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이봉환 李奉煥
1961년 전남 고흥 출생. 1988년 『녹두꽃』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밀물결 오시듯』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해창만 물바다』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가 있음. bongha3@hanmail.net
중딩
늑대소년
교실에 늑대가 들어와 돌아다닌다 놈은
사람들과 항상 1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다
어쩌다 그 거리 안으로 내가 들어서면 벌써
몇발짝 도망가 있거나 즉시 저항할 태세를 갖춘다
길들여질 생각이 전혀 없는 본능의 소유자
맞춤형 관심이나 사랑 따윈 절대 믿지 않는다
두어살 때였다던가 젖꼭지도 잘 못 찾던 엄마 품에서
야생보다 더 살벌한 인간 세상에 내버려졌다지 결국은
아동 양육시설 담당 보육사들의 손에서 투박하게 길러졌으리라
보육원 형들의 주먹다짐에 가시 돋친 한마리 고슴도치가 되어
웅크렸다가 밤이면 차디찬 읍내 거리를 배회하며 자동차나 털고
빈집에 도사리고 앉아 담뱃불로 후우우우 늑대울음 흉내 내다가
인간 경찰에게 잡혀 혼나기도 한다는데
그래서 1미터 안으로 어른이 침입해오면 으르렁,
저 붙잡으려는 줄 알고 그런 반응을 보이고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
놈은 제 안전한 거리 확보해두려고
아웃복서처럼 교실에서도 어슬렁대거나 늘 겅중거린다
오분 이상 의자에 앉지 않는다는 철칙까지 세워둔 거다
자리에 앉아라, 조용히 좀 못하겠느냐, 이런 따분한 훈계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다 저희 말투로 뭐라뭐라 지껄이는데
그걸 잘 참고 듣노라면 ‘지미쓰불눔지랄하네’라는 것도 같고
오늘도 선생들과의 영역다툼에서 견뎌내질 못했나
야생의 냄새 찾아 주저 없이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가는
점심시간, 사람의 탈을 쓰고 다시 나타난
저 늑대소년
그 쪽방
청해진 서로 2100번길 막다른 골목 끝
정상술씨 댁의 본채 처마 끝에 곁들인,
살 떨리는 그림자가 숨죽여
살던 그 쪽방
어둠과 함께 딱 두번 스며든 적 있다
밤 고양이처럼 문고리 잡으려 하면
그림자가 먼저 나와 사르륵
미닫이 소리 죽여가며 열어주고
첫새벽 더듬더듬 밖으로 나설 때면
달빛 그늘 아래 내내 서성였다가
허청허청 내 발길 아침으로 마중해주던
그 쪽방 여자의,
나는야 불온하고 젊은 애인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