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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현안과 미래
정준희 鄭俊熙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공저서 『산업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방송영상산업의 재구조화』 『디지털 사회와 커뮤니케이션』 『스마트 시대 신문의 위기와 미래』 등이 있음.
j.aug.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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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정기국회 본회의 앞에서 멈춰 선 채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이라는 대규모 정치 일정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표면화되었던 입법 갈등 사례라 할 만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정식 명칭으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짜뉴스 처벌법’ 혹은 ‘언론 피해구제 현실화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흔한 지칭 방식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일 터다. 이 세가지 호명은 각각 나름의 초점이 있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먼저, 개정안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징벌적 손해배상제’ 요소는 무책임한 언론 행위로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고,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효과까지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론’에 연관되어 있다. 고의 또는 중대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법원이 해당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을 고려하여 손해액의 최대 다섯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조치가 의도하는 징벌성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언론의 극심한 위축효과와 함께 언론자유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 우려하는 입장도 있지만, 반대로 법원이 실제 그런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지 않을뿐더러 혹여 최대 배상액을 물더라도 징벌적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 예상하는 쪽도 있다.1 비록 상당한 의미 결손과 오해의 위험을 지니기는 하나, ‘징벌적 손배제’를 부각하는 이 명명은 개정안으로 발생할 제도적 변화의 핵심적인 측면을 지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 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대중적 관심 및 정치적 대응이 지난 수년간 ‘징벌적 손배제’를 중심으로 수렴되어온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도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
‘언론 피해구제 현실화법’이라는 지칭은 문제의 핵심을 언론에 의한 피해에 두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이해한다. 요컨대 온라인 환경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이른바 ‘가짜뉴스’ 현상까지 폭넓게 제어하기보다는 제도권 언론에 의해 발생하는 피해를 지금보다 더 실효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르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의의는 징벌성에 있거나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언론중재 결과가 피해구제보다는 갈등 ‘조정’에 치중해온 면이 있다는 것, 나아가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이 결정되더라도 배상액이 200~500만원 수준에 그쳐 피해자가 입은 무형의 손해를 충분히 보상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실제로 그간 법원은 인격권과 연관된 무형의 손해와 그에 수반되는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배상액을 대단히 보수적으로 산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허위·조작 보도가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의성 혹은 중대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몇배 상향된 수준에서 최종 배상액을 결정케 함으로써 피해구제의 실질성을 높여보겠다는 게 이번 개정안의 취지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나아가 이러한 지칭은 ‘징벌적 손배제’ 중심의 프레임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여타 피해구제 조치, 예컨대 인터넷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경우 해당 매체와 포털에 기사 노출 차단을 요구할 수 있는 열람차단청구권의 필요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세번째 지칭인 ‘가짜뉴스 처벌법’은 지금 언론 환경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문제시되는 현상을 뚜렷하게 지목하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모색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요체를 오인하게 만드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비록 쉽고 대중적일 수는 있어도 상당히 느슨하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가짜뉴스는 ‘뉴스의 형식을 빌려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허위조작정보’ 정도로 정의되는 것이 그나마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사용되는 가짜뉴스 개념은 훨씬 폭넓고 복잡하다. 고의성을 띠지 않은 단순 오보에서부터 온라인으로 유포되는 출처 불명의 허위정보에까지 걸쳐 있으며, 심지어 ‘내 견해와 상반되는 의견’을 가리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책임 주체 측면에서 보면, 언론중재법 제2조 제1항의 언론 정의에 따라 “방송,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및 인터넷신문”으로 범위가 한정된다. 신설 예정이었던 열람차단청구권 관련 조항에 가서야 이른바 포털, 즉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를 포괄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따름이다. 또 내용 측면에서 보면, 모든 종류의 허위정보와 악의적 견해가 아니라 ‘고의나 중대과실에 의한 사실보도’ 영역만을 다루는 게 고작이다. 따라서 ‘가짜뉴스 처벌법’이라는 명명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제도적 가능성과 문제점을 모두 과대 포장하게 된다. 즉 가짜뉴스로 지칭되는 현상과 주체의 극히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데다가, 형법적 뉘앙스를 갖는 ‘처벌’과는 거리가 먼 민사적 ‘처방’에 불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마치 대단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것처럼 기대하게 만들거나 거꾸로 엄청난 후과를 불러올 것처럼 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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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과대 포장’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쪽에 의해서건 반대하는 쪽에 의해서건 상당 부분 의도된 면이 있다.
