자꾸만 자신을 흔드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말을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까.
이틀 후, 2단지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
이후 배달기사들은 우리에게 “어디 계세요?”라고 묻지 않았다. 이렇게 물었다.
“고객님, 주문하신 적이 없다는데요?”
*
남편과 나는 배달음식을 줄이고 냉동식품이나 즉석조리식품을 사다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냉동볶음밥과 돈까스 같은 것만 봐도 식욕이 떨어졌다. 누구든 요리에 취미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번이나 환승해가며 돌아온 집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이지, 부엌에서 이런저런 걸 만들면서 부지런을 떨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에게 부엌은 일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별 수 있겠는가. 누구든 나서서 뭐든 하긴 해야 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칼질로 먹을 만한 음식이 나올 리가 없었다. 순서를 정하는 것도 애매했다. 어떤 날은 그가 일찍 퇴근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일찍 퇴근했다. 아니다. 순서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신경 써서 가지와 양파를 볶고 밥을 하는데, 그가 라면을 끓여 내오는 날이면 젓가락을 들고 싶은 생각조차 사라졌다. 내가 끓인 찌개가 맛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손도 대지 않고 맨밥만 먹고 있는 걸 보면 밤새 말을 하기가 싫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겠지. 그러다보니 서로 주고받는 말이 그저 그랬고, 그저 그런 말을 주고받으니 기분이 상했고, 기분이 상했으니 며칠간 말을 하는 게 껄끄러워졌고, 솔직히 맛있는 음식 한번 먹으면 끝날 일 같은데 서로 미련하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아 너무 한심해, 결국은 충동적으로 오랜만에 따꼬를 주문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배달기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님, 거기…… 혹시 1단지예요?”
나는 베란다를 바라봤다. 블라인드가 흔들리고 있었다. ……보였다. 이전보다 훨씬 더 커다랗게 부푼 그것이 말이다. 천천히 화단 앞을 지나고 있었다. 아니, 베란다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안으로 들어올 입구를 찾듯, 내가 있는 곳으로, 남편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고 작정한 듯 일렁이고 있었다. 내 집 앞에서, 바로 내 앞에서. 착각이었을까. 정말 착각이었을까. 그때, 남편이 옆에서 피곤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주문할 때 미리 말 좀 하라니까. 아니면 배달앱에 적어두든지. 여기 1단지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아주 오래전, “지도에 나오지 않지만 1단지에 100동 101호가 있습니다. 꼭 1단지로 와주세요”라는 메모를 배달앱에 적어두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주문을 할 때마다 다시 추가 메모를 남긴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배달기사에게 말했다.
“네, 여기 1단지예요. 혹시 2단지로 가셨어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우리 집까지 올 필요 없다고 말이다.
“제가 2단지 앞으로 나갈게요.”
남편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나는 재킷을 걸쳐 입었고,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너를 봤다.
배달기사에게서 음식을 받은 직후였다. 나는 2단지 앞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너는 네 엄마의 손을 잡고 1단지 옆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복도라고 부르는 바로 그 길을 말이다. 양 머리를 팽팽하게 당겨 묶은 너는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일곱살? 여덟살? 모르겠다. 어쨌든 네 엄마가 신경 써서 입힌 티가 나는 그 원피스는 가슴께가 꽤 지저분했는데, 바로 네가 왼손에 들고 있던 토마토 때문이었다. 그건 보통의 토마토와 색이 달랐다. 나도 대형마트에서 본 적이 있었다. 흑토마토라고 불리는 검은색 토마토.
너는 그게 정말 맛있다는 듯, 과즙을 원피스에 줄줄 흘리면서 열심히 베어 먹고 있었다. 왜였을까. 나는 토마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켜졌는데도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멍하니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엄마는 나의 시선을 눈치챘던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면서 네 손을 꽉 붙잡았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으니까. 그래. 너와 네 엄마에게 나는 낯선 사람이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만했다. 나는 이해했다. 그러면 나 역시 시선을 돌려야 했는데, 이상했다. 나는……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를 계속 쳐다봤다. 순진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토마토를 먹고 있는 너를 말이다. 네가 토마토를 한입 더 베어 물려는 순간, 네 엄마가 너를 더 세게 끌어당겼고, 너는 발을 헛디뎠다. 다행히 너는 넘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토마토를 손에서 놓쳤다. 토마토는 내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네 엄마는 잔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꽉 붙들고 있었어야지. 그러니까 신경 썼어야지. 그러니까 조심해. 조심해야 해. 나는 너의 토마토를 집어 들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와 나의 눈이 마주친 것이 말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너에게 그 토마토를 돌려줄 생각이었으니까. 네가 떨어뜨려 흙투성이가 된 그 토마토를 말이다. 나는 토마토를 든 손을 너에게 뻗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뭐였을까. 그 순간, 네가 내 얼굴에서 본 표정이 말이다. 대체 무엇이었길래, 너는 그렇게 화들짝 놀라며 네 엄마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어깨를 웅크렸을까. 고개를 확 돌려버렸을까.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인터넷을 뒤져 흑토마토 한 박스를 주문했다.
