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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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姜聖恩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이 있음. mongsangs@hanmail.net

 

 

 

밤의 광장

 

 

검고 푸른 밤이었다 길을 걷다 광장에 이르렀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광장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광장은 넓고 고요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광장의 침묵 속에 한참 서 있다가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샛길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과 처마를 지나 불 켜진 창을 지나 교회와 상점들을 지나자 또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바닥에는 버려진 깃발들과 전단지들이 굴러다녔다 진흙과 피의 냄새가 공기 중에 스며 있었고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 울음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울음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나는 급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길은 이어져 있었고 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불 꺼진 시장을 통과해 학교와 약국과 정류장을 지났는데 내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좁은 골목들과 창문들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 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 시체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 가족들과 친구들과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는 내가 누워 있었다 나는 나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는 뜨거웠고 내 손은 차가웠다 죽어 있는 것은 나였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게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그랬다

 

 

 

병원

 

 

환자들이 병원 앞뜰에서 볕을 쬐고 있다 청소부는 낙엽을 쓸고 노인들은 은행을 줍고 아이들은 나무 위로 올라간다 환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공을 던지고 나뭇잎을 밟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다 우체부가 들어오고 피아노가 나가고 조문객이 들어오고 구름이 나간다 바보가 들어오고 백치가 나가고 오르간이 들어오고 딱정벌레가 나간다 쥐들은 쥐구멍으로 사라진다 병원 뒤편 숲에서 환자들이 나온다 잠든 채로 걸어 나온다 환자들이 버스를 타고 멀리 멀리 간다 개가 짖는다 햇볕이 들어가고 그림자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