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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오성일 吳星逸
1967년 경기 안성 출생. 2011년 『문학의 봄』으로 등단.
시집 『외로워서 미안하다』 『문득, 아픈 고요』 『사이와 간격』이 있음.
saysky@kbs.co.kr
촛불
촛불의 밝기가 몇촉인지 나는 모른다 촛불의 마음이 몇도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촛불에 대해 아는 게 있다 촛불은 다른 불과 다르다 촛불이 다른 불과 다른 건 흔들리기 때문, 어둠을 뒤흔드는 그림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로 땅을 흔들기 때문이다 촛불은 눈물을 모았다가 흘릴 줄도 안다 나는 그 눈물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나보다 먼저 놀라서 내 손바닥 안에서 굳어지던 촛불의 눈물, 하여 나는 촛불을 똑바로 세워 드는 습성을 배웠고 사람이나 촛불이나 꼿꼿한 자세 속에는 눈물을 사르기 위한 수평의 안간힘이 있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촛불이 무서운 건 다른 게 아니다 그 안간힘, 그 꼿꼿한 견딤이 무서운 것이다 수직의 분노가 옮겨붙는 저 거대한 수평이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 촛불은 바람 불면 번진다
전봉덕 할머니의 인터뷰
2016년 추석 연휴 끝 남쪽 지방에 큰비가 왔다
—자녀들이 추석 쇠고 떠난 시골집엔 빗물이 방문 앞까지 들이닥쳐 겨울을 날 연탄까지 쓸어갔습니다
KBS 기자의 물난리 소식에 어딘가 기사 같지 않은 아린 맛이 있어 ‘겨울을 날 연탄’, 이 대목에서 마음은 한번 삐끗했는데,
이어지는 전봉덕 할머니(전남 담양군, 78세)의 인터뷰는 이랬다
—하도 비 오는 소리가 짜락짜락 나. 그래서 인자 요리 와서 문을 열어보니께 넘실넘실혀 그냥. 죽겄어 깐딱하면……
세상은 아직 황톳빛 난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나는 참 철이 없게도
남도 여자의 육자배기 대목이나 얻어들은 듯 짜락짜락 빗소리가 하도 넘실넘실 가슴 문턱을 넘쳐 들어와 깐딱하면 이쁜 시 한줄을 토할 뻔했다