따꼬는 다 식어 있었다.
*
나도 곱씹어 생각한 말이 있었다. 이 집이 싫은 사람은 끝까지 싫을 것 같아. 절대 안 들어올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곤 했다. 혼자 있을 때, 남편과 있을 때,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때, 문득문득 그 말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그가 한 말이 아닌, 전혀 다른 엉뚱한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집이 싫은 사람은 절대 안 들어올 것 같아. 이 집이 싫은 사람은 들어오면 안 돼. 이 집이 싫은 사람은 결국 후회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될 거야.
그날, 고개를 돌리는 너를 보며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
그리고 지금부터는 너도 아는 이야기다.
*
오늘 퇴근할 무렵,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하철에 타는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뭐 먹을까?
남편의 문자에도 답장하지 않았다. 식욕이 없었다. 그렇다고 토마토를 빨리 먹고 싶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입 베어 물고는 싶었다. 딱 한번. 과즙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만 딱 한입. 그만큼만 먹고 싶었다. 왜, 왜였을까. 모르겠다. 머릿속에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앞차를 놓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욕을 했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또다시 문자가 왔다.
—어디야?
그때 신호가 걸렸다. 나는 다리를 떨었다. 이번에도 답장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다른 생각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토마토. 그래. 그것 외에는 말이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자마자 또 뛰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정말로 역시, 너도 아는 이야기다.
문 앞에 택배가 없었다. 나는 곧장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을 듣는 동안 문득, 택배가 2단지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문에 이마를 기댔다. 다른 물건 같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늘 해결이 되었으니까. 사람들은 늘 우리 집의 위치를 헷갈려 했고, 찾지 못했고, 그래서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아내곤 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안내했고, 설명했고, 기다렸다. 해결되지 않은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조금만 기다린다면, 그리고 설명을 한다면 나는 내 물건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핸드폰이 울렸다. 또다시 남편의 문자였다.
—자기야, 너 지금 뭐 해?
뭐 하냐고?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뭘 할 거냐고?
나는 2단지로 출발했다. 복도를 걸어 올라갔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렇게 순식간에 2단지에 들어섰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어서일까.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나는 곧장 100동으로 걸어갔다. 나는 101호 앞에 놓여 있을 내 물건만 가지고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만일 101호 사람을 만난다면 상황을 설명하면 된다. 그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100동 현관 앞에 도착한 순간, 내가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현관 공동 비밀번호를 알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기세가 꺾이며 망설여졌다. 어떡할까. 초인종을 눌러 101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까. 아니면 택배기사에게 다시 전화를 해볼까. 그때, 갑자기 어떤 여자아이가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너였다.
너는 이번에도 머리를 양 갈래로 팽팽하게 묶었다.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노란색 가방을 옆으로 멨다. 어디 다녀오는 길일까? 너는 나를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재빠른 손길로 현관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순식간에 문이 열렸다.
나는…… 아주 잠시 고민했다.
정말로, 아주 잠시.
이대로 들어가도 될까?
그럴까.
들어갔다.
문 앞에 놓인 물건만 가지고 올 거니까 상관없지. 그건 내 거잖아.
그래. 내 거야.
그러면서 한걸음 내디뎠는데 형광등 아래 내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것은 앞서 걸어가던 네 발끝을 뒤덮었다. 네가 나를 살짝 뒤돌아보더니 갑자기 빨리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도 함께 걸음이 빨라졌다. 그래서인지 네 걸음 역시 점점 더 빨라졌다. 너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고, 느닷없이 나타난 오른쪽 복도로 재빨리 꺾어 들어갔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 그래. 너의 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누가 따라와!”
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저 내 물건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어느새 이곳의 침입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섬찟한 기분으로 블라인드 너머를 바라볼 때마다, 밖에서 일렁이던 그 알 수 없는 것도 이런 기분이 들까? 기분? 어떤 기분? 하지만 말도 안 됐다. 화단은 내 집이었다. 내 공간이었다. 누군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나는 네가 들어간 집의 호수를 확인했다. 119호.