우선 ‘가짜뉴스 처벌법’이라는 과대 포장은, 가짜뉴스 생성자 및 유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를 입법 차원에서 수용하려던 과정의 부산물이긴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처럼 ‘가짜뉴스 현상’이 워낙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심지어 대단히 주관적인 영역에까지 걸쳐 있는 까닭에, 이를 위한 제도적 해법 역시 단기일 내에 명쾌하게 처방되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다수의 경쟁적 의원입법 가운데 일부가 살아남아 그나마 비교적 단기간에 추진 가능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수렴된 것이다. 포괄적이고 실효적인 처방전을 당장 제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짜뉴스 현상을 방치하기보다는, 지금 가능한 영역에서 부분적인 해법이라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고안된 현실적 대응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 개정안이 가짜뉴스에 대한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음에도, 개정안 추진 쪽의 메시지가 모호하게 처리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하는 쪽이 이런 과대 포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개정안 반대 깃발 아래 모여 있던 목소리가 모두 동질적이지는 않았으나, 그 가운데 특히 내용적 이유보다 ‘정파적’ 이유로 반대에 나섰던 쪽에서는 이를 사회적 문제해결의 계기가 아니라 정치적 동원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은 개정안이 가짜뉴스에 대한 본격적 대응을 준비하는 제도적 초입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가짜뉴스 잡겠다는 구실로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데마고기(demagogy)를 뒷받침하기 위해 ‘가짜뉴스 처벌법’이라는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2
‘징벌적 손해배상제’라는 용어 역시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과대 포장되었다. 온라인 다매체 환경에서 급격히 늘어난 허위조작정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징벌적 손배제가 마치 유력한 대안인 것처럼 부상하게 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 해외사례를 참조하여 관련 제도를 도입하면 허위조작정보의 발생과 유통을 제어하는 기초적 수단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 대중적 지지를 얻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개혁 지향의 국회의원들이 적극 반응한 결과가 이번 개정안인 셈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징벌적 손해배상 법리는 우리나라의 사법체계에서 아직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이 책임 주체와 손해를 특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인 디지털 정보 문제를 다루기에는 다소 거칠고 성근 수단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모색된 징벌적 손배제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물, 즉 허위조작정보의 다양한 주체와 형식을 포괄하기보다는 이미 제도 안에 포섭되어 있는 기성 언론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고 응보 및 재발 방지 효과를 낳을 만큼의 ‘징벌성’도 갖추지 못한 현재의 개정안으로 축소·수렴되었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개정안 추진 측은 피해구제 목적보다는 징벌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에 스스로 묶여버렸고, 반대 측은 이 프레임을 증폭시켜 법안의 부당함과 부정적 효과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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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과정은 이렇게 실제보다 과장된 ‘징벌적 손배제’ 프레임에 갇혀 ‘가짜뉴스 처벌 대(對) 언론탄압’이라는 허구적 대립구도 속에 포획되고 말았다. 이 개정안이 ‘피해구제 강화’라는 좀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정치적 조건의 한계가 비교적 명확했음에도 말이다. 물론 언론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적 제도를 강구하는 일은 ‘기성 언론, 디지털 플랫폼, 개인 미디어를 가로질러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한다’는 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목표의 부분집합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왕이면 그런 거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괄적 제도를 설계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사회적 대응 방안을 다층적·입체적으로 고안하고, 그 일부로서 피해구제의 실질화를 모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생성 및 유통되는 오보, 악의적 허위정보, 혐오표현 등을 적정 수준에서 규율하는 것, 악화일로에 놓인 저널리즘 품질을 제고하는 것, 이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신속하고도 실효적으로 구제하는 것 등은 이를 위한 포괄적 거버넌스(governance)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지배구조 혹은 협치(協治)로 번역되는 ‘거버넌스’ 개념은 정부나 정치적 집권세력 중심의 통치(government)에서 벗어나 국가 혹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집행 주체로 나서는 포괄적 시스템을 지칭한다.3 언론을 포함한 사회적 표현과 정보 영역은 특히 통치에 의해 침해되고 왜곡될 위험이 크고, 강제적 수단에 의존해서는 긍정적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특성도 있기 때문에 더욱 거버넌스 개념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언론개혁이란, 과거에 추진되었다가 여러차례 실패한 기성 언론 중심의 ‘제도’ 개혁을 넘어, 포괄적 사회·경제·문화 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악의적 교란정보(disinformation)와 같은 신생 위험에 대응하고, 저널리즘 및 정보·의견의 품질 저하를 낳는 저열한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전사회적 관여를 필요로 한다. 즉 포괄적 거버넌스 구축을 목표로, 현행 미디어 관련 법령과 제도를 대폭 정비하는 제도적 대응은 물론 온라인 개인 미디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보문화와 윤리를 형성하는 과제까지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환경, 특히나 제도 개선을 주도할 정치 환경은 이런 장기적·포괄적이고도 긴요한 과제 앞에서 대단히 무력하다.
