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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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류성훈 柳成勳

1981년 부산 출생.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cheongyutea@naver.com

 

 

 

 

 

세상 바깥에서 내 장기를 보는 일과

네 생살 맛 중 어느 것이 나을까

계단에서 넘어진 생선이

국물을 쏟는다, 나는 너의 머리가

매운탕으로 보여, 옛날이야기엔

먹을 것이 별로 없어

시간이 늙으면 그리 언성이 높은 걸까

 

칼이 참돔의 척수를 끊을 때

내가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때

방금 전까지 내 발을 피해 흔들던

그 꼬리의 동력은 어디로 갔는지

척수의 깊이를 그리도 잘 알던

너는, 척수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누가 자른 적 없는 꼬리를 언제

저 수채에 던져버렸는지 너는

항상 먼저 구들을 밟고 올라서는데

길지도 있지도 않은 서로의 끝을

밟으려고만 하는 저 발 속에서

너는 물 밖 세상만 노래하는데

 

생살을 씹으면서, 생살,이라고

말하던 입술에서 따끔한 바다 맛이 난다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계단은 있고

그게 얼마나 많은 곰팡이와 개미를 머금고

잘 마른 걸음을 흉내 내려 하는지

바다의 무릎을 저미며 돌아오는지

 

그렇게 좋아는 하고 믿지는 않았던

생살의 바깥에서

내 짠 피와 너의 꼬리가 같은 점이었던 걸

너는 알고 있을까

 

 

 

그라목손*

 

 

모르는 새, 목숨이

너무 가벼워져 있다 아직

나는 깨어날 수도 있는데

 

우리가 구체(具體)이던 적은 없어도

그게 세련된 척력이던 때가 있었는데

 

꿈은 마지막 장의 필진(筆陣). 끝내 못 배운 아이들이 집에 천천히 돌아가는 놀이와 돌아가지 못하는 놀이를 한다. 죽은 이가 산 이를 이해할 수 있을 때는 죄, 이해할 수 없을 때를 악,이라고 불렀고 늘 전자는 후자보다 나쁜 것. 잃을 게 많은 밤이 푸른 알을 슬어놓는다. 너희의 귀가를 더이상 걱정하지 않는 봄이 올수록, 돌아갈 길은 내내 어렵단 걸 알게 될수록, 네가 잘못 날아왔다곤 말할 수 없게 되어갔다.

 

오랜 삶은 고마운 적 없어, 너는

바닥을 구르는 새들처럼

씻겨나가기를

 

날 용서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면

용서할 수 없는 나이는 오지 않는다

아무도 없어도, 모두가 살아도

다음 작목(作木)은 근거가 없는 것

 

말라비틀어진 별들을 보면서

단지, 고개 드는 법을 몰라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너희는 생태계에 영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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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독성/비선택성 제초제의 상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