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김경주 金經株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가 있음. singi990@naver.com
은여우 흰그네
식구들
눈물이 가득 찬 새벽나무를 뜯어먹는
은여우
아비는 발바닥으로 설질(雪質)을 구별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어미는 혓바닥으로 죽어가면서 나를 핥아주었다
식구들
은여우는 눈 위에 고요한 입맞춤을 한다
얼어죽은 작은 참새를 발견한 행운으로
얼음덩어리 날갯죽지를 으깨어 먹은 후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은여우
오래 살지어다
생사람 냄새가 나도
그을린 사람은 물지 않는다
食口들
바위에 눌어붙은 돌국화를 갉아먹는다
아가, 덫에선 햇볕냄새가 난다
네 털은 떠돌이들이 벗겨 입을 거다
엄마 돌가루는 지겨워요
저 햇볕을 잡아먹을래요
털을 벗기면 살코기만 남을 거예요
배가 갈라진 은여우
흰 그네를 타고 있다
아린 이가 아파
겨울밤 생피를 마시는 인간들
공기의 여행
손등에 눈이 쌓인다
폭설에 흰개미가 뜨거워진다
나는 물방울 몇 고이는 나라
손등에 산둘레가 저문다
손등은 화창한 멕시코
손등을 혼자 올랐지만
생존자가 없다
손등은 뱃놀이하기 좋지
손등엔 호수가 여러개
익사자는 파란 석류알 같아
손등을 핧다가 아비들은
꿈마다 모닥불을 들고
물속으로 내려간다
밤에 날아와 손등을 핥는 부엉이,
이빨이 하나도 없는
부엉이만 시가 되지
운명은 집에서 기르면
반드시 배반하지만
밖에 놓아두고 기르면
언젠간 집 안으로 들어온다
손등에 땋아놓은 머리칼처럼
불 쬐고 앉아서
손등에 당나귀가
오줌 눈 자리 바라본다
손등에 갈매기 자국 마른다
손등에 아들을 낳았다
나흘간 숨 쉬고
얼었다
손등에 불 붙은 이야기
손등에 바나나 나무
심은 남자 이야기
손등에 가오리연 하나
떨어져 있다
물동이를 놓칠까봐
새 학기엔 생강은 안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