그리고 101호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을까. 안쪽으로 더 걸어 들어가자 문이 하나 더 보였다. 118호. 그리고 그 옆에 또 문이 있었다. 117호. 그제야 이 건물의 구조가 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안쪽으로 갈수록 더 낮은 호수가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던 것이다. 여길 그대로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가면 아마 101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19, 18, 17, 16…… 그때, 복도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나는 갈림길 양쪽의 집들을 슬쩍 다 살폈다. 오른쪽에는 105호가 있었고, 왼쪽에는 104호가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왼쪽 복도로 들어섰다. 그리고 103호를 지나치자마자 안쪽으로 또다시 꺾여 들어간 복도를 마주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서둘러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102호가 나왔고, 다시 꺾이는 복도. 나는 뛰었다. 그래. 드디어 101호가 보였다.
그러나 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는 대답했다.
“저…… 1단지 101동에 사는 사람인데요.”
“아……”
여자가 말끝을 흐렸다. 내가 왜 왔는지 아는 듯했다. 그녀는 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저기, 죄송한데요. 그 택배, 관리사무실에 맡겨놨어요.”
“네?”
여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름대로 친절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뭔가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부디 주소를 제대로 써줬으면 좋겠고. 배달음식은 기사님들이 주소를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만, 택배까지 받는 건 자기도 좀 그렇다. 어렵다. 난처하다. 아무튼 이 단지가 이렇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 좀 조심했으면 좋겠다. 조심하자. 그리고 앞으로 정말 부탁하건대, 잘못 배송된 게 있으면 즉각 처리를 부탁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 그러니까 나의 물건이 자신의 집으로 온다면.
“무조건 관리사무실에 갖다 놓을게요.”
그리고 여자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여자 역시 더는 내게 볼일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끝났다.
나는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어느 집 안쪽에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어느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우는 집도 있었고, 텔레비전 소리가 큰 집도 있었다. 그 소리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건물 안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발걸음 소리는 소음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돌아 나오고, 또 돌아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또다시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곳에 관리사무실이 있었으니까.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 늘 모든 일은 해결된다. 늘 그랬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이 싫은 사람은 끝까지 싫을 것 같아. 후회할 것 같아. 나쁘지 않다는 건 좋다는 말이 아니야. 사실 그건 전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야. 그래. 그게 진심이야.
극복이라뇨. 받아들인 거죠.
관리사무소는 닫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당연했다. 내가 더이상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터덜터덜 힘없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배가 고팠다. 그렇게 좁은 복도에 발을 딛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퍽, 하는 작은 충돌과 함께 나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이번에도 너였다.
실수였던 것 같다. 아마 어딘가로 급하게 가고 있던 중이었겠지. 나는 네게 손을 내밀었다. 너는 한 손으로 무릎을 털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 손에서 너의 손을 빼내려 했다. 나는 네 손을 양손으로 감싸 안으며 물었다.
“왜 그러니?”
그 순간, 뒷골이 서늘해지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옆을 돌아봤다. 화단 건너편, 우리 집 블라인드가 확 걷혀 있었다. 내부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배회하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정말로, 정말로 진짜였다.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던 방향을 바꾸었다. 내가 있는 쪽으로 말이다. 아니, 너와 내가 있는 곳으로.
나는 네 손을 꽉 잡았다. 네가 신음 소리를 냈다. 나는 너를 데리고 복도를 걸어 올라갔다. 네가 버둥거리며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네 손을 잡아당겼다. 너는 울음을 터뜨렸다.
쉬.
쉬.
나는 손으로 너의 입을 막았다. 뒤를 바라봤다. 어느새 밖으로 나온 그것이 우리를 쫓고 있었다. 나는 너의 팔을 잡아당겼다. 앞으로 걸었다. 뛰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더 서둘렀다.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우리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허둥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눈앞에 분리수거장이 보였다. 나는 너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분리수거장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더미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곳에 너와 함께 숨었다. 네가 또다시 버둥거렸다. 내게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나는 다시 너를 달랬다. 쉬. 쉬.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설명할게. 언제나 그랬으니까. 뭐든 설명하면 다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 너도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리하여 나는 너를 확 끌어안았다. 네 턱이 내 어깨에 묻혔다. 네가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이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쉬.
어디서 오셨어요?
비가 올 것 같다. 블라인드를 쳐야겠다.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