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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신용 金信龍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등이 있음.
summal54@naver.com
수박
참 억척스럽게도 일한다 수박, 넝쿨넝쿨 줄기차게 뻗어나면서 허리통증 무릎관절 마디마디 삐걱이면서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쉼 없이 일하는 것이 살아 있는 징표이듯 그 징표가 있으므로 이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는 듯이 수박, 잠깐 앉았다 일어나면서도 아구구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뱉으면서도 그 신음을 전신에 파스처럼 붙이면서도 넝쿨은 뻗어나간다 한덩이 둥그런 수박을 매달기 위해 잘 익은 한덩이의 일생을 익히기 위해 수박, 모종 때부터 수확 때까지 한 차 가득 잘 익은 수박을 싣고 공판장 출하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그렇게 일의 넝쿨넝쿨 뻗는 것이 둥그런 하루의 완성인 것처럼 제 손으로 아이 낳고 탯줄 자르는 것처럼 수박, 오늘도 이 하루의 수확을 위해 넝쿨은 뻗는다 뻗어나간다
그 수박 한덩이 앞에 놓고 냇가에 앉아, 수박 한입 베어 문다
탁족의 청량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채집
강원도 산골 석청 채집꾼 김씨
힘들게 산을 올라 절벽 바위틈에 숨겨져 있는 석청을 발견해도
그것을 반만 들고 온다. 나머지는 벌들의 식량으로 남겨둔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미련하냐며 핀잔을 주면
그는 웃으며 말한다. 벌들도 먹을 게 있어야
내년에 또 우리에게 꿀을 나눠줄 거 아녀—
내 욕심 차리자고 꿀 다 들어내면 그게 도둑이지 산 마음이여?
그는 다시 웃는다. 그 꿀 다 들어내고
벌들의 식량으로 설탕을 넣어놓는 몹쓸 짓을 하면 안 돼야—
벌이 파리가 되면 어쩌려구 그려—
그런 김씨, 오늘도 부지런히 산의 절벽을 오른다
벌의 꿀을 얻으려면 이 정도의 수고쯤은 지불해야 한다는 듯이
저 벌들 좀 봐—, 꿀 한방울 만들기 위해
몇천번의 날갯짓을 해야 하는지—
강원도 산골 오지의 석청 채집꾼 김씨, 그는 그렇게 험한 산을 오른다
그것이 벌들이 만든 꿀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