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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포도밭출판사 2021

노동자의 고통에 연대를 요청하다

 

 

강연실 姜姸實

과학기술학연구자 yeonsil.kang.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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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교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50대 여성인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에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6~7개씩 나르는 과중한 업무를 해왔으며, 복장 단속을 당하거나 학교 시설물 이름을 영어나 한자로 쓰는 필기시험을 보는 등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했다고 알려졌다. 평택항에서 일하던 스물세살의 청년 노동자는 300킬로그램에 달하는 컨테이너 벽에 깔려 숨졌다. 아버지의 일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던 그는 안전장치도 안전관리자도 없이 업무에 투입되었다. 그보다 앞서서는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숨졌다. 한 노동자가 동료에게 남긴 문자메시지는 새벽부터 그다음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일해도 배정된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했던 그간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모두 지난 일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펴낸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위험한 일터와 위태로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동 건강 연구에 잔뼈가 굵은 저자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의 위험과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화학공장과 조선소, 프랜차이즈 빵집과 실험실, 영화촬영장, 카지노, 학교 급식소와 병원 등 명백히 위험해 보이는 일터 외에도 우리의 일상이 깃든 장소 곳곳에서 누군가는 고통을 견디며 노동을 하고 있다. 그 고통은 유독물질이나 위험한 기계, 원청과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 안전에 대한 책임이 불분명한 제도, 수직적인 조직문화나 만성적인 고용불안, 상습적 장시간 노동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경우 이러한 요인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

여러 일터의 안전 문제를 다루며 저자들이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위험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이윤근의 말을 빌리자면 위험의 외주화는 소유와 운영(작업)을 분리시켜 안전보건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제빵사와 콜센터 직원, 환경미화원, 발전소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을 필요로 하는 회사 A와 인력을 공급하는 회사 B 사이의 계약 속에서 일한다. 노동자들은 A의 작업장에서 A의 규율과 가치, 성과 기준에 따라 일하지만, 그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A와 B의 계약서 어딘가에서 흐지부지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김용균의 죽음으로 드러났다.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조위는 2019년 발전회사들이 내부 경영실적 평가에서 ‘신분별 감점계수’라는 것을 만들어 원청 직원의 사망과 하청 노동자의 사망을 다르게 평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국중부발전의 경우 원청 직원 한명의 사망을 하청 노동자 세명의 사망과 같은 가치로 매겼다. 이러한 일터에서 하청 노동자의 안전은 원청 노동자의 안전보다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특조위의 조사 이후 이러한 평가지표는 곧 폐지되었다고 한다.) 발전소의 사례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데 위험물질이나 기계 같은 위험 그 자체보다는 기업과 사회의 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노동의 형태가 바뀌어도 안전의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특히 새로운 기술은 일터의 모습을 변화시켰지만, 그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는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일과건강 사무처장 한인임은 1970년대 여공들과 2020년대 여성 콜센터 노동자들을 비교한다. 50년의 시간 격차, 그리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가혹한 노무관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동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 중인 전화가 쉴 틈 없이 자동으로 연결되고, 업무상황이 세세하게 기록되는 전산시스템은 콜센터 노동자들을 전방위로 압박한다. “회사가 아니라 닭장 속에 들어와 있는 것”(78면) 같은 스트레스로 젊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플랫폼 노동도 노동안전의 측면에서는 기존의 문제들을 답습한다. 플랫폼 서비스는 모바일 배달앱 등의 기술적 도구를 제공해 식당과 배달원, 고객과 같은 개인들을 매개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온라인으로 이뤄진 주문에 대한 서비스를 오프라인으로 제공한다. 이론적으로 배달원들은 자영업자로서 원하는 만큼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복잡해진 중개망과 늘어난 중개 수수료, 플랫폼 기업이 부추기는 속도전, 길어진 업무시간 등으로 갈수록 위험한 노동환경에 몰리고 있다. 한인임은 “마치 혁신의 아이콘 같지만 실제로는 배달업에 휴대폰이 들어온 것”(223면)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콜센터의 전산망이나 배달앱은 소비자들에게 더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에는 무심한 기술인 것이다.

다양한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는 저자들의 목소리 속에서 독자들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직업환경의들이 어떻게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8면) 이름을 붙이는지 살필 수 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곧 일터의 위험을, 노동자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일이다. 이들은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노동자들을 찾아가 직접 면담하며, 작업현장을 방문해 위험성을 평가했다. 어업인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한 허승무는 “실제 어작업에 참여해 측정기계를 설치하고 동영상을 촬영 후 그 위험성을 분석”(198면)하는 과정을 통해 어업인들이 일반적인 노동자나 농업인에 비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짧은 시간 동안 집약적으로 일한다는 점을 밝혔다. 노동안전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조금씩 일터를 좀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나간다.

직업환경의들의 일은 노동자라는 특정한 집단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다른 과학 전문가들의 일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직업환경의들을 비중립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성찰함으로써 산업안전 문제를 더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김용균 사고 특조위의 일원으로서 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청년이 일했던 깜깜한 보일러에 직접 들어가 그곳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126면)인지 고통을 함께 느끼고, 전문가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성찰했다. 이를 통해 발전소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낮은 조도나 높은 화학물질 농도 차원으로 수렴하지 않고, 단기간 계약되어 더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는 계약직 플랜트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붙인 이름들을 함께 부르자고 요청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시민이 “노동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아픔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는”(9면) 존중의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법과 정책을 정비함으로써, 기업은 노동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노동자를 존중할 수 있다. 시민이 해야 할 일은 노동자를 재화나 서비스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 또는 우리 가족이 저곳에서 평생 일해도 좋겠는가.”(263면) 우리가 마음에 무겁게 새겨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