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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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李秉律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이 있음. kooning@empas.com

 

 

 

호수

 

 

멍이 드는 관계가 있습니다

멍이 나가는 관계가 있습니다

 

호수 위 작은 배 하나

 

마주 앉아 기도를 마치고

부둥켜안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부둥켜안았던 팔을 풀자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배는 흔들리고

 

다른 한 사람도 일어나자

위태롭게 다시 배가 휘청였습니다

 

한 사람이 물로 뛰어들더니

헤엄을 쳐서 배로부터 멀어져갔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첫 별은

잠시 후면 이 호수에 당도해

단 한번 멍을 뿌리고 갈 것입니다

 

호수 위에 작은 배 하나

고요 밖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푸드덕 물새가 날아오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꽃이 피는 건

꽃도 어쩌지 못해서랍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되어갑니다

세상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사람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실은 선인장은 넓은 잎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잎이 가시가 되었지요

사람에게 스미려고 가시가 되어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곳에 손을 올려놓는 스님처럼

세상 모든 것은 스미고

사람의 아픔을 아프게 하지요

 

꿈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꿈에 닿지 못한 사람들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죽어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