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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신두호 申阧浩
1984년 광주 출생.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viergevers@gmail.com
다가가는 행위
주머니에서는 늘 손을 발견한다
누구의 것도 아닌
손을 위해 걸어다녔다
안개 속의 자연주의자들이 고립되는 밤이었다
할 말을 잃게 되면
시야의 모든 사물이 흐려졌다
이글거리는 물풀이
도처에 불어나던 게 기억난다
분필이 시간처럼 뚝뚝 끊어지고
손을 쥘 줄 모르는 손가락들이
흑판 속으로 굳어가는 광경
방향이 모든 감각으로 분할되어 지나갔다
곳곳에서 바지와 양말이 수거되었다
점들을 옮기려고 이동하는 몸을 만났다
움직일 때마다 수면이 자욱해지지만
통과해온 자리가 멀지 않아
증발할 수 없는 질량이 색채로 번지고 있었다
서로의 부재가 위태로울 때쯤
연막 안에서 네가 형성되었다
사물들에 선을 그어주는 건 혼잣말일지 모른다
숨을 쉬어보면
밤의 깊은 표면으로 옮아가는 점들
호수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물결
무리에 섞여드는 네가 나를 기억해냈다
방문한 장소들이 무수히 생겨났으므로
구분할 수 없는 손들이 악력을 잃어가며
하나둘 주머니를 입어나갔다
연인들의 연인
구름의 이동을 기다리는 게 지겹다
과정상의 몰락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될까
형태 이전의 반죽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검은 강물 속을 거스른다
생략하기로 한 미래를 그리면서
우산이 접히면 느려질 비를 떠올린다
엇갈린 손을 마주 잡는 것보다
부딪힌 팔의 진동이 각자에게 한기가 될 때
개별적으로 스며들 물방울을 염려한다
떨리는 허공이 남은 목소리를 들려주듯
청동상이 스스로 녹슬고
끝나지 않는 조각의 공원에서
맞물리는 톱니들처럼 정교하게 일치하는
가로수 및 가로등
그가 정한 순서가 그녀에 의해 구체화된다
희미한 어깨의 각도에서 보폭의 조율에 이르기까지
육면체의 색깔들을 어지럽게 뒤섞으며
아무도 건너지 않는 거리를 빠져나온다
헤어지고 난 뒤의 광장을 만나는 일처럼
마르지 않는 옷으로 미래를 기념한다
멈출 줄 모르는 빗속에서 우산을 펼치면
서로를 가로막던 장애물은 전부 제거되었지만
잃어버린 우산 어디에서든
쏟아지는 구름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