앞서 언급한 허구적 대립구도가 그런 무력함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여러 불명료한 정치적 수사와 제도적 효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냉정하게 제거하고 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는 결국 언론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더 실효적으로 구제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진행됐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행 개정안의 우선순위를 ‘징벌성’이 아니라 ‘피해구제의 실효성’에 놓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 개정안의 주요 내용, 특히 재합의 단계에서 여당에 의해 수정 제안된 내용을 보면 징벌적 요소는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오기도 했다. 입증 책임을 전환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공직자도 피해구제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유지할 것이냐, 정정보도 요건을 강화할 것이냐, 열람차단권을 신설할 것이냐 등의 기타 쟁점은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좀더 숙의될 필요는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개정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지 혹은 결사적으로 반대해야 마땅할지를 두고 다툴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위헌적인 요소를 제거하면서 법적 체계성을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부분적 수정이나 삭제 혹은 강화 등의 부수 조치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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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사생결단의 대립 소재가 되었다. 심지어는 언론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더 지울 가능성이 있는 모든 변화가 극단적 반대의 이유가 되었다. 말하자면 악의적 허위정보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구제 수준을 높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 언론사에 대한 징벌성을 강화하든, 온라인 플랫폼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리 책임을 부여하든 모두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내건 문제가 무엇이었건 대부분의 반대 담론은 결국 ‘언론자유 침해’라는 거창한 구호로 귀결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가령 ‘피해구제의 실효성 강화’라는, 소극적이지만 현실적이고 정확한 목표를 내걸고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정안을 구성했다면 달랐을까? 혹여 그랬다고 하더라도 종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고 말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무력함, 즉 ‘현재의 언론 및 정보 환경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없도록 짜인 구조’가 애초부터 거시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미시적인 차원에까지 촘촘히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몇 주체와 그들이 동원한 전략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입법하고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여당이 노출한 정치력의 한계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언론개혁은 여당 지지자들을 넘어 비교적 폭넓은 사회적 지지를 얻고 있었지만, 정작 여당은 이 담론에 대한 이해와 준비 수준이 그리 높지 못했다. 국제적 관점에서 보면 현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리버럴에 근접한 지향을 가지고 있고,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있는 제도 개혁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금기의식과 트라우마가 강하다. 게다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미디어 현상을 다루어낼 만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도 않다. 개별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보아도 자칫 언론과 척을 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지형 위에서 대통령선거 등의 중대한 정치 일정을 연속으로 치러야 한다는 부담도 이미 안고 있었던 상황이다.4
이런 한계 속에서도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추진에 나서게 된 것은 사실상 여론의 힘이었다. 가짜뉴스에 대한 전향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는 여론 다수가 징벌적 손배제 방식의 접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당은 대부분의 개혁 과제에 대해 정치적 사보타주로 대응해왔던 야당과의 협상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보았을 것이며, 이해당사자이자 이미 정치적 적대 쪽으로 기울어 있는 상당수 언론을 설득하는 것 역시 어렵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때문에 여론의 보편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국회 통과의 키를 쥔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대한 통제력이 넘어가기 전에 언론제도 개혁을 신속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듯하다. 그 개혁의 첫발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형태로 표현됐던 것도 이와 관련되었으리라 본다. 언론중재법은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법령이기 때문에 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단으로 선택하기에 유리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적 압박과 정무적 여건은 좀더 합의 가능성이 높고 법적 체계성도 갖춘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는 일정한 제약으로 작동했던 듯하다. 물론, 다시 강조하건대, 개정안의 법적 결함보다는 관련 제도 개혁의 정무적 제약이 더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말이다.
