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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선재 金宣哉
1971년 경남 통영 출생. 200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룩의 탄생』이 있음. muse420@hanmail.net
바람이 우리를*
죽은 개가 누워 있다 목이 졸려 혀를 빼문 개
둘이 되었다
머리없이, 심장없이
나를, 빌려줄까
머리는 어깨가 필요하고 구멍은 어둠을 그리워하듯
하나였지만 둘로 나뉜 우리는 아직
우리가 필요해
어떤 세계는 너무 작아
나는 목줄을 끌며 오래 생각한다
잔이 물을 규정하고
목줄이 삶을 규정하니까
어떤 관계는
참
사소해
옥수수 밭에서 불어온 붉은 바람이
우리의 골격을 핥는 저녁, 너
목숨 줄이라고 했니 네가 놓은 게
혀를 빼물고 할 수 있는 건
혀를 깨무는 것뿐인데
모래가 된 몸이 날아간다
하릴없이, 하염없이
머리없이, 심장없이
할 일이 없을 때는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로 하자
순서와 두서는 종종 혼동되니까
꼬리와 몸통은 가끔 뒤바뀌니까
빛을 줘, 그림자를 빌려줄게
어깨를 빌려줘, 목을 내줄게
너는 끝내 말이 없다
이미 둘로 나뉘었으므로
★
가장자리를 물고 개가 뛰어간다
가고, 간다
가능하면 먼 곳으로
--
* Mongoose의 노래 제목.
불가능한 해빙
나는 내가 지겨워
사랑해,라는 거짓말처럼
누구나 아는 하루에 대해 얘기해요 울고 싶을 때는 웃는 것처럼 큭큭, 평생을 살고 단번에 사라지는 새의 노래를 흉내 내며, 추위를 모르는 두손 뒤에 숨어 숨을 멈추고, 죽은 개의 눈을 떠올려요 큭큭, 그건 별일 아닌 일, 별일 아닌 일을 오래 어루만지는 일
나, 잠든 듯 잠들 듯 몸을 접을래
무표정한 서랍이 되어볼게
갑자기 뜨거워진 이마처럼
어느새 차가워진 손끝처럼
하루만, 딱 하루만
과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백야나 혹은 백주라는 극단적인 사람
여전히 끝나지 않는 하루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끝없이 밝던 어떤 밤에 대해, 꺽꺽 목을 내놓고 마음을 거둔 독백의 어조로, 어떤 예감도 없는 길을 걸으며 물론 그건 내가 끌고 가는 말이 아니라 나를 끌고 가는 말에 대한 이야기, 말과는 무관한, 말이 되기 어려운 이야기
나, 아주 잠깐 죽었을 때
그래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때
눈에 덮인 사물이 아름다워질 때
오래전에 죽은 별이 눈앞에 뜰 때
잠깐만, 아주 잠깐만 얼음이 될래
관을 버리고 관을 만들어
죽은 듯, 죽을 듯
내가 지겨워서
지겹다는 거짓말도 지겨워서
이제 두손은,
모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