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에는 37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문학 논의로 보기 어려운 넓은 의미의 문화비평, 사회비평에 해당하는 글 서너편을 제외하고도 예년에 비해 적지 않은 편수였다. 시평과 소설평이 고르게 분포되었고 각각의 글들이 다루는 작품 또한 다양해서 응모작들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한국문학의 지형을 조감하는 느낌이었다. 주제 차원에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 질곡의 문제나 페미니즘 또는 젠더 이슈를 다룬 경우가 자주 눈에 띄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개별 작가·작품론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고 이미 문학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 작고(作故) 작가의 작품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다시 읽고자 하는 글도 많아졌다.

그러나 외면적 다양성에 비해 주요 분석도구로 활용된 개념이나 문학작품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원에서는 여러 논자들 사이에서 일정한 틀이 반복되는 경향이 보였다. 주체에 대한 회의 또는 해체와 관련된 담론들의 유행 이후 찾아온 타자의 환대, 윤리, 연대에 관한 논의들이 무비판적으로 동원되는 경향은 우려스러운 것이었다. 상당수의 응모작이 개별 작품을 그러한 이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전거처럼 축소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적잖은 글들이 작품에 대한 개성적이고도 비판적인 독해에 이르지 못한 채 내용을 따라가는 해설에 그치고 만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판적 성찰은 자신이 다루는 작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적 도구들에 대해서도 행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1차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이 함께 주목한 응모작은 4편이었다. 이들은 각각의 장단점이 갈리긴 하지만 비교적 안정된 문장과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 다루는 작품들에 대한 글쓴이의 개성적 시각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론의 기본 요건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부정이 향하는 쪽: 김사과론」은 무엇보다 김사과의 작품에서 지금까지 깊이있게 다뤄지지 못한 ‘소설적 비약’이라는 지점을 포착하고 초점화하는, 말하자면 ‘발견’이 눈에 띄는 글이었다. 김사과 소설에 종종 나타나는 이 비약을 숭고 개념을 통해 분석하는 이 글은 해당 개념에 대한 장악력과 비판적 활용이 돋보였지만 작품과 담론의 균형이 무너져 결국 후자가 우선적으로 관철되고 만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주어진 몫, 숨들: 최근 한국소설에 재현된 청년의 죽음과 그 주변」은 김금희, 임솔아, 조해진의 근작들을 따라 읽으며 ‘능력주의 사회’ 저변에 억눌린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비평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선행 비평들에 대한 충실한 섭렵이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신뢰를 갖게 하기 충분했고 무엇보다 명료하면서도 매끄러운 글쓰기가 주목되었지만 우리 사회와 현실을 읽는 논리가 어딘지 익숙한 패턴의 반복처럼 보였다.

「당신을 위한 서바이벌 키트: 윤고은론」과 「휴머니즘의 외부와 열림의 존재론: 신해욱의 시에 대하여」라는 두편을 놓고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무엇보다 이 두 글은 작품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분석을 제시하면서 안정감과 설득력을 보여준다는 공통의 강점이 있었다. 전자는 필자 자신이 ‘IMF 세대의 생존서사’로 파악한 윤고은의 작품세계를 통해 오늘날의 청년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역설적이게도 ‘청년’이 소모적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다거나 ‘청년의 죽음’이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수렴되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러나 자신의 비평적 주제의식에 알맞은 작품을 정확한 자리에 제대로 배치하고 있는 이 글의 강점은 한편으로는 대상작가의 작품세계를 비평가의 인식틀 안에 가두는 단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IMF 이후의 수많은 ‘생존서사’ 가운데서 작가 윤고은만의 차별성이 무엇인지를 짚어내기 위해서라도 생존서사 이상의 것이 분석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당선작은 「휴머니즘의 외부와 열림의 존재론」이다. 이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 신해욱의 시가 “감지하기 어려운 세계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준다면서 그의 시들이 “휴머니즘의 외부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다른 사유와 감각”이 무엇인지를 논한다. 언뜻 최근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로 끌려가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소리」라는 작품을 논하는 대목에서 “‘귀’는 ‘나’가 소유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소리의 일부가 된다”거나 「무족영원」에서 “삶은 연습이 아니라 그때그때가 불러야 할 노래이자 살아야 할 리듬”임을 설득력 있게 짚어내는 데서 알 수 있듯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섬세한 독해를 보여줌으로써 그런 우려를 불식시킨다.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는 현대철학의 논의를 적절하게 들여와 신해욱 시의 일단을 분석하는 차분한 전개도 믿음직했다. 다만 선행 비평들에 대한 비판적 점검 못지않게 대상작품들 간의 옥석을 가리는 데에도 좀더 힘을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당선자에겐 축하를, 아쉽게 선에 들지 못한 다른 응모자들에겐 응원을 보낸다.

강경석 한기욱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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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1981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닿지 않는 것들을 만지는 건 어떤 느낌일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듣고,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믿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조금이라도 닿아보고 싶었다. 감각의 불확실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인들만이 아니다. 작품을 읽는 독자도 그 세계의 입장권을 갖는다. 읽었지만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아서 천천히 거듭 읽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 작품에서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생각보다 기다리고 망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떤 개념이나 유행처럼 지나가는 정치적 이슈들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저마다의 이유로, 때로는 이유 없이 마음에 오래 남는 시와 소설이 언제나 더 좋았다. 문학이 고전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시대에도 문학은 늘 그런 매혹 속에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오래 다닌 학교의 선생님들과 선후배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의 연구자이자 좋은 독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이런 기회가 찾아온 덕분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인연들의 도움으로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그 이름들을 다 헤아리지 못해 지금 마침 곁에 계시는 분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김춘식 선생님, 부족한 실력을 재능으로 믿어주신 윤재웅 선생님, 요가를 통해 항심(恒心)의 자세를 가르쳐주신 이진경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수유너머 문학세미나팀의 선생님들. 일년 넘게 같이 공부하면서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신 그분들 덕분에 전공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고 나의 비좁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친구는 인생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라고 했다. 서로를 응원하고 촉발하는 극성스러운 우리의 우정이 계속되길 바란다.

문학과 글쓰기를 통해 내가 모르는 것들과 다른 존재들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덜 두려워하고 좀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쉽고 부족한 글을 후하게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