둘째, 정치적 반대세력으로서 야권의 전략적 무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야권, 특히 실질적으로 유일한 대항세력인 국민의힘은 이번 정부하에서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얻어온 언론개혁 과제에 대해 어떠한 적극성도 보이지 않아왔다. 이는 단지 집권세력이나 국회 다수당이 아니라는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예컨대 이명박정부 시절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추진한 미디어법 개정을 떠올려볼 수 있다. 이는 여론의 폭넓은 지지에 기반을 둔 언론개혁이나 미디어제도 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기업에 더 적합한 시장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언론 부문에서도 시장 논리를 더 확대하겠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지향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수언론과 보수정치 사이의 전략적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주류 언론세력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에 손을 들어줄 동기가 없다. 보수언론 혹은 주류 언론기업의 정치적 대리자로서 작동하는 경향이 있는 이들은, 그것이 비록 국민적 개혁 과제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집권당으로서건 야당으로서건 추진도 동의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네르바사건 등으로 확인되듯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언론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입법 및 행정 행위를 금기시하지도 않는다.5 그런 까닭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개혁’을 목표로 하는 한 어떤 법체계와 내용을 갖추었든 이들의 정치적 사보타주는 지속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이들 야당이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즉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정치철학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이 정치적 동원에 유리한 계기이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표면적으로는 신설 조문의 과잉규제 및 위헌성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상당 부분 그것은 반대를 위한 ‘구실’에 가까웠다. 결국 이들은 언론자유가 너무나 소중한 가치라서가 아니라, 여당이 개혁의 과실을 가져갈 것을 염려하는 동시에 자신과 우호적 연대 관계에 있는 주류 언론의 입지를 흔들 제도적 변화에 반대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추진 초기 단계에서는 국회에서의 수적 열세를 인정하고 사실상 방임에 치중했던 이들이 언론 관련 단체의 적극적 ‘이슈 파이팅’ 성과로 여론이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자 국회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를 경고하고 릴레이 1인시위에까지 나섰던 것은 이런 ‘정략적 필요’에 기인한다.
셋째,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개혁 과제를 ‘언론자유’를 둘러싼 투쟁의 문제로, 나아가 앞서 언급한 허구적 대립구도로 전환시킨 핵심 주체는 언론이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여론의 압도적 지지와 국회에서의 의석 분포를 의식한 듯, 야당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무관심이나 소극적 반대 정도의 방관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언론 관련 현업단체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이슈 확산이 학계의 부분적인 호응과 맞물리고, 결정적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의 우려 표명을 계기로 ‘국제적 지지’를 얻어내는 듯한 양상을 연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기대와 우려의 소극적 구도를 찬성과 반대의 적극적 대립으로, 다시 말해 ‘자유냐 억압이냐’의 사생결단 구도로 변형시킴은 물론 이를 정파화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언론 현업단체의 문제제기가 애초부터 정파화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이들의 이슈 파이팅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내재된 법체계적 취약성을 환기한 면이 있고, 학계 일각에서 이들의 ‘우려’에 호응했던 것 역시 정확히는 이 부분에 연관돼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우려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국회 통과가 임박해오자 결국 언론자유라는 다분히 과잉 충전된 구실을 내세운 깃발 아래에 온갖 정파와 이해관계를 결집시키는 전략으로까지 나아갔고, 급기야 주류 언론-보수정당의 오래된 카르텔까지 발동시켜 정치적 동원 기제로 삼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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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의 중재로 9월 말까지 여야 합의 시도 후 정기국회에서 표결하기로 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처리는 다시 한번 미뤄졌다. 덩치가 한참 작은 야당의 정치적 승리이자, 고작 다섯척의 배로 국회 절대 다수파의 진로를 막는 데 성공한 언론 현업단체의 공이다.7 여야는 국회 안에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포함한 제반 미디어개혁 과제를 2021년 12월 말까지 논의하기로 했다. 그 결말은 어떠할까? 사회정치적 분야에서의 모든 예상은 과학보다는 예언자 혹은 도박사의 몫에 가깝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정교하고 포괄적인 형태로 미디어제도 개선이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직전 사례였던 9월 말 시한의 ‘여야 8인 협의체’가 보여줬던 무력함이 이번 ‘미디어 특위’의 미래를 가늠하는 지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미디어 특위는 여야 동수 18인으로 구성된다. 활동 시한은 있지만 의사결정의 형식과 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언론중재법 개정안뿐 아니라 여러 개혁 과제도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비토점(veto points, 반대할 수 있는 의제와 주체)이 많아질수록 결정의 가능성은 떨어진다. 게다가 대선이 코앞에 있다.
