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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지명 金芝茗
1960년 서울 출생. 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jihill88@hanmail.net
우월한 사진사
맘대로 질주해도 접촉사고 없는 내 눈은
후미등이 없다
보는 건 믿는 것
포충망 안에 잡힌 잠자리
모금함을 외면한 발길
나무가 수도승 같다는 말
뿌리가 짐승의 발굽소리로 울어야 나무가 자란다는 걸 알까
낙타의 짐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말
등에 실린 아픈 기억과 배후를 흔들어 털어버린다는 걸 알까
보이는 것만 만지작거리는 눈이 그렇듯
씌어진 활자만 믿는 독서가 그렇듯
그 너머
새의 발은 구름계단을 찢어 붙이는 즐거운 높이
가을 숲길은 스스로 길이 되었다 지워지는 기다란 붓질
현실은 상상 속에 있다
내 몸이 떨렸던 것만이 현실
보바리 부인처럼
돈 끼호떼 기사처럼
간혹
마들렌의 온기가 농담스레 전해지는 까페
냄새가 몸을 더듬어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
코를 빌렸다
귀를 늘어놓았다
전조등으로 달리는 내 눈은
스쳐가는 잔영으로 시끄러워
간이역을 모른다
그린란드 어디쯤에 놓고 온 렌즈
꿈속으로 찾으러 갈까
꽃의 사서함
근처 어디에도 내가 없어
들판에서 혼자 그려낸 만큼 피우고 섰다
그의 눈에 띄기 위해 그를 눈에 담기 위해
먼 길 통증도 분홍의 의지로 편입시켰다
나는 손이 시려도 잡을 수 없는 연인일지 모른다
나는 재미없는 정물이라고 풍장됐을지 모른다
익명으로 털올 바람이 배달되고
슬픔으로 자살하지 않을 만큼 배달되고
나는 내 얼굴을 몰라
몸속 깊이 함의한 그가 좋아한 색깔도 몰라
의심의 꽃대궁으로 그를 기다린다
수없이 많은 입술을 훔쳐 건너오는
오해의 여분만큼 그를 이해할 시간
꽃잎마다 그를 앓는 편지를 쓴다
어딘지 좀 채도가 부족한 생각일까
가끔 그를 거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갖고 싶은 사람을 소유한 사람의 여유처럼
그가 잠시 빌려온 남의 애인이었으면 좋겠다
나침반 없는 시계를 찼으면 좋겠다
내 희망이 바삭 구워지기 전에
매음굴이라는 말로
공작소라는 말로
누군가 내 목을 따 갔다
그건 내 아름다움을 진술한 방식
어느 꽃씨 부족이 발성되는
그가 사는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