결국 두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의 형식이면 가장 좋겠지만 합의가 결렬된다고 해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결정’(nondecision-making)보다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결정이 낫다. 언론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언론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단 한걸음이라도 진전할 수 있어야 그다음의 개혁도 가능하다. 혁명이 아닌 개혁은 (그로 인한 부작용까지 끌어안는) 작은 개선의 누적적 효과이다. 다른 하나는 차기 정부의 과제로 이월시키는 것이다. 어떤 의사결정의 결과가 그다음 의사결정의 시점을 잡는 것에 불과한 경우는 많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결정할 것인가를 합의하지 않은 지연은 무능함을 넘어 유해하기까지 하다. ‘정보무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거버넌스’ 구축을 단기간에 이뤄내는 것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번 국회의 중간 지점인 2022년 내에는 미디어제도 개선을 위한 중점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언론에 의한 피해를 구제하는 더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의도적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다층적 처벌과 차단 방식, 저널리즘 품질을 제고하는 방향으로의 시장구조 형성, 기성 언론과 개인 미디어를 포괄하는 새로운 정보 윤리의 수립과 실천 방안에 연관된 모든 주요 주체들이 논의에 참여하고, 그로부터 도출된 최대공약수를 입법부와 행정부가 기성 법체계에 맞춰서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서든 적극 수용하겠다는 약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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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후자의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보다 더 중립적인 표현인 ‘배액배상제’를 선호한다. 재판부가 산정하는 피해액이 애초부터 매우 낮게 매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몇배로 끌어올린다고 해봤자 징벌적 효과에까지 이르기는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예컨대 ‘가짜뉴스는 온라인 개인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이 유포되는데도 그에 대한 대응은 없이 기성 언론만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국 정부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속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허위조작정보는 기성 언론을 통해 퍼질 때 더 큰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는다. 당연히 언론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자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표현의 자유이다. 위의 주장은 언론자유를 절대 손댈 수 없는 가치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대단히 모순적이고 비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 참고로 지난 국회와 이번 국회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즐겨 사용한 ‘협치’ 개념은 여야 간 합의 혹은 정치적 거래 및 타협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정치적 승자인 집권세력만 ‘통치’하지 말고, 정치적 상대인 패자에게도 권력과 자원을 나눠달라는 요구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시민사회 등을 거버넌스의 일원으로 포괄하려는 노력에는 몹시 게으르다. 언론개혁 과제의 일부로서 자주 강조되어온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선이 국회 내 주요 정당의 추천권을 ‘더 공평하게’ 나누는 문제로 협애화된다든가, 최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 일련의 언론제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정치와 언론이 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거꾸로 언론이 정파적 대립구도를 활용하여 (혹은 심지어 특정 정파와 연계하여) 자신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반개혁적 정치 행위’에 매몰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 사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미디어제도 개혁을 정교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시도된 의원입법보다는 행정입법, 나아가 개정법이 아닌 제정법 방식이 더 바람직한데, 이런 행정입법은 대안 수립에서부터 처리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지난하다. 특히 언론 관련 문제는 어떤 이유로든 상당한 저항을 뚫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의 의지와 조율이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개혁 과제에 해당한다.↩
- 이명박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차단하고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던 전기통신기본법 관련 조항이 2010년에 위헌 결정을 받자, 당시 한나라당은 인터넷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의 심각성을 이유로 대체법안을 추진한 바 있다.↩
- 언론 현업단체들은 언론으로 인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언론의 책임성 제고와 시장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자신들의 주도로 자율규제기구를 결성하여 ‘언론자유 위축 없는 언론윤리 강화’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동의할 만한 요소가 있다. 그러나 언론자유라는 거대 담론 수준으로 끌어올려 대립구도를 결성함으로써 정말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법적 규율에 의한 보완 없이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정말 자신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식을 더 신뢰하게 됐고, 문제해결의 주체이자 사회적 연대의 주체로서 언론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 이번의 입법 대립 과정에서 가장 뚜렷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이렇게 다섯개 언론 현업단체들이다. 이들은 전략적 방임 상태에 있던 야당에 투쟁력을 불어넣었고, 국제사회로부터의 ‘우려’를 얻어냈으며, 이로써 청와대의 정무적 행보를 이끌어냈다. 이런 혁혁한 전과가 우리 사회의 언론 문제를 더 바람직한 논의와 실천의 장으로 올리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긍정과 부정의 가능성을 안고 언론 문제의 제도적 해결을 위해 한걸음이라도 내디디는 게 나았을지 아니면 가장 바람직한 미래 상태가 오지 않는다면 발걸음을 멈춰 현재 상태(status quo)를 고수하는 게 